“정말로 내 수호천사라면 증명해요.”
윤여주. 주식회사 헤븐(Heaven) 사랑파트 소속. 400년차 천사.
잘생긴 얼굴과 재력, 신분, 능력. 갖출 거 다 갖추고도 매번 짝사랑만 하는 남자. 빛 좋은 개살구. 어장속의 물고기만 하다가 서브남에만 머무르기 일쑤. 세 번째 생에서는 고백 끝에 자살.
짠내 나는 내 담당. 영혼번호 라-811나23호. 현 생의 이름 카일 이블린 하워드.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보겠다고, 그의 꿈속에 두 번째로 들어간 날. 그가 그녀에게 거침없이 날린 말이었다.
처음 그의 꿈에 들어간 날에는 더했다.
“당신 누구지?”
“당신의 수호천사랍니다.”
“웃기는군.”
‘사랑수치’가 모자라 소멸위기에 처해있는 담당영혼. 그 수치를 채우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 연애인데, 천사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요리도 계속 먹다보면 물린다. 고급스러운 요리일수록 기름기도 많기 마련. 그럴 때는 기름기를 쫙 뺀 담백한 음식을 찾게 된다.
<조연이 파업 중입니다>가 바로 그런 이야기다. 분량에서부터 부담스럽지가 않다. 천사인 여주의 발랄함에 이끌려 가다보면 어느새 종착점에 와 있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도 없고, 쓸데없이 목 막히게 하면서 시간만 질질 끄는 전개도 없다.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착착 정리 돼 있는 깔끔한 책상이다.
있어야할 요소들만 콕콕 찝어서 자리를 잡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재미요소만큼은 놓치고 있지 않아서 일단 손에 잡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릴 수 있는 소설이다.
잠깐잠깐 등장하는 조역들도 매력적이다.
망각수개발팀 소속 동토끼. 카일의 특수체질 덕분에 엄청난 눈물을 뽑아야 했다.
여주에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제비에서부터 여주의 좋은 조력자가 되어준 사슴오빠까지.
이들은 모두 여주의 입사 동기다.
천사가 보이는 꼬맹이 황손에 사슴오빠의 부인인 선녀까지. 매력적인 주변인들이 한가득. 유쾌하지만 결코 스토리가 복잡해지지 않는다. 스토리의 말끔함과 조역들의 매력이 절묘한 균형추를 잡고 있다.
작품 속 이야기 전개와 조역들이 지나치게 가깝지 않기에,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천상계의 모습도 신선하다.
각 차원의 요리를 다 맛보고, 현대 문명의 이기까지 다 누린다.
담당영혼 관리를 위해서 스마트워치까지 등장함은 물론, 판타지 세계관인 라 대륙에서 여주는 컵라면과 김밥, 죽을 즐긴다. 이 모든 것들이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생생하다.
카일의 자세한 사정을 알고 나면, 처음에 여주에게 까칠했던 태도도 납득할 수밖에 없다. 이후부터 펼쳐지는 남자주인공의 존댓말은 은근히 기분이 좋다.
상처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고운 심성의 남자주인공의 모습도 호감이다.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울고, 열심히 웃었다. 끝까지 다 읽고 나면 한편의 이야기를 다 맛본 충족감이 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사슴오빠를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어진다. 사슴오빠와 카일, 여주를 잇는 연결고리가 가슴에 따뜻하게 남는다.
다만 외전이 약간 아쉽다. 초반에 나오는 두 편의 외전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고, 마지막에 나오는 외전은 독자가 그 뒷이야기를 더 필요로 하게 만든다. 외전은 분량이나 이야기의 비율조정에 있어 절반만 성공한 샘이다.
카일과 여주의 딸이, 이후 어떻게 되는 지도 궁금하고. 꼬맹이 황손의 환생이 어떻게 될지 그 운명도 궁금해진다.
이후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지 예상이 되는 마무리이기는 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손을 통해 더 나오지 못해 아쉽다.
지나치게 복잡한 이야기, 누군가를 모함하는 이야기, 수틀리면 폭주하는 서브남이 부담스러운 분들. 애초에 서브남이 등장하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분들. 이야기의 즐거움은 누리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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