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1-30 23:30
[응모]_소설 속 엑스트라_판타지_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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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엑스트라들의 세계 - 『소설 속 엑스트라』를 읽고>
어느 소설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소설 속 인물 중에 누구라도 될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습니까.”
소설가는 답한다.
“소설 속 인물이라뇨. 그런 것이…… 되고 싶겠습니까?”
나는 흰 화면을 띄워놓고 인물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한다.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인물이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작가와 독자 입장에서야 신이 나겠지만, 과연 당사자인 인물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소설 속 엑스트라』의 시작은 이렇다.
“내가 쓴 소설의 엑스트라가 되었다.”
웹소설 작가인 ‘김하진’은 슬럼프로 연재를 중단한 상태다. 그 와중에 중단한 작품을 리메이크 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는다. 김하진은 거절하다가,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간곡한 요청에 리메이크를 허락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뿅, 자신이 쓴 소설 속 세계였다. 기억에 없는 ‘김춘동’이라는 엑스트라인 채로.
으레 그렇듯 김하진은 스토리를 끝내는 것이 현세로 돌아가는 방도임을 깨닫는다. 이따금 주연들에게 무시당하고는 “감히 창조주를 비웃어?”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지만, 김하진은 주연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리메이크 탓에 원작보다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 주연들을 구해낸다. “세계에서 김하진의 비중이 커질수록” 김하진은 스킬 포인트를 얻는데, 이가 성장의 힌트였다.
결과적으로 김하진은 소설 속 인물을 도울수록 강해진다. 하지만 “세계에서 비중이 커질수록” 이라는 단서는 다르게도 해석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능력을 십분 활용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다거나, 인물들을 농락하고, 학살을 자행한다든가…… 여타 다른 소설에서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 말이다. 김하진의 도움으로 인물들은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걷게 된다.
김하진이 인물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자기반성처럼 여겨진다. “억지로 밀어내듯 전개한거라 캐릭터 붕괴는 물론이오 개연성에도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며 슬럼프를 고백한 김하진은 소설로 들어와 세계의 빈틈을 온몸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퇴고 하듯 말이다. 김하진은 자신이 현세로 돌아가는 일은 차치하고서, 직접 그려낸 세계가 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는 것이다.
김하진은 세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희생을 도맡는다. 이는 ‘채진윤 살해 사건’으로 그려진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 ‘채나윤’, 그녀의 오빠인 채진윤에게서 악마의 씨앗을 발견한 것이다. 악마의 씨앗은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세계를 뒤흔들만한 악마를 불러들일 위험이었다. 이는 김하진 본인이 직접 설정한 것이었다. 김하진은 위험이 닥치기 전에 채진윤의 암살을 계획한다.
김하진은 채진윤의 이마에 총구를 갖다대고, 운다.
“미안합니다, 정말. 정말로…….”
자신이 정한 설정으로 인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소설 속 인물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빚어낸 채진윤의 성정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그린 채진윤이라는 남자. 그는 누구보다 자상했고, 따뜻했고, 헌신적이었고, 정의로웠던…… 영웅이었다.”
김하진은 이내 방아쇠를 당긴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소설 인물 하나가 사라진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하진은 큰 죄책감을 느낀다.
소설에서는 갖은 설정으로 인물을 몰아넣고, 쉽게 죽이기까지 한다. 김하진은 직접 세계에 뛰어들어서야, 그것이 윤리적이지 못한 일임을 몸소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그 인물들을 아껴왔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여러 인물을 스케치하고, 몰아붙여 왔다는 생각이다. 인물을 망가뜨리기 위한 여러 복선을 마련하고, 복선을 지뢰처럼 곳곳에 숨겨둔다. 인물이 필연적으로 그것을 밟으면, 펑. 모든 계획이 오로지 극적인 상황,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 허나, 이는 분명 누군가의 죽음이고 그 앞에서 신나서는 안 되었다.
김하진은 다시 일어나 세계를 고쳐나가기 시작한다. 첫째로, 위색단의 감화가 목표였다. 위색단은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무리였다. 김하진은 이곳에 들어가 ‘대장’ 곁에서, 그녀를 보좌하며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어린 시절부터 암살을 이어온 대장은 많은 상처를 가진 인물이었다. 김하진은 대장에게 관심을 쏟으며, 삶의 즐거움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대장과 말동무가 되어주고,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는 일이었다. 대장은 점점 밝은 인물로 바뀌어간다.
김하진은 위색단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큰 힘이 되리라 여기고 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결국, 세계를 지탱하는 단초는 사소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다. 김하진이 자신의 인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그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작은 무언가가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분명 마지막장에서 세계를 지켜내리라 생각한다.
대장은 임무 보상으로 신비한 돋보기를 손에 넣는다. 돋보기는 상대의 마음을 한 번 읽어내는 아이템이었다. 대장은 김하진에게서 여러 마음을 훔쳐본다.
“애틋함, 책임감, 애정, 당신의 과거에 대한 슬픔, 당신을 향한 믿음,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
대장은 김하진의 마음에 당황한다. 김하진은 그려낸 인물에게 애틋하고, 책임감을 갖고, 애정을 기울이며, 자신이 쥐어준 비극적인 과거를 슬퍼하고, 믿으며 보살펴주고 싶어 했다. 이는 작가가 가져야할 마음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서로에게 품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리메이크의 기세가 거세져 불확실한 위험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김하진은 잘, 무사히 이야기를 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자신이 도운 인물들이, 자신을 돕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장한 인물들은 도리어 김하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김하진은 더 이상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과 함께 서로를 지켜낼 것이다.
나는 흰 화면을 띄워놓고 인물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한다. 결국 소설은 갈등이 얼마나 첨예한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대하는 인물들에 의한 것임을 다시 생각한다.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혼자 성공할 수 없고, 엑스트라라 할지라도 함께하지 말란 법 없다. 오히려 함께 할 수 있는 엑스트라야말로 주인공의 자질을 가진 것일 테다. 부디, 함께한 마음이 이 세계를 지켜낼 수 있길. 비단 소설만의 이야기는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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