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도미니카에서 돌아 온 신계장과 정대리를 마주 한 윤팀장은 속이 탔다. 가장 먼저 심해어를 먹은 노인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 나중에 먹은 어부들과 선교단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거기다가 도미니카의 페스카도르 바이러스와 교도소 바닥의 혈액에서 검출한 바이러스는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것이었다. 도미니카에서 가져온 바이러스는 P1이라고 하고 교도소에서 검출한 바이러스를 P2라 정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실마리를 풀어갔다.
“노인이 먼저 심해어를 먹었지. 그런데 그는 감염이 되지 않았어.”
“그런데 그가 먹은 생선에서는 P1 바이러스가 나왔죠.”
“노인의 혈액에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고?”
신계장이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네, 도미니카의 분석을 믿을 수 없어서 노인의 혈액을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석을 해도 노인의 혈액에서 페스카도르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윤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럼 노인이 먹은 던 그 심해어가 변했다는 얘기인데... 그 사이 뭐 특별한 건 없었나요?”
“네, 팀장님. 신계장님과 제가 들은 바로는, 생선을 말리는데 쥐들이 자꾸 와서 대부분을 냉장고에 넣었고요. 조금만 남겨서 계속 말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조금 남은 생선에서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하군.”
“네, 다른 점은 말린 것인데, 이때 뭔가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윤팀장에게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전화기를 들었다.
“나야, 윤팀장. 지금 분석하는 P1 바이러스가 공격성을 나타낸 적이 있나? 없다고? 그럼, P1 바이러스와 교도소에서 가져 나온 P2 바이러스에서 다른 부분 있지? 그 부분을 쥐나 파리 같은...”
윤팀장의 표정에 뭔가 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연에 노출된 상태에서 접촉할 수 있는 것들과 연관 지어서 분석해봐. 다른 건 치우고 이걸 최우선으로. 오케이. 수고해.”
교도소 천장.
8끼를 굶었다. 거기다가 물도 없었다. 손민우는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점심 때 쯤에는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계속 잠이 왔다. 저녁에 사탕을 한 개 더 먹었다. 이제 남은 사탕은 한 개다. 그래도 무너질 수 없었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눈이 떠지면 잠을 잤다. 그러다 또 눈이 떠지면 다시 잠을 잤다. 그때 천장 구멍으로 레이저 불빛이 보였다. 손민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손민우씨, 저, 윤상근입니다.”
이불을 덮고 있는지 소리가 작고 울림이 전혀 없었다.
“...”
손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말을 계속했다.
“손민우씨, 화가 나신 거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안하고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말씀드리고 싶네요.”
“물도 필요하고 배도 많이 고프실 텐데...”
“낚시줄 내려 주시면 제가 물이랑 남은 음식이랑... 좀 올려 보내겠습니다.”
손민우는 눈을 감았다. 윤상근의 방에는 수돗물이 나온다. 거기다가 음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신이 죽으면 그도 죽겠지만, 최소한 자신보다는 그가 더 오래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상근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음식을 아껴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사실, 손민우씨가 죽으면... 결국, 저도 죽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도 손민우씨를 이길 수 없는 구조인거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손민우씨도 저 사람들을 이길 수 없을 테고요.”
윤상근은 말을 이어 갔다.
“이 싸움이... 손민우씨와 저와의 대결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만 굶으면서 고통 받을 뿐이지... 저 사람들은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는 상황이잖아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합시다. 운명을 받아들이자고요.”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을 듣던 손민우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은 어느 하나 틀린 점이 없었다. 손민우는 생각했다.
“내가... 졌다. 나는 완벽하게 졌다.”
손민우는 천천히 무전기를 들었다. 1층의 윤상근과 옥상에서 듣고 있을 그들을 위해 패배를 시인하는 말을 해주었다.
“알았어요. 일단 물부터 좀 보내주세요.”
와이어를 올렸다. 그러자 도시락이 내려 왔다. 1층으로 내려 보내주고 자신의 도시락을 열었다. 물과 죽이었다. 손민우는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교정단장이 와이어를 올리라고 했다.
이번에는 다른 음식이 내려왔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또 다른 음식과 함께 플라스틱 소주병이 내려 왔다. 손민우는 등을 기대고 앉아 조금씩 마셨다. 소주에 취했다. 긴장이 풀렸다. 몸도 나른해졌다. 소주병이 조금씩 비워졌다.
남은 소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을 때, 남기민에게 무전이 왔다. 손민우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손대리님, 괜찮으세요?”
“기민아. 흑흑흑”
“왜요? 손대리님! 아직 굶고 계시는 거예요? 이제 그냥 항복하세요. 그러다가 진짜 굶어 죽겠어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여기 있어야 되냐? 흑흑”
“손대리님, 곧 나오실 수 있을 거예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손민우는 무전기를 잡고 울면서 상근에게 한참동안 하소연을 했다.
다음날 아침. 기분이 많이 가라앉은 손민우는 도시락을 받아 1층으로 내려 주었다. 자신도 자리를 잡고 앉아 뚜껑을 열었다.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그때 무전기에서 교정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민우씨, 밥이 맛있죠? 오늘부터는 밥이 공짜가 아닙니다. 앞으로 제가 두 분에게 미션을 줄 겁니다. 그 미션을 완수해야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아시겠죠? 대답은 안 해도 되지만, 기억은 꼭 하세요.”
손민우는 아무 표정 없이 입에든 밥을 씹었다.
TF팀 상황실.
윤팀장은 연구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P2 바이러스에서 쥐 바이러스(Rat Virus)의 유전인자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P1 바이러스는 다른 세포나 생명체에 대한 공격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무슨 세포로 실험을 했지?”
“사람, 개, 고양이, 닭, 쥐, 금붕어... 저희가 샘플 가지고 있는 건 다했습니다. P1 바이러스는 공격성도 전염성도 없어요.”
윤팀장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물었다.
“P1 바이러스는 쥐 세포를 공격하지 않는데... 쥐 바이러스(RV)에 걸린 쥐 때문에 P1이 P2로 변형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겠군.”
“네, 맞습니다. 팀장님. 그리고 제대로 된 실험을 하려면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있어야 하는데 저번에 교도소에서 가져온 건 사멸된 바이러스라서...”
“그래, 그게 가장 급한데... 구하기가 쉽지가 않아. 그건 일단 내가 해결 할 테니까 해외사례 검색해서 P2 바이러스랑 유사한 바이러스 찾아봐. 개발된 백신도 같이.”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윤팀장은 교정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손민우를 설득하는 일이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네! 팀장님. 제가 며칠 동안 꾸준히 설득한 끝에, 드디어 손민우씨가 마음을 돌렸습니다. 손민우씨의 협조를 구하는 건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그럼, 저번에 말씀드린 감염자 혈액 구하는 것부터 부탁을 드리세요. 이게 무엇보다 가장 급한 일입니다.”
“네! 팀장님.”
윤팀장의 전화기 너머로 교정단장의 씩씩하고 자신에 찬 대답이 들렸다.
교도소 천장.
점심시간이 되었다. 도시락 주머니 뒤에 다른 주머니가 하나 달려 있었다. 손민우는 도시락을 제쳐 두고 그 주머니를 먼저 열었다. 거기에는 장갑과, 주사기 그리고 지퍼백이 들어 있었다.
혈액검사를 한 번 더 하나 싶었던 손민우는 도시락과 물품들을 한 개씩 챙겨 윤상근에게 보내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저번에 도시락이 끊겼던 이후, 손민우는 도시락을 열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뚜껑을 열었다. 밥이 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 종이와 연필을 들었다. 윤상근에게 물어 보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 이름도, 나이도, 죄명도, 여기 얼마나 있었는지도 아무 것도 몰랐다.
사실, 그것보다 더 궁금한 점은 윤상근은 왜? 셀프카메라 계획을 밀고했냐는 것이다. 그 사람도 구조되기 위해서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텐데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