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의 계획은 여론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감염자에 대한 동정심을 떨어트리고 손민우에 대한 동정심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손민우에게 카메라를 보내 셀프영상을 찍고 거기에 좀비들의 모습도 보여주자는 계획이었다.
남기민은 손민우에게 배관용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배관용 카메라는 음성녹음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카메라를 보내야 했다. 이렇게 손민우가 셀프영상을 찍어 언론에 공개하는, 그들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방송이 나가면 교도관 중에 누군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고, 결국 장윤정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교도소로 돌아 온 윤팀장은 옥상으로 갔다.
“손민우씨! 들리세요? TF팀장 윤보경입니다.”
“네, 네. 언제쯤 나갈 수 있습니까?”
“손민우씨!”
“네, 말씀하세요. 팀장님.”
“손민우씨, 미안하지만 당분간 나올 수가 없겠습니다.”
“네? 왜요?”
“감염자들에게 치료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아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정보가 생길 때까지 이대로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니... 저기, 팀장님. 흐흐. 무슨 말도 안 되는... 저 좀비들이 치료를 받는 다구요?”
“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손민우씨와 다른 생존자분이 감염자들을 관찰 해주시면 좋겠어요. 감염자들에 대한 정보가 많아야, 손민우씨가 구조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언제까지요?”
“언제까지라고 딱 잘라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니... 팀장님! 지금 농담하는 거죠? 좀비들이 무슨 치료를 받아요? 예? CCTV 안보셨어요? 내장이 튀어 나오고 피를 저렇게 쏟았는데. 저것들이 치료를 받는다고 살아 날 것 같아요? 살 사람은 살아야죠?”
“손민우씨, 진정 하시고...”
“아니, 내가 지금 진정이 되겠냐고요? 어느 미친놈이 그런 결정했어요? 네? 당장 안 꺼내주면, 나가서 다 죽여 버린다! 내 장담하는데, 절대 가만히 안 있을꺼야!
윤팀장은 눈을 감고 듣고만 있었다.
“아~ 정신 나간 놈들, 좀비를 치료해? 에라이~ 미친놈들아! 좀비를 치료한다고? 그래서 나보고 여기 있으라고? 그게 말이 되냐고 미친놈들아!”
감정이 격해진 손민우가 마구 소리를 지르자 방에 있던 좀비들은 물론 수용동 밖에 있던 좀비들까지 뛰어 들어와 천장을 향해 으르렁 대며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본 손민우는 들고 있던 무전기를 좀비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시끄러! 좀비 새끼들아!”
천장의 구멍으로 손민우의 모습이 보이자 좀비들은 더 크게 날뛰었고, 손민우는 공구박스의 공구들을 두세 개 더 집어던지고 욕설을 계속했다.
“시끄럽다고! 이 새끼들아. 닥치라고! 젠장~ 너희들 때문이라고...”
끊긴 무전기를 들고 있는 윤팀장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텐트 안에서 같이 대화를 듣고 있던 교정단장과 교도관들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윤팀장이 옥상에서 내려 갈 때 교정단장이 다가왔다.
“팀장님, 제가 잘 설득 해보겠습니다.”
“단장님, 말씀을 잘 좀 해주세요. 저분들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윤팀장이 내려 간 후, 교정단장이 무전기를 들었다.
“두 사람! 서로 협조가 안 되면 곤란합니다.”
아무 대답이 없다가 윤상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손민우, 그 사람 무전기를 던졌습니다. 지금 듣지를 못해요.”
“아~ 5939!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출소까지 꽤나 남았던데...”
“나중에 편하게만 해주신다면 적극 협조 해드려야죠.”
“그렇지! 바로 그게 정답이지. 그런데 한 사람이 협조를 안 하면 소용이 없는데...”
“단장님은 밥줄을 쥐고 있지 않습니까?”
“밥줄, 그렇지. 하지만 5939 당신은?”
“저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제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부터 밥줄을 끊으세요. 주변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남기고요.”
“신호?”
“이렇게요.”
윤상근이 무전기를 잡고 버튼을 누르고 떼기를 반복하자 규칙적인 신호음이 들렸다.
도미니카.
도미니카에 도착한 신계장과 정대리는 즉시 도미니카 고등과학기술교육부(MESCYT)의 마누엘 차관을 만나러 갔다. 2년 전, 마누엘 차관이 질병 예방과 관련된 기술이전을 받으러 한국에 왔을 때 윤팀장과 함께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누엘 차관은 신계장과 정대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누엘 차관이 테이블 위에 미리 정리한 자료를 올려놓았다. 이즈음, 한국에서 바이러스 분석을 마쳤을 때라 정대리는 메일로 받은 한국의 바이러스와 도미니카의 바이러스를 비교했다. 아주 비슷한 것 같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정대리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신계장에게 보여 주었다. 신계장도 정대리의 생각과 같았다. 정대리는 마누엘 차관에게 페스카도르 바이러스가 발견된 곳을 물었다.
마누엘 차관은 친절하게도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안내를 지시했다. 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하는 길은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에 싱그러운 야자수들 그리고 흰 모래사장에 에메랄드빛 바다.
한참을 달린 끝에 어느 선착장에 도착했다. 마누엘 차관의 연락을 받은 현지 보건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신계장과 정대리를 어느 한 노인에게 데리고 갔다.
흰 머리가 길게 휘날리며, 폭이 좁고 깊은 주름이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그가 설명하기를 약 2주전 아이티에서 지진이 났는데, 그때 노인은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고기잡이 50년 동안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물고기를 잡았다.
물고기를 시장에 내놔도 팔리지 않아서, 포를 떠서 말렸는데 쥐가 자꾸 덤벼들어 대부분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일부만 계속 말렸다. 며칠 후 딸이 노인의 집에 왔을 때 말리고 있던 물고기를 이웃의 어부들에게 줘버리고 나머지 서너 개는 교회에 가져갔다.
이 물고기를 먹고 작업을 나간 어부들이 돌아오지 않아 배를 가진 마을사람들이 바다로 나가서 그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이미 괴물로 변해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배가 가까이 가자 괴물로 변한 어부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마을사람들의 배로 헤엄을 치면서 다가왔다. 마을사람들은 무서워서 그들을 건져주지는 못하고 배를 슬금슬금 뒤로 뺐고, 한참 후 괴물로 변한 어부들은 물속으로 모두 가라앉았다.
여기까지 들은 신계장은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째는, 물고기를 먹은 노인은 왜 좀비로 변하지 않았는지?”
“둘째는, 교회에서는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셋째는, 마누엘 차관이 보여 준 자료의 바이러스는 어디서 얻은 것인지?”
신계장이 말한 의문점을 정대리가 통역했다. 노인은 자기가 좀비로 변하지 않은 이유를 모른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분명 물고기를 먹었고, 가장 많이 먹었다고 했다. 마을의 보건소장은, 노인의 집 냉장고에 남은 물고기를 마누엘 차관에게 보냈고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고 했다.
신계장이 마누엘의 부하 직원에게 노인의 혈액을 분석해봤냐고 물었다. 부하직원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냉장고의 물고기에서는 페스카도르 바이러스가 검출 되었지만, 노인의 혈액에서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신계장은 교회로 가보고 싶다면서 노인의 딸을 교회로 불러 달라고 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 지났을 때 아담하고 깨끗한 교회에 도착했다. 대부분이 성당인 도미니카에서 몇 안 되는 교회 중 하나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딸이 교회에 왔다. 신계장은 딸에게 교회로 가져 온 물고기는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노인의 딸은 한국에서 온 할렐루야 선교단이 돌아갈 때 모퐁고※를 만들어 비닐팩에 넣어 줬다고 한다.
※모퐁고(mofongo) : 돼지고기, 해물, 마늘 등을 넣어 만드는 도미니카 음식
신계장은 순간적으로 이거다 싶었다. 남은 물고기가 있냐고 물었지만 아쉽게도 없다고 했다. 같은 물고기를 노인과 어부들 그리고 선교단이 먹었는데 노인만 멀쩡하다는 의문이 남았다.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신계장과 정대리는 페스카도르 바이러스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정대리는 어떻게 생각해? 그 어부들과 할렐루야 선교단 그리고 그 할아버지 말이야.”
“같은 물고기를 먹고 단, 한 사람만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그 할아버지의 면역력이나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하니... 신계장님은요?”
“맞아. 도미니카 정부의 분석에 틀림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물고기가 달라진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물고기가 달라진다고요?”
“그래, 할아버지가 먹은 물고기와 어부 그리고 할렐루야 선교단이 먹은 물고기가 다른 거지.”
“하지만, 분명 같은 물고기를 먹었다고 했잖아요?”
“정대리,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모든 것은 시간과 장소와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