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 교정단장은 컨테이너에 갇혀있었다. 어제 민원실에 들어갔던 1, 2조 대원들과 기동대장 그리고 총무과장까지 다 함께였다. 감염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피를 빼서 제출했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여기서 기다려야 했다.
대원 중 한 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동대장에게 말했다.
“대장님, 전염병에 감염됐다고 판정되면 저희들은 우찌 됩니꺼?”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대원이 말했다.
“아유~ 재수 없는 소리 하덜~ 말어. 만지지도 않았잖여~”
기동대장은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전염이 됐든 안됐든, 여기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쩌겠어?”
컨테이너의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염되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지만, 교정단장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TF팀이 꾸려져서 교정본부는 심부름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TF팀에 남아서 심부름만 잘하면 상황이 종료된 후에 상장이든 훈장이든 뭐라도 하나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약 못 받더라도 일단 큰 실적이 될 것이다. 교정본부의 특성상 큰 이슈가 적기 때문에 본부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혈액분석이 한창이었다. 혹시 모를 호흡기전염을 예방하기 위해 국내에 한 곳 밖에 없는 BL4(생물안전 4등급 연구시설)에서 분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혈액들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페스카도르 바이러스가 검출된다면 그것을 토대로 백신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고, 더 최악의 경우는 그 몇 년 후라도 성공을 장담하진 못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윤팀장은 혈액분석 결과를 기다리면서 조바심이 생겼다. 만약 페스카도르 바이러스가 검출된다면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백신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은 완성된 백신을 얻어 오거나 백신 개발을 하면서 실패했던 정보를 얻어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다. 다행히 페스카도르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도미니카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윤팀장은 생물테러대응과의 신계장과 정대리를 불렀다. 신계장은 생물테러대응과의 전반의 업무에 정통한 베테랑이다. 비록 곧은 성격 탓에 번번히 승진에 실패했다.
때문에 지금은, 한때 후배였던 윤팀장의 부하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윤팀장은 신계장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맡은 업무가 국제협력이라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정대리는 유년 시절을 멕시코에서 보냈기 때문에 에스파냐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맡은 업무도 해외동향 파악이라 해외 연구기관에 인맥도 많았다.
“과장니, 아니 팀장님, 무슨 일로?”
윤팀장은 신계장과 정대리를 자리에 앉히고 설득을 시작했다.
“두 분, 도미니카에 잠깐 다녀오셔야겠습니다.”
“도.. 도미니카요?”
신계장과 정대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혈액분석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알겠지만 페스카도르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시다시피 백신을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발원지에 가서 원형을 가져 오거나 연구정보를 얻어 오는 길 뿐입니다.
윤팀장은 쉴 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두 분이 국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정대리는 외국어능력이 탁월하고 선배님은 저희 과 업무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일 오전 11시 비행기입니다. 목표는, 바이러스 원형을 가져 오거나 백신 연구정보를 얻어 오는 것입니다.”
교도소 천장.
손민우가 새로 뚫은 세 번째 루트는 아주 안정적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1층 생존자의 방 앞에 낚시줄을 내릴 수 있었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음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음식이나 물품을 보낼 때 레이저 포인트로 미리 신호를 주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거기다가 주고받는 낚시줄을 통해 그와 대화를 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의 메시지는 늘 간결하고도 임팩트가 강했다. 이번에도 낚시줄 끝에는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 보내주신 음식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소시지와 오징어더군요. 제가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만... 혹시 무슨 사정이 있나 궁금해서 그럽니다. 아니면 소시지와 오징어를 정말 좋아하시는지? 』
“이 사람이 진짜. 배가 불렀네. 배가 불렀어. 큭큭크.”
그러면서도 혹시, 하는 생각에 손민우는 바로 답장을 썼다.
『 저도 다른 음식이 간절합니다만,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지름 28mm의 구부러진 전선 배관이라서 그렇습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
낚시줄에 쪽지를 매달아 내려 보냈다. 그리고 레이저 포인트로 그 방의 벽면을 비추고 흔들었다.
낚시줄은 곧바로 딸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기다리는 손민우의 머릿속에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아니, 내가 이 건물 지을 때부터 여기 전기설비를 담당했는데...”
“저 사람은 여기서 살긴 했지만 건물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겠어?”
“자기도 할 말이 없으니까 대답을 못하겠지. 혹시 사기로 들어 온 사람 아냐?”
“아, 그래도 뭔가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서 여기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생각 했을 때, 낚시줄이 끄덕였다. 기대감에 사로잡힌 손민우는 급히 낚시줄을 당겼다.
윤상근이 보낸 쪽지를 급히 펼쳐 보는 손민우.
『 아, 역시... 모르고 계셨군요. 여기 남부교도소에는 전기배관 말고, 다른 배관도 있거든요. 천장하고 옥상이 연결된 배관 중에는 환기구 배관이 쓸 만합니다. 수용동 천장에 환기구가 네 군데 있는데 옥상과 바로 연결되거든요. 』
손민우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 의료동과 복도의 환기구까지 올라가서 옥상에는 8개의 환기구가 있지만 찾긴 쉬울 겁니다. 시로코 팬이라고 회전통 같은 게 돌아가니까 뜯어 낼 때 조심하셔야 됩니다. 28mm 보다는 100mm 배관이 낫지 않겠어요? 』
쪽지를 읽은 손민우는 어이가 없었다. 바로 남기민에게 연락을 했다.
“기민아! 기민아!”
“네, 손대리님.”
“옥상에 환기구가 있을 건데. 몇 개인지 세어볼래?”
“네, 잠시만요.”
“환기구처럼 생긴 건 8개 있는데요.”
“뭐? 그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데? 자세히 들여다 봐.”
“어, 이게. 그러니까... 안에서 동그란 통이 돌고 있어요.”
“...”
다시 정신을 차린 손민우가 남기민에게 지시했다.
“내가 배관 하나를 두드릴 거야. 옥상 환기구 8개 중에서 소리가 제일 크게 들리는 배관을 찾아! 알았지?”
“네, 알았어요. 손대리님.”
손민우는 케이블 트레이에 가장 가까운 환기구를 찾았다. 천장의 마감재는 약해서 사람이 밟고 설 수가 없다. 때문에 트레이만 밟고 다녀야 한다. 즉, 트레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환기구는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적당한 환기구 배관을 찾은 손민우는 배관을 두드리면서 무전기로 확인했다. 남기민에게 환기팬을 뜯어내라고 한 손민우는 천장에 붙은 환기구 커버를 뜯어냈다. 잠시 후, 남기민에게 연락이 왔다.
“손대리님, 다 뜯어냈어요. 누나랑 같이요.”
“그래? 잘했다. 누나랑 같이 있어서 좋겠다.”
“그렇죠? 윤정이 누나 너무 착해요. 히히.”
“그래, 그렇지? 내가 와이어 올려 보낼 테니까 그 누나보고 좀 잡으라고 해.”
“네~ 알겠어요.”
손민우가 환기구 배관으로 보낸 와이어는 쉽사리 옥상으로 나왔다. 와이어 끝을 잡았다는 무전을 장윤정으로부터 받았다. 지금까지 썼던 28mm 배관과 100mm의 배관은 차원이 달랐다.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는 세상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지름 10cm의 배관을 통과 할 수 있는 물건은 의외로 많다. 손민우는 가장 먼저 이불을 보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밤마다 추위에 떨어야 하는 건 너무 큰 고통이었다.
그 다음으로 절실한 것은 용변을 해결하기 위한 물품들이었다. 휴지, 비닐백, 소변을 담기 위한 플라스틱 병 등이다. 지금까지 소변은 케이블 트레이 끝에서 벽에다 눴는데 그 냄새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대변은 케이블 트레이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비닐봉지에 누고 묶어서 천장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둔 상태다. 앞으로 여기에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용변을 볼 수는 없다.
혈액 분석 3일째.
드디어 혈액분석 결과가 나왔다. 윤팀장은 이메일로 받은 분석결과 보고서를 모니터로 보고 있었다. 손민우가 보낸 바닥의 혈액에서 페스카도르로 보이는 바이러스가 사멸된 채 검출되었다.
다행히 민원실에 진입했던 기동대원들과 교도소의 생존자들에게선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아 더 이상 격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공기전염에 대해서는 ‘거의 불가능’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감염환자와 일상의 공간에 같이 있어도 전염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