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가 끝나자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모두가 둘러앉은 자리에서, 총무과장이 교도소에 갇힌 인원을 설명한다.
“지금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은 수용자 1,027명, 행정직 1명을 포함한 교도직원 49명, 할렐루야 선교단 12명, 전기기술자 2명으로 총 1,091명입니다.”
교정단장이 물었다.
“아까 옥상에 있다고 한 사람들은 누굽니까?
“네, 행정직 1명, 전기기술자 1명입니다.”
“그럼, 알려진 생존자는 2명입니까?”
“그게... 저... 교도소 안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생존자로 할지 아니면...”
“아, 그렇죠. 일단 ‘정상 반응자’ 2명으로 합시다. 그리고, 여러분들! 지금 밖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교도소 내에 있었던 일은 절대 발설하지 마시구요. 외부와 접촉하는 창구는 오로지 교정단장인 저만 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교정단장은 본부장에게 가서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눴다.
“본부장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겠습니다. 각 지역청과 본부의 기동대를 모아서 우리가 직접 치고 들어가는 방법과 아니면 경찰에 공식적으로 협조요청을 하고 우리가 뒤로 빠지는 방법입니다.”
“우리끼리 진압이 되겠어?”
“지역청과 본부에서 전부 빼오면 가능 할 것 같기도 한데 저런 것들은 저도 처음 봐서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적당히 뒤로 물러나시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규정위반으로 문제가 커졌으니 교도소장에게 책임을 물으면 될 거구요.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 제가 직접 해결을 하면 아무래도... 저한테 큰 실적이 되니 승진 할 때 좀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지금 비등비등 할 테니... 그럼 한 번 해 보겠나?”
“네, 기회를 주시면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교정단장은 얼굴에 만연의 미소를 머금고 본부장에게 경례를 했다.
밤이 되었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교도소의 스산한 건물과 횅한 운동장을 비추고 있다. 교도소 옥상에는 남기민과 장윤정이 몸을 딱 붙이고 앉아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11월 중순의 늦가을 밤을 옥상에서 지새워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 시간 손민우는 기동대의 진입을 기다리다 지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쾅하며 천장이 울리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잠이 들면서 손에든 무전기를 떨어뜨린 것이다.
다행히 천장 위에 떨어져 급히 주워 올렸다. 카메라 모니터를 보니 좀비들이 모두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손민우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무전기를 켰다. 작은 목소리로 남기민을 불렀다.
“기민아! 기민아!”
“네, 손대리님.”
“바깥에 무슨 변화는 없냐?”
“네, 아직 그대로에요. 근데 여기 너무 추워요.”
“그래 여기도 추운데 거긴 더 하겠다.”
“그나마 장윤정 교도관님이랑 같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손대리님은 혼자라...”
“일단 좀 자자. 무슨 상황 생기면 연락해!”
“네, 알겠어요. 손대리님. 조심하세요.”
“오케이”
손민우는 잠 잘 준비를 했다. 혹시나 몰라 허리의 안전벨트에서 고리를 풀어 케이블 트레이에 걸었다. 혹시라도 자다가 몸부림을 치는 날에는 4층 높이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무전기는 머리맡의 공구박스 안에 넣고 카메라 모니터를 껐다. 배터리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
떼어 내었던 천장 마감재로 다시 구멍을 덮었다. 그리고 트레이 위에 반듯하게 누워 라이트를 껐다. 천장 안이 깜깜해지자 작은 불빛들이 보였다. 나사 구멍이나 마감재의 작은 틈새에서 새어 올라오는 불빛이었다. 불안이 가시지 않자 라이트를 켜서 주변을 한 번 더 비추어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교도소 옥상.
남기민과 장윤정은 서로 딱 붙어 있었음에도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견딜 수 있는 정도는 이미 넘어섰다. 특히, 근무복만 입고 있는 장윤정이 더 했다. 남기민은 난감했다.
작업용 점퍼를 입고 있는 자신도 추운데 옷을 벗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장윤정을 그냥 떨게 둘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고 있는 점퍼를 펼쳐 함께 덮는 것뿐이었다.
해가 떠올랐다. 남기민과 장윤정은 꼭 끌어안고 있었다. 둘이 붙어 있는 덕분에 죽지 않았을 뿐 춥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남기민의 품에서 깬 장윤정은, 이런 상황이 민망했는지 옥상난간으로 가서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여기요~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건물 너머의 대책본부 사람들 몇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옥상을 쳐다보고 손을 들어 준다. 그걸 본 남기민도 같이 소리를 지른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대책본부 앞에 사람들이 몇 명 더 나타나서 옥상을 바라봤다. 그런 남기민과 장윤정을 발견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교도소 주차장의 한 구석, 승용차에서 침낭을 덮고 잠을 자고 있던 박기자였다.
카메라와 수첩을 챙긴 박기자가 서둘러 나갔다. 교도관들의 눈치를 살피던 박기자는 교도소를 빙 돌아서 대책본부의 반대쪽으로 갔다. 보초를 서고 있는 교도관들과 거리가 한참 떨어진 곳에서 옥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옥상~ 이쪽, 이쪽!”
교도관들이 박기자를 보더니 어딘가로 무전을 했다. 박기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옥상! 이쪽이야~ 이쪽.”
잠시 후, 옥상에서 남자 한 명이 아래를 내다보았다. 박기자는 사진을 찍었다. 여자 한 명도 얼굴을 내밀었다. 박기자는 또 사진을 찍었다. 그럴 즈음, 저 멀리서 교도관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박기자는 카메라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대화를 시도했다.
“거기서 뭐해요?”
교도관들의 호르라기 소리와 섞여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옥상 위에서도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박기자가 입에 손을 대고 크게 물었다.
“폭동? 폭동?”
그러자 남자는 자신의 양쪽 팔을 감싸 안고 위아래로 쓰다듬어 보였다. 박기자도 똑같이 따라 하면서 말했다.
“그래, 추운데 거기서 뭐하냐고?”
옥상에 있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리 위에 양팔을 올려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달려 온 교도관들이 박기자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남기민은 장윤정에게 박기자가 누구인지 물었지만 장윤정도 모른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계단 출입구의 철창으로 좀비들이 나타났다.
장윤정은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았고 남기민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좀비들은 철창에 가로막혀 나오진 못했지만 철창 밖으로 팔을 뻗어 휘두르며 으르렁 거렸다. 남기민은 손민우에게 무전을 했다.
“손대리님! 손대리님!”
“왜? 기민아! 구조대 왔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지금 좀비들이 옥상 계단에 몰려나왔어요. 창살에 가로 막혀있긴 한데 뚫리면 어쩌죠?”
“야, 기민아! 걔들 소리에 반응하니까 일단 조용히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보이니까 덤비더라.”
“아, 네! 알겠어요.”
남기민은 장윤정을 데리고 계단실 뒤로 돌아갔다. 남기민과 장윤정이 가까이 오니 좀비들이 더 발악을 했다. 계단실 뒤로 가서 숨죽여 기다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좀비들이 정말 조용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남기민은 옥상 난간에 붙어서 계단출입문이 보이는 쪽으로 갔다. 철창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다 싶었던 남기민은 계단출입문의 방화문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닫았다. 박기자는 카메라에 있는 사진을 삭제한 후에야 풀려났다. 그리고 자신의 차에 가서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불러 기사를 올렸다.
박기자가 올린 기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남자교도소 옥상에 고립된 남녀’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었지만, 교도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 할 수 없다는 내용에 독자들은 대부분 ‘폭동’과 ‘인질’을 예상했다. 불과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다른 신문사들이 퍼 나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교도소 앞에는 기자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교도관과 수용자들의 가족 그리고 선교단의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자 교도소 측에서 브리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