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초전 전야 (2)

　#5. 우주력 1세기. 지구정부의 공식발표문. 앞 장면의 연속

　 -로이텐726-8 성역으로 출진했던 연합 함대 원정단은 이성계(異星系) 우주해적으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아 피해를 입었으나 영웅적인 노력으로 그를 극복하고 무사 귀환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삼가 일부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빌며 영웅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다.

　#6. 우주력 1세기. 앞 장면의 연속

　 참담한 패전이었다. 함대의 주력인 순양함들을 모두 잃고 수송선 몇 척에 실려 돌아온 패잔병들을 보며 지구군사령부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기함에 탔던 사령관을 비롯한 원정대의 지휘부가 전멸한 마당에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을 붙잡고 공과를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임을 잘 알고 있는 지구군사령부는 우선 패잔병들을 영웅으로 만듦으로 여론을 잠재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한동안의 진통 끝에야 패전의 후유증은 치료 되었다. 패전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과의 악전고투 끝에 얻어진 피할 수 없는 결과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적은 초과학적인 신무기로 무장한 대군으로 과장되었고, 지구인의 상식 밖의 그러한 힘을 갖출 수 있는 문명인을 일컫는 말로 ‘이성인(異星人)’이라는 신조어가 창작되었다.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적이 습격해 온 이유로 약탈 행위를 들었는데, 해적이라는 단어는 그 표현 수단으로 자연스레 등장한 것이었다.

　#7. 우주력 2세기. 앞장면의 연속. 어떤 역사학자의 기록

　 다시 수십 년 이상의 시간을 가슴앓이 병을 치료하듯 암중에 패전의 후유증을 치료하던 지구군사령부는 때 마침 날아온 ‘시리우스 성계에서의 지구형 행성 발견’의 소식을 계기로 여론이 호전된 틈을 타서 다시 대규모 원정대를 로이텐726-8 성계로 파견하고 있다. 패전으로 얻어진 교훈에 대해 나름대로의 준비를 갖춘 후의 출발이었다.

　 제2차 로이텐726-8 성계 원정군의 지휘부는 지구군사령부에게서 필승의 지침을 받았다.

　 1. 해적의 무기인 역중력장치는 공격을 받는 만큼 되돌리는 가공할 신무기이지만 타격을 받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으니 되도록 강력한 무기의 사용을 금하고 전투가 벌어질 경우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이용하여 포위 섬멸하되 필요할 경우 적선에의 상륙전도 불사할 것.

　 2. 로이텐726-8B-1 행성은 소형 블랙홀의 완성체와 같은 별로 전체가 중간물질 인드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므로 전문가가 도착할 때까지 일체의 접근을 금하고 엄중히 경계할 것.

　 이 새로운 원정대의 경우 ‘영웅의 탄생’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기록할 만한 패전 또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해적’은 제2차 원정대의 위용에 놀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사서에 ‘로이텐726-8 성계의 전투’라고 기록된 두 차례의 원정 중 실제로 지구군 원정대가 해적에 의해 피해를 입은 전투는 제1차 원정대에 국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구군 사령부가 ‘해적’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제1차 원정대의 패전에 관한 전말을 밝히고자 증거가 될 만한 기록들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지구군의 문서 보관소에서 제1차 로이텐726-8 성계 원정대의 몇 안 되는 생존자가 남긴 증언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사령선이 적의 공격을 받고 -우리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폭파된 후 각 함은 전력을 동원한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중성자탄이나 수소폭탄과 같은 원자 파괴 무기를 비롯해서 레이저광선 류의 광선 무기에 초극 진동의 우주파를 발사하는 신경무기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화력이 적선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으레 있어야 할 폭발이 없었던 것입니다. 불안한 정적의 시간이 몇 초간인가 흘렀을까 할 때였습니다. 나는 우리가 보냈던 무기들이 돌아오고 있는 양을 발견했습니다. 입체영화의 영상을 거꾸로 돌리는 듯싶은 장면이었습니다.

　 최초의 것은 역시 전파신경무기였습니다. 쇠와 쇠가 마찰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내 두뇌는 기능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신경무기에 의해 두뇌가 파괴되었던 모양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곳 지구의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전파신경무기를 발사하는 병과에 있었던 덕택에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다른 병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군 함대의 전멸 장면을 지켜보는 불운을 겪어야 했습니다.

　 중성자탄이 되돌아오던 시간은 아마 몇 초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그로 인해 겪은 공포감은 보시다시피 머리카락이 다 세어 버릴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저건 우리가 쏘아 보낸 무기들인데 왜?’하는 의문을 품은 순간, 나는 폭발의 화염 속에 있었습니다.

　 ‘불 탄다’기보다 ‘그저 녹아들고 있었다’라고 해야 맞을 상황이었습니다. 중성자탄의 특성이 물체를 외부로부터 폭발시키기보다 내부로부터 원자구조를 붕괴시키는 데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러함을 겪었던 것입니다.”

　 ‘물체가 그저 녹아들어 간다’는 표현의 증언은 로이텐726-8B-1 행성에 착륙하려 했던 선단의 생존자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우주선은 통신 중계선이었으므로 행성으로 향하는 함대의 후위에 있었습니다. 행성 주위의 궤도를 돌면서 본대가 보내온 통신문을 받아 지구로 보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습니다.

　 전망 모니터에 암흑행성을 향해 내려가는 상륙함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주공간의 어느 곳이 어두운 동굴처럼 그저 텅 비어 있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암흑의 공간을 향해 우주선들이 다가가던 어느 순간, 함대 전체가 녹아들고 있었습니다. 검은 바탕 위의 그림에 검은 색깔 물감이 번지면서 밝은 색깔이 지워지는 형식의, ‘그저 녹아들고 있었다’ 외의 다른 표현이 생각되지 않는 그런 사라짐이었습니다.”

　 이상의 증언으로 확인된 참담한 패전에 대해 당시 지구군 감찰대는 ‘초과학적인 신무기로 무장한 이성계 해적에 의한 타격’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해적’이라는 용어는 불가항력의 적에 의한 패전을 변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였던 것이다.

　#8. 앞장면의 연속. 어떤 역사학자의 기록

　 필자는 다시 당시 지구군 감찰대의 조사 기록과 생존한 선원들의 증언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지구정부의 조사단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1. ‘정체 모를 무장집단’, 즉 돛단배형 우주선을 추격했던 함대의 절반은 -이하 함대A로 칭함- 그들과의 교전 끝에 압도적인 위력의 신무기-역중력장치의 무기화?-에 의해 타격을 입은 것이 확실함.

　 2. 로이텐726-8B-1 행성-이하 행성X로 칭함-에 상륙하려 했던 함대의 또 다른 절반은 -이하 함대B로 칭함- 행성X 자체가 가진 물리적인 힘-별항의 기록 참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듯함. 함대B의 행성X 상륙 시도는 지휘부의 무지에서 비롯된 무모한 도전이었음.

　 3. 함대A에게 타격을 입힌 적의 무기와 함대B를 전멸시킨 행성X의 물리적인 힘은 최소한 같은 성질의 것임이 밝혀짐. 즉, 그간 신비에 쌓여 있던 ‘정체 모를 무장집단’이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행성X가 가진 어떤 물리적인 힘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보임.

　 4. 이상의 상황으로 판단하건대 행성X는 적이 항해의 수단과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역중력 장치의 동력, 혹은 이론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료됨. 요컨대 행성X가 가진 물리적인 힘의 정체는 우리가 인드라의 인공 붕괴로 얻고 있는 반물질의 자연적인 상존이 아닌가 의심이 됨.

　 5. 금번 전투의 패전은 적의 무기와 이동수단이 기존 과학의 상식을 뛰어 넘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임. 이후 아군이 적과 대등한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같은 등급 이상의 무기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사료됨.

　 6. 5항의 해결책으로 행성X의 점령 및 개발을 들고 싶음. 본부의 기술진은 적과 대등한 무기체계를 갖출 수 있는 길로 적이 지키고자 하는 비밀을 아군의 것으로 하는 방법을 들었음. 이는 적의 실력을 약화시키고 아군의 실력을 배가하는 취지의, 현재 아군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작전으로 보임.

　 7. 이상의 상황으로 보건대 아군이 그간 ‘적’으로 불러 온 ‘정체 모를 무장집단’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이해가 필요할 것임. 이는 ‘적’을 드러냄으로 정부와 시민의 이해를 구하고 행성X의 개발 및 활용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진의 지원을 얻기 위한 부득이한 방편일 것임. 참고로 본 조사단 의견을 기술하면, ‘적’을 ‘해적’으로 공식 정의하고 조속히 ‘해적’이 아군에 끼친 피해 상황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상책일 듯함.

　#9. 우주력 2세기 후반. 앞 장면의 연속. 어떤 역사학자의 기록

　 중간물질 인드라의 발견으로 무한 동력을 얻게 된 지구계 인류는 태양계 밖 우주로 진출할 수 있었지만 우주는 아직 물리적인 동력의 도움만으로는 정복될 수 없는 심연의 세계일뿐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생각했다. 우주가 저토록 거대하고 인간이 이토록 작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모르는 인간 밖의 어떤 존재가 우주의 주인 역을 맡아 다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무렵 ‘로이텐726-8’성계로 진출했던 우주선들과 우주선의 선객들인 개척민들과 여행객들, 모험가들, 선원들이 실종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요행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예외 없이 기억을 잃고 있었으므로 지구정부의 조사관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구 최고의 의료진이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힘들여 치료한 결과 그들의 기억이 일부나마 되살아났다.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단편적인 단서들이 모아졌고 지구 최고의 두뇌들로 조사단이 구성되었다. 그 결과 “‘정체 모를 무장 집단’이 초과학적인 무기를 사용하여 우주선들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납치해 갔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대규모 조사단을 태운 원정대가 편성되어 ‘정체 모를 무장집단’을 찾아 ‘로이텐726-8’성계로 출발했다. 당시 지구계 인류의 가진 바 지혜의 정화가 원정단의 무기로 준비되었다.

　 ‘정체 모를 무장집단’과의 전투는 지구 원정대의 참패로 끝났다. 차례로 파견된 1,2차 원정대가 대규모 전투 끝에 전멸을 당한 후 우주의 무서움을 실감한 지구 정부는 그간의 오만을 버리고 ‘정체 모를 무장집단’ ‘이성인’ 등의 모호한 표현으로 부르던 ‘적’의 실체를 인정하는 한편, 시민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간 비밀로 하던 ‘적’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는 용단을 내렸다.

　 지구정부가 발표문에 인용한 것은 한 생존자의 증언이었다.

　 우리 배는 추적대의 선봉에 있었고 나는 항해사였습니다. 적이 포촉 된 순간 우리는 환성을 올렸습니다. 적은 외톨이였고 우리는 선단급의 대함대였으므로 승리는 무조건적인 것일 터였습니다.

　 전망 모니터에 나타난 적은 해골 깃발이 선명한 우주해적이었습니다. 돛단배 형식의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웃음거리 연극의 무대를 보는 양 웃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기함의 명령으로 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함대의 모든 포구가 동시에 불을 뿜었고 온갖 종류의 포탄이 빛줄기의 모습으로 적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우리는 적선이 폭파되는 장관을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적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러 적선의 돛폭에 명중하는 포탄들도 있었지만 바다 속에 바늘이 떨어지는 양 힘없이 삼켜졌을 뿐 우리가 기대하는 폭파의 화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순간 우리는 일제히 비명을 올렸습니다. 우리가 보냈던 포탄들이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뒷걸음질을 쳐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배는 선봉에 있었던 덕택에 대피운동이 가능했지만 다른 함정들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이 발사했던 무기에 의해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함대의 대부분이 손상을 입은 후 적은 우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시위하듯 느린 비행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실력 차이를 통감한 후였으므로 감히 공격할 염을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구명정으로 탈출한 생존자들을 구하는 동안 적의 방해는 없었습니다. 적은 해골 깃발을 나부끼며 멀어졌습니다. 우리는 악몽을 꾸는 듯싶은 충격 속에 적의 뒷모습을 향해 원망의 시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참패로 끝난 ‘로이텐726-8’성계에서의 전투는 지구계 인류 전체의 각성을 부른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패했고 오만을 버렸다. 두 차례의 대규모 전투로 지구계 인류가 얻은 교훈은 “우주는 무한히 넓고 지구인의 문명은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 후, 다시 원정대가 편성되어 찾았을 때, 해적은 이미 종적을 감추고 없었다. 지구인은 해적이 버리고 간 ‘로이텐726-8’성계를 접수하고 ‘로이텐726-8B-1’ 행성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전력을 다한 끝에 해적들이 사용하던 ‘역중력장치’를 개발해 냈다.

　 역중력장치를 이용한 중력 제어 방식의 동력을 사용한 우주선들이 새로운 우주를 찾아 본격적인 우주 개척에 나설 무렵, 우주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학자들은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 결론을 삼았다. 우주해적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들은 한 발 앞서서 우주를 정복해 나가고 있고, 인류는 그들을 쫓고 있을 뿐이라고. 초기 우주의 주인은 사실상 해적이었던 것이다.

　#10. 우주력 2세기 후반. 우주해적에 관한 어떤 소설 속의 장면

　 해적선 신천지호의 선장은 명령을 내렸다.

　 “나 김진욱019는 역사의 죄인이 될지언정 저들이 미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양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공격하라! 교훈을 주자!”

　 구식의 동력을 사용해 로이텐726-8 성계로 나왔던 지구 원정대는 역중력 장치를 갖춘 신천지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지구군이 스스로 발사한 무기를 되돌려 받아 전멸하는 양을 보며 김진욱019는 신음 같은 독백을 흘렸다.

　 “나는 동족의 피를 부른 죄인이 되었지만 저들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지구인은 피의 값을 우리에게 돌리려고 분기할 것이고, 그들의 능력이라면 우리 이상의 실력을 갖추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곁에 있던 육전대의 한 부대장인 오신018이 역시 자조의 말을 흘렸다.

　 “이로써 우리는 해적의 낙인이 찍힌 몸으로 영원히 쫓기게 되었군요.”

　 김진욱019는 씁쓰레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좋지 않은가. 추적자들이 따라오는 속도 이상으로 도망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주선 안은 긴 침묵으로 휩싸여 들었다. 전망 스크린 가득히 새로운 성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암흑 반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라란데21185 성계였다. 선원들의 관심은 이미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미지의 성계로 옮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