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탐정신부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17.10.31
탐정신부 더보기

원스토어스튜디오북스
https://studio.onestorebooks.c...
>

이 작품 더보기 첫회보기

치밀하게 살인계획을 세워 정교하게 사람을 죽이는 천재 살인범에 맞설 자 누구인가.
12년 전 발생했던 가톨릭 신학생의 자살사건.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팀과 신학교의 수장들이 하나둘씩 살해되면서 과거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형사팀을 그만두고 가톨릭 사제가 된 39세의 강바울 신부는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던 중, 절대로 태어나서는 안될 쌍둥이 중 한 명의 무서운 실체를 깨닫고 경악한다.
결국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강바울은 진짜 살인범을 추격하기 위해 기꺼이 가톨릭 사제직을 벗어던지고 추격자로 나선다.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니므롯
작성일 : 18-11-11 11:31     조회 : 495     추천 : 2     분량 : 845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느 새 교정에는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고즈넉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전 8시. 학생 미사가 막 시작되기 직전이다.

 

 강 바울이 소성당 문을 열고 들어와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신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동요가 인다.

 제단의 양 옆 상석에 앉은 총장신부와 학생처장 이 신부도 동요한다.

 하지만 이내 무심을 가장한다.

 

 [입당성가 51번입니다.]

 

 해설자의 전례에 맞춰 모두가 일어나 성가 책을 편다.

 낮고 경건한 라틴어 성가가 경내에 울려퍼진다.

 

 그런데 성가를 부르던 강 바울의 시선은 양 옆의 복도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는 그의 시선이 그러다가 한 곳에 고정된다.

 레.아.

 그녀가 직원용 의자에 앉아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미사보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추지는 못한다.

 

 강 바울은 자신도 모르게 레아를 홀린 듯 본다.

 그런데 갑자기 레아가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제단 쪽을 무섭게 노려본다.

 도대체 누구를?

 

 [오늘 제1독서는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여 쓸데없이 투덜거리지 말고 비방하지 않도록 혀를 잡도리하여라. 은밀히 하는 말도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고 거짓을 말하는 입은 영혼을 죽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독서를 봉독하고 내려오는 이는 다름 아닌 김 재화 학사였다.

 레아는 바로 그 김 재화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이었다.

 

 ‘왜 강 레아의 눈에 살기가 보이는가. 김 재화 학사를 저토록 증오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지?’

 

 순간 레아의 시선이 강 바울과 마주친다.

 그러자 레아는 서둘러 고개를 수그리고 미사보 안에 얼굴을 감춘다.

 강 바울은 속으로 다짐한다.

 미사가 끝나면 강 레아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리라고.

 

 1시간 여. 오전 미사가 끝남과 동시에 신학생들이 우르르 입구로 몰려나왔다.

 강 바울은 신학생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며 레아를 뒤쫓았다.

 하지만 어느 새 레아는 사라지고 없었다.

 

 [강 신부, 신학교 미사에서 보다니 뜻밖이구만.]

 

 백 신부였다.

 강 바울은 얼른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린다.

 

 

 “무슨 일인가 아침부터?”

 “재미난 실험을 시작해보려구요.”

 “실험?”

 “네.”

 “무슨 실험?”

 

 

 강 바울은 씽긋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교정에 모여 있는 신학생들을 쳐다본다.

 신학생들 사이로 재화와 민건, 석우가 모여 있다.

 셋 다 심각한 표정이다.

 

 강 바울은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 재화 학사. 자네 지금 시간 있나.”

 

 

 교정에 모인 신학생들이 모두 김 재화를 예의주시했다.

 재화는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한다.

 

 

 “1교시에 영성신학 강의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야.”

 “무슨 일이신지...”

 “유력한 용의자에 관해 자네와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네.”

 

 유력한 용의자!

 신학교 교정이 갑자기 고요해진다.

 모든 이의 눈길이 재화와 강 바울에게 고정되고 있었다.

 

 재화의 귓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재화는 겨우 화를 누르듯이 강 바울에게 말했다.

 

 

 “제 방으로... 가시죠.”

 

 

 강 바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바위처럼 굳어 선 총장신부의 앞을 지나 재화와 함께 기숙사동으로 들어갔다.

 

 

 

 * * *

 

 강 바울은 재화의 방을 둘러보며 혀를 내두른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창틀과 질서 정연하게 정리된 책장과 책상.

 고가의 스탠드와 고급스런 침구류.

 그리고 공기청정기와 가습기까지.

 이건 신학생 기숙사 방이 아니라 어느 호텔의 작은 객실답다.

 아무리 본인은 특혜가 아니라 말한다해도 총장 신부의 조카로서 은밀한 예우를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강 레아에 대해 말해보게.”

 “누구요?”

 “레아. 신학교에서 가장 어린 식복사 말이야.”

 “레아... 아. 그 여자에 대해 뭘 말하라는 겁니까.”

 “자네와 무슨 사이인가?”

 

 

 순간 재화의 얼굴이 울긋불긋 돌변한다.

 재화는 혐오감이 이는 듯 입술을 깨물며 거칠게 답했다.

 

 

 “무슨 사이라뇨! 무슨 그런 질문이 있습니까.”

 “아는 사이인가.”

 “모르는 사입니다!”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이름을 말한 순간 알지 않았나?”

 “이름만 압니다!”

 “아름다운 아가씨던데. 모든 신학생들이 기억할만한.”

 “전 식복사 따위 관심 없습니다. 여자의 아름다움 따위도 마찬가지구요.”

 

 

 식복사 따위라. 여성에 대한 혐오 뿐만이 아니다.

 이제 보니 이 녀석은 계급의식까지 뿌리박힌 놈이다.

 

 강 바울은 재화의 불쾌한 표정을 모른 척 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클립텍스를 꺼내 대뜸 재화 앞에 내밀었다.

 

 

 “뭡니까 이게?”

 “자네가 이 준 학사에게 선물한 클립텍스네.”

 “무슨 말씀이시죠? 클립텍스는 제가 준 게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클립텍스는 준이 형이 제게 준거라구요.”

 “뭐? 자네가 선물한 게 아니라, 이 준이 자네에게 줬다?”

 “네.”

 

 

 재화가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서랍장을 열었다.

 어느 새 똑같은 클립텍스를 꺼내 강 바울에게 내민다.

 

 

 “준이 형이 저한테 줬어요. 형도 같은 걸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이상하군. 이 준 학사는 자네에게 선물 받았다고 하던데.”

 “형이 뭔가 착각하나 봅니다. 그 클립텍스를 선물 받은 날도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언제인가?"

 "부활방학 때 외출했다가 돌아오면서 형이 사다 준 선물입니다. 해피 오이스터(부활축하 인사)라고 말하면서 줬어요.”

 

 

 강 바울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이 준은 클립텍스를, 김 재화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김 재화는 이 준이 준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니.

 김 재화의 말 대로 이 준이 정말 착각을 한 것인가.

 지독한 육체적 고통 때문에?

 

 

 “이 준 학사는 자네가 이걸 선물로 주면서 스스로 풀어야 볼 수 있다, 고 했다던데?”

 “그건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형이 제게 말해준 힌트입니다.”

 

 

 강 바울은 꼼꼼히 재화의 얼굴을 살펴본다.

 녀석의 얼굴에는 거짓이 없다.

 그렇다고 녀석의 답에 신뢰가 가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강 레아라는 식복사와의 애매한 관계가 가장 큰 의문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강 바울은 이 준과 관련된 인물 중 김 재화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증거나 알리바이를 떠나서 뭔가 강렬한 직감이 강 바울을 사로잡고 있었다.

 재화가 이 준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는.

 

 

 “자네 클립텍스는 열려 있군. 풀었나?”

 “네. 클립텍스는 금방 풀었습니다만 안에 든 쪽지는 무슨 내용인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쪽지를 지금 가지고 있나?”

 “여기요”

 

 

 재화가 책상 위에 올려둔 쪽지를 내밀었다.

 강 바울은 쪽지를 펴서 내용을 확인한다.

 

 

 [9=33, 6=23, 108=254

 그리고 +

 그리고 첫째와 둘째는 쌍둥이

 10은 ?]

 

 

 “무슨 의미일까요?”

 “이 준 학사에게 직접 물어보지 그랬나.”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스스로 풀어야 볼 수 있다, 는 야릇한 말만 했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둘 다 이상하군.”

 “예?”

 “아무 것도 아닐세. 이건 단순한 난센스 곱셈식이야. 곱하기 표시를 빼버리고 숫자만 나열해 놓은 것이네. 3에 곱하기를 붙이고 좌변과 우변을 바꾸면 3곱하기 3은 9가 되네. 그리고 2곱하기 3은 6이라는 수식이 성립되지.”

 “아 정말 그렇군요! 그렇다면 108=254라는 의미는... 54x2=108을 의미하는 거군요.”

 “그렇지.”

 “그렇다면 우리가 구해야 할 물음표인 10은... 1과 10이거나, 2와 5겠군요.”

 “맞네. 그리고 더하기 표시는 지금까지 나열된 수의 합을 말하는 거네.”

 “나열된 수의 합이라면 33+23+254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합은 310이 됩니다만”

 “계산이 빠르군. 거기에 문제의 10이 얼마로 바뀌는지 알아내고 그 수를 더하면 되는 거지.”

 “그렇다면 만약 곱해서 10이 되는 수를 1과 10이라 보면... 이 수를 나열하면 110이 되고, 310에 110을 더하면 합은 420이 되네요.”

 “그렇지. 하지만 420은 첫째와 둘째가 같지 않네. 즉 쪽지에서 말한 쌍둥이 수가 아닐세.”

 “백의 자리와 십의 자리가 같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똑똑한 것을 넘어서, 영특한 놈이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재화를 보며 강 바울은 그리 생각한다.

 사실 강 바울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재화가 쪽지를 내민 순간,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숫자 3개가 떠올랐다.

 하지만 재화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만약 곱해서 10이 되는 수를 2와5로 본다면 10=25이고 이 수를 더하면 그렇다면 나열된 25를 다시 총합에 더하면 되겠군요. 이전까지 총합이 310이었으니 여기에 25를 더하면 335가 됩니다.”

 “맞아. 2와 5라면 세수의 합은 335일세.”

 “아! 그렇다면 답은 335네요! 첫수와 둘째 수가 쌍둥이라고 했으니까요”

 

 

 재화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문제에 도전하고 풀어내는데 희열을 느끼는 전형적인 지식인 스타일이다.

 

 

 “자네 혹시 335가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아뇨, 전혀 모르겠습니다.”

 

 

 재화가 다시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김 재화 학사. 자네에게 다시 한 번 분명히 묻겠네.”

 “네.”

 “이 클립텍스를, 이 준이 선물한 게 맞나?”

 “맹세합니다. 전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신부님.”

 

 

 재화가 다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엄숙히 답했다.

 

 

 * * *

 

 도서관 공사현장 앞에 선 강 바울은 한숨을 내쉰다.

 '전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라고 엄숙히 답했던 김 재화.

 그의 모습에는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강 바울은 갑자기 땅바닥에 구르고 있는 자갈을 툭 차본다.

 모든 것이 꼬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기분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제어할 수도 없으며 제대로 풀어낼 수도 없는, 누군가의 거대한 공작에 말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김 재화는 자의식이 강한 상류층 신학생일 뿐이다. 녀석의 말대로 녀석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그 표정만큼은 확실하다. 영악하지만 우직한 면이 있다. 하지만... 강 레아. 그녀가 걸린다.’

 

 김 재화와 강 레아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직감이 강바울을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미사시간에 재화를 노려보는 레아의 눈길.

 그것은 단순한 증오가 아니다. 두려움마저 섞인 기묘한 눈길이었다.

 흡사 혐오스러운 짐승을 바라보는 기괴함과 섬뜩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엇인가.

 강 레아는 김 재화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증오하는 것인가.

 김 재화는 왜 레아를 모른다고 부정하는가.

 또한 이 준과 레아의 관계에 대해 왜 그토록 격렬히 반대하는가.

 

 이 준은?

 이 준은 레아와 무슨 관계인가.

 사건당일 만난 것은 단순히 우연이란 말인가.

 시간 차를 두고 술집에서 나간 재화와 이준.

 그리고 이준은 레아를 만났다...

 

 어느 새 강 바울의 발길이 개 사육장을 지나 도서관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의문투성이인 이 곳.

 너무 깨끗하고 흔적하나 없는 그야말로 기묘한 사건현장.

 이 준이 죽기 직전까지 맞은 이 곳에서 강 바울은 다시 시작해볼 심산이었다.

 

 그래, 사건 현장을 다시 면밀히 살펴보는 것부터, 재 시작이다.

 

 [드르르르르. 드르르르.]

 

 ‘무슨 소리지?’

 

 무릎을 구부리고 사건현장을 살펴보던 강 바울이 일어났다.

 강 바울은 지하실 일각에서 들리는 기계음에 귀를 쫑긋 세운다.

 세탁기!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갑자기 강 바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강 바울은 뛰듯이 서둘러 세탁실로 달려갔다.

 

 세탁실 문을 연 순간 강 바울은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역시 짐작대로다!

 레아가 건조된 신학생들 옷을 탈수기에서 꺼내 바구니에 담는 중이었다.

 

 

 [레아 자매]

 

 

 “어맛 깜짝이야. 언제 오셨어요?”

 

 

 레아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놀라 본다.

 

 

 “나 기억납니까? 지난 번 여기서 봤을 때 자매님 이름이 레아라고 했죠 .”

 “아... 네.”

 "수요일에 외출했습니까?"

 "수요일...?"

 “사건 당일 수요일에 말입니다. 벌써 2주가 되어갑니다만. 그날 외출 했습니까?”

 “그건 왜 물어보시죠?”

 “몇 가지 확인해볼 일이 있어서요. 사건 당일 신학생과 만났습니까?"

 "... 누구를?"

 "김 재화 학사."

 

 

 강 바울은 자신도 모르게 김 재화라는 이름을 꺼내든다.

 사실 김 재화와 레아가 만났다는 진술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레아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제가 그런 사람을 왜 만나죠!"

 

 

 역시. 증오가 묻어나는 날카로운 답이다.

 두 사람에게는 뭔가 있다, 분명히.

 

 

 "그럼 누굴 만났습니까. 이 준 학사와 만났습니까?”

 “이 준 학사님? 그 분 지금 말할 수 있나요!”

 

 

 레아가 반색하며 되묻는다.

 좀 전 김 재화에 대한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알려주세요. 이 준 학사님 말할 수 있나요? 얼굴 부상이 심해서 어렵다고 들었는데요!”

 “말은 못합니다. 다만 나와 필답을 주고받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레아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강 바울은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학사님은 좀 어떠신가요?”

 “이 준 학사를 많이 걱정하는군요.”

 “절 도와주려고 했으니까요.”

 

 

 레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한다.

 

 

 “그래요? 뭘 도와줬습니까?”

 

 

 강 바울이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레아가 돌연 싸늘하게 변했다.

 

 

 “죄송하지만 좀 바빠서요. 이만 실례할게요.”

 

 

 세탁바구니를 들고 선 레아를 보며 강 바울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레아는 얼결에 자신의 감정을 들킨 아이처럼 방어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여자와 김 재화, 이 준 사이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

 

 

 “이 준 학사를 그렇게 만든 범인을 찾아야지 않겠어요?”

 “범인이... 누군지 아시나요?”

 “모르죠. 하지만 레아 자매가 날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전 모릅니다. 그럼 이만.”

 

 

 레아가 다시 세탁 바구니를 서둘러 챙겨들었다.

 그리고 꾸벅 고개만 숙이고 황급히 빠져나간다.

 

 

 “김 재화 학사를 왜 미워합니까. 이유가 뭐죠?”

 

 

 강 바울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재차 물었다.

 하지만 레아는 직원용 숙소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말았다.

 

 

 

 * * *

 

 달이 선명한 초겨울.

 바람 소리가 벽돌 사이를 가른다.

 자신의 방에 틀어 앉은 강 바울은 뚫어지게 책상을 노려본다.

 책상 위에는 이 준의 클립텍스와 오즈의 마법사 책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책 위에 투명 필름도 올려져 있었다.

 어제 이 준의 방에서, 학생처장 신부에게 들킬 뻔 했던 그 필름이다.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김 재화의 클립텍스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야.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강 바울은 일단 투명필름을 들고 흐릿한 주황등에 비쳐본다.

 필름에는 점선과 실선, 반원 모양 등이 그려져 있었다.

 강 바울은 다시 책장을 넘기며 살펴 보았다.

 오즈의 마법사 책 맨 뒷장이 각별했다.

 어제는 발견하지 못했던 빈 공란에 색 테이프가 붙어져 있었던 것이다.

 색 테이프도 막대모양 여러 개와 반원 모양이다.

 강 바울은 이번에는 책장 맨 앞을 살펴본다.

 이건 뭐지?

 작은 손글씨다.

 강 바울은 서랍에서 돋보기를 꺼내 손글씨를 서둘러 읽어보기 시작했다.

 

 

 “점선은 실선이고 실선은 점선이다.”

 

 

 강 바울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투명필름을 다시 본다.

 그러다 불현 듯 책장 맨 뒤의 색테이프가 붙여진 곳에 투명필름을 갖다 댄다.

 그리고 검정 펜으로 점선위에 실선을 따라 그렸다.

 그러자 글자 하나와 숫자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109창”

 

 

 도대체 무슨 뜻인가.

 단초를 발견했지만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막막했다.

 이럴 때 지혜의 성령이 벼락처럼 내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하면 가능할까.

 오만가지 잡생각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똑. 똑]

 

 노크소리와 함께 몸집이 자그마한 동료 수사가 고개를 들이민다.

 

 “신부님, 작업시간입니다.”

 

 

 * * *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수도원에서는 성탄절 대비 물품을 만든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 탁자에는 수제초가 타오르고 있다.

 강 바울은 장의자에 앉아 동료수사들과 함께 말씀사탕(성서문구를 적어 사탕처럼 포장)을 만들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동료수사들과의 단순노동은 힐링이자 행복이 된다.

 

 

 "우리 수사님들 대림 준비하느라 노고가 많았어요. 손끝이 헤지고 갈라지고"

 

 

 늘 유머가 넘치는 수도원장님이 손에 바셀린을 바르며 말했다.

 

 

 "참, 강 신부님. 사건해결은 어찌 잘 되갑니까?"

 "아뇨... 아무 것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게 꼬인 느낌입니다."

 "꼬인 걸 억지로 풀려고 들면 더 꼬이는 법이죠. 인간은 실끝을 모르니까요."

 "네."

 "그럴때 도움이 되는 게 바로 이겁니다."

 

 

 수도원장이 말씀 사탕을 하나씩 수사들에게 나누어준다.

 

 

 "모두들 하나씩 돌려 가지세요. 우리도 달콤한 말씀사탕 하나씩 까먹어 봅시다."

 "네!"

 

 

 강 바울도 말씀 사탕 하나를 소중히 받았다.

 그리고 다른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세를 가다듬고 정좌한다.

 이제 각자 받은 말씀사탕의 포장을 풀고 그 안에 프린트 된 성서구절을 낭독하며 묵상할 시간이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8절.]

 

 수도원장님이 먼저 자신이 받은 말씀사탕을 열고 그 안에 적힌 성서구절을 낭독했다.

 그러자 의식에 따라 모든 수사들이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라고 응답한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복음, 5장 48절.]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제 강 바울의 차례였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오복음, 6장 8절.]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연이어 다른 수사들이 계속 낭독을 이어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강 바울의 표정이 멍하다.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허공을 한참 쳐다본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 * *

 

 강 바울은 허겁지겁 자신의 방으로 달려들어왔다.

 그리고 책상에 놓인 성서 책을 재빨리 펼친다.

 창세기 10장 9절!

 

 [그는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니므롯처럼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라는 말이 생겼다.]

 

 니므롯!

 

 강 바울은 서둘러 책상 위에 놓인 클립텍스를 들었다.

 그리고 N.i.m.r.o.d. 이라고 클립텍스의 알파벳을 맞추고 돌린다.

 

 [철. 컥.]

 

 드디어 이준이 건넸던 첫 번째 클립텍스가 열렸다.

 

 

 다음에 계속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현재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2019 / 3 / 7 961 1 -
공지 다음 회차부터는 다른 곳에서 연재합… 2019 / 2 / 11 995 1 -
공지 2편의 전체제목을 변경하였습니다. 2019 / 1 / 23 993 0 -
공지 2편을 시작합니다. 2018 / 12 / 7 979 1 -
공지 전회차를 삭제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 2018 / 11 / 5 864 1 -
31 2편 다크웹 마부스 : 사라진 바른손 2018 / 12 / 30 33 1 5483   
30 2편 다크웹 마부스 : 붉은 원피스 (수정본) 2018 / 12 / 22 26 1 5355   
29 2편 다크웹 마부스 : 마담 이브 (2) 2018 / 12 / 14 29 1 6129   
28 2편 다크웹 마부스 : 연자매 살인 (2) 2018 / 12 / 6 34 1 4307   
27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피의 세계로 (2) 2018 / 11 / 27 39 1 7771   
26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체크메이트 (2) 2018 / 11 / 26 30 1 5890   
25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뒤바뀐 아이 (2) 2018 / 11 / 25 24 1 5931   
24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숨겨진 아이 (6) 2018 / 11 / 24 42 1 6112   
23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기다리는 손님 (수… 2018 / 11 / 23 26 1 4881   
22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거짓의 탑 (3) 2018 / 11 / 22 41 1 4100   
21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빗속에 전화벨이 … 2018 / 11 / 21 28 1 4614   
20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아뉴스데이 미세레… 2018 / 11 / 20 46 1 4645   
19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신의 음성 2018 / 11 / 19 40 1 7088   
18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노란 봉투 (2) 2018 / 11 / 18 43 1 5375   
17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다섯개의 눈 2018 / 11 / 18 40 1 5582   
16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그날 2018 / 11 / 16 38 1 5338   
15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15분 전 2018 / 11 / 15 37 1 7277   
14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Find Him 2018 / 11 / 14 41 2 6845   
13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오버 랩 (2) 2018 / 11 / 13 49 2 9945   
12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소문과 동요 2018 / 11 / 13 44 2 6384   
11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니므롯 2018 / 11 / 11 496 2 8456   
10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가장 유력한 용의… 2018 / 11 / 10 502 2 5137   
9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완벽한 신학생 2018 / 11 / 9 497 2 9195   
8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첫번째 용의자 (2) 2018 / 11 / 8 512 2 6047   
7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개는 짖는다. 2018 / 11 / 7 488 2 8194   
6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누가 청소를 했는… 2018 / 11 / 6 496 2 5202   
5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프라도라면 개처럼… 2018 / 11 / 5 510 2 7377   
4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왜 나입니까 2018 / 11 / 5 480 2 7871   
3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말할 수 없는 2018 / 11 / 5 452 2 4083   
2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새벽을 가르는 비… 2018 / 11 / 5 454 2 8653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청동거울의 비밀
최극
블랙 스완
최극
풀어주세요
최극
봄과 늑대
최극
49일
최극
당신은 왜 품절
최극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