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탐정신부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17.10.31
탐정신부 더보기

원스토어스튜디오북스
https://studio.onestorebooks.c...
>

이 작품 더보기 첫회보기

치밀하게 살인계획을 세워 정교하게 사람을 죽이는 천재 살인범에 맞설 자 누구인가.
12년 전 발생했던 가톨릭 신학생의 자살사건.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팀과 신학교의 수장들이 하나둘씩 살해되면서 과거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형사팀을 그만두고 가톨릭 사제가 된 39세의 강바울 신부는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던 중, 절대로 태어나서는 안될 쌍둥이 중 한 명의 무서운 실체를 깨닫고 경악한다.
결국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강바울은 진짜 살인범을 추격하기 위해 기꺼이 가톨릭 사제직을 벗어던지고 추격자로 나선다.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새벽을 가르는 비명소리
작성일 : 18-11-05 22:23     조회 : 451     추천 : 2     분량 : 865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끽.끽.끽. 낡은 와이퍼가 차창의 빗물을 힘겹게 닦아낸다.

 재색 물안개가 낀 도로를 강 신부는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강 신부는 12년 전 경기남부경찰청의 모습을 떠올린다.

 풍채가 넉넉해 곰돌이 푸우처럼 그를 챙겨줬던 김 반장.

 사각턱에 날렵한 몸매를 자랑했던 박형사.

 하얀피부에 미소년처럼 미소가 싱그러웠던 막내 정 순경.

 그리고 능글맞고 비위가 좋았던 구 형사.

 경찰청 행동과학부 신입으로 막 입사했던 강 바울을 일제히 반겨준 사람들이 이들, 강력팀이었다.

 첫날부터 곱창에 깡소주 환영파티를 벌이는 바람에 만취한 강 바울은 일생에 남을 주사를 벌였고,

 다음날 그가 눈을 뜬 곳은 기러기 아빠인 김반장의 집이었다.

 기구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풍선마냥, 풍만한 배를 내 놓고 잠든 김 반장.

 그를 중심으로 모두들 얼키설키 엉킨 채 대가족처럼 모여 자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김 반장 집에 모여 날밤새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강 바울도 가족적인 분위기에 금새 익숙해져갔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누나만 있는 강 바울에게 그들은 친족이상 살가운 존재가 되어갔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어야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모두를 소용돌이에 빠트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 중 누구 하나만이라도 반대의견을 냈더라면...

 

 [빠앙---!!]

 

 맞은편 언덕길을 질주하던 트럭의 경적소리가 그의 귀청을 찢는다.

 강 신부는 화들짝 놀라 갓길에 급정거했다.

 

 후---

 강 신부는 긴장된 한 숨을 토해내며 식은 땀을 닦았다.

 그리고 룸밀러를 통해 어느 새 저만치 도망가버린 트럭의 뒷꽁무니를 본다.

 정 준철 순경. 만취한 트럭에 치여 사망했던 팀의 막내.

 방금 전 그 트럭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친 죽음이었을 것이다.

 강 신부의 몸이 오소소 움츠려 진다.

 소름끼쳤던 오전의 사건이 새삼 떠오른다.

 구 개장... 구 상순, 그의 짐승같은 목소리와 그 역겨운 냄새, 야수처럼 덤벼 자신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강 신부는 아픈 목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조수석에 놓인 서류봉투를 물끄러미 본다.

 구 상순이 고해소 바구니에 놓고 간 것은 바로 이 서류봉투였다.

 열어보면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은 강렬한 예감과,

 동시에 몹시도 보고싶은 격렬한 호기심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강 신부는 결국 서류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었다.

 

 서류봉투 안에는 두 장의 서류가 들어있었다.

 하나는 세 건의 죽음에 관련된 가족들의 간단한 신상 명세서(사진이 첨부된)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김 반장(56세) - 부인 전 수경(54세) - 딸 김 아름 (22세)]

 [박 순천 형사 (52세) - 부인 오 윤아 (48세) - 아들 박 지훈(19세)]

 [정 준철 순경 (42세) - 부인 김 인영 (38세) - 아들 정 은우(8세)]

 

 이 한 장의 서류를 처음 보았을 때 강 신부는 별반 기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상세히 보니 연필로 희미하게 표시가 되어 있었다.

 각 사람들 이름에 × , △ , ◯가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사망한 김 반장, 박 순천, 정 준철의 이름에는 × 표기가 뚜렷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 신부가 눈여겨 본 것은, 서류 봉투 안에서 발견된 두 번째 종이었다.

 그것은 구 상순 형사의 가족관계 증명서였다.

 놀랍게도 자녀 난에 구 교이, 라는 그의 아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구 상순, 그는 미혼이다. 그런데 그에게 아들이 있다니!

 

 강 신부는 구 상순의 아들 사진(대략 갓 스물을 넘긴 청년으로 보였다.)을 잠시 본다.

 그리고 끔찍한 괴물로 변한 구 상순을 떠올린다.

 둘은 전혀 닮지 않았다.

 뾰족한 이리를 연상시키는 구 상순과 달리, 그의 아들은 사각턱에 굵은 눈썹을 가진 남성다운 얼굴이다.

 

 ‘하... 그런데 왜... 왜 구 상순은 내게 이 서류봉투를 던지고 간 것일까.’

 

 강 신부는 다시 차의 시동을 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저 너머의 무엇을 향해, 그는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 * *

 

 띵동. 띵동. 띵동.

 

 죽은 정 준철의 집 앞에서 강 신부는 연거푸 대문 벨을 눌렀다.

 한참 지난 후 조심스레 문이 열리고 정 순경의 아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전히 상복을 입은 채 창백한 표정이었다.

 

 

 -신부님께서 어쩐 일로?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뭘요?

 -오늘 아침 장례미사 때 말입니다. 제 강론 중에 좀 특이한 행동을 하시더군요.

 -제가요?

 -네. 혹 강론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아... 네...

 

 

 강 신부는 잠시간 그녀를 내려다본다.

 작은 키에 약간 마른 아담한 여자.

 십자목걸이를 한 흰 목덜미를 자신의 손으로 감싸는 그녀는 무척이나 방어적으로 보였다.

 팔목에는 소박한 나무 묵주 팔찌를 하고 있었다.

 강 신부는 집요하게 그녀를 본다.

 하지만 그녀도 고집스럽게 침묵을 고수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감곡성당에 다녀오셨군요.

 -네?

 -그 묵주 팔찌 말입니다. 감곡성당의 매괴의 성모님 패가 달려있군요.

 -아... 네. 남편이... 그이가 선물해준 거예요.

 -그랬군요. 준철이가, 아니 정 순경이 참 착실한 신자였죠.

 -네, 일주일에 꼭 한번은 꼭 성지순례를 다녔어요.

 -기억합니다. 지난달에는 제가 머물고 있는 수도원에도 다녀갔습니다.

 -그렇군요... 그이는 늘... 신부님은 다르다고 했어요.

 -다르다?

 -네, 트럭에 치여 병원에 실려갔던 날, 수술직전에 그랬어요, 자기 죽으면 장례미사는 꼭 강 바울 신부님께 부탁하라구요.

 -그랬군요.

 -네. 신부님은 믿어도 된다고.

 

 '믿어도 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준철이가.'

 

 -그럼 제게 말씀해주실 수 있겠군요.

 -뭘... 요?

 -오늘 아침 장례미사 때 일 말입니다.

 -아... 그냥... 아이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 은우가 듣고 싶게 하지 않았어요.

 -그게 다입니까?

 

 

 강 신부가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이제껏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 순경의 부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강 신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죽은 남편의 말처럼, 강 바울 신부의 눈은 뭔가를 꿰뚫어보는 듯한 강렬함이 있었다.

 

 

 -실은, 그 사람을 볼까봐

 -그 사람이라뇨? 누구 말입니까?

 -장례식장에 가지 말라고 경고한 사람이요.

 -남편의 장례식장에 가지 말라고 경고한 사람이 있었단 말입니까?

 -네.

 -혹시 그 자가 이 사람입니까.

 

 

 강 신부는 서류 봉투에서 구 상순 형사의 최근 사진을 꺼내 보였다.

 

 -어머 이 사람!

 -이 사람 맞습니까?

 

 그녀는 흠칫 놀라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네, 분위기가 전혀 달라요. 뭐랄까 굉장히 이지적인 미소년 같은 느낌이랄까.

 -미소년이요?

 -네

 

 미소년이라니? 그건 또 누구지?

 강 신부의 머릿속이 급격히 혼란스러워졌다.

 구 상순이 아니라면 장례식장에 가지 말라고 경고한 자는 누구인가.

 아니 경고인가? 아니면 협박인가?

 

 그나저나 준철의 부인이 구상순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좀 전에 구 상순의 사진을 본 그녀의 반응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부인, 이 사진 다시 한 번 보시죠, 혹시 부인이 아는 사람입니까?

 -이 자가 누군데요?

 -구 상순이라는 형사였습니다. 12년 전 정순경과 우리 모두 한 팀이었죠.

 -아. 네.

 

 

 또 단답형의 답.

 아마도 이 여자는 뭔가 숨기고 싶을 때 단답형의 답으로 방어막을 치는 유형인 듯 싶다.

 이런 유형은 일단 안심을 시키고 재차 정확하게 묻는 것이 답이다.

 

 

 -부인, 어쩌면 정 순경의 죽음과 지대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우리 그이 죽은 게 관련이 있다뇨?

 

 

 준철의 부인이 날카롭게 묻는다.

 하지만 강 신부는 묵묵히 그녀를 응시한다.

 준철의 죽음이 의도된 살인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을, 그것도 구 상순의 말만 믿고 바로 전달할 수는 없다.

 남겨진 유가족을 다시 혼란에 빠뜨릴 수는 없다.

 

 

 -신부님!

 -이 자가 장례식때 저를 찾아와서 위협을 하고 사라졌습니다.

 -신부님께 위해를 가했나요?

 -네.

 -어쩜 똑같이...

 -부인이 아는 자가 맞습니까?

 -네, 장례식 직전에 봤어요.

 -단순히 본 것만이 아니군요.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사람이 길을 막고 제 팔을 거칠게 잡았어요.

 -부인을요?

 -네. 아주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서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팔을 쳐냈죠. 그때 그러더군요. 장례식에 들어가면 저와 제 아들이...

 

 

 갑자기 목이 메는 듯 그녀가 머뭇거린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부인, 제게 다 말해주세요. 그러셔도 됩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장례식에 참석하면 저와 제 아들이 죽게 될 거라구요!!

 

 * * *

 

 그로부터 3일 뒤.

 운치 있고 고즈넉한 가톨릭 신학대학 건물.

 700명에 달하는 사제 지망생들의 기숙사와 면학을 위한 대학교 건물이 공존하는 고즈넉한 공간.

 아름다운 두 청년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신학교에서 소문난 수재이자 선의의 라이벌 관계인, 신학생 이 준(23세)과 김재화(22세).

 이 두 청년은 이태리에서 방문할 교황특사를 맞이하기 위해 그레고리안 성가를 연습중이었다.

 단지 연습임에도 불구하고 교수신부들이 모여서 두 사람의 성가를 조용히 경청중이었다.

 

 

 -두 녀석들 공부도 앞 다투고 노래실력도 도긴개긴이고.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이 친형제처럼 붙어 다닙니다.

 -두 학사만 보면 흐뭇하죠. 지.덕.체.를 고루 갖춘 재원입니다. 참, 그저께 축구시합 보셨습니까?

 -얘긴 들었어요. 서로 세 골씩 먹였다면서요.

 -프로 경기 못지않았습니다. 학생회장 후보로 둘 다 나온다던데요?

 -둘 다요? 이야~ 모처럼 볼 만 하겠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될 놈 정해놓고 구색만 갖추는 선거였는데. 허허.

 -우리 가톨릭 신학대학교 학생회장은 전통이 유구한 명문본당 출신이 돼야죠.

 -신학생 많이 배출한 본당이라고 위에 계신분이 특별대우 하랍디까. 가끔은 개천에서 용도 나오는 법이오.

 -흥. 이태리어는 둘 중에 누가 더 잘합니까.

 -둘 다 막상막합니다만.

 -교황특사께서 신학생 대표에게 통역을 맡기겠다고 하셨답니다.

 -뭐 두 학사라면 문제없죠.

 -한 명만 필요해요. 김재화 학사 내정하죠. 개천에서 용 나올 필요는 없으니까.

 

 

 학사관련 일을 도맡은 학생처장 이 신부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이 신부는 김 재화 학사와 같은 본당 출신의 교수신부였다.

 그는 대놓고 김 재화 학사를 편애했지만 다른 신부들은 왈가왈부하지 못했다.

 학생처장 신부의 권력은 총장신부 다음으로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 * *

 

 오후 5시. 대학수업이 끝나고 해가 기울자 삼삼오오 신학생(=학사)들이 몰려나왔다.

 저녁놀이 물든 고즈넉하고 거룩한 교정에서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신학생들이 줄 맞춰 걸으며 저녁 묵주기도를 바친다.

 

 묵주기도가 마무리 될 무렵.

 은테 안경을 낀 잘생긴 이 준이 지화(손가락 수화)로 go라고 말한다.

 그러자 재화와 신학생1,2가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주고받는다.

 잠시 후 이 네명은 신학교를 벗어나 외출을 할 예정이다.

 

 매주 수요일은 신학생들의 외출의 날로,

 1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신학생들에게 수요일 외출과 방학은 가장 행복한 일탈의 일부다.

 수요일 저녁이 되면 신학생들은 모두 수위실에 외출증을 제시하고 짝을 지어 몰려나가고는 했다.

 

 

 -재화 얘 왜 이렇게 안 와? 벌써 5시 반인데...

 

 

 신학생1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화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준이 형. 거 뭐냐, 늦어서 미안하다 그것도 지화로 할 수 있어?

 

 

 열심히 지화를 배우려는 신학생2가 이 준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이 준은 손가락으로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이렇게 에스오알알와이 그리고 레이트.

 -난 아무리 외우려고 해도 못해먹겠다. 수화보다 더 어려워.

 -생각날 때마다 물어봐. 내가 계속 가르쳐줄게.

 -형은 생불 같아. 살아있는 부처.

 -얌마 신학생 입에서 생불이 뭐냐.

 -형 웃는 거 봐라. 보살님 미소잖아.

 -하긴. 준이 형은 추락한 천사지. 시험과목 코덱스 만들어줘, 세미나 레포트 자료도 복사해줘. 우리는 준이 형 없으면 벌써 똘레(신학교 쫓겨난다) 됐다. 엑스 세미.

 -이 녀석들아, 말이 씨가 되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한테는 형이 있잖아. 그나저나 5시 40분 넘었는데? 아무래도 학생처장 신부님이랑 얘기가 길어지나 보다. 걍 우리끼리 마시고 오까?

 -재화 섭섭해 해. 기다리자.

 -에이 증말. 형은 허구헌날 재화랑 붙어 다니면서 지겹지도 않아? 가만 보면 전생에 둘이 부부였나봐.

 -이 녀석들이! 생불에 전생에. 신학생 입에서 무슨 망발이냐.

 -난 지금 당장 우리 주(酒)님을 모셔야겠어. 형이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슈.

 -그래, 알았어. 먼저들 가 있어.

 

 

 신학생1,2가 교정 밖으로 신나게 내달려간다.

 이 준은 두 녀석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훤칠하게 서있는 이 준의 모습은 마치 신이 빚어만든 다비드 상 같다.

 

 

 * * *

 

 -왜 접니까?

 

 

 학생처장 이 신부와 마주 앉은 재화의 목소리가 꽤 도전적이다.

 이 신부는 눈썹을 치뜨며 재화를 노려본다.

 

 

 -이태리어 통역은 이 준 학사가 더 잘합니다. 지난번 라틴어 이태리어 시험 모두 올 탑이었습니다.

 -자네도 잘하잖아.

 -준이 형이 더 잘하니까 먼저 물어보는 게...

 -어이 김 재화 학사. 장상들이 결정하는 데 신학생한테 허락받고 정하나?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신부님.

 -자네 본당 명예도 있고. 총장신부님과 관계도 있고. 명문본당 출신 학사가 맡아야 의미가 있지 않겠어?

 

 

 명문본당. 또 그 이야기다.

 재화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된다.

 신학교의 총장신부는, 재화의 큰 아버지였다.

 그리고 재화는 지금 눈앞에 마주 앉은 이 신부와 같은 성당 출신이다.

 단지 그런 배경 때문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이 학교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재화는 매번 이런 결정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자신보다 뛰어나고 매사에 올 탑인 이 준에게 돌아갈 기회를 자신이 부당하게 빼앗는 죄책감이 들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나가봐

 -... 네.

 

 

 재화는 결국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문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선 재화는 한숨을 내쉰다.

 준이 형 얼굴을 어떻게 보지.

 교황특사 통역 대표를 맡았다고 어떻게 말하지.

 날 뻔뻔한 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 순간 누군가 재화 앞을 가로 막는다.

 스물 두어 살의 식복사 레아다.

 그녀는 신학교에 숙식하는 세탁부 처녀로 싱그럽고 풍성한 몸매를 가졌다.

 때문에 신학생들이 레아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은근한 눈길을 보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재화는 평소 여자 식복사와 말을 트지 않았다.

 사제가 되어야 할 신학생으로써 여자와 수다를 떠는 건 껄끄럽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 앞을 턱하니 가로막는 레아를 보자니 황당하고 기가 찼다.

 

 재화는 경멸스런 표정으로 레아를 무시하고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레아가 다시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그만 하세요, 김 재화 학사님!

 -예? 뭐라고요?

 

 

 재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레아를 본다.

 그런데 레아는 씩씩대며 재화의 코앞에 바싹 얼굴을 들이민다.

 

 

 -알아들었잖아. 제발 그런 짓 그만두라구!

 

 '이 여자가 미쳤나!'

 

 재화는 순간 화가 치민다.

 

 

 -이봐요, 식복사님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지만 레아는 세탁바구니로 재화를 힘껏 밀어버리고는 사라져버린다.

 재화는 황당했다. 황당했고 화가 치밀었다.

 감히 식복사 주제에, 신학교에서 일하는 여자 작업부 주제에 학사에게 감히!

 도대체 뭘 하지 말라는 거야!

 

 

 -재화야! 식복사 언니, 왜 저래?

 

 

 이 준이다.

 화가 치민 재화가 레아를 뒤쫓아가려는 순간, 나타난 것이다.

 

 

 -왜 그래? 싸웠어 둘이?

 -무슨 소리야! 난 저 여자 알지도 못해!

 -그래?? 난 둘이 뭔 일 있는 줄 알았네.

 -뭔 일은 무슨! 저 여자 제 정신 아닌 거 아냐?

 -왜 그래 재화야. 무슨 일인데 응?

 -아 나 진짜. 식복사 주제에 어디서 감히 학사한데 따지고 있어!

 -재화야, 진정해라. 뭔가 오해가 있었나본데 내가 나중에 잘 물어볼게.

 -근데 형 왜 여깄어? 석우랑 민건인?

 -그 두 놈은 먼저 나갔다.

 -의리 없는 인간들!

 -자자 진정하고 나랑 같이 나가자. 형이 쏠게. 응?

 

 

 * * *

 

 [댕- 댕- 댕 -]

 신학교 진리관 건물 복도 1층에서 괘종시계가 밤 12시를 알리고 있었다.

 

 [퍽-]

 [컹. 컹. 컹]

 

 신학교 기숙사동의 뒷마당이 수어 초 간 소란스럽다.

 30여 마리를 가둔 개 사육장 주변을 지키는 cctv가 별안간 날아온 돌에 와그작, 박살이 난 것이다.

 그 바람에 놀란 개들이 컹컹 요란하게 짖었다.

 하지만 그것은 채 30여 초도 되지 않았다.

 개 사육장을 향해 검은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다가오자, 일제히 개 짖는 소리가 사그라진다.

 

 [학. 학]

 

 누군가의 가쁜 숨소리뿐.

 그 그림자의 손끝에서 뭔가가 진득하게 톡. 톡 떨어진다.

 

 구름 속에 숨어있던 초라한 귀신달이 희미하게 빛을 발한다.

 그것은 피다!

 검붉고 진득한 피가 톡. 톡 사육장 주변에 떨어지고 있었다.

 

 

 * * *

 

 간 밤에 짙게 깔렸던 구름과 안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연두빛을 품은 노란 은행나무 사이로, 신학생들이 삼삼오오 걷고 있다.

 새벽 5시 30분. 아침기도를 시작하는 중이다.

 교정 곳곳의 스피커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 연주음악이 울려 퍼진다.

 

 묵주를 든 신학생들이 교정을 거닐며 사색과 기도를 통해 내재한 신과 마주하는 그 현란한 시간에...

 

 CCTV가 박살난 개 사육장 쪽으로 신학생 한 명이 사료를 가지고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신학교에서 기르는 개를 담당하는 신학생이다.

 그는 사육장의 걸쇠를 풀고 사육장 안으로 사료를 밀어 넣고 있었다.

 

 

 -우리 영순씨 지순씨 미순씨 모두 밥 많이 먹어...어어어어!

 

 

 자신이 이름 지어 준 개들에게 사료를 나눠주던 신학생은 뭔가에 놀라 뒤로 쿵 주저앉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그 무엇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게.... 뭐, 뭐야!!!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 다시 한 번 사육장 안에 조심스레 고개를 디밀었다.

 그 순간 끝도 없는 비명 소리가 신학교 교정을 울린다.

 

 교정에서 묵주기도를 하던 신학생들의 발걸음이 모두 멈춘다.

 그리고 모두들 일제히 놀라 사육장으로 몰려든다!

 희끄무레한 저것은 무엇인가.

 가만 붉은 줄기를 온 몸에 칭칭 감고 있다!

 뱀인가?

 아니야, 저건 피! 피다.

 핏덩이와 희끄무레한 뭔가가 엉켜있다!

 도대체 저게 뭐야?

 생물이야?

 짐승이야?

 아 ! 저것은!

 

 누군가의 손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묵주!

 

 

 - 다음에 계속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현재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2019 / 3 / 7 956 1 -
공지 다음 회차부터는 다른 곳에서 연재합… 2019 / 2 / 11 990 1 -
공지 2편의 전체제목을 변경하였습니다. 2019 / 1 / 23 990 0 -
공지 2편을 시작합니다. 2018 / 12 / 7 973 1 -
공지 전회차를 삭제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 2018 / 11 / 5 859 1 -
31 2편 다크웹 마부스 : 사라진 바른손 2018 / 12 / 30 33 1 5483   
30 2편 다크웹 마부스 : 붉은 원피스 (수정본) 2018 / 12 / 22 26 1 5355   
29 2편 다크웹 마부스 : 마담 이브 (2) 2018 / 12 / 14 29 1 6129   
28 2편 다크웹 마부스 : 연자매 살인 (2) 2018 / 12 / 6 34 1 4307   
27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피의 세계로 (2) 2018 / 11 / 27 39 1 7771   
26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체크메이트 (2) 2018 / 11 / 26 30 1 5890   
25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뒤바뀐 아이 (2) 2018 / 11 / 25 24 1 5931   
24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숨겨진 아이 (6) 2018 / 11 / 24 42 1 6112   
23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기다리는 손님 (수… 2018 / 11 / 23 26 1 4881   
22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거짓의 탑 (3) 2018 / 11 / 22 41 1 4100   
21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빗속에 전화벨이 … 2018 / 11 / 21 28 1 4614   
20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아뉴스데이 미세레… 2018 / 11 / 20 46 1 4645   
19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신의 음성 2018 / 11 / 19 40 1 7088   
18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노란 봉투 (2) 2018 / 11 / 18 43 1 5375   
17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다섯개의 눈 2018 / 11 / 18 40 1 5582   
16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그날 2018 / 11 / 16 38 1 5338   
15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15분 전 2018 / 11 / 15 37 1 7277   
14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Find Him 2018 / 11 / 14 41 2 6845   
13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오버 랩 (2) 2018 / 11 / 13 49 2 9945   
12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소문과 동요 2018 / 11 / 13 44 2 6384   
11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니므롯 2018 / 11 / 11 493 2 8456   
10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가장 유력한 용의… 2018 / 11 / 10 499 2 5137   
9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완벽한 신학생 2018 / 11 / 9 495 2 9195   
8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첫번째 용의자 (2) 2018 / 11 / 8 510 2 6047   
7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개는 짖는다. 2018 / 11 / 7 486 2 8194   
6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누가 청소를 했는… 2018 / 11 / 6 493 2 5202   
5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프라도라면 개처럼… 2018 / 11 / 5 507 2 7377   
4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왜 나입니까 2018 / 11 / 5 478 2 7871   
3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말할 수 없는 2018 / 11 / 5 450 2 4083   
2 1편 나는 왜 옷을 벗었나 : 새벽을 가르는 비… 2018 / 11 / 5 452 2 8653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청동거울의 비밀
최극
블랙 스완
최극
풀어주세요
최극
봄과 늑대
최극
49일
최극
당신은 왜 품절
최극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