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망졸망 작은 아이들을 양팔에 가두고 끌어안은 바이안은 따뜻한 온기에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님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히히히”
“킁킁. 이게 아바 냉새그나.”
품안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두 아이들에 바이안은 가장 중요한 것을 조심히 물었다.
“엄마랑 같이 오지 않은 거니?”
처음부터 아이들만 보였기에 당연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베시시 웃던 아이들이 엄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온 몸을 경직시킨다.
커다란 눈망울이 격정적으로 흔들리면서 촉촉해져 깜찍한 미간을 찡그리자, 바이안의 심장이 덜컹하고 불안함이 옥죘다.
“아 아브아...”
마치 아주 크게 혼날 것을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바이안의 옷깃을 꾸악 틀어잡은 리나가 바이안을 간절히 올려다봤다.
그러다 옆에 있던 에이든이 갑자기 빼액 울기 시작했다.
“흐어엉. 엄마가...”
우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에이든의 울음이 전염이 되어버린 리나도 울먹였다.
“딴하고 나타나자고 야소옥 해는데... 아바 보려고..”
“흐어엉... 우리 혼나. 엄마한테 혼나.”
아직 말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아이들인 덕분에 자세하지는 못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이해되었다.
오늘 일정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이 되었고, 그런 자신을 보려고 엄마한테 말도 없이 서둘러 나온 것 같았다.
거기에 잘 못한 것을 알고 있어서 엄마의 맴매가 무섭다는 뜻인 듯 납득하고 보니,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녀가 살아 있다는 확답을 들은 것 같아 안심했다.
각각 한 팔씩에 아이들을 안아 들고 일어난 바이안은 자신의 옷깃을 잡고 몸을 지탱하는 두 아이의 뺨에 제 뺨을 비볐다.
“아빠가 혼내지 말아달라고 말 해줄게.”
“종말?”
“지짜?”
언제 울었냐면서 기대감을 가득 안고 활짝 웃는데, 뭐 이리 사랑스러운지, 게다가 어떻게 자신이 아빠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엄마를 뒤로 하고 달려오는 행동력에 세이나 판박이가 따로 없다.
군중들의 틈에서 나온 후덕한 여인의 안내로 함께 온 세이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눈에 힘을 빡 줬다.
“큰 금 뭉치 한 개에, 작은 금 뭉치 두 개가 아주 딱 붙어 있네.”
주변 상황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있는 금 뭉치들이 뭉쳐있는 곳만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가서 노닐고 있다는 감상을 뱉었다.
세이나는 아이들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어서 혹시나를 담아 둘에게 아빠 깜짝 놀래켜주자는 식으로 흥미를 유발시키며 신신당부하기까지 했지만, 설마 자신을 버리고 튀어나갈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어서 망정이지, 저 꼬물이들이 치는 사고에 수명이 나날이 준다.
“딸랑? 아뜨을?”
금 뭉치들이 있는 곳으로 찬찬히 걸어가 음산히 목소리를 깔자, 둘은 흠칫하며 바이안의 어깨와 목 사이에 얼굴을 포옥 묻고 완벽 아빠표 배리어 펼쳤다.
삼년 만에 듣는 세이나의 목소리에 가슴이 간지럽고 마음이 둥둥 뜨면서도 현실감이 안 느껴진다.
어서 가서 그녀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한발 한발 천천히 떼어 그녀에게 걸어가는 이 걸음이 왜 이리도 무거운지 이유를 모르겠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바이안을 가만히 기다려주자, 어느새 서로 가까이 마주 설 수 있었다.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게 더 바짝 안아 찰딱 붙인 채로 세이나의 어깨에 머리를 가만히 기댔다.
“내가 좀 많이 늦었지?”
늘 들었던 다정한 목소리에 어리광이 툭 튀어 나온다.
“응. 늦었어. 너무 오래 기다렸고, 너무 많이 힘들었어.”
오랜만의 재회에 기뻐하고 있지만, 목소리는 잘게 떨려 흘러나왔다.
엄마랑 아빠가 둘만 이야기하기에 뚱해져 입을 달싹이려던 에이든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면서 쉬잇하는 리나의 제지에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조용히 말을 들었다.
“남편아. 나 남편 얼굴 보고 싶은데.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
바로 반응을 보여 천천히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을 손을 뻗어 가만히 더듬어 갔다.
바이안은 세이나가 살아 있음에 벅차고 기뻐서 보지 못했지만, 얼굴을 들고 세이나의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야 세이나의 눈동자가 조금 혼탁해져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설마 싶지만, 세이나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덜컥 걱정되었지만, 살아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적이기에 애써 입 끝을 올렸다.
“어어? 요요 어색한 주둥이 보소?”
바이안이 애써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세이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완전히 눈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이건 아주 심~각한 근시 같은 거야.”
조금만 떨어져도 색이 잉크가 물에 빠져 퍼지는 것처럼 흐릿해 자세히 분간하기 힘들지만 얼굴에 바짝 가져오면 구분할 정도로 보인다며 안심시켰다.
“옹~ 울 남편 잘생겼다... 응?”
바이안의 얼굴을 당겨 보던 세이나가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누구야? 누가 잘생긴 내 남편 볼따구에 기다란 스크래치를 만들었어?”
얼굴 한 면을 차지하는 긴 상처에 길길이 날뛰고 있자니, 바이안이 쿡쿡 웃으며 세이나의 이마에 기습 뽀뽀를 해 진정시켰다.
“내가 이겨서 이미 없어.”
역시 내 남편이 최강이라 치켜세우지만 불만스러워 절로 궁시렁 댄다.
“그렇지 않아도 온 몸이 상처 투성이구만, 자꾸 이상한 놈들이 내 남편한테 상처만 늘려.”
자신을 걱정하고 대신 투덜대주는 세이나를 오랜만에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크흠. 큼”
국경일의 행사를 알리는 행렬이 중간에 멈춰서 어찌 해야 할지 대기만 하고 있는 모두와 넋을 잃고 바라보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황제내외의 마이외이 우리세상 꽁냥냥을 론이 대표하여 절단했다.
“폐하. 나머지는 궁에 가셔서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주변 좀 인식해라는 눈짓과는 다른 진중한 말투에 바이안은 그제야 지금 뭐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걷기 힘들어 보이는 세이나를 부축하려던 바이안은 왼팔에 리나, 오른팔에 에이든을 들고 있어 우왕좌왕 쩔쩔 메고 있자니, 세이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바짝 붙었다.
“내가 잡고 가면 되지요~”
“그러네.”
속도는 조금 느리겠지만, 말을 사용하지 않고 궁까지 걷기로 했다.
바이안과 세이나가 움직이기 시작해서야 행렬은 다시금 이동 할 수 있었다.
세이나에게 보폭을 맞추며 막 걸어가기 시작한 바이안은 문득 어제 밤에 론과 술을 마시며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딸이 태어났으면 좋겠다며 소원하던 론의 이야기는 자신은 이루고 싶어도 이루지 못하는 부러운 가정사였었다.
그의 행복한 이야기로 나름 대리만족을 하면서 상상을 했었는데, 지금은 론과 다르게 알고 봤더니 아들 딸 골고루다.
목을 틀어 자신과 눈을 맞추는 바이안에 무언가 할 말이 있는가 싶어 집중했더니, 입을 아주 주욱 찢더니 보란 듯이 콧대를 치켜세웠다.
“한 번에 아들 딸, 부럽냐?”
“뭐. 저 새..”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며 입모양을 열심히 뻐끔이는 바이안의 행태에 저 얄미운 뒤통수를 당장에 후려치고 싶었지만, 꼴에 황제라서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씨근씨근 분을 삭혀야만했다.
성문 앞까지 이어진 백성들은 황제의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모두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백성들은 황제와 그녀가 자신들의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심장에 대어 그녀에게 감사를 담아 귀환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최고의 예를 바쳤다.
황제의 짧은 연설을 끝으로 일주일간의 축제가 시작되었고, 오늘이 더욱 특별해진 백성들은 온 마음을 담아 축제를 즐겼다.
전장에 참여 했던 많은 이들과 연회를 즐기고 치하해야할 가장 중요한 황제가 대놓고 자리를 비우는 것을 이곳에 있는 모두는 당연하게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가족이 모처럼 상봉한 날인데 그것도 그냥 가족도 아닌 특별한 가족들이지 않는가, 황제라고 자신들과 다를 것이 있겠냐며 당연히 가족이 중요하다면서 자신들끼리 알아서 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넷이서 나란히 궁 안의 복도를 거닐고 있는 도중, 앞과 뒤쪽에서 자신들을 목표로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앞에서는 치맛자락을 틀어잡고 눈썹을 휘날리는 황태후가, 뒤에서는 할아범과 외할아버지가 전속력으로 뛰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에 찌잉하고 울리는 가슴에 세이나는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분명히 맞이했는데, 분명 달려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남편이 확인까지 해줬는데, 전속력으로 자신에게 달려오기에 미안하면서도 이정도로 사랑받고 있음에 마음이 행복했는데, 자신에게 왔다 싶은 모두는 거의 동시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힘껏 눈을 휘어 벙싯 웃으며 재롱을 부렸다.
“아이구~ 내시끼들”
“이리 예쁜 증손주들이라니.. 크흡~.”
“할머니란다. 할.머.니.”
서로 체통도, 지위도 철면 깔고 안면몰수 한 채로 멀뚱멀뚱 땡그란 눈을 뜨고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각자 나름대로 자신들을 어필해댔다.
“오빠... 남편아. 우리 아이들 좋아해 주시는 건 참 기쁜데, 나 왜 서운하려 하냐.”
세이나는 가족들과의 재회를 상상했을 때, 이건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우르르 까꿍과 어디에 그리 많은 까까들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주머니에서 까까를 꺼내 유혹하는 등,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피 터질 정도의 대결이 한참 펼쳐졌다.
세이나와 아이들이 합류해서야 드디어 가족들이 완벽해졌다.
모두가 모여 식당을 가득 메워 꽉 찬 저녁식사 시간을 보냈다.
스푼과 포크를 엉성하게 들고 자신들도 먹을 수 있다면서 여기저기 흘리면서도 열심히 밥을 먹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에바는 오라버니와 언니의 주니어들을 부러움을 가득담은 채로 보다가 자신의 옆에 앉은 케리프를 흘끔 쳐다본다.
지적인 매력의 바다를 품고 있는 그가 오늘따라 왜 이리 생각이 없어 보일까.
카시어스공작가도 둘째가 곧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가, 혼인한지가 벌써 이년째인데 그는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인지,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보기는 하지만 그 외의 반응이 없어 서운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끝나고 자신만 아이가 없어서 불안한 거냐고, 자신을 사랑하는 건 맞냐며 처음으로 케리프에게 화를 낼 심산으로 잠시 집무실로 사라진 그를 쫒아, 문을 벌컥 열고 씩씩 성을 내며 들어갔다.
“풉~ 컥! 쿨럭..”
그냥 봐도 쓸 것 같은 약을 사발째 들이키던 케리프가 놀란 나머지 사례가 들려 쿨럭이고 있을 때, 당황해서 그의 등을 쓸어주던 에바는 고이 적혀있는 쪽지를 우연찮게 읽었다.
-재상님도 할 수 있다! 정력 뽝!
이번 약은 소신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특효약입니다. 이번엔 확실합니다. 2세 보실 수 있습니다.-
궁의 어의가 힘을 주어 쓴 쪽지를 읽은 에바의 얼굴이 물렁한 토마토가 되어 그의 옷깃을 꼬옥 잡은 채로 입을 달싹였다.
“언제부터..”
“반년째..”
“......”
“......”
황제궁의 주인인 황제의 방에서 침대에서 뛰어놀아도 될 정도로 큰 침대에 넷이 오순도순 누워 꿈나라로 떠났다.
이른 시간에 눈이 번쩍 떠진 바이안은 서둘러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세이나 주니어 둘과 세이나가 진짜임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미소를 그릴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