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아아악”
“사 사람살.. 푸흡~”
높이 솟은 산처럼 거대한 바다의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아귀 괴물처럼 육지를 쓸면서도 아직 배가 차지 않았는지 그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최대한 산으로 높이 올라가면서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와중에 늦은 사람들은 힘없이 바닷물에 쓸려 사라져갔다.
하필이면 거기에 더해서 거세게 빗발치는 빗줄기가 수면의 높이를 올리는 것에 도움을 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버지!”
사람들을 재촉하며 산으로 올라가게 했던 백작이 갑자기 자신을 째지게 부르는 딸을 등지고 나무뿌리를 움켜쥐고 쓸려가기 직전인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한다.”
마력을 사용해서 신체를 강화한 백작은 커다란 바위에 손을 박아 넣은 채로 매달린 사람들의 팔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물 살의 지옥에서 뽑아 올렸다.
물살의 엄청난 힘에 대항하고 있는 자신의 마력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만, 그는 자신의 힘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살릴 수 있는 데까지 살리기 위해 뛰어 다녔고, 백작 휘하의 기사들 역시 그런 백작을 따라 구조에 힘썼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세상이 비웃는 것인지, 그렇게 했음에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백작은 기어이 힘이 다해 비틀거리는 그 잠깐의 순간, 그의 발이 불어나는 물에 닿자마자 엄청난 힘에 그대로 빠져버렸다.
“백작님!”
기사들이 서둘러 물에 빠진 백작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백작은 이미 떠밀려 순식간에 그들과 멀어졌다.
백작은 힘없이 파도에 떠밀려 가는 와중에 예전에 집이었을 건물의 잔해가 자신 쪽으로 방향을 잡아 덮쳐오는 것을 보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끝이구나.’
마지막을 직감하고 죽음을 받아든 백작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가 된 것처럼 무언가가 자신을 포근히 감싸 안기에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눈에 보이지 않아 뭐라 표현 할 수는 없지만, 온 사방을 따스하게 품은 기운이 닿자마자 거세게 밀고 들어오던 파도가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그 틈을 이용해 수영을 해서 그에게 온 기사들에 의해서 다행히 그는 무사히 구출 되었다.
더러운 마수처럼 온갖 것들을 집어 삼켜 시컴하고 더러워진 물에 쫄딱 젖은 백작은 젖은 땅에 주저앉아 힘없는 고개를 들었다.
“시작 되었구나. 여신이시여 부디 저희들을 가여이 여기시어, 모두를 구원하소서.”
멸망을 막기 위해 다시 태어나 대현자로서 올라선 라이트리아의 현신인 세이나에게 기도하며 백작은 그녀의 기적에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여신이 지나간 그 곳에는 약해진 빗줄기가 보슬비가 되어 그들을 달래었다.
재앙에 대비하는 자신들의 안일한 대처에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진에 화가 난 산들이 하나씩 터지면서 용암이 분출하여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대피하고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무척 멀기에 벗어났다 그리 방심했다.
하지만, 산꼭대기부터 시작한 검은 잿가루들이 점점 하늘을 뒤덮기 시작하면서 바람을 타고 날아와 그들의 시야를 가리고 호흡기를 막아 숨을 쉬지 못하게 하면서 순식간에 많은 이들이 숨져야만했다.
서둘러 더 멀리 피하기 위해 달리고 도망쳐 보지만, 죽어가는 이들의 속도는 그에 못지않게 빨랐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귀족들만이 조금 더 많이 버틸 뿐이었고, 달리는 중간중간에 뿌연 시야에 잡히는 시신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죽기도, 목을 잡은 채로 살려달라고 손을 뻗은 상태로 굳어져 죽는 등 너무나도 잔인한 재앙은 모두를 배려하지 않았다.
상황을 늦게 깨달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죽어가면서도 몇 명이 얼마나 살아남았을지, 오로지 자신들보다 조금 더 먼저 피신하던 이들이, 가족들이 자신들의 몫까지 살아남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숨이 막혀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구원을 바래보자, 자신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괴로움을 잊고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 손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 이들은 편히 숨을 거두었고, 무서운 기세로 하늘에 검은 재앙을 뿜어 올리던 산들은 잠이 들고, 활동을 멈췄다.
대륙에서도 빼어난 절경으로 손에 꼽는 돌로 이루어진 산맥은 아름다웠던 표정을 싸악 바꿔 무섭게 무너져 내리면서 숲도 마을도 상관없이 바위들에 뭉개지고 덮여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
관광산업으로 발달하게 된 도시라고 하더라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지, 거대한 바위가 날아들어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을 깔아뭉갰다.
한치 차이로 그 바위에서 살아남은 이는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걸죽하고 빨간 액체가 바위 밑에서 세어 나오면서 자신의 발을 적시는 것을 넋을 놓고 보다가 그대로 정신줄을 놓았다.
“여..여보.. 아아.. 내 새끼..”
온전한 시신도 없이 오직, 자신의 가족이었을 피의 웅덩이는 그렇게 그에게 흔적만을 남겨 주었다.
바위를 긁어 손톱이 벗겨져도 사내는 중얼중얼 얼을 놓은 채로 가족들을 구하려 열심이었고, 날아오는 바위들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던 병사들이 그런 사내를 떼어내어 서둘러 벗어나기 위해 달렸다.
“여보!!”
“미안하오.”
바둥거리면서 다시 달려가려는 사내에게 사과한 병사는 그를 기절시켜 어깨에 짊어졌다.
도시에서 이름이 난 현자와 남작, 자작들의 지휘 하에 기사들이 바위들의 폭격 속에서 사람들을 구해 대기 중인 마차들이 한 대씩 가득 찰 때마다 멀리 달아나게 했다.
“남작님. 마차도 말도 수가 부족합니다.”
“어쩔 수 없지 않소. 정원을 초과하더라도 계속 해야 할 것이오.”
“허나, 그렇게 할 시에 마차의 속도가 더뎌지고, 그 사이에 바위가 마차를 덮칠 시에는 모두가 한 번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현자는 두 귀족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한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마차가 부족하면 수레를, 말이 부족하면 우리 귀족들이 마력을 사용하여 끌어서라도 멈추지 말아야할 것이네.”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마어마한 지진에 바닥에 주저앉자마자 날아오는 바위들의 숫자가 몇배로 늘어났다.
도시의 영주는 처음부터 저만 살겠다고 꽁지 빠지게 줄행랑을 친 상태라 혼란한 지휘 체계를 급조한 상태였고, 남은 이들이 이를 악물고 모두를 재촉했다.
“후작님은 어디계신가?”
“이미 움직이고 계시네. 우리들도 움직임세.”
바위들의 폭격 한 가운데에서 후작은 병사들과 기사들의 사이에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사람들의 머리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자마자 쿠왕 하고 건물을 때렸다.
“아샤!!”
바위에 부서져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깔린 수많은 시신들 속에서 청년의 비명이 찌른다.
청년은 잔해들을 들추기 위해 힘을 썼지만, 당연히 꿈쩍도 할 리가 없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라 하더라도 깔린 사람을 구하려고 멈추지 않으면서도 힘이 없는 자신에 화가나 검게 띠를 그리는 자신의 목을 쥐어뜯기도 했다.
후작은 근처에서 시선을 이동하여 아직 살아 있을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바위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아샤. 아샤.”
“비켜주십시오.”
묵직한 중저음에 화들짝 놀란 청년은 그를 올려다보다가 그의 바짓단을 잡아 틀었다.
“살려 주십시오. 아샤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제발..”
한시가 급한 시간이라 하지만, 후작은 청년의 손을 잡고 그를 떼어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구하겠습니다. 그러니 잠시 비켜주십시오. 당신도 위험합니다.”
후작은 청년을 뒤로 하고 주먹에 마력을 집중했다.
힘을 집중시킨 주먹으로 바위의 한 점에 박자, 산산이 조각이 나며 사방에 비산했다.
그러자마자 곧 바로 엄청난 무게의 잔해들을 들어 올렸다.
청년은 후작이 들어 올린 틈에 누군가를 발견하더니 허겁지겁 달려와 왜소한 여인을 끌어냈다.
잔해들이 틈과 틈을 만들어 그 사이에 끼었던 것이라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던지, 금방 정신을 차린 여인이 안긴 채로 청년의 볼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활짝 웃었다.
“아으 으.”
“응. 응.”
기사들과 병사들이 후작에게 달려와 또 살아 있는 이들이 있는지 구조하고 있는 가운데, 후작은 여인을 품에 안아 들고 멀어지는 청년을 가만히 바라보다 작게 목례해 보인 뒤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지휘했다.
생존자들을 잔해 속에서 끄집어내는데 집중하고 있을 때,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의 커다란 진동과 소음이 모두의 귀를 아프게 때렸다.
“후작님!”
“젠장할.”
이미 마력을 상당히 쓴 상태의 후작은 산하나의 크기가 통째로 날아와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들의 머리위에 드리우는 것을 본 후작은 생기까지 뽑아낼 기세로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 살기 위해서라지만, 지금 자신의 힘으로 저만큼 큰 바위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음을 직감하지만, 그런다 하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바위에 틈이라도 만들자. 그리하면 조금이라도 살아남겠지. 자신은 죽겠지만, 그것이 무에 대수랴 그리 생각을 하고 마지막 힘을 내 뿜으려 할 때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감싸 안아 내지르고 있는 주먹에 힘을 실어 주는 듯한 포근하고 강한 기운이 온 전신에 퍼졌다.
바위산이 후작의 주먹과 맞닿자, 쩌저적 반으로 갈라진 바위는 양 옆으로 떨어져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허....”
믿을 수 없는 기적이 그들을 반겼고,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자신의 주먹을 잠시 내려다보던 후작은 여전히 건재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마력의 요동에 아주 잠시 넋을 놓아버렸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이신 라이트리아시여, 당신의 아이가 경예를 담아 인사 올립니다.”
후작은 무릎을 꿇고 잠잠해져 조용한, 따뜻한 온기를 퍼트리고 있는 대지에 마르고 갈라진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여신의 품을 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륙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이들이 자신들을 보듬고 달램을 느꼈다.
그녀의 따뜻함이 순차적으로 퍼져가면서 대륙을 넘어 바다까지 온 세상을 감싸 안았다.
세상이 자신이고 자신이 세상 그 자체인 것처럼 세이나는 이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들과 나무, 꽃, 동물 등 모든 생명들이 선연하게 보였다.
‘처음의 그때는 모두가 이성을 잃고 온 세상에 절망뿐이었지만, 지금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들고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라이트리아였을 때와 세이나일 때의 세상에 사는 이들의 다른 점에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응. 내가 걸고 있는 가능성이 이거야. 너도 느끼고 있니?’
이미 한 몸이 된 것 같은 상태이지만, 세삼 스레 물어보다 스스로 긍정한다.
세이나는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무형의 무언가에 계속 말을 걸었다.
‘그 때에는 절박한 상황과 나 혼자였다면, 그래서 너도 나도 부족하여 끝내지 못했었다면, 혼자가 아니면 되는 거야. 하나보다는 둘, 둘 보다는 넷. 이리 셀 수도 없이 많은 영혼들이 뿜어내는 희망과 미래가 기적이 되어 이번에는 우리가 너를 안아줄게.’
시간이 지날수록 허공에 몸을 띄운 세이나의 몸에서 퍼지는 빛이 투명해지면서 세이나 그 자체도 점점 투명해져가기 시작했다.
‘네가 안아 주어 이제껏 살 수 있었고, 우리가 안아 주어 네가 살자. 이제 다 됐다. 지금 그리로 갈게.’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은 아니지만, 기이하게도 투명해졌다 싶은 그 장관은 반대로 범접하지 못할 빛으로 여겨져 세이나가 보이는 모든 이들이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빛났다.
세이나는 이제 시작인지, 아직 끝나지 않은 마지막을 위해 깊고 깊은 아래로 자신의 영혼을 이동해 만나러 내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