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밤낮 가리지 않고 병장기가 부딪히고 죽어가는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거기에 갈수록 지진의 강도도 강해져 사람들의 불안함을 더욱 가중시켰다.
사람들의 대피와 적들을 어느 정도 물리친 상황에 바이안은 서둘러 황궁이 있는 수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병력을 나눠서 아직 남아 있는 적들을 도륙하는데 두고, 자신들은 이곳에 있을 간부들의 모습이 사라진 것에 심상치 않음을 직감해서 서둘렀다.
수도의 어느 한 건물의 지붕위에 적당하게 자리를 잡고 세운 무릎위에 팔을 걸쳐 턱을 받힌 릴리움은 사람들이 대피해서인지 돌아다니는 이들이 없는 을씨년스러워진 도시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도망쳤으려나...”
릴리움은 얼마 전에 왔었던 때랑 한층 다른 분위기를 감상하면서도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곳에 지상인들도 많이 유입이 되었다 하더라도 천공의 땅이 추락하기 전, 멀리 떨어진 대륙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서 두 번째 만남에 그가 귀족이라는 것은 얼추 예상했다.
릴리움은 천공의 땅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죽는 것을 바랬지만, 이상하게도 그만은 죽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진다는 건지..”
요염하게 웃던 그녀는 갑자기 기분이 팍 상했는지 인상을 쓰고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뾰족하게 물었다.
“왜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거니? 안 바쁜가보네?”
그녀의 질문에 하밀이 개구진 말투로 시비를 걸 듯 대답했다.
“네가 대 놓고 보이니까 와봤지. 킥킥”
“일단 들렸다.”
“다들 모이 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와봤는데?”
하밀을 시작으로 바바로트와 몰렌이 순서대로 대답했고, 릴리움은 황당함에 손으로 받힌 턱이 삐끗했다.
“이 곳에 남아 있는 기사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뭐가 재밌다고 온 거야?”
“수도잖아. 도망쳐서 숨어있는 인간들이 제일 많을 텐데 찾아서 몰살시키면 짜릿 할 거야.”
하밀은 단검을 쥐고 상상을 하면서 찌릿한 자신에 취했다.
바바로트는 그런 하밀에 작게 한 숨을 내쉬고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꺼냈다.
“주인님께 위협이 되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많이 줄이기 위해서 나는 현궁으로 갈 것이다.”
무뚝뚝이 나온 그의 말에 몰렌은 대단하고 신기한 놈을 보는 눈으로 그가 끌고 온 하수병들과 그를 번갈아 가면서 흘겼다.
“네 놈은 주인님께 충성을 맹세한 놈이긴 하지. 하여간 손해 보는 놈이야.”
크게 목적이 없던 몰렌은 바바로트를 까면서도 자신도 그 쪽으로 따라갈까 고민했다.
서로에게 큰 감정이 없어서, 오래 대화하지 않고 먼저 갈 사람들은 갔고, 릴리움과 반조만 지붕위에서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너도 이제 네 할 일 하면 안 될까? 계속 따라올 참이니?”
“......”
고목나무도 아니면서 묵묵하게 자신의 뒤를 지키는 반조에 폭 한 숨을 내쉬었다.
웨에엥 성에 침입을 알리는 경고음이 현궁에 울리면서 세이나의 방 앞에 모여 있는 모두는 서로 검을 빼들어 주위를 경계했다.
하일단장은 기사단들에게 빠르게 명령하면서 궁으로 뛰어든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 달렸다.
아수라장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사방에서 튀어나와 여기저기로 퍼지는 적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막아라! 궁 안으로 들여보내선 안 된다. 본궁을 사수하라!”
하일의 외침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황자인 바이안과 기사단들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위해 필사적이었다.
목숨을 내 놓고 싸우는 적들을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닌지라 적 하나를 죽이면 그 뒤에 있는 적이 동료의 시신을 이용하면서 끼어들었다.
궁 안에 남아있던 시종과 시녀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는 소란 사이에 세이나의 외할아버지인 남작도 끼어있었다.
현궁의 본궁과 가까이에 있는 할아버지들을 위한 소궁에 많지는 않지만, 무섭게 달려오는 적들에 사색이 된 남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트론의 손을 잡고 그를 재촉하며 뛰었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손녀딸이 걱정이 되어 본궁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의 앞에 날카로운 검 날이 날아왔다.
남작은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기다렸다.
콰직하는 소름 돋는 소리가 귀를 때렸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아무런 충격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작은 감은 눈을 조심히 떠 앞을 확인하고, 놀라서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멍한 고양이처럼 벙 찐 채로 알바트론을 쳐다봤다.
“헤~~”
알바트론은 적의 머리를 틀어쥐고 벽에 박아 머리통을 부순 채로 해맑게 웃으면서 남작을 쳐다봤다.
“허..허허허. 그 그렇구나.”
정신을 놓았다 하더라도 그가 기사였었을 능력과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닌지,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살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알바트론은 추가로 덤비는 적들을 마력을 두 팔에 돌려 그대로 뭉개 뜨려 죽였다.
“이 이거 줄까?”
적이 떨어트린 검을 들어 건네주자, 냉큼 받아 검을 앞뒤로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 남작의 손을 잡고 룰루랄라 걸어갔다.
기이할 수도 있지만, 천진한 그의 면면에 소란이 일어나는 여기와는 동떨어져 꽃밭을 노니는 기분이 남작에게 달려왔다.
“남작니임?”
그를 지키려고 달려온 기사들은 남작을 발견하고 소리치다가 끝에 말꼬리를 올려 의문형을 만들었다.
이미 주변에 적의 시체들이 가득했고, 마침 앞에 마지막에 남은 적의 목을 썩둑 썰고 깡충깡충 뛰고 있는 알바트론과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남작에 자신들의 할 일을 잃어 버렸다.
“크으~~~ 역시 단장님이십니다.”
“예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단장님.”
감격과 감동에 젖어 알바트론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에 남작만이 어색하게 허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모두 자세를 낮추고 대비했고, 강렬했지만 짧은 지진이 멎자마자 서둘렀다.
둘을 본궁으로 모시면서 궁에 있는 사람들 모두 본궁으로 모이고 있으며, 본궁 중심으로 방어진을 펼치고 있다 전해 들었다.
남작이 본궁으로 무사히 들어가자 계속 함께 손을 잡고 있었던 알바트론이 그의 손을 놓았다.
“아들?”
“히~”
평소처럼 방긋 웃어주더니 그대로 등을 돌리고 한창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심으로 달려갔다.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다시 거두면서 그의 무사를 기도했다.
“그래. 기억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수하들을 걱정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무사히 다녀 오거라.”
남작은 몸을 틀어 손녀딸의 방으로 걸어가자, 마침 문 앞에 나와 호위기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고고하게 서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외할아버지.”
“괜찮은 거야? 아픈 데는 없는 거지?”
남작의 걱정에 가만히 그에게 안겼다가 떨어진 세이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기분에 더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미루고 자신의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우리도 합류한다. 현궁에 간부가 둘, 황궁에 둘이 향하고 있고, 하나는... 망아지냐?”
“...네?”
전체를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알려주는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에 모두 저절로 물음표가 떴다.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쇄신하고 다시 위엄 있는 척 명령했다.
“병력이 이 곳으로 빠르게 돌아오고 있지만, 시간이 그리 없어. 특히 황궁은 거의 비어있어 여기보다 급해. 레인트경.”
“예. 주군.”
“칼라임경, 켄경.”
““예.””
세 명이 앞으로 나와 세이나의 명령을 기다렸다.
“내 권한으로 셋은 황궁으로 달려가 남은 병력들을 지휘하며 돌아오는 팀들이 합류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라.”
““충!””
명령을 수행하기위해 가려는 이들에게 명령을 추가했다.
“아! 미리 쓸어버릴 수 있으면 쓸고.”
여전함을 보여주는 말씨에 긴장하고 있는 중간에도 서로 미소 지으면서 각자가 맡은 일을 시작했다.
마지막 돌을 흡수했지만, 몸속에서 아직 완벽하게 섞인 것이 아니어도 가만히만 있어도 대륙의 많은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 망아지라고 소리치게 만든 간부로 보이는 꼬맹이는 텅텅 비어있는 수도를 칠렐레 팔렐레 뛰어다니면서 대피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나 찾아다니고 있어 보이지만, 이 곳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남편이 알아서 할 것이라 무시했다.
그 뒤로 멀리서 이상한 안개가 보이기는 했지만, 막 깨어난 지라 그게 무엇인지는 바로 몰라도, 그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어서 전쟁터로 시선을 두자 소강상태에 들어간 것을 느꼈다.
“묘~~~허네. 몸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어.”
여기에 있으면서 없는 것 같고, 유체이탈을 하면 이럴까 싶은 감각에 적응이 시급한 듯 보였다.
호위하는 모두가 지키고 있어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모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큰 홀의 중심으로 모여서 피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세이나님!”
덜덜덜 떨면서 무서워하고 있는 시종들과 시녀들을 다독이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히데아가 들어오는 세이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히데아를 가끔 보면 말이지. 멘탈이 유리멘탈 같은데 그 유리가 방탄유리 인가 싶다니까.”
알아듣지 못해 갸우뚱하는 그녀에게 별거 아니라면서 마저 할 일 하라고 했고, 따로 떨어져 앉아서 자신의 몫인 돌의 흡수에 집중했다.
두 돌이 서로 떨어져 따로 있던 영향인지, 서로 붙으려는 성질은 있지만, 쉽게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예상한 것 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듯해서 속마음은 급해있었다.
‘응. 울지마. 괜찮을 거야. 아프지 않게 나도 서두를게.’
애초에 다른 생이기에 라이트리아였을 때 느꼈었을 기분을 세삼 다시 느끼고 있는 세이나는 이 세상 그 자체의 슬픔을 그 때 했었을 때처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고 보듬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역시 지금 느끼는 이런 여러 감각들과 기분은 구체적으로도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이 이상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진탕된 바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화산이 폭발하고 해양생태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기후변화까지 심각해 바다가 보이는 동부 쪽으로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며 빈 땅이 사막처럼 비쳤다.
‘쓰나미...’
서부 쪽으로 시작해 갈라지는 땅이 갈수록 크고 넓게 찢어지고, 쉬지 않고 흔들리는 지진에 건물들이 힘을 잃고 무너지고 땅이 내려앉기도 했다.
‘북쪽은.. 빙하기가 찾아온 것 같아.’
아직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오옥~”
전부를 한꺼번에 느끼다 보니,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허리를 펴 등받이에 몸을 최대한 편하게 기대어 숨을 골랐다.
“빨리 와라. 남편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