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숫자가 지치지도 않고 물밑 듯이 몰려오는 전장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무력을 선보이는 황제가 검을 치켜 올리면서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멈추지 마라!”
마력을 담아 크게 일갈하자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커다란 함성이 뒤따랐다.
“끌끌끌~~ 참말로 많기도 하구먼~”
황제의 옆에서 함께 뛰고 있던 할아범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체들의 군대에 질리지도 않는 것들이라며 혀를 찼다.
“어르신.”
“징허게 덥구만~”
그런 할아범의 옆으로 바그다드가 뛰어들었고,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불길에 손바닥으로 파닥파닥 부채질했다.
“손주사위가 그러던디, 시체를 다루는 아가 어린 여자아가랴.”
주변을 뚤레뚤레 돌아보면서 뵈지를 아녀라며 말을 길게 늘렸다.
황제는 바그다드의 설명에 가장 먼저 처리해야할 인물을 정했다.
수하들이 죽어 가면 죽어갈수록 오히려 적의 병력이 느는 꼴이 되기 때문에 가장 까다롭기도 하고, 시체군대 뿐만이 아닌 다른 적 병력들도 죽자마자 합세를 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기도 했다.
마력의 일부를 눈에 집중해서 사방을 확인하고 있던 황제보다 노엘경이 빨랐는지, 그에게 달려와 외쳤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황제는 그런 그에게 끄덕여 허락을 했고, 노엘경은 지체 없이 목표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노엘경이 향하고 있는 지점에 아리아는 각성제를 한 움큼 집어 먹으면서 신이 나서 자신의 검을 휘두르며 뛰어 놀았다.
“아하하하하.”
엘로이는 그런 아리아를 따라다니면서 걱정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체들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력과 힘이 소비가 되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명령을 해 놓은 덕분인지, 직접 뛰면서 적들을 도륙하며 신나하는 딸을 걱정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후왁하고 아리아를 향해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마력에 엘로이는 서둘러 아리아를 품에 안아들어 방향을 돌린 채로 자신의 대검으로 막았다.
카가각 검과 검의 마찰 속에 엘로이와 노엘경의 시선이 서로를 찔러갔다.
간부가 한명이 더 붙어있었을 줄은 몰랐던 노엘경은 혀를 차면서 잠시 거리를 벌렸다.
“아무렇지 않게 생명을 가지고 놀면서, 상대를 아끼는 모습이 웃기구나.”
노엘경을 경계하면서 자신들을 비꼬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엘로이는 자신의 한쪽 팔에 안겨서 양팔로 버둥이면서 불평하는 아리아를 잠시 쳐다보다가 바로 노엘경에게 집중했다.
“글쎄. 아비가 자식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기가 차는군.”
아리아는 엘로이의 말에 반짝이며 올려다 보자, 그런 그녀에게 자상하게 웃어줬다.
노엘경은 둘의 관계가 부녀지간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못마땅했다.
부모자식끼리 이런 미친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이 무척 기이하고 비틀어져 보였다.
“아리아. 멀리 가서 놀아라.”
“응.”
엘로이는 그가 아리아를 노리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있기에 딸과 그의 사이를 막아 선 채로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아리아는 아빠 말을 잘 듣는 딸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꾸닥이고 오도도도 달려 나갔다.
지금 노엘경은 한시라도 빨리 시체들의 주인인 아리아를 처리해야했지만, 자신 앞에 서있는 중년 사내가 만만치 않아 보여 쉬이 달려 나가지 못하고 경계했다.
서로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맞았는지, 서로의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엘로이는 검을 뒤로 두고 양손가락을 세워 땅에 박았고, 그대로 잡아 올렸다.
“이런!”
지면에 쩌적 하고 금이 길게 생기면서 들어 올려진, 땅의 표면이 하늘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노엘경을 덮쳤다.
온몸의 근육들이 팽창하면서 힘줄과 굵은 핏줄들이 전신에 두드러지게 드러난 노엘경은 발차기로 구멍을 내서 그 사이로 뛰어 들었지만, 쉬지 않고 날아오는 통에 갈수록 거리가 멀어져갔다.
엘로이는 차례로 거리를 벌려가며 수시로 아리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노엘경은 이대로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을 알기에 조금 더 강압적으로 가려고 더 빠르게 달리면서 파편에 살이 베이고 부딪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좁혀갔다.
엘로이는 아리아까지 신경을 쓰다 순간적으로 그를 놓쳐 아차 했지만 그대로 날아오는 주먹에 뒤로 날아가 넘어졌다.
그 찰나의 틈을 만든 노엘경은 멈추지 않고 아이라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엘로이는 사색이 되어 그를 막기 위해 따라 뛰었지만, 노엘경이 한 발 빨랐다.
“에?”
아리아는 자신에게 쏘아지는 살기에 당황했다.
촤악 살이 갈리는 소음에 자신의 가슴께를 바라보자 검상에 길게 베어 피를 뚝뚝 흐르는 제 몸에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얕았군.”
치명상을 입히지 못해 노엘경은 검은 다시 고쳐 쥐고 아리아의 심장을 겨냥해 찔러 들어갔다.
“아리아!”
마력을 발에 집중해 튀어나간 엘로이는 아리아를 밀치면서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푸욱 깊게 찔러 들어가는 검 날을 손으로 틀어쥐고 피를 토하면서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왜?”
아리아는 갸우뚱 머리를 기울이면서 엘로이에게 질문했다.
엘로이는 그런 아리아의 비어진 질문에 더 부드러운 미소로 웃어보였다.
“커헉~ 딸이.. 다치는 꼴을.. 쿨럭! 지켜만 보는 아빠가 어디 있겠니?”
“아빠? 가족이니까?”
“...그래.”
노엘경은 둘의 모습을 보다가 그의 목숨을 바로 거두지 않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의 주모자중 한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구려.”
엘로이는 그런 노엘경에게 처연한 표정으로 힘겹게 대답했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을 위해, 아비가 못 할 것이 있겠소?”
잘 못 된 길임을 알면서도 지키기 위해 서있는 자, 그 잘 못된 것들에서 지키기 위해 서있는 두 사내의 시선이 엇갈렸다.
하지만 서로가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 쪽은 무너져야 했다.
노엘경은 마치 자신이 악역이 된 기분을 애써 외면하면서 잡은 검에 힘을 주고 그대로 뽑았고, 심장을 관통당한 엘로이의 가슴에서 폭포처럼 피가 튀며 흘리면서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숨이 멎어가는 엘로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리아는 엉금엉금 기어가 그의 얼굴을 쓸었다.
“가족은 이런 거야?”
“...미안..하구나.”
시체들의 군대를 만드는 능력은 대단하지만, 본신이 가지고 있는 무력은 약한 아리아를 바로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노엘경은 죽어가는 사내의 숨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가만히 한 발 뒤로 물러나 기다려 주었다.
엘로이의 숨이 멎자, 온 몸이 바짝 말라 미이라가 되었다.
아리아는 뺨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훔쳐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슬프다는 거구나.”
“미안하구나.”
노엘경은 검을 들어 올리면서 아리아에게 사과를 했고, 아리아는 그런 그를 올려 다 보면서 해맑게 웃었다.
“난 괜찮아.”
이미 예감을 해서인지, 엘로이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아 가만히 기다리는 아리아를 고통스럽지 않도록 한 번에 목을 뎅겅 자른 노엘경은 두 시신을 마주 눕혀주었다.
멸망에서 수많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고, 이번에 거둔 두 목숨은 평생토록 남을 것을 예감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지체할 시간은 없기에 두 시신을 그대로 놓아두고 노엘경은 빠르게 전장 속으로 사라졌다.
퍽
작은 돌맹이에 얻어맞은 소녀는 아무 감정도 없이 돌에 맞아 흐르는 피를 앙상하게 마른 팔로 대충 닦았다.
옷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낡고 허름해 누더기를 대충 몸에 걸친 듯 해 보이는 소녀는 무심했다.
“괴물!”
“네가 있어서 우리 마을이 저주 받은 거야. 썩 꺼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을 향한 원망을 소녀는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저주 받은 마녀라는 그들의 말이 맞는 것인지, 며칠이 지난 오후 자신 빼고 모두 잔인하게 죽어있었다.
산적들이 쳐들어 왔는지, 아니면 마수들에 의해 죽은 것인지 그녀는 모른다.
아니, 관심자체가 없어 생각하지 않았고, 고민도 하지 않았다.
시체들이 있는 곳에 적당히 주저앉아 그들이 흘린, 아직 마르지 않아 찐득한 피를 손으로 만지면서 이리저리 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웅덩이에 물장구치듯 참방참방 가지고 놀았다.
그런 소녀의 근처에 어떤 한 사내가 나타나 자신의 로브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
커다란 그림자와 온기가 남아 따뜻한 로브에 의아해 올려다보자, 그 사내는 조용히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였다.
“왜?”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사내는 마을이 참담하게 무너진 곳에 혼자 있는 소녀를 발견해 동정과 안쓰러움에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눈동자로 질문하는 소녀에 흠칫했지만, 그녀의 옆에 가만히 앉아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되어서란다.”
소녀는 사내의 말에 무언가 곰곰이 고민하는 것 같았다.
“저기 입 찢어진 아저씨가 떠든게 있었어.”
소녀가 한 구의 시체를 가리키면서 사내를 빤뜩 올려다봤다.
“걱정하는 것은 가족이니까 라고.”
사내는 소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그녀의 입에 집중하고 마저 들었다.
“그럼 아저씨는 내 가족이야?”
“그렇구나. 가족일 수도 있지. 가족은 서로 애틋하고 감싸주는 관계거든.”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소녀의 말에 맞춰주었다.
“저 목 없는 아줌마가 그런 식으로 말한 걸 들었어.”
이번에는 다른 시체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아저씨가 내 아빠야?”
“......”
사내는 비어있는 감정이 많은 소녀를 가만히 끌어 안아주면서 등을 쓸었다.
“아빠야. 아빠가 우리 딸 만나러 너무 늦게 왔구나.”
태어나고 처음으로 타인의 품에 안긴 느낌은 생소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지 그를 마주 안았다.
“이게 아빠란 거구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소녀와 모든 것을 잃어 텅빈 사내는 그날 서로의 가족이 되었다.
소녀와 함께 하면서 그녀가 감정이 메마른 것이 아닌, 처음부터 여러 감정이 없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상하게 비틀어진 그녀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그런 소녀를 지탱해주고 싶었고, 지켜주고 싶어 어떤 상황이나 일이 있어도 설령, 자신이 죄를 받는 한이 있어도 그녀의 등을 밀어주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두 부녀에게 손을 내미는 청년이 나타났고, 딸은 좋아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 덕분에 소녀가 부러워하면서 소원했던 많은 펫을 가질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자신은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려는 마음이 강해서인지, 땅이나 벽 상관없이 자신 마음대로 무엇이든 뜯을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