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시체들의 군대를 막기 위한 싸움에 모두가 피폐해져갔다.
비록 시체를 다루는 이도 조금씩 쉬는 것인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악인 상황은 변한 것이 없기에 벅찼다.
이지가 없는 이들이라 목을 쳐도 덤벼들었고, 팔과 다리를 잘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하여도 애벌레처럼 기어서 그들을 물어뜯기까지 했다.
오래된 시체들의 썩어 문드러진 살들이 튀면서 그들을 덮쳐서 심한 악취를 옮겼으며, 뼈밖에 남지 않은 시체의 따닥따닥 이빨이 부딪히고, 움직이는 관절들이 마찰되는 소음에 정신이 비틀려갔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그대들이 무너지면, 그 뒤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마력을 담아 외치는 바이안의 목소리에 기사들은 이가 부서질 듯 앙 다물고 검을 휘둘렀고, 그들의 선봉에 있는 바이안은 시체들을 썰고 부수며 종횡무진했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전장을 보고 있는 케리프는 저들과 함께 싸우지 못하고 지켜만 보는 자신의 입장이 싫어졌다.
전투가 반복될수록 불리함을 알기에 초조해지기까지 하자, 진정하고 냉정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였다.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조금만...”
전장을 향하던 망원경의 방향을 틀어 다른 곳을 틈틈이 확인하던 케리프의 렌즈에 하나의 먼지구름이 잡히자,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
“무멘경.”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옆에 함께 있는 기사를 부르자, 그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호탄을 날렸고, 그 신호탄을 확인한 바이안은 시체들과 섞여있는 병사와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퇴각한다. 물러나라.”
몰려드는 군세에 막는 것은 힘에 부쳐도, 물러나는 것은 빨랐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루루 후퇴하고 있을 때, 어느 정도 물러나자,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모두에게도 엄청난 먼지구름이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끼끼끼”
“우와학학학”
선두에서 갑자기 튀어나가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두노인의 뒤통수를 향해 할아범이 버럭 소리 질렀다.
“아, 뭐하는겨? 멈추란 소리 못 들었냐? 네놈들도 태워주랴?”
“어이. 토라 그냥 놓아둬.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은 놈들이니, 까짓 저승으로 함께 보내버리지 뭐.”
커다란 말통들을 뭉쳐 묶어놓은 것을 도드라지는 힘줄을 보여주면서 어깨에 짊어진 토란트가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게 튀어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동료들을 함께 죽인다는 대사를 신랄하게 꺼냈다.
“껄껄껄. 작전에 바뀔 것도 없다면, 기왕 이렇게 된 것 준비운동이라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자신들의 팀에서도 제일 점잖은 척 구는 자바라가 창을 등에 메고 통들을 끌면서 할아범을 제쳐 달려갔다.
할아범은 이마를 한번 집다가 솔직히 자신도 다르지 않아 절로 웃음이 터졌다.
“아그들아. 한바탕 날뛸 준비는 되었냐? 끌끌끌. 조금 바뀌기는 혔다만, 한번 놀아보자.”
거대한 대검에 주렁주렁 매달린 통들을 들고 달려가자 선봉에 서있던 젊은 모험가들이 그들과 다르지 않게 뛰어갔고, 그 뒤로 짐마차들을 끌고 한복판에 자리잡기위해 말을 몰았다.
후퇴를 하고 있는 이들은 쩌렁이며 웃는 웃음소리와 정말 신이나 보이는 이들의 면면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가던 마음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썩내!! 으악 내코오!!”
코를 부여잡으며 질겁하는 바그다드는 원인들을 멀리 떨어트린다면서 채찍을 휘둘러 한 무리의 시체들을 멀리 날려버렸다.
“목욕을 해야 예쁘지. 끼끼 옛다. 청령수다.”
렌렌은 얇은 팔뚝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말통 하나를 허공에 붕 집어 던지자마자 바그다드의 등짝을 후려갈겼고, 육시럴이란 욕짓거리를 하면서 채찍으로 그 통을 부쉈다.
촤악 흩어지는 액체들이 시체들에게 뿌려지자마자 썩은 내를 덮을 정도로 독한 알콜의 향이 시체들의 목욕제개의 시작을 알렸다.
후퇴를 하던 기사들 중에 천인대장과 백인대장들이 다시 방향을 틀어 돌아가는 바이안의 뒤를 따라 후발대의 할아범들과 합류했다.
자리를 잡고 당당하게 전장에 정차한 마차들에서 말통들을 끄집어내어 마력으로 체력을 높여 던지고 터트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시체들에게 조금씩 밀렸던 전과 다르게, 소극적인 것을 버린 공격에 시체들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종횡무진하면서 펑펑 터트렸다.
“할아버님.”
“끌끌끌. 내가 좀 늦은겨?”
“아닙니다. 좋은 타이밍에 오셨습니다.”
할아범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꾸벅 인사하는 바이안을 기특해하고 있을 때, 렌렌이 불쑥 끼어들었다.
“끼끼끼 네 놈이구나. 우리 손녀딸을 냉큼 채간 놈이.”
“뭐여? 저 놈이여?”
“잘생겼다는 낮짝 좀 보자.”
셋이 하던 작업을 멈추고 바이안에게 달려가는 통에 창으로 홈런을 치고 있는 자바라가 성을 냈다.
“늙탱이들아. 딴 짓 하지마!”
졸지에 담당하는 숫자가 늘어버린 자바라의 히스테리에 다시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하면서 늙더니 성질 버렸다며 욕을 날려준다.
“우와학학.~ 썰어도 움직이면 조각내면 그만이고, 뼈째로 가루를 내면 그만이지.”
시체 한 구를 잡아 우악스럽게 뜯어내면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토란트는 목청 높여 기세를 올렸다.
“끌끌끌. 장례도 치러줄 겸, 쎈 불로 전부 태우면 그만이기도 하지.”
대검으로 시체들을 뒤로 밀은 할아범은 하늘에서 빼곡하게 쏟아져 날아오고 있는 불화살들을 눈으로 마중했다.
알콜과 기름 범벅인 시체들에게 불이 붙자마자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뭉쳐있는 덕분에 그렇지 않은 시체들까지 쉽게 불이 옮겨 붙었다.
“끄아악! 코가 썩는다!”
매캐하게 타면서 퍼지는 냄새에 두 번째 테러를 당한 바그다드의 비명이 애처롭지만 그러려니 단체로 무시했다.
화르륵 타들어가 무너져 내리면서도 걸어오는 시체들의 기괴함에 눈살이 찌푸러지기는 했지만, 모두는 뜨겁지 않은지 여전히 계속 내리는 불의 비와 타고 있는 시체들의 사이사이에 끼어 불이 안 붙은 시체들을 여러 조각으로 토막 내기도하고, 뭉치고 쌓고 태워댔다.
작게 시작된 불길이 산불이 난 것처럼 커져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아리아는 소중한 펫들이 사라지는 모습에 사색이 되어서 검을 틀어쥐고 펫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달려가려고 했다.
“아리아.”
“아빠 말리지 마. 저것들 다 죽여 버릴 거란 말야.”
아리아의 체구가 자신보다 작은 덕분에 한 팔로 꽈악 끌어안고 날뛰지 못하게 막으면서 엘로이는 열심히 그녀를 설득했다.
“아직 펫들은 많잖아. 적당히만 놀고 돌아가자고 약속한 것 잊었어?”
“싫어. 죽일거야 저것들 다 죽일거야.”
“아리아!”
품 안에서 버둥대는 아리아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움찔하면서 놀라 그를 올려다봤다.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 아빠의 목소리에 당황하는 아리아의 온몸은 굵은 핏줄들이 도드라지면서 실핏줄이 터져 피가 세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들이 목적한 바는 충분히 했어. 게다가 너도 한계다. 링크를 끊고 돌아가자. 응? 아빠가 펫들 다시 늘리는 것 더 많이 도와줄게.”
“응..”
의기소침해진 아리아가 시체들과 연결되어 있는 링크를 끊자, 피가 멎고 핏줄들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창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을 때, 미치게 움직이고 있던 시체들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바이안은 그와 동시에 멀리에 떨어져 있는 두 명을 발견했고, 이 시체들의 주인임을 눈치 채자마자 그대로 날아 쏘아져갔다.
“젠장.”
엘로이는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는 바이안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아리아를 품에 더 끌어안고 통행구를 꺼내어 마력을 불어넣었다.
간발의 차로 적의 간부들을 눈앞에서 놓친 바이안은 으득 이를 갈아 붙였지만, 놓친 것은 놓친 것이고, 계속 미련을 가지면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에 서둘러 전장의 뒷정리를 위해 돌아갔다.
첫 전투의 승리에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기뻐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적의 말 같지도 않은 능력의 두려움과, 죽음의 경계에서 벗어난 동료와 이웃들의 시체들과 반복적으로 싸워 얻은 피폐해진 감정들에 벗어날 수는 없어서 분위기는 패배한 전투를 치른 몰골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노린 것이 이것이었구나. 우리가 승리를 하던 하지 않던 상관없이 얻게 되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발버둥을 친다 하더라도, 미래는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말을 하려 한 것인가.”
혼잣말을 잘 하지 않는 케리프가 혼잣말을 하면서 음울한 이들을 둘러보며 첫 전투의 패배를 인정했다.
우울해져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모험가들은 죽음에 익숙하기도 해서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시체들의 거의 대부분이 아무 힘도 없는 지상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시체들을 수습하는 가운데 고향이 북부인 몇몇의 모험가들 중에서 우연찮게 자신들의 가족이나, 아는 얼굴들을 발견하고 오열하는 이들도 적지만 있었다.
해가지고 밤이 깊어가도 모두는 쉬지 않고 한 가운데로 그 많은 시신들을 열심히 모았다.
산처럼 쌓은 시신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모였을 때, 할아범이 거대한 검을 땅에 쿵하고 박아 넣었다.
“끌끌끌. 언제꺼정 죽은 이들을 끌어안고만 있을 것이냐. 인생이 다 끝났다 생각혀면 저기로 기어들어가라. 숨을 쉬고 살아있다면 무기를 들고 네늠들의 속을 부르짖고 꺼내라.”
크지 않은 것 같지만 밤의 고요 속에 할아범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징징하게 울렸다.
“끼끼끼. 짧은 목숨 뒤를 돌아볼 시간이 어디 있겠냐? 앞으로 나가기도 바쁜 것이 인생이다.”
할아범의 뒤를 이어 렌렌이 추가로 외치자, 바그다드가 바톤을 이었다.
“울라믄 울고, 아프면 아프다고 혀. 고것이 살아있다는 것잉께.”
수없이 많은 동료들의 죽음과 함께 해왔던 모험가들이 일제히 발을 쿵쿵 구르기 시작하자, 땅이 진동했다.
“살고자 하는 자, 지키고자 하는 자, 미래를 보는 자, 꿈을 가진 자라면 무너질 세가 어디매냐.”
토란트는 커다랗게 만든 횃불이 있는 곳으로 신호를 보냈고, 대표가 된 한 모험가가 시체들에게 나아갔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오늘 다 토하거라. 그리고 크게 웃자꾸나~”
자바라의 외침이 마지막으로 커다란 함성이 지축을 흔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화륵 하늘을 집어삼킬 불이 타올랐다.
죽은 이들을 기리는 장례식 겸, 빠르게 딛고 일어나기 위한 모험가들만의 왁자지껄한 파티 같은 분위기가 천공의 땅에 살고 있었던 이들에게까지 전염이 되었고, 그들도 속에 있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함께 소리 지르면서 저마다 가지고 있었던 마음들을 쏟아냈다.
“역시 저는 아직 재상으로 있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저들이 품게 된 마음을 어찌 달래 주어야 할지 몰라 했던 케리프는 각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알아서 이겨내 가는 모습에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바이안은 그런 그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모험가들이 서로 어깨를 걸치고 장송곡들을 부르기 시작했고, 처음 듣는 노래를 듣고 있던 이들도 함께 따라 열창했다.
“무왕이라 불리실 만하구나. 말 하나로 어찌하지 못할 이들의 마음을 끌어 올리시니.”
“저희는 아직 지지 않았지요. 뭐, 애초에 질 생각도 없지만요.”
케리프와 바이안,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동갑이면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 거대한 기둥이 되가는 두 사내의 눈빛이 서로에게 말을 했고, 동시에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포기는?”
“배추 묶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세이나에게 배운 말을 인용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렌렌이 불쑥 끼어들어왔다.
“손주사위. 우리 손녀딸 어떻게 잡았는지 어서 불어봐. 끼끼끼. 들어보니까 결혼했다더만.”
예쁜 옷을 입고 결혼하는 세이나의 모습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워 렌렌은 바이안의 어깨를 틀어쥐고 심술을 부렸다.
호위기사들이 말리려다가 제지하는 바이안의 손짓과 존중하는 위인으로 적당하게 거리를 벌려 자리를 비워주었다.
“할머님.”
“엥? 할머님? 에잇 이놈아. 내 어디를 봐서 늙었다고 하는 거야? 누님이라 해!”
세이나의 할머니를 할머님이라 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꿀밤과 정정이었다.
자신이 없었던 9년의 사이에 세이나가 혼자가 아니었고, 그녀를 아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기쁘게 와 닿았다.
그런데도 몽글거리면서 익숙하고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 떠올라 살풋이 미간이 좁혀졌다가 검이 아니라 말발로 한자리 차지한 것 같은 로이에가 겹쳐 떠오르자마자 얻을 필요도 없는 오묘한 깨달음을 얻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