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어떤 무리도, 이상한 움직임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이 사단을 만든 적들에 대한 정보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기에 병력들과 대처를 어찌 할지를 논했다.
오로지 여러 가설들을 내세워 거기에 대한 공방만을 주고받는 상황이었고, 진척은 일어나지 못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금 늦은 아침에 회의장에 나타난 세이나를 본 이들은 서둘러 인사를 하면서 반겼다.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그녀는 오아시스가 되어 줄 것이라는 희망에서 한껏 기대를 보냈다.
“상당히 졸려 보이는데, 이리 나와도 되겠소?”
황제는 졸음이 눈에 가득담긴 세이나의 면면을 보더니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 그의 질문에 괜찮다고 말을 하면서도 결혼식 후에 새벽이 밝아질 때까지 놓아주지 않은 바이안을 슬쩍 노려봤다.
세이나의 흘김에 눈을 슬쩍 피하면서 외면을 하는 바이안의 피부는 보양식을 가득 먹고 푹 잔 사람처럼 반질거리니, 자신이 손해 보는 기분이다.
중요한 자리이니 사적인 것이나 개인적인 감정을 끌고 들어오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막 결혼을 한 신혼이라서인지, 참을성이 많은 바이안의 표정이 시시각각 늘어졌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자, 금방 냉정을 찾고, 회의에 집중해서 퍽 다행이라고 세이나는 생각하면서 남몰래 뻐근한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크게 진전이 없는 회의가 끝나고 잠시간의 시간이 비자, 황제는 연병장으로 바이안을 데리고 나갔다.
검을 들고 자신을 마주보는 바이안을 지긋이 쳐다보던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혼을 하고 이제 막 신혼이라 좋을 때라는 것은 알지만, 망아지처럼 너무 열을 낸 것이 아니냐?”
눈은 사랑스럽게 빛났지만, 나오는 말은 힐책이라 바이안은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세이나의 체력이 너랑 같겠냐는 말이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니, 하루 만에 완전히 반쪽이 되었더구나.”
짓궂고 능글맞게, 마치 네가 한 짓을 나는 알고 있다면서 이죽이는 황제의 표정에 바이안의 얼굴이 저절로 단풍잎처럼 물들었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아들의 당황해하는 표정을 황제는 실컷 놀리면서 즐겼다.
“내가 원하는 손주는 아들 딸 골고루다.”
마지막의 말에 빵하고 폭죽처럼 터진 바이안은 흐물흐물 흘러가는 용암처럼 녹아버렸다.
“허허허허.”
아들을 놀리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도 못했었던 황제는 평생에 최고로 유쾌한 기분에 웃음을 시원하게 연병장에 퍼트렸다.
“싫어. 내가 열심히 모은 펫들이란 말이야.”
아리아는 거세게 반항을 하면서 말꼬랑지처럼 묶은 머리를 붕붕 흔들어댔다.
“네가 그렇게 원했던 스타트를 끊는 거잖아. 언제나 먼저 나서서 날뛰고 싶다고 징징 거린 주제에. 해줘도 지랄이냐?”
제임스는 아리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면서 억지로 진정시켰다.
“이런식은 아니잖아. 버려도 상관없는 벌레들이 널렸는데, 왜 하필 내 펫들인데? 내 펫들을 버릴 패로 쓰고 싶지 않거든?”
쒸익쒸익 거칠게 숨을 뱉어내면서 따지자, 역시나 제임스의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하밀 좀 봐라. 하밀은 오히려 자신이 아니라서 부루퉁하게 삐져 있잖아.”
하밀을 가리키면서 대꾸해주자, 아리아는 하밀 만큼 입이 댓발 튀어나왔다.
“그럼 저 못생긴 꼬맹이보고 하라고 해. 나는 신나게 놀고 싶은 거지, 쿡 찔러보기용으로 사용되기 싫다고.”
하밀은 아리아의 말에 기분이 상해 성을 내려다가 자신에게 넘겨준다는 말에 눈이 말똥말똥 반짝였다.
“후... 아리아. 주인님은 그런 것 때문에 너를 시킨 것이 아니야.”
우루루가 피곤함을 가득 담아 아리아를 말리자, 신랄하게 따지던 아리아는 태세를 바꿔 우루루에게 쪼로록 다가가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 적에게 어떤 감정을 심어 주냐에 따라 전세가 크게 정해지기도 하지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에는 아리아의 능력이 제격입니다.”
페르디난드의 말에 아직도 불만이 가득한 아리아의 귀가 쫑긋한다.
“기선제압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딱히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과 전혀 다른 상황이나 능력을 맞닥뜨렸을 때에 처음 가지는 감정은 공포입니다. 아리아양이 충분히 놀고 오실 수 있다는 말이죠.”
이 곳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페르디난드의 말이기 때문인지, 그제야 아리아의 불만이 쏘옥 들어갔다.
“그런 거였어? 그럼 나 지금 놀러 갈래.”
오늘 당장 하라는 말도 없었는데, 신이 난 아리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고 나가버렸고, 엘로이는 이마를 짚으며 말괄량이 딸을 따라 나갔다.
“페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앞 뒤 안 가리고 노는 것밖에 머리에 없는 아리아답네. 후후”
릴리움은 턱을 괴고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상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머리는 좌우로 흔들린다.
“아리아의 펫들을 보내는 것에는 주인님의 다른 속 뜻이 더 있기는 하지만, 타인의 피나, 공포를 놀이라고 생각하는 녀석에게는 굳이 부가 설명은 필요 없겠지.”
능력을 가진 귀족들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대를 잇는 것이다.
하지만 드물게 조상에서도 없었던 새로운 능력을 깨우치게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사막의 바늘처럼 거의 없었고, 귀족이 아닌 이들에게서 마력이나 능력이 생기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제로드의 심복들인 이들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능력을 겸비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
세이나가 불완전하다고 표현한 현자의 돌을 취하기 전의 제로드는 마력을 사용하는 능력은 그동안 여신에 의해서 특별하게 태어난 귀족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돌 자체에서 뿜어지는 힘의 여파에 주변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특별하게 만들어진 장식이 보호를 하고 있다고도 했지만, 애초에 그런 장식이 붙어 있지 않은 돌을 가지고 고찰하고 지켜본 바, 그 주변에 있던 이들이 드물지만 마력과 능력이 생겨났다.
그 사람이 가장 강하게 품고 있는 욕망, 생각등이 섞여 능력으로 구현되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래 영향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힘의 깊이가 커졌다.
제로드는 자신이 처음 거두었던 우루루의 변화를 흥미롭게 여겨, 자신의 눈에 뜨인 이들 중에서도 절망, 분노, 복수 같은 어두운 감정에 몸을 던진 이들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거두기 시작했다.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맴버들 중에서 아리아의 능력이 가장 기이했다.
“아리아가 저렇게 갑자기 튀어나가기는 했지만, 진즉에 주인님께서 허락해 주신거니, 아리아를 굳이 말리고 따질 필요는 없겠지.”
“그럼, 나도 따라가도 돼?”
몰렌의 말에 하밀이 다시 한 번 자신을 어필해 봤지만, 다들 피곤한 일 추가로 만들지 말라면서 힐책했고, 하밀은 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동료들을 돌아가며 저주했다.
황후는 팔에 붕대를 감고서도 껄껄 웃고 있는 황제의 어깨를 때렸다.
“뭐가 그리 좋다고 웃으십니까? 전쟁을 대비하신다는 분이 이리 다치셔서 어쩌시려고요.”
걱정스럽게 혼내는 황후의 말에도 황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허허허. 나지 않소이까. 이 정도는 금세 낫는 것을 잘 알면서 그리 말을 하시오?”
“폐하도 정말 못 말리십니다.”
황후의 맴매가 싫지 않은지, 때는 이때다 싶어 황후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자식이 장성하여 아비를 뛰어 넘는 다는 것이 이리 기쁠 진데, 오늘은 조금 봐주시구려.”
연병장에서 대련을 시작하자마자 바이안이 가볍게 휘두른 검격에 터진 풍압에 그대로 또옥 하고 팔이 부러져버렸던 장면이 떠오르자 다시금 껄껄 웃었다.
바이안 본인도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눈을 꿈뻑이면서 넋을 놓고 있던 표정이 그리도 재밌더랬다.
“황후.”
“어디 불편하세요?”
아이처럼 신나게 웃어대기만 했던 황제가 갑자기 진지하게 자신을 불러 다시 걱정스레 물었더니, 황제는 입 꼬리를 광대뼈까지 끌어 올렸다.
“다친 팔이 오른 팔이라, 나을 때까지는 식사가 어려울 것 같소만.”
“이이가.”
황제의 의중을 눈치 챈 황후는 그의 톡 튀어나온 이마를 철썩 때려주었다.
황제와의 대련을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졸지에 아버지를 학대한 것 같은 기분을 챙겨온 바이안은 쉬고 있는 그의 업무를 대신해서 도맡았다.
“전하!!”
예의도 없이 회의장에 난입한 기사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관료들은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잔뜩 몸을 굳혔다.
“보고하라.”
“북을 경계하던 13번 병력 측의 전갈입니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이상한 무리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웅성거리는 장내와는 다르게 바이안은 냉정하게 마저 보고를 이어가라 명령했다.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며, 정확한 수를 헤아릴 수는 없으나, 짐작으로 대략 5천은 되며,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괴랄하다합니다.”
“괴랄?”
전달 받는 내용이 이상해 하나의 단어를 집어 의문을 나타냈지만, 딱히 어떻다는 정확한 말은 들을 수 없어서 장내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재상.”
“예. 전하.”
몇 일전에 노쇠한 몸이 힘에 부쳐, 재상 직을 케리프에게 물려주어서 지금은 케리프가 재상이 되었고, 바이안의 옆에 함께 하고 있었다.
“이 보고를 어찌 생각하는가?”
케리프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찬찬히 풀었다.
“우선 사람이 분명하지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경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부분을 한 번 짚어 주고, 이상한 부분을 다시 짚어갔다.
“허나 적군이라고 하기에는 입고 있는 옷가지들이 병사나 군사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 지상인들이 대부분 입고 있는 옷들이 태반이며,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는 옷가지들을 입고 있는 이들이 있으면, 옷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할 정도로 거의 넝마나 다름없는 천 조각을 걸친 이들도 많습니다.”
외향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을 먼저 짚어 내면서 그들이 병사가 아닌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던 이들일 것이라 강조했다.
젊은 재상이 짚어낸 이상함은 그들에게 오히려 의문만을 추가로 주었고, 직접적으로 본 것도 아니면서 멀리서 본 뒤에 보고를 받는 형국이기에 케리프는 자신의 속에서 올라오는 가설을 떠올리면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말도 안 된다 생각이 들지만... 혹, 그들은 이미 죽은 이들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죽은 사람이 어찌 움직일 수 있소?”
“그동안 현명하다 생각했더니, 이리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이였을 줄은 몰랐군.”
저마다 케리프의 어리석은 생각을 반박하며 실망을 금치 않았다.
“재상의 말에 틀린 것은 없어.”
훙하며 돌풍이 자신들을 압박하는 것 같은 기운에 문 쪽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붉게 물들은 안광을 뿜어내며 세이나가 딱딱하게 그들을 훑었다.
“재상이 지상인 출신인 덕분에, 오히려 자네들이 가지고 굳어져 있는 편견과 상식에서 떨어져 바라 볼 수 있었고, 때문에 그 적은 정보로도 정확하게 짚어 내었다고 나는 봐.”
바이안은 세이나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눈을 사용하여 확인하고 돌아왔음을 바로 직감하고 서둘러 세이나에게 다가와 그녀가 괜찮은지 살폈다.
“이제 아무렇지 않다니까, 아직도 이러네.”
“그래도, 만약에 라는 것이 있잖아.”
달달한 바이안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아가면서 자기 자리로 간 세이나는 케리프의 일리 있는 말을 적극적으로 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