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조용한 방안에 자신의 머리를 빗겨주는 히데아를 살짝 올려다보면서 세이나는 알면서도 괜히 물어봤다.
“오늘 날씨 괜찮아?”
“네. 하늘에 구름이 끼지 않아서인지, 밤인데도 무척 밝아요.”
“그렇구나..”
입고 있는 드레스가 어색한지, 만지작거리면서도 오늘 따라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세이나의 모습에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긴장 되세요?”
“응? 응.. 조금.”
오늘은 바이안과 세이나를 제일 많이 아는 이들만 아는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히데아는 얇은 천을 세이나의 머리에 씌우고, 하얀 핀으로 살짝 고정시켜 주면서 조금이라도 긴장을 덜어 주려 상냥한 말투로 칭찬했다.
“그 어느 때보다 예쁘세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괜스레 볼을 긁적였다.
“밤에 하는 데, 이상하지 않을까?”
“왜요? 전 낭만적인 것 같은데요?”
“그런가..”
오늘따라 별 시답지 않은 질문이 툭툭 튀어나오는 세이나는 시간이 다가 올수록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해 곤란했다.
“나 좀 많이 나쁜 것 같아.”
“어떤 게요?”
준비가 거의 마무리가 될 시점에 갑자기 자신을 나쁘다고 하니, 히데아의 머리가 살짝 기울여졌다.
“여러 상황에 다들 바쁘고 나도 이것저것 해줘야 하는데, 게다가 적들이 언제 치고 들어와서 전쟁을 치를지 모르는데도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해서..”
세이나를 일으켜 세운 뒤에 전신거울 쪽으로 이동시킨 히데아는 지금은 그 걱정이 쓸데없다고 거울을 통해서 웃어주었다.
“그러니까, 지금인 거죠. 오늘 말고는 시간이 없잖아요.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라도 이 순간이 중요한 날 인거예요. 행복해질 권리까지 손 놓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죠?”
“가끔 보면, 히데아가 나 보다 한참 산 사람 같아.”
“칭찬으로 들을게요.”
거울로 반사되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치면서 서로 키득키득 웃었다.
히데아 덕분에 어느 정도 긴장이 털어진 세이나는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서 대기 하고 있는 13명의 기사들이 세이나를 호위하면서 통행구를 사용해서 새로 지어졌지만, 그 주인을 맞이하지 못했던 황궁의 한편에 자리 잡은 화궁으로 이동했다.
오래전에 황제와 황후가 세일리아와 세이나를 들이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었고, 둘의 편의와 취향을 고려한 덕분인지, 궁 앞에 만들어진 정원은 황궁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그 곳에 발을 들이고 보자, 왜 바이안이 이 곳으로 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와 자신이 아무 일도 없었으면, 이 곳에서 살았었을 것이었기도 해서인지, 세이나에게 있어서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기사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퍼져서 대기하고, 세이나 혼자 한발 한발 천천히 걸어 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길을 지나, 분수가 있는 중심에 다다르자, 먼저 와있던 바이안이 손을 들어 마주 잡고 안으로 안내했다.
축하를 위해 모인 하객들은 둘만의 결혼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떨어진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 나름대로 결혼식을 축복해주었다.
“둘이 이어지는 것이 기적 같기도 하고, 축하하긴 하지만 난 좀 외롭네.”
론은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혼잣말을 조금 크게 하면서 제 옆에 망원경을 통해서 보고 있는 히데아를 힐끔 쳐다봤다.
“하아...”
이렇게까지 대놓고 티를 내면 무언가 반응이라도 해줘도 좋으련만, 못들은 것인지 눈치가 없는 것인지 히데아는 망원경에 눈을 박아 넣고 떼지를 않는다.
론의 씁쓸함과는 다르게 히데아에게 확실히 자극이 되긴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망원경에서 눈을 붙여 떼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론은 눈치 채지 못했다.
히데아 자체가 작은 칭찬에도 쑥스러워 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애초에 그녀는 홍기가 있어서 조금 붉은 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붉어져도 테가 많이 나지 않았다.
망원경 너머에 있는 세이나와 바이안이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마주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예쁘지만 부럽고, 부럽기에 자신도 바래보지만, 로트론백작님과 자신의 신분이 걸려서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언덕처럼 만들어져 솟아있는 곳에 놓여 진 벤츠에 앉아 있는 황후는 마력이 없이 태어나 망원경을 통해서 바라보던 중에 한줄기 눈물을 조용히 흘렸다.
“소원하던 꿈이 이루어지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황제는 황후가 기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프다고 하는 말에 의아해졌다.
“둘을 위해 만들어진 곳에서 하는 결혼식인데, 보았으면 제일 좋아했을 세일리아가 정작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아픕니다. 두 아이가 성장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꼭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웃던 세일리아가 보고 싶어요.”
황제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줄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가만히 자신의 품으로 끌어 안으면서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이동시켰다.
하늘 위에 떠있기에 볼 수 없었던 반딧불들이 어느새 이사를 하고 둥지를 틀었는지, 근처에 만들어진 연못가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며 바이안과 세이나의 주위를 밝혔고, 서로 마주 웃으며 맹세의 키스를 하는 모습을 눈에 세기고 담았다.
조용히 바라보는 이들 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서있는 케리프는 에바를 등 뒤에서 가만히 끌어안아 주었다.
“잘 됐다.”
케리프만의 특유의 차향이 섞인 체향과 온기를 느끼면서 에바는 그의 품에 가만히 몸을 기댔다.
세이나의 레이스가 달린 장갑을 벗기고 서로 반지를 주고받더니, 바이안이 세이나를 와락 끌어안고 뱅글뱅글 돌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입가에 미소를 그리자, 케리프가 에바에게 속삭였다.
“다음은 저희 차례네요. 세상이 평화롭고 안정이 되었을 때, 그때에 저희들의 식을 올려요.”
“에?”
빤득 고개를 올리자,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오롯이 자신을 담은 케리프의 눈동자에 홧홧하고 붉게 볼이 달아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날에 꺼내겠다고 만들어 놓았던 할아범의 회심의 역작인 술통을 놓고, 서로의 잔에 가득 따라 시원하게 들이켰다.
“끌끌끌끌”
“자네, 보이기는 하는가?”
마력도 없는 사람이라서 자신이 기껏 따로 챙겨왔는데, 망원경을 들고 보지 않아 물어보자, 할아범은 심드렁히 대답했다.
“이래 뵈도 눈깔은 좋아. 충분히 보이는 구만. 끌끌”
남작은 절대로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손녀딸의 결혼식에 지금은 죽어 만나지 못하는 딸의 결혼식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내 평생토록 응어리가 진채로 죽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리 푸는구나.”
딸의 마음도 몰라주고 쫒아내듯이 쫒아내어 혼인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손녀딸의 입장에 기대하지 못했었던 결혼식이라 눈에 절로 습기가 가득 차올랐다.
“끌끌~ 내 뭐랬는가? 젊은 것들이 알아서 한다 하지 않았나?”
“그렇군. 그래. 자네 말이 맞네. 허허”
고인 물이 넘치자, 남작의 볼을 타고 내려왔고, 그 물을 훔칠 생각도 하지 않은 남작은 술잔을 비웠다.
비어진 잔을 채우기 위해 술통이 놓여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손은 허우적 바닥만을 쓸었다.
이상히 여긴 남작과 할아범이 동시에 술통이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술통을 통째로 들고 꿀떡꿀떡 들이키고 있는 알바트론을 목격하자마자 화들짝 놀라 서둘러 통을 뺏었다.
“아이고 이늠아!”
“상당히 독한 놈인데, 그리 마시면 어째?”
술통을 뺏긴 알바트론은 거나하게 트림을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반이나 비어진 통을 든 채로 둘은 시원스레 웃었다.
“끌끌끌.”
“허허허.”
바이안의 무릎 위에 앉아 공중에 붕 뜬 다리를 앞뒤로 흔들던 세이나가 갑자기 석상처럼 몸을 굳히고 눈을 크게 치떴다.
“왜 그래?”
심상치 않은 세이나의 표정에 잔뜩 긴장해 물어보자, 세이나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며 깨달은 부분을 짚어 꺼냈다.
“오빠. 큰일 났다.”
“무슨 일인데?”
행복해서 벙긋벙긋 웃고 있었던 바이안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으면서 세이나를 꽈악 끌어안고 주변을 경계했다.
“읍프~~ 오빠 숨 숨..”
손바닥으로 바이안의 등을 도다닥 때려서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게 된 세이나는 바이안의 코를 팅 때렸다.
“그 쪽 말고. 이쪽의 심각한 거.”
모처럼 자신의 의지로 예쁘게 하고 왔더니, 바이안 덕분에 구겨진 머리를 정리한 후에 살풋 한숨을 포옥 내쉬어 주었다.
“오빠는 황궁, 나는 현궁이잖아.”
살짝 빨개진 코를 살살 쓰다듬던 바이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로 우리 부부잖아.”
“부부... 흐~”
부부라는 단어를 되뇌면서 빙구처럼 웃는 바이안의 코를 한 번 더 때려야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빨리 깨닫게 해줘야지 싶다.
“우리 잠은 어디서자? 결혼하자마자 각방? 아니다. 사는 곳이 달라졌으니까, 별거라고 표현해야하나?”
“...아!”
세이나는 현궁의 주인이니 당연히 현궁에서 자는 것이고, 바이안은 황태자 책봉식만 치르지 않았을 뿐이지, 엄연히 후계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황궁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서로 하는 역할이 많이 달라졌고, 서로 다른 의미로 바빴다.
미간을 좁히면서 부루퉁하게 입술을 삐죽이던 바이안의 얼굴이 오래지 않아서 금세 펴졌다.
“내가 출퇴근 하면 되지.”
바쁜 것도 있었지만, 늘상 현궁에 살던 지라 달라진 환경을 생각지 못했어도 간단히 내린 답에 만족한 바이안은 뿌듯해했다.
“...때릴까?”
“왜?”
세이나는 억울해서 물어오는 바이안의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살살 펴주다가 별게 다 심각했다 싶자, 절로 풋 하고 웃음이 잇새로 새어나왔다.
“사생활은? 내 방은 그렇게까지 방음이 안 된단 말이야. 바부야.”
살짝 애교를 섞어 말하니, 바이안이 좋아라하면서 갸웃했다.
“방음이 왜 필...”
“......”
대현자들은 전부 혼자였기 때문에 애초에 부부에 맞춰진 구조가 아니었다.
세이나는 그것을 콕 집어 꺼냈다가 바이안이 말을 하다 말고 밤인데도 불구하고 달빛에 비쳐진 얼굴이 터질 것처럼 화르륵 불타고 있는 것에, 자신이 한 말의 의미의 깊이를 깨달았는지 덩달아 폭발하기 직전까지 열을 끌어 올렸다.
“아.. 미치겠다.”
세이나의 작은 어깨에 얼굴을 푸욱 묻은 바이안은 그 상태로 새로운 방책을 꺼냈다.
“우리 노숙하자. 구석에다가 텐트 치고 살까?”
본인이 꺼내 놓고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은 아는지, 창피한 만큼 숙인 고개가 올라가지 못했다.
“뭐래? 몰라. 바보바보바보.”
바이안의 뒤통수를 두두두 두드리면서 본인도 고개를 숙여 표정을 숨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요리조리 돌려댔다.
어찌해야할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다가, 바이안이 콧김을 풍풍 뿜으면서 자신이 안아서 매일 출퇴근 시켜주겠다는 결론으로 세이나를 그대로 안아 들고 자신의 궁으로 튀어 날아갔다.
“으갸~~”
훙 하고 날아가 슝 하고 도착해 문을 꼭 걸어 잠근 바이안은 자신의 침대에 세이나를 이사시켰다.
호기롭게 침대에 눕히고 자신도 올라간 것 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침대에 고이 누워 있는 세이나의 모습을 보자니, 심장만 미치게 뛰고 몸이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누워 있는 상태로 위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움직일 줄 모르는 바이안에 눈동자만 좌우로 데구르륵 진자운동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답답함만 가중되고 있자, 간신히 입이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하지?”
“왜..왜?”
“예뻐서 안 움직여.”
버터를 한 사발 드링킹 해주고 리필해서 온몸에 바른 말투에 손가락이 오그라들어서 사라졌다.
“너무 소중해서 안 움직여.”
생크림이 대량으로 추가 된 덕분에 발가락까지 사라져버려, 더는 참지 못한 세이나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시선의 너머에서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손등에 쪽 하는 부드러운 입술의 온도가 느껴진다.
손가락을 살짝 벌린 틈으로 보자, 지척에 다가온 바이안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약지에 끼어진 반지를 낀 손으로 서로 깍지를 끼고 엇갈린다.
그 어떤 때보다도 가까이 느껴지는 체온과 숨결과 함께, 밤이 깊어져 내려가는 온도를 대신하여 서로를 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