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밝아오기 시작한 이른 새벽에 모두가 다시 회의장을 가득 채웠을 때, 그 중심에 커다란 지도와, 추가로 대륙의 전체를 미니어처로 볼 수 있는 특수한 방법의 지도도 함께 놓였다.
“세이나님. 지금 궤도에서 직각으로 떨어 졌을 시에 도달하는 범위는 중부의 평원을 중심으로 셀렌도시에서부터 마들란도시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케리프가 대륙의 여러 곳을 찍어 동그랗게 그리면서 대략적인 추락지점을 짚어냈고, 세이나는 귀족들의 작위와 직업, 능력도가 적힌 종이를 팔락팔락 넘겨가면서 빠르게 읽어가면서 동시에 지도를 확인하여 바로 정리했다.
“대략, 150만제곱키로미터 정도네요. 재상. 현재 공간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통행구는 전부 모았나요?”
“대용량부터 개인까지 최대한 모아놓았습니다.”
펜을 들고 휘갈기듯이 적어낸 서류를 그에게 넘겼고, 재상은 그 서류를 확인하자마자 무척 난감해졌다.
“대현자님. 마력을 운용할 수 있는 모든 귀족들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대륙과, 천공의 땅에 있는 모든 이들을 대피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가능하게 하세요.”
“하오나...”
전부를 완벽하게 대피시키려 하더라도, 무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보이는 세이나의 명령을 차마 납득하지 못한 재상은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의 속내를 알아들은 세이나는 시간에 대한 설명을 넣어 주었다.
“이틀 뒤에 본격적으로 추락하는 이 땅을 제가 어떻게 해서든 속도를 늦출 겁니다. 그렇게 했을 시에 벌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일주일과 이틀을 합한 시간이라면 충분하죠.”
세이나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케리프가 반박해왔다.
“그렇지만, 문제는 대륙에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 모두 안전한 장소까지 대피를 시키려 해도, 이곳과의 발전방식이 달라, 즉각적으로 통신할 수 있는 수단도, 이동할 수 있는 수단도 강구할 방도가 어려울 뿐더러, 통행구를 사용할 수 있는 인원들을 나누어서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상인이었던 케리프의 지적은 타당했고, 모여 있는 이들은 지상인들이 희생 될 것을 염려하여 침울해졌다.
“끌끌끌~~ 일주일이여? 충분혀.”
이곳과 어울리지 않을 인물의 등장에 의아함을 느낀 모두와는 다르게 세이나는 자신이 그를 불렀다는 것을 보여주듯 본론을 할아범에게 바로 던졌다.
“응. 준비할 시간을 빼고 오늘 바로 움직인다면, 정확하게 팔일하고 반나절의 시간이야.”
할아범은 세이나의 눈동자 전체가 붉어졌다가 돌아왔다가 하는 그녀를 걱정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려 뒷짐을 지고 태연하게 웃었다.
“어르신. 방법이 정말 있습니까?”
케리프의 질문에 할아범은 이웃으로 산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은 그를 황당해했다.
“내 직업이 뭔지 잊은겨?”
할아범의 전 직업이 모험가라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지상인들의 대피에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천하의 케리프라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할아범은 그러다가,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멋쩍게 웃었다.
“끌끌끌~ 정보나 소식의 전달과 행동력은 모험가가 제일이지. 내가 은퇴한지 상당히 오래 되기는 혔지만, 내 말이면 상황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일단 움직이고 보는 녀석들이 태반이여.”
할아범의 호언장담이 허풍이 아닐 것이라 쉽게 짐작한 황제는 납득한 것처럼 끄덕였다.
“할아범. 대륙 쪽을 부탁할게.”
“그랴~”
세이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맡기라고 한 할아범은 자신을 따라올 인원들이 정해질 때까지 한쪽에서 기다렸다.
“대피할 장소를 어디로 둬야 적당할 것 같소? 게다가, 이 높이에서 낙하했을 시에는 짚었던 범위보다 더 넓게 피해가 갈 텐데, 정말 이정도로 되겠소?”
황제는 대피해야할 거리를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세이나는 딱 그 정도라 단호하게 질렀다.
“물론, 천공의 땅이 아무 제지 없이 그대로 낙하했을 시에는 가속을 더해서 아마 대륙의 사분지 일이 날아가겠죠. 하지만 제가 억누를 테니, 그 부분은 피해가 거의 없을 겁니다. 단지, 천공의 땅의 백성들의 대피는 혹시라도 잘 못 될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구요.”
만약에라도 자신이 지탱하지 못해서 일어날 것을 염려해 잡은 범위와, 혹, 방해가 들어올 것들까지를 빠르게 계산해서 명령을 하달했고, 그 후부터는 귀족들이 반반 나뉘어서 대륙과 천공의 땅으로 갈라져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난을 본격적으로 도왔다.
거기에 현궁과 황궁의 모든 기사들도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했을 시에는 병력이 비게 되고, 만일 그 틈을 파고들어 적들이 공격해 들어온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들의 무사가 먼저였고, 세이나가 생각하기에는 천공의 땅을 추락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마도 이대로 추락하게 되었을 때의 피해를 즐기던가, 바이안이 보는 데서 자신이 힘을 사용해서 죽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의의를 크게 두고 있을 것이 뻔했다.
이틀이 지나고 천공의 땅에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아직 대피하지 못한 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흔들리는 지진에 바닥에 주저앉아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다.
그때부터 대피에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세이나는 천공의 땅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바이안은 세이나가 힘을 사용하는 것을 그 사이에 말려보려 했지만, 믿으라던 말과,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더는 이렇다 저렇다고 말리지 않고 그녀를 따라왔다.
그저, 세이나의 옆을 가만히 지키는 것만이 할 도리가 없어, 그의 속만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아직 전부 흡수하지 못했는데, 대미지는 어쩔 수 없겠네.’
“스읍~ 후~”
심호흡을 몇 번 반복하면서 숨을 고른 세이나는 그대로 바닥에 양 손을 얹고 현자의 돌을 개방했다.
전신에 퍼지는 붉은 빛이 하얗고 투명해지기 시작하면서 땅으로 침투했고, 넓게 퍼져나갔다.
쿠르릉 우르르릉 거대한 진동과 아래로 내려가는 감각이 아직 남아 땅을 밟고 있는 모두에게 느껴졌지만, 다행히도 그 속도가 느려 공중에 붕 뜨는 일이 없이 순차적으로 대피해갔다.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땅과 땅이 점차적으로 가까워져갔고, 멀리 떨어져 그 것을 지켜보는 이들 중에 멀거니 눈을 뜬 채로 삶의 터전을 고스란히 잃어야하는 수많은 지상인들은 절망감과 공포, 슬픔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무사히 피할 수 있어서의 안도감에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다.
그렇게 그 장면은 모두에게 공포를 심어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 한편으로는 경이롭게도 비쳐지기도 했다.
떨어져 내려오며 거리가 오십미터까지 다다랐을 때, 버티던 세이나의 중심이 흐트러졌고, 바이안은 서둘러 세이나를 안아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었다.
“세나야. 모두 무사히 피신했대. 이제 그만해도 돼.”
걱정이 담겨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게 달래는 바이안의 목소리에 엷게 미소를 지으며 바닥을 짚었던 손을 떼고 그대로 바이안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와 동시에 쑤웅 떨어져 쿠웅하는 커다란 충돌이 일었지만, 바이안이 세이나를 안아 들고 위로 점프하여 하늘위로 충격의 여파를 피한 뒤에 다시 땅으로 착지했다.
“쿨럭~”
“......”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자 바이안은 세이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히~~ 거봐. 나 안 죽었지?”
“...응.”
“에헴! 그 새끼는 모르고, 나만 아는 게 있다고.”
일주일동안 잠도 자지 않고, 내리 힘만 쓴 영향인지, 안색은 파리했지만, 뿌듯하게 나 잘났음을 어필했다.
그리고 이마에 전세를 내고 있던 현자의 돌은 어느새 세이나에게서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파들파들 떠는 손으로 승리의 브이를 그려 보이다가 머리가 무거워 바이안의 어깨에 그대로 기댔다.
“반 오빠. 나 잠깐만 잘게. 이 모습을 보여주면 난리 나겠다.”
“걱정하지 말고 자. 모두 모이면 그때 깨워줄게.”
땀으로 축축이 젖은 세이나의 머리에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댄 바이안은 기절하듯 잠이든 세이나를 안고 현궁으로 날아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지만, 침대에 편히 눕히지 않고 안은 상태 그대로 자신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바이안은 세이나를 안음으로 체온, 맥박, 숨을 느끼고 있기에 행여 라도 눕히고 손을 떼었다가 숨을 쉬지 않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차마 품에서 놓지 못했다.
“어째서냐? 어째서 살아 있는 것이야?”
여태껏 보지 못했던 제로드의 분노에 홀에 모여 있던 모두가 온전히 피해를 입었다.
그의 감정과 함께 표출되는 힘에 여기저기로 튕겨 날아갔고, 건물들까지 쩍쩍 금이 가고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주인님!”
“우루루. 어딜 뛰어 들어? 너는 한방에 가루가 된다고.”
제임스는 제로드에게 달려가려는 우루루의 허리를 감싼 채로 그에게서 더 멀리 떨어졌다.
한참동안 폭주를 하던 제로드가 서서히 제정신을 차리면서 엉망이 된 홀에서 자신의 의자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힘을 사용했으니, 땅이 온전한 것이고, 그렇다면 응당 소멸되었어야 하거늘, 어찌 멀쩡히 살아 있단 말이냐. 어째서.”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자의 돌을 전부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돌을 사용하기 위해 그 시간의 몇 십 배가 들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려고 해도, 눈을 감으면 아직도 떠오르는 장면 때문에 그리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더욱 억울해질 것 같았다.
“어째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을 살았던 그녀는 그리 허무하게 스러진 것이란 말이냐.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주인님.”
제로드가 조금 진정이 되어보이자, 우루루는 제임스에게서 억지로 벗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살포시 제로드를 끌어안아 그의 머리를 제 가슴에 품었다.
간부들 모두는 주인의 분노를 처음 보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저리 약해보이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보이는 것도 무척 놀랐다.
다만, 우루루만이 익숙했다.
“끝까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불편한 세상이로구나. 우루루.”
“예. 주인님.”
끌어 안겨진 덕분에 우루루의 체향이 제로드의 심신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지금 어떤 분위기인지 알아오도록 하거라.”
명령을 받은 우루루는 확인할 인원을 알아서 추려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