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황궁에서의 회의를 끝낸 후의 정오에 머리띠로 이마를 가리고 가볍고 편한 복장을 한 세이나와 바이안이 궁에서 떠나 수도의 도시에 발을 들였다.
간신히 얻게 된 바깥에서의 데이트를 만끽하기 위해 수행 기사들을 모두 물리고 단 둘이 빠져나온 것이었다.
“우와~”
활기찬 도시의 면면을 보면서 감탄을 자아내며 들떠있는 세이나의 손을 잡고 바이안은 보폭을 맞췄다.
“그러다가 손 놓치겠어. 떨어지면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조금 천천히 가자.”
세이나의 손을 슬쩍 당기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닐 것을 염려한 바이안의 제지에 눈을 예쁘게 접으며 베시시 올라간 입모양의 배를 띄워 고운 치열을 보였다.
“신기해?”
“당연하지. 벌써 2년이 다 되가는데 궁외에는 한 번도 밖으로 나가보지 못했잖아. 게다가 이렇게 직접 보니까 확실히 대륙이랑 전혀 다른 문화를 몸으로 느낀 달까? 다 신기해.”
두리번거리는 세이나의 고개가 쉴 줄을 모르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다 세이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한 쪽으로 바이안의 손을 잡아당기며 손가락으로 그 곳을 가리켰다.
“오빠. 저기 가보자. 저거 뭐야? 저거 맛있어?”
초롱거리다 못해 반짝이는 눈동자와 이미 침이 가득 고여 곧이라도 흐를 것 같은 입으로 새로운 간식을 우겨 넣고 싶어 하는 세이나의 재촉과 빠른 질문에 대답도 하기도 전에 끌려가 향긋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두었다.
“아줌마 두 개 주세요.”
처음 보는 과일을 고루 구워낸 것을 봉투에 담아 받아 든 세이나는 근처의 벤치에 앉아 아직도 뜨거운 껍질을 조심히 깠다.
“후~ 후~ 오빠 하나~ 나 하나~ 냠”
두 손에 과일 조각을 들어 입김으로 살짝 식힌 세이나는 바로 바이안의 입과 자신의 입으로 동시에 넣었다.
즐거워하는 세이나를 사랑스럽게 보고 있던 바이안은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으면서 조그마한 입술이 행복에 겨워 오물거리며 움직이는 세이나를 내려다 봤다.
“과일인데 고소해. 달아~”
“대륙 전역의 식재료가 다 있기도 하고, 특히 이 곳은 먹거리가 상당히 발전을 해 와서 맛있는 것이 상당히 많아.”
“오~ 그럼 오늘은 먹방 데이트?”
“먹고 싶은 것이든, 가지고 싶은 것이든 다 사자.”
당연히 나온 김에 뽕을 뽑을 셈으로 나온 데이트이니 바이안의 말에 먹방의 시작을 알리는 과일을 냉큼 다 먹고 탐방에 나섰다.
“세나야 이건 푸티라는 동물인데 생긴 것은 돼지랑 닮았지만, 닭고기 맛이랑 비슷해.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해서 대체적으로 이렇게 간식처럼 꼬치로 파는 경우가 많아.”
“냠~”
“이건 뼈를 발라 작게 자른 고기를 버터와 마늘로 볶아서 페페라는 매운 향신료를 뿌린 거야. 이 페페가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맛이 있어 은근히 입에 붙어.”
“냐암~”
대륙처럼 나무로 대충 만들어진 노점이 아니라 튼튼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진 노점들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바이안의 설명과 덧붙여 입으로 넣어주는 그의 손길에 입만 열심히 움직였다.
“페페 맛있어~”
양볼을 손으로 감싸고 행복함을 한껏 표출했다.
“독특하지?”
“응. 매콤한 것이 톡 쏘는 것 같으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아”
바이안은 자신의 설명과 좋아하는 세이나의 모습에 뭇 뿌듯함이 몰려왔다.
바이안이라고 해도 그도 궁 밖에 있는 음식들이나 생활상들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다.
늘 훈련, 식당, 숙소만을 반복적으로 움직였고, 크게 호기심이나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몇일 전부터 궁 밖으로의 데이트를 준비하기 위해 따로 공부를 했던 것이 톡톡히 한몫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조화롭게 모여 있었고, 잘 닦인 큰 길목의 주변에 도로와 인도의 경계를 두기 위해서인지, 늠름한 자태를 뿜어내는 가로수들로 적당한 그늘을 만들었으며, 치안을 담당하는 경사단들이 제복을 입고 도시의 이곳저곳을 살펴주어서 범죄나 자잘한 도둑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도시에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선 평온한 일상이 가득해 다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신분제가 두터운 곳이니까 실제로 나와서 보면 사람들 간의 차이가 크게 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네.”
한 쪽에서 귀족으로 보이는 중년인과 평민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웃고 떠들고 있는 곳에 시선을 고정해 꺼낸 말에 바이안이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신분적으로 귀족들이 위에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엄연히 하는 역할이 다를 뿐이어서야. 평민들은 귀족들에게 물론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귀족들이 평민들을 함부로 하지는 않아.”
“신분은 그들이 맡는 역할을 나누는 것뿐인 거네.”
“귀족이 하지 못하는 것을 평민들이 제공해 주면, 귀족들은 그들의 편의를 위해 복잡한 일들을 대신 해주고 있어. 물론 마력을 사용하고 안하고로 귀족과 평민들이 나뉘게 된 것이 시초가 되긴 했지.”
이야기가 잘 된 것인지 평민들이 중년의 귀족에게 고개를 한번 숙였다가 손을 맞잡았다.
무언가 거래를 했었는지 그들의 표정은 만족함이 가득했다.
“흐흥~ 사람 사는 곳은 어디를 가도 똑같다고 정신머리를 팔아넘긴 쓰레기도 있겠지용”
“후훗 뭐, 아예 없진 않지. 저 쪽으로 조금만 가면 아디오스라는 거리가 있는데 슬슬 그쪽으로 가볼까?”
“아디오스?”
“예전, 아디오스라는 사람이 만든 장식품이 유명세를 타면서 온갖 장식품이나 예술품, 의상까지 전반적으로 모여서 생긴 거리야. 그러다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고.”
바이안의 안내에 따라가니 또 다른 분위기의 거리가 세이나를 반겼고, 이번에는 눈이 즐거워졌다.
악세사리점부터 시작해서 옷이나 가구점까지 나란히 서있는 건물들이 쇼핑의 중심지이기도 한다는 것을 한껏 뽐냈다.
손에 꼽을 정도로 큰 거리라고 들었지만, 지나가면서 사람구경과 물건들의 구경을 하다 보니 금세 거리의 끝에 다다랐다.
거리와 거리의 경계점에는 여지없이 거대한 동상이 자리 잡고 세이나와 바이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거 아냐?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돼.”
“뭐가?”
동상의 눈을 마주 보면서 미간을 좁히는 세이나를 내려다보며 물어보자 세이나는 손가락으로 문제의 동상을 가리켰다.
“동상을 만드는데, 무조건 꼭 하나만 통일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 건지 의심스럽잖아. 왜 다 저건데? 궁에서도 여기에서도 대륙에서도 거의 다 저거야.”
얇고 부드러운 천으로 가볍게 걸치고, 살짝 들린 손과 아래로 뻗어 자신들을 가리키면서 반쯤 접힌 눈매의 자애로움을 품은 이미지인 라이트리아 여신상을 세이나는 손가락질했다.
그 덕분에 바이안은 세이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 줘야 하는지 처음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으음.. 유일한 신이기도 하고, 세상을 관장하는 존재니까 기리기 위해서지 않을까?”
“기리긴 뭘 기려? 게다가 너무 심하게 미화까지... 으아 오글거려.”
바이안에게 오므린 손가락을 보란 듯이 들어 보였다.
“미화인가? 흐음.. 라이트리아 여신님의 외모가 미의 기준이기도 하니, 아름답게 묘사 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은데...”
당연하게 있어왔던 것이라서 전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바이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임을 들은 세이나는 온 몸을 돌처럼 경직 시키고 복잡한 감상을 얼굴에 스케치했다.
“언제 봤다고 미의 기준이라는 건지 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미의 기준은 바뀌는 법인데, 덕분에 바뀌지도 않았다는 거네.”
그냥 여신상일 뿐인데, 세이나의 격렬한 지적이 이해가 되지 않은 바이안은 그냥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저쪽에 광장이 보인다. 얼른 지나가자.”
바이안의 손을 꼭 잡고 성큼성큼 앞장서는 세이나의 보폭에 맞춰 나란히 걷는 바이안이 모르게 세이나는 슬쩍 뒤를 돌아 여신상을 한 번 더 흘겨봤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오? 오오오!! 오빠 오빠.”
큰 광장이 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뭉쳐있어서 무언가 기웃대보니 줄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심에서 무언가로 놀고 있었고, 한 눈에도 오락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이안은 놀고 싶다는 열망어린 눈빛에 웃고는 있지만 난감한 식은땀에 삐질 거렸다.
그는 놀이 문화를 직접 접해 본적도 없고 놀 줄도 몰라 설명도 애매할뿐더러 행여 같이 하자고 하면 나름 곤란했다.
세이나한테 그것도 몰라?나, 그것도 못해? 라고 들을까봐 서였다.
하지만 호기심에 몸을 맡기고 저리도 좋아하는 세이나의 의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지라 못이기는 척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뒤에 줄을 섰다.
“한 판에 2센트입니다. 혹, 귀족 청년님께서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몰래 마력을 사용하시면 돈만 받고 상품은 안 드립니다.”
세이나와 바이안을 놀리듯 능글거리는 장사꾼의 말에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 크게 웃었고, 세이나도 함께 깔깔 웃었다.
품에서 2센트를 건네주고 게임의 룰을 전달 받은 바이안은 비교적 간단한 룰에 이 게임이라면 하기 쉬워 살짝 안심을 하면서 슬쩍 세이나에게 물었다.
“가지고 싶은 거 있어?”
조금 고민을 하던 세이나는 검을 쥐고 있는 토끼모양의 장식품을 가리켰다.
“나 저거. 오빠는?”
“나?”
“뭐야 오빠만 하려고? 나도 있다가 할 거거든? 내가 가지고 싶은 건 오빠가 따주고 오빠가 가지고 싶은 건 내가 따주면 좋잖아.”
티격대는 커플이 예뻐 보였는지 주변의 시선은 부드러웠다.
바이안은 그 말에 토끼장식품과 세트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치마를 입고 앉은 자세에서 당근을 먹고 있는 다른 모양의 토끼장식품을 가리켰다.
상품의 이름이 적혀있는 과녁을 부드럽고 폭신한 작은 공을 던져서 맞추는 간단한 룰이었지만 과녁들이 이리저리 움직여 대고 있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기사인 바이안에게 동체시력과 정확성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덕분에 가볍게 던진 공은 토끼기사라고 쓰여 있는 과녁을 쉽게 넘어뜨렸다.
“와아~”
“여기 있습니다. 이야~ 제법이시네요.”
구경하는 이들의 감탄성과 상인의 엄지 척을 받으며 받아 든 토끼를 세이나의 품에 안겨주자 세이나도 엄지 척 바이안을 추켜세웠다.
“역시 반 오빠가 젤 멋있다니까.”
“그치?”
“기다려봐 나도 딴다.”
장식품을 살짝 밀어 놓고 2센트를 상인에게 준 뒤에 양 손을 싹싹 비벼대더니 공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휙 하고 던져진 공이 애석하게도 허공을 갈랐고, 힘없이 추락했다.
“부우... 한 판 더.”
조금씩 가벼워지는 주머니와 던져지는 공의 개수가 늘어남에 자신은 됐으니까 그만 하자고 말리는 바이안에게 당당히 외쳤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뽑고자 하는 것을 뽑았을 때의 그 성취감이 중요하다구. 나만 믿어 내 기필코 꼭 뽑고 만다.”
팔을 걷어붙이고는 감 잡았다며 다시 공을 쥐었다.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여유로워 서로 응원했다.
모두의 응원을 듣던 세이나는 뒤로 돌아서 공을 쥔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오!”
“아하하”
“유쾌한 아가씨 잘해요.”
던질 듯 말 듯 거리를 재던 세이나는 이때다 하고 던진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토끼아가씨의 과녁을 살짝 치고 지나가 모두 아까워했을 때, 애매하게 기우뚱 하던 과녁이 간신히 넘어졌다.
“와잣!”
두 손을 불끈 쥐고 외친 소리가 너무 씩씩해 빵 하고 주변을 터트렸고, 상인에게 장식품을 받아 든 세이나는 코를 쓱하고 한번 훔치면서 바이안의 품에 안겨주었다.
“히~ 어떠냐? 나도 했다.”
“응. 잘했어.”
세이나의 머리를 토닥여준 뒤에 예쁜 커플을 응원하는 관중들에게서 벗어나 다른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순전히 운에 맡기는 게임부터 머리를 쓰는 게임까지 두루두루 섭렵해 가다보니, 하늘에 노을이 지면서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둘을 말렸다.
아쉬움을 뒤로 한 둘은 빈손으로 왔다가 한 보따리 챙겨들고 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반 오빠 이거 그냥 장식품 아닌가봐. 움직여.”
장식품의 등 뒤에 달려있는 테잎을 돌리자 양 손이 위아래로 바다다 움직이는 모습에 어린아이처럼 웃었고, 바이안도 덩달아 아이처럼 웃으면서 토끼아가씨의 테잎을 돌렸다.
“이건 완전 세나네.”
토끼 아가씨는 당근을 쥔 손을 부던히 움직여 입으로 가져다 댔다.
“봐봐 먹보.”
“헤~ 오빠 눈에 나는 먹기만 하는 가봐?”
큰 눈이 작아지면서 목소리를 까니, 바이안은 움찔 세이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자, 덩치는 산만해서 사내중의 사내의 분위기를 뿜뿜 풍기는 단단해 보이는 얼굴이 귀엽게 바뀌는 것을 놀리다가 멈추고 세이나는 시원하게 웃었다.
“아하하 미안. 오빠가 너무 귀여워서 놀린 거야.”
이윽고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바이안의 손을 잡아끌고 얼른 돌아가자며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둘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하일이 그런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위들을 대동하지 않고 밖으로 주군을 보내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해서 기척을 숨길 수 있는 하일이 직접 담당해 호위를 자처했었다.
물론 그 덕분에 세이나가 안심하고 밖으로 나 올 수 있었던 것도 있었다.
“하.. 결혼하고 싶다.”
세이나와 바이안이 서로 알콩달콩 달달이 달달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하일은 평소에 들지 않았던 생각을 하면서 휑한 제 품을 서러워했다.
공백의 기사단 자체가 다른 기사단들 보다 이성을 만나기가 더 어렵기도 했고, 하일은 특히나 요즘 중책을 맡게 된 뒤로 더욱 요원해졌다.
“시리다. 내 옆구리.”
궁으로 복귀를 한 뒤에 하지 못했던 업무의 정리를 위해 단장전용 집무실에 들어가는 하일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그를 지나쳐간 기사들의 착각은 아니었다.
늦은 저녁을 마치고 서로의 방으로 들어간 세이나와 바이안은 짐을 정리하면서 토끼장식품을 꺼내 장식장과 화장대의 한편에 올려놓았다.
세이나는 디디딕 테잎을 감고 바다닥 움직이는 토끼를 화장대에 내려놓고, 팔을 걸치고 머리를 기댄 채로 미소를 지었다.
“바쁜 기사님이네.”
괜히 손가락으로 톡하고 토끼의 머리를 건드려본다.
그 시간에 바이안도 장식장에 새로 자리를 만들고 테잎을 감고 앉혔다.
도르륵 풀리는 소리와 함께 열심히 당근을 먹어대는 토끼의 머리를 크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슬슬 쓰다듬으며 세이나와 겹쳐봤다.
“배터지겠다. 적당히 먹어.”
서로 같은 궁 안, 다른 방에서 움직임을 멈춘 토끼를 보며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꺼낸다.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