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이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을 물려 방안에 자신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잠을 자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화장대에 앉아 머리를 빗으며 한 손에 가위를 들고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흰머리를 검은 머리보다 조금 짧게 잘라 검은 머리카락으로 그 흰머리를 덮듯 뭉친 다음 한데 묶어 흰머리를 완벽히 가렸다.

　 “으음~ 처음에는 묶은 채로 자는 것이 상당히 불편했는데, 이젠 좀 익숙해졌네.”

　 얼굴의 방향을 돌려가며 확인이 끝나서야 만족스런 미소가 번진다.

　 혹시나 자신이 잠든 사이에 히데아나 바이안이 들어올 것을 예상한 행동이었고, 지금까지 잘 통했다.

　 “으다다닷~”

　 양팔을 쭈욱 펴고 시원하게 기지개를 피며 하루의 마감에 몸의 피로를 위로해 준 세이나는 방에 딸린 테라스로 나가 시선을 멀리 두었다.

　 “타이밍 한 번 오지구요~ 지리구요~”

　 능글대는 목소리와는 반대로 세이나의 표정은 차갑다 못해 서늘했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세이나는 마치 다른 것을 보기라도 하는지 무언가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세이나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그대로 마주 보고 있는 이는 어느 대륙의 한 귀퉁이에 편히 몸을 기대어 세우고 고개를 들어 고고하게 서 있었다.

　 “아, 저 미친놈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서 이렇게 노골적이야?”

　 짜증스러운 시선을 마주보는 그의 입이 작게 움직였다.

　 “직접 보니 놀랍군.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어.”

　 세이나와 그가 서있는 곳이 엄연히 다른 땅이며, 거리를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그럼에도 세이나와 그는 가까이에서 마주 보는 듯 서로의 얼굴을 보는데 어렵지 않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입모양으로 유추해 혼잣말을 이해한 세이나는 아미를 살포시 찌푸렸다.

　 “내가 할 소리다. 등신아.”

　 세이나와 같이 그녀의 입모양으로 말을 이해한 그의 한쪽 눈썹이 살짝 물결쳤다.

　 “호~ 무슨 자신감인지 건방지구나.”

　 한 손을 다른 팔에 걸치고 걸쳐진 쪽의 손을 턱 쪽으로 세워 손가락으로 그 턱을 문지르며 그 나름의 감상을 꺼내니, 세이나는 이죽 비소를 머금으며 잘 보란 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먹 쥐고 손을 귀 옆으로~ 손등을 보이고 주~먹 확인. 가운데를 세워서 빳빳하게 세~빠닥을 예쁘게~ 뿟!”

　 마치 율동을 넣는 듯 노래의 가사에 맞춰 주먹 쥔 양손을 양쪽 귀의 높이로 올린 뒤에 중지를 바짝 세워 마무리로 혀를 날름 내밀어 메롱을 시전했다.

　 그는 처음에 세이나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다가 날름 혀를 내미는 것으로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번에 우루루가 세이나가 전해달라고 했었다던 그 동작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그냥 넘어갔었는데, 오늘로 그것이 욕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되니 기분이 나쁘면서도 상당히 묘했다.

　 설마 자신에게 이렇게 겁도 없이 도발을 할 줄은 그의 예상에는 들어있지 않았기에 더 했다.

　 “하... 하하하 크하핫~ 어려도 한 없이 어린 것이 이리도 나를 웃기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고개를 재치고 호탕하게 웃던 그는 급 얼굴을 굳히고 날카롭게 세이나를 쏘아보았다.

　 그저 현제 대현자의 세이나가 어찌 되어있는지 잠시 살펴보려 눈을 사용했더니, 바로 감지하자마자 자신을 마주 보는 것에 놀라움도 잠시, 건방지기도 하며 위축되기는커녕, 당당하게 덤비는 세이나가 무척 거슬렸다.

　 세이나에게 보냈던 시야를 차단하고 돌아서 여유롭게 길을 거니는 그의 미간도 눈도 입도 누가 더 불쾌함과 찝찝함을 잘 표현하나 내기를 하듯 비틀려 있었다.

　 “그래, 다르지. 사람이 다르니 그 성격도 행동도 다르겠지. 그녀와는 한없이 다르구나.”

　 홀로 인적이 없는 산길을 거닐며 생각에 잠겨 독백을 하는 그의 상념을 방해하려는지, 다섯의 산적들이 등장했지만, 그 산적들을 확인도 하지 않고 손을 한 번 스윽 내젓는 것으로 몸이 동시에 부풀더니 이내 펑하고 터지며 피와 고깃덩이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잔인한 행동을 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상념에 잠겨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더욱 잔인해 보이고 기괴하며 따로 노는 광경이 이질적이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 마다 피의 웅덩이가 찰박이며 그의 발소리에 장단을 맞췄다.

　 “눈물 많고, 여리기만 하던 그녀와는 다르구나.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라 울기만 했던 그녀와는... 그 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쯧쯧~ 홀로 더한 곳으로 들어오다니, 그녀만큼 어리석은 아이로다.”

　 나무들이 우거져 어두워지는 길목에 붉은 발자국만이 누군가가 지나갔다는 흔적을 남긴 체 해가 기울며 깜깜해지는 밤이 그 자국을 잠시 가린다.

　 갑자기 끊어진 시야에 세이나는 손바닥으로 왼쪽 눈을 살살 비볐다.

　 “끄응..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만 눈은 상당히 피로해지네.”

　 거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눈을 살피는 눈동자 주변이 예전보다 더 붉어 순간적으로 보게 된다면 홍안과의 경계가 없이 전체가 빨갛게 보여 누군가가 보게 된다면 흠칫 몸을 떨지도 몰랐다.

　 조심히 살피면서 본래대로 하얀색을 되찾은 눈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내가 눈치 채지 못할 줄 알고 나를 관찰하려고 했겠지. 덕분에 확신이 섰어.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미친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고 병력을 내보냈다가는 전멸이고, 모두에게 말하기도 그렇고, 말하고 같이 내려갔다가는 내가 뒈지고, 내 상황 설명도 하기엔 좀.. 이르지?”

　 힘없이 침대의 모퉁이에 앉아 머리맡에 놓인 주전자를 들어 올려 물을 따라 입을 축였다.

　 세이나는 중얼거리며 상황을 정리하면서도 바이안이 유독 눈에 밟혔다.

　 아직 말을 할 때가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고, 거짓말을 한 적이 없지만 왜 자신이 바이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지 죄책감이 드는 마음에 세이나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

　 자신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티 없이 좋아해주는 바이안에게 대대로 현자의 돌을 관리하는 대현자인 이들만이 아는 것들을 말하기에도 어렵다.

　 ‘아직은 아니야. 나이기 때문에 비밀을 밝혀도 되지만, 만일 말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이 녀석을 완전히 내 몸에 받아 들였을 때야. 내가 마지막이니까 다 되었을 때, 그때 오빠한테 말 해야지.’

　 침대의 이불을 그러쥐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기사들이 머무는 숙소가 아닌, 세이나가 머무는 방과 크게 멀지 않은 방에 동료들과 교대를 하고 쉬러 들어간 바이안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장식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가디언이라는 독립적인 직책을 얻고 황자로 돌아간 그에게 따로 배정된 개인공간인 그의 방 안에는 세이나의 성장과 함께 했던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바이안은 오렌지색의 천에 곱게 싸인 부적을 품에서 꺼내 엄지로 만지작거리면서 그 부적을 내려다보았다.

　 “세나야. 나는 너의 옆에 이렇게 있는데도 왜 이리 불안할까. 마치 아무것도 모른 채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네가 그때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무서워.”

　 강해지기 위해 훈련은 쉬지 않고 해왔다.

　 그리고 세이나의 옆을 지키면서 행복함을 만끽해가면서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히 지켜보는 바이안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애써 숨기면서 세이나가 좋아할 것들을 챙겨주기도 하고, 가끔 단 둘이서 데이트하기도 하면서 매일을 함께 보내고 있다지만 그녀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불안함이 온몸을 잠식해 어둡게 그를 내리눌렀다.

　 “내가 모를 수가 없잖아.”

　 손을 오므려 엄지와 검지로 부적을 쥐고, 입과 코 사이에 가져다 대면서 눈을 가만히 감았다.

　 세이나의 신체적인 변화가 미세해서 눈치 채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세이나의 몸에 자리 잡은 현자의 돌의 크기가 작아진 것이 분명 착각이 아니었음을 눈치 챘을 때, 여러 가지가 보였다.

　 조금씩 잠이 많아지는 것도 그렇고, 단 둘이 있을 때 머리를 빗겨주든, 만지작거리든 편하게 몸을 맡기던 세이나가 세치를 뽑았다고 갑자기 머리를 못 만지게 하는 것에 미안해했던 것도 잠시,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녀는 너무 완강했다.

　 특히, 그 후에 머리를 한데 묶고 다니는 것에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치렁거려 묶었다고 하기에는 잠을 잘 때도 묶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알면 혼날 수도 있지만, 세이나가 잠이 들었을 때 혹시나 그녀가 악몽을 꾸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몰래 확인하고 돌아갔기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게다가 밤에 히데아 마저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렇고, 잘 먹는 것은 예쁘고 귀엽지만 식사량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하나가 걸리기 시작하니 많은 것이 걸린다.

　 대현자 외에는 정확히 현자의 돌이 어떤 것인지, 실질적으로 어떤 것을 행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황궁에도 현궁에도 자료는 없어, 자신이 너무 간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이상하게 그 불안함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현자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어떻게 해서든 알아야만 이 불안감이 사라질까, 하지만 아무리 세이나와 바이안이 연인과 비슷한 사이라 하더라도 주군과 기사의 사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엄연한 하극상이다.

　 분명히 세이나의 몸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맞지만 정작 세이나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고, 바이안도 평소처럼 세이나를 대했다.

　 한 번 그녀를 크게 잃었었던 일이 충격이 컸었기에, 지금의 행복한 일상에 괜히 불안한 것일 수도 있었다.

　 “너를 노리던 적들을 모두 없앴을 때, 앞으로 치러질 전쟁에서 이기면 이 불안함이 없어질까?”

　 어느새 그의 몸은 장식장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러다 행여 먼지가 쌓일까, 유리 상자에 고이 모셔둔 것들 중 팔뚝 크기만 한 솜 인형을 꺼내 들었다.

　 “뭉뭉아. 너는 어떻게 생각 하냐?”

　 로도스에 있었을 때, 할아범이 세이나가 안고 잤었던 이름이 뭉뭉이인 정체모를 동물의 인형을 바이안에게 주었고, 오래 보관하기 위해 사이즈에 맞게 유리상자에 보관하고 있었다.

　 물론 모종의 거래의 현장을 들켜 뭉뭉이의 본래 주인인 세이나에게 뺏길 뻔 했었지만 한숨을 쉬면서 그래 가져라 가져라면서 준 인형이다.

　 그 인형을 조심히 안아 들고 침대로 다가가 자신이 베고 자는 베개의 옆에 다른 베개를 나란히 놓고 그 인형을 뉘여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음.. 역시 이런 기분에는 세나의 분신이 같이 있으면 좀 낫지. 먼저 자고 있어라 뭉뭉아.”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의 마무리로 세이나가 무사히 잠이 들었는지 확인을 하고, 겸사겸사 잠든 얼굴을 감상하러 자리를 뜨는 바이안은 늘 그렇듯 발걸음이 조금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