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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법사 죽이기
작가 : 나드리
작품등록일 : 2016.8.30

마법사를 죽이러 다니는 마법사 이야기.

 
기적-끝
작성일 : 16-09-13 04:06     조회 : 420     추천 : 3     분량 : 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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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이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라비가 말했다.

 

  “역시 너 맞았구나. 너무 어려 보여서 내가 착각했길 빌었는데.”

 

  누구세요? 이엘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에 선 이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자는 위험하단 것을. 후드에 감춰진 얼굴이 궁금했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두려웠다. 만약 할 수 있다면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뒤에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엘은 온 힘을 다해 문 앞에서 달아나지 않았다.

 

  “저분이 네 누나구나.”

 

  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비가 이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잠깐 시간 좀 내줄래?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고마워.”

 

  라비가 뒤 돌았다. 이엘은 이를 물고 그의 뒤를 따랐다.

 

  ***

 

  이엘과 라비가 도착한 곳은 숲 안의 공터였다. 라비는 멈춰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엘은 라비의 등을 보며 용기를 짜내 말했다.

 

  “절 아세요?”

  “당연하지.”

 

  라비가 후드를 벗었다. 감춰져 있던 긴 흑발이 드러났다. 라비는 돌아섰다. 그리곤 이엘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이엘이 뒷걸음질 쳤지만 라비가 그보다 더 빨랐다. 이엘은 자신이 살해당하리라 생각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다행이다.”

 

  이엘은 자신을 감싸는 포근한 감촉에 당황했다. 라비의 목덜미에서 은은한 체취가 풍겼다. 남자의 것은 아니었다. 이엘은 곁눈질로 라비를 바라봤다. 희고 가는 목선이 보였다. 얼굴은 미처 보지 못했지만 여자인 게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엘의 얼굴이 붉어졌다. 엘라 외의 여자에게 안기는 건 처음이었다. 이엘은 라비를 뿌리치려 했지만 라비는 놓아주지 않았다.

 

  “이거…… 놔주세요.” 이엘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이렇게 있자. 이엘.”

 

  라비의 말에 이엘은 포기했다. 달아나려고 해도 달아나게 두진 않을 것 같았다. 차라리 가만히 비위를 맞춰주는 게 안전할 수도 있었다.

 

  이윽고 라비가 팔을 풀고 일어섰다. 이엘은 그제야 라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초록 눈. 이엘은 처음 보는 색의 눈이었다. 이엘은 멍하니 라비의 눈을 바라봤다. 라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넌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

  “대체 누구세요?” 이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해도 모를 거야. 다만 난 널 해치러 온 게 아니야. 물론 조금만 늦었으면…….”

 

  라비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엘은 원하던 답을 얻진 못했지만 그 뒤에 이어질 말은 알 것만 같았다.

 

  “손님이 올 예정이어서요.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이엘이 말했다.

  “손님? 누구?”

  “제 그림 선생님이신데요. 오늘 제 그림을 보러 와주신댔어요.”

 

  맞아. 넌 그림을 잘 그렸지. 라비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시절에 배운 거였구나. 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해도 될까?”

 

  이엘은 자신을 쫓아오려는 라비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거절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호의를 표하고 있지만 살기는 여전했다.

 

  “좋아요.”

 

  이엘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라비가 후드를 썼다.

 

  ***

 

  라비가 이엘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누나를 깨우고 싶니?”

 

  이엘은 깜짝 놀라 멈춰 섰다. 라비의 목소리가 정수리를 타고 내려왔다.

 

  “포기하는 게 좋아. 그것 때문에 넌 평생 괴로워할 거야.”

  “당신이 뭘 알아요?” 이엘은 자신도 모르게 쏘아붙였다. 그리곤 곧 후회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라비가 말했다.

 

  “맞아. 아직 모르지. 앞으로도 몰랐으면 좋겠어.”

 

  라비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엘은 그녀의 표정에서 슬픔을 느꼈다. 그건 보는 사람도 감정에 젖어들게 하는 종류의 것이어서, 이엘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조심히 따라오세요.” 이엘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

 

  집이 보이자 이엘은 안심했다. 그러나 곧, 자신이 신뢰할 수 없는 위험한 자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는 걸 떠올렸다. 이엘은 바지춤 위에 손을 올렸다. 여차하면 쓰는 거야…….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 순간, 라비가 말했다.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엘의 손이 움찔했다.

 

  “그걸 쓰지 않았기 때문에 널 살려 둔 거야.”

 

  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잔꾀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집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엘의 심장은 더 무겁게 뛰었다. 이엘은 일이 무사히 끝나길 빌며 걸었다. 그때, 라비가 이엘의 어깨를 붙잡았다.

 

  “들려?” 라비가 말했다.

  “뭐가요?”

  “이 소리 말이야.”

 

  이엘은 박동하는 심장을 달래려 애쓰며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라비의 말이 맞았다.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였고 규칙적으로 반복했다.

 

  “네 집에서 들려오고 있어.” 라비의 말에 이엘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부딪치는 소리, 규칙적인 반복, 거친 숨소리……. 이엘은 그 소리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그곳에 없는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엘라의 목소리.

 

  “누나!”

 

  이엘은 미친 듯이 달렸다. 힘들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저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의 다리를 움직였다.

 

  문 앞에 도착한 이엘은 한 마디를 떠올렸다. 제발. 그리곤 문을 열었다. 이엘의 눈에 침대가 보였다. 침대 위엔 엘라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엘라 위엔 뷔크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엘이 칼을 꺼냈다. 손질되지 않은 무딘 날이 이엘의 허벅지를 벴다. 그는 아프지 않았다.

 

  이엘은 뷔크에게 다가갔다. 뷔크는 이엘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주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신의 미래도 짐작치 못했다.

 

  ***

 

 

  라비는 뒤늦게 이엘을 쫓았다. 그녀는 자책했다.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거지? 라비는 그제야 떠올렸다. 누나에 대해 말하곤 하던 이엘의 얼굴을. 누나를 구하기 위해 마법사가 됐다던 그의 목소리를.

 

  그녀가 무심히 여긴 이엘의 과거가 결말을 향해 박차를 가했다. 라비는 달렸다. 아직 늦지 않았어. 이엘, 그만둬. 이엘.

 

  “이엘!”

 

  라비가 외쳤다. 이엘이 뷔크의 등에 칼을 꽂아 넣은 직후였다. 이엘은 멈추지 않았다. 뷔크가 엘라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엘도 뷔크에게 되갚았다.

 

  뷔크가 피를 토했다. 검붉은 피가 엘라의 얼굴을 적셨다. 뷔크가 고개를 돌려 이엘을 바라봤다.

 

  “무슨…….”

 

  이엘이 뒷걸음질 쳤다.

 

  “선생님. 왜, 왜 그랬어요.” 이엘이 이를 부딪치며 말했다.

  “너…… 알고 있잖아…….” 뷔크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내가…… 네 누……누나 좋아했던 거…….”

  “몰랐어요! 몰랐다고요!” 이엘이 칼을 내던지며 절규했다.

  “거짓말 하지……마.” 뷔크가 기침했다. 핏덩어리가 바닥에 쏟아졌다. 그는 자신이 쏟은 피 속에 고꾸라졌다. 뷔크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가설 수 있었어……. 손이 닿았다고…….”

  “선생님…….”

  “좆같은 새끼…….” 뷔크가 이엘을 향해 기었다. 이엘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 줄…… 알고 있었어…….”

  “누나를 건들지만 않았어도!”

  “너한텐…… 과분한 사람이야…….” 뷔크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 마법사의 칼이 닿았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이엘은 뷔크를 말리지 못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인한 충격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뷔크는 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위화감을 느낀 이엘이 뷔크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뷔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엘을 향한 눈동자가 피에 젖어 있었다. 비치는 것은 없었다. 이엘은 뷔크를 흔들었다. 팔꿈치에 기대어 있던 뷔크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엘은 깨달았다. 그가 뷔크를 죽였음을.

 

  이엘은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섰다. 그는 엘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주워 그녀를 덮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몸 안, 깊은 곳에서 힘이 느껴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힘. 그것은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날카로우면서도 둔탁했다. 뷔크의 죽음이 선물한 힘이었다.

 

  이엘은 손을 뻗었다. 팔을 타고 흐르는 힘이 느껴졌다. 힘은 팔에서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손끝으로 옮겨갔다. 이엘의 손이 엘라의 이마로 향했다. 그의 손가락은 다섯 줄기의 빛이 돼 있었다. 빛이 엘라를 만나려는 순간이었다.

  이엘의 가슴이 붉게 물들었다. 이엘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라비가 있었다.

 

  “왜……?” 이엘은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쓰러진 이엘의 등 또한 피에 젖어 있었다.

  “미안해 이엘. 미안해.”

 

  라비가 울며 사과했다. 그리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의 손엔 마법사의 칼이 들려 있었다.

 

  이엘은 새들이 달아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호통 치던 뷔크를 떠올렸다. 뷔크. 용뿔 사슴을 보여 준 뷔크. 그림을 가르쳐 준 뷔크. 이엘은 자신이 그린 그림에 시선을 돌렸다. 누나.

  이엘은 남은 힘을 다해 침대에 몸을 걸쳤다. 그의 검지가 흐릿하게 빛났다. 이엘의 검지가 엘라의 이마에 닿았다.

  빛이 사라졌다.

 

  ***

 

  갑작스런 지진에 말락은 휘청거렸다. 숲에서 뛰쳐나온 새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말락은 시내를 향해 달아나며 생각했다. 소장이 믿어줄까? 내가 목격한 걸.

 

  ***

 

  라비는 날아올랐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회의와 자책이 라비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라비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마법사의 칼을 바라봤다, 첫 수확이야. 해야만 하는 일이었어. 하지만…… 막을 수 있는 일이었지. 라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엘은 살 수 있었어. 내가 망설이지만 않았다면. 라비는 눈물을 닦았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 할 순 없어. 라비는 먼 곳을 바라봤다. 유령도시. 그곳에 그녀가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

 

  용뿔 사슴은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숲을 내달렸다. 사슴의 깨진 이마 사이로 하얀 뼈가 드러나 있었다.

  이윽고 사슴은 자신이 돌아와야 할 곳에 도착했다. 사슴은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엔 여자아이가 누워있었고 그 곁에 몸을 반쯤 걸친 남자아이가 있었다. 사슴이 코끝으로 남자아이를 건드렸다. 아이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사슴은 고개를 하늘로 뻗고 길게 울었다.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사슴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엘라는 눈을 떴다.

 

 

 기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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