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큰 방안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바이안과 세이나와 론, 그리고 하일을 포함한 열두 명의 기사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설마해서 묻는 건데, 귀찮아서 황제폐하께 그 돌은년의 처분을 넘긴 거죠?”
론의 물음에 세이나는 그를 흘겨봤다.
“아무리 내가 귀차니즘이 좀 있어도 그렇지, 날 뭘로 보는 거야? 다 생각이 있어서 한 행동이지.”
“에이~”
못 믿겠다며 오히려 반대로 자신을 흘겨보는 론을 살포시 째려봐줬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곳에 막 올라와 잘 모르는 나보다는 폐하가 처벌하시기에 제일 잘 하실 거라는 생각도 있고, 그냥 막 사형이라던가 해버리면 오히려 너무 쉽게 끝나잖아. 뿌린 데로 거두게 해줘야지.”
자신은 생각이 참으로 깊은 주인이라는 것을 어필하려 팔짱을 끼고 근엄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폐하도 그동안 쌓이신 것이 많으실 테고, 내가 아는 폐하라면 아마 쉽게는 안 끝내실 거야. 두고두고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괴롭히실걸? 황제폐하께 처분을 넘기는 것이 내가 가장 크게 내린 처분이야”
론은 양팔을 교차해 잡고 몸을 부르르 떠는 척했다.
“으~ 주군이 적이었으면 상당히 무서울 거야.”
혼잣말을 하며 알아서 납득하던 론은 조용히 옆에 있는 화병을 집어 들며 자신에게 던지려는 모션을 취하는 세이나를 보자마자 입을 가리며 히죽거렸다.
“그런데 카시어스... 아, 입에 안 붙네.”
“그냥 평소대로 론이라고 부르셔도 되는데?”
“론도 가서 치료 받아야 하지 않아?”
론의 대답과 동시에 바로 론으로 정리한 세이나는 순수하게 그를 걱정했다.
확실히 론의 모습은 상당히 너덜 했다. 여기저기 보이는 크고 작은 자상들도 있었고, 피와 먼지들로 엉망이었다.
“여기서 쉬면되죠. 지금 바이안도 저모양인데 누구를 믿고 주군을 맡깁니까?”
바이안과 론이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지금은 충분이 이해하고 있는 세이나는 그런 그의 행동이 무척 고마웠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잖아. 하일들도 있고, 둘이 믿는 동료들이면 나도 믿고 맡길 수 있어. 게다가 적들도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진 않을 거야 한동안 조용할걸?”
세이나와 론의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대화에 하일의 몸이 경직 됐다.
“적...입니까?”
매우 심각해하는 하일의 반응에 론은 그의 어깨를 한번 치고 세이나의 옆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응 맞아. 예전에 한번 죽을 뻔했었어. 대대적으로 대현자를 찾는 움직임을 보였던 때가 9년 전쯤 되지 않아? 현자의 돌이 크게 반응했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자신의 이마에 붙어있는 현자의 돌을 톡톡 두드렸다.
“...네. 맞습니다.”
“그거 그때 나 살린다고 돌이 힘 쓴 거야.”
“......”
예상한 대로 기사들은 매우 심각해졌다.
“아, 그래도 여기 있는 너희들만 알아. 너희들은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입을 연 것이니까. 어디에서도 발설 하지마. 혼란만 가중 될 뿐이야.”
“내부에 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다른 기사의 질문에 세이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다고 생각해. 아직은 그 정체도 단서의 꼬리도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나를 지킬 믿을 수 있는 기사들이 필요하기도 한 거야. 뭔가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세이나가 말을 마무리하자마자 기사들은 동시에 세이나에게 허리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약을 들고 들어오는 시종에게서 약을 받아 들었다.
시종이 나가자마자 손가락으로 톡하고 약을 찍어 바로 입으로 가져가자 론이 놀라며 말렸다.
“독도 들어있다며, 입에 대도 되는 겁니까?”
“말을 놓으려면 놓던가, 높이려면 높이던가 어째 반반 섞여있다? 그리고 뭐, 이정도로는 죽지도 않아. 잠깐 혀에 감각이 둔해지는 정도? 음.. 괜찮네.”
약을 들고 바이안의 침대로 가 앉은 세이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약을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입에 가득 물고 잠들어 있는 바이안의 입을 연 세이나는 그대로 입에서 입으로 약을 넘겼고, 자연스럽게 그 약은 바이안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우와~ 이 사실을 나중에 알면 통곡하겠네.”
바이안이 깨어났을 때 골려줄 생각을 하는 론과는 다르게 세이나의 행동을 본 다른 기사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하일이 눈치를 보며 모두의 대표로 조심히 론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 주군이랑 바이안은 무슨 관계인거냐?”
“왜?”
조심히 속삭인다 싶더니 뜬금없는 질문에 얼척을 잃었다.
“아니.. 그 돌은년 때문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처음에 내거다라고 외치셨던 것도 있고, 좀...”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바짝 다가왔고, 론은 그들을 보며 짓궂은 표정을 했다.
“크크크 알고 싶냐?”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골리듯 하자 배알이 살짝 뒤틀린다.
“저 놈은 진짜로 주군 거야.”
모두는 눈을 크게 뜨며 꿈벅꿈벅 깜박이기만 했다.
“딱 봐도 모르겠냐? 주군이시기 전에 우리들한테는 재.수.씨. 같은? 정확하게는 어렸을 때 약혼했었다던데?”
화들짝 놀라며 뻥긋거리고 있는 그들을 지켜보던 세이나는 조용히 화분을 쓰다듬으며 진짜로 던져 말어? 라며 진지하게 갈등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단절하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단장 좀 불러줄래?”
세이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기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 중 한명이 서둘러 나갔다.
“주군.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응?”
갑자기 하일의 물음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가디언이라는 직책자체가 없사온데, 그것은 무슨..”
뭐 중요한 것이라도 물어보는 줄 알았다가 어려운 질문도 아니기에 바로 대답해 주었다.
“아 그거? 당연히 없었겠지. 내가 새로 만들었으니까. 가디언과 기사. 비슷한 의미 다른 느낌? 뭐, 그런 거야.”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귀찮다를 내 보이니 그는 더는 물어보지 않기로 했지만 론은 달랐다.
자신이 받은 직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찌 움직이랴 싶어 세이나에게 답을 물었다.
“또 저 귀차니즘 나온다. 적당히는 설명 좀 해줘요. 어느 정도는 알아야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지.”
론의 태클이 나름 타당했기에 세이나는 좀 전의 약을 대량으로 입에 머금어서 혀의 감각이 애매해 발음에 신경을 쓰다가 자연히 물을 입안에 털어 넣고 부그부그 가글을 하고 옆의 빈 통에 뱉어 낸 뒤에 설명해줬다.
“쉽게 말하면, 기사보다 조금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돼. 기사가 가지고 있는 틀 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위치. 그러니까 론과 반이 나한테 평소에 했던 대로 하면 돼는 거야.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아도 된다고. 명령은 나한테만 들으면 된다는 거지.”
간결하지만 쉽게 파악 할 수 있는 답에 론은 납득했다.
즉,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자유롭게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 둘에게 주어진 것이다.
틀의 구속에서 벗어난 호위기사, 한 마디로 다이렉트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큰 자리다.
“휘유~ 그럼 단장님 보다 내가 더 높다는 거네. 오~ 나 출세했는데?”
론은 양 손을 깍지를 낀 채로 뒷머리에 걸치고 벽에 기댔다.
“알기 쉽게 예를 들면, 연인미만 친구이상? 그런 거지 뭐.”
침대에 대충 걸터앉아 있었던 세이나는 크고 폭신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단장이 올 때까지 나 좀 쉴게.”
현자의 돌의 여파로 아직 두통이 남아있었고, 홀에서 당당하게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많은 살기를 온 몸으로 받아 쭈뼛하게 서있었던 정신이 피로로 몰려온 세이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일이 그런 세이나에게 담요를 들고 와 조심히 덮어 주었다.
보통은 시종이나 담당 시녀들이 하는 일이지만 세이나가 하일팀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접근금지를 명했기 때문에 세이나의 편의는 하일팀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기사단 집무실에 기사단장을 필두로 각 사단의 대장겪인 기사들이 무거운 모습으로 도열해 있다.
“모두 준비는 되었느냐?”
단장의 말에 대답이 아닌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신한 기사들은 앞서 걸어 나가는 단장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들의 목적지는 세이나와 바이안이 쉬고 있는 방이다.
“주군.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방문 앞에 도착해 자신의 도착을 알리자 안에 있던 론이 세이나를 조심히 흔들어 깨웠다.
“세이나...”
작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임으로 안에 있던 기사가 방문을 열어주었고, 단장과 그 외 기사들이 세이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아직 하나의 문제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표정은 다 하나같이 사형대에 오른 사람 같았다.
“응. 제대로 인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겠네. 아직 내 이름도 모르지?”
“인사가 늦었습니다.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알바트론 리암이라고 합니다.”
단장을 시작으로 한명씩 순서대로 자신의 이름과 직책을 말했다.
“난 하이론 세이아나야. 성으로 부르든 이름으로 부르든 그건 알아서 하고, 여기 현궁의 재무나, 인사고등 궁의 중요 일들을 그동안 누가 하고 있었어?”
돌은년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한 그 질문에 역시나 싶은 대답이 들렸다.
“제가 맡고 있었습니다.”
단장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래? 그럼 나중에 자료와 서류들을 전부 이 방으로 가져와줘.”
“알겠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이들 중에 단장만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세이나는 인사이동에 관해 말을 꺼냈다.
“그리고 먼저, 하일팀인 10사단을 내 직속 호위 기사들로 둘 테니, 그 외의 다른 부분의 자리 배치는 알아서 해주길 바래.”
세이나의 발언에 그 누구도 편애라고 불만을 재기 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인사이동이고, 대우였다.
하일팀들은 그녀를 지켰고, 자신들은 검을 겨누는 어리석은 짓을 했으니, 누구를 신뢰하랴, 덕분에 듣고 있던 하일팀들의 자부심이 커지며 어깨가 한껏 펴졌다.
필요한 말은 다 했음에도 그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왜 저러나 싶다가 금방 눈치 채고 귀찮음을 한 숨으로 표했다.
“설마 처분이라든가 그런 것 때문에 그러고 있는 거야?”
그 말이 맞다는 듯 더 고개를 숙인다.
“내가 좀 전에 홀에서 말했잖아. 모두 속을 수밖에는 없었을 거라고. 그 주인이 한심해도 열심히 지키려 했을 뿐이잖아? 여기서 내가 모두를 처벌한다고 해서 나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
말의 뜻을 알아챈 기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세이나를 보았다.
“각자가 맡은 일, 열심히 해줘. 그게 나를 위한 일이야.”
“명을 받들겠습니다.”
모두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충의를 다하자 다짐했다.
벌을 내려도 되었을 일을 이해하고 넘어가주는 세이나의 모습에 어찌 대현자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돌은년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큰 존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