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허공을 바라보며 떠들고 있던 세이나는 손을 흔들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바이안을 보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세나~~”

　 “반 오빠~”

　 한참을 달린 듯 숨을 몰아쉬며 바이안은 그대로 세이나의 옆에 털썩하고 앉았다.

　 “후아~”

　 숨을 고르며 조금 진정이 되자 바이안은 이내 실실실 쪼갰다.

　 “후후후 세나 듣고 놀라지마아~”

　 “뭘?”

　 갑자기 히죽히죽 웃다가 진지해졌다가 하자 이 오빠가 왜 이러나 싶었다.

　 “드디어! 나 마력 쓸 수 있게 됐어. 게다가 아바마마랑 똑 같은 능력이야.”

　 “진짜?”

　 “에헴!!”

　 양손을 허리에 얹고 초롱거리는 세이나에게 콧대를 높였다.

　 “그럼 오빠 강해?”

　 “그러엄~ 내가 제일 강해.”

　 “정말로? 진짜?”

　 얼굴을 바짝 가까이 다가오며 다시 묻자 바이안은 작게 식은땀을 흘리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으..응. 아바마마 다음으로?”

　 어색하게 대답하던 바이안은 갑자기 자신을 와락 껴안고 좋아하는 세이나 덕분에 기분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 뻔 했다.

　 “와아~~”

　 “앞으로 세나는 내가 꼭 지켜줄게.”

　 작은 마을의 중앙에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피의 웅덩이가 마을 전체를 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웅덩이의 한 가운데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는 세이나가 온몸에 피범벅이 되어 자신을 내려 보는 어느 사내를 망연하게 쳐다보았다.

　 “예상보다 상당히 어리군. 아니, 많이 어려. 8년 전에 반응이 온 것을 본다면 대략 태어났을 때부터인가... 호~ 이런 것은 또 처음이야. 매우 흥미로워.”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빛을 내는 어떤 물건을 가만히 보던 사내는 다시 세이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내 일에 아주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미리 그 싹을 자르려 함이니..”

　 감정이 일체 들어가지도 않은 표정과 건조한 말투로 세이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아. 그렇군. 재미있는 것이 생각이 났어.”

　 또 혼자서 중얼거리며 조그마한 작은 빈병을 꺼낸 사내는 이내 세이나의 팔에 작은 상처를 냈다.

　 상처가 나면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세이나는 아프다고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사내에 대한 공포가 한없이 컸기에 아픈 줄도 몰랐다.

　 사내는 작은 병에 세이나의 피를 담았고,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욕심이 많고 멍청한 녀석에게 이것을 던져주면 웃기겠지. 그런 녀석을 주인이라 모실 테고, 그러다가 주인이 아니었다고 깨달아 혼란해하는 모습을 상상해도 참 가관이겠어. 그렇지 않니?”

　 건조한 웃음을 지으며 세이나에게 되물었지만 애초에 대답을 들으려 한 것이 아니기에 사내는 세이나를 향해 팔을 뻗어 손바닥을 피던 그 때, 둘에게 다급하게 달려오는 한명의 여인이 있었다.

　 세일리아는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세이나와 사내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바로 세일리아에게 마력을 쏘았고, 세일리아는 순식간에 거대한 풍선처럼 몸이 부풀다가 온몸이 폭발하듯 터지며 언제 그녀의 육신이 있었냐는 듯 사방으로 비산해버렸다.

　 “아......아...어..엄....”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잔인하게 터져버린 그녀의 모습에 세이나는 완전히 하얗게 질려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서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세이나에게 피의비가 덮쳐 눈앞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 피는 육신을 잃고 터져 비처럼 떨어진 세일리아의 피였고, 아직 온기가 남은 듯 따뜻했다.

　 “흠~ 그래. 마침 그것도 한번 시험해볼 좋은 기회기도 하군.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야. 한 순간에 끝나 있을 테니까.”

　 그리고는 등을 돌려 그대로 마을을 벗어났고, 세이나는 여전히 움직일 줄 모르는 비어버린 인형이 되었다.

　 사내가 사라진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을 때, 새하얀 섬광이 세이나의 세상을 덮쳐왔다.

　 “반 오빠....”

　 빛이 덮쳐 오기 직전 단 하나의 이름만이 세이나의 마지막 생각의 끝이 되어버렸다.

　 “하악!!”

　 과거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세이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온몸을 떨며 눈에서는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역시 힘들면...]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니 됐어. 선대.”

　 그 그림자의 정체를 파악한 세이나의 말에 그림자의 숫자가 순식간에 늘어나며 세이나를 중심으로 빙 둘러섰다.

　 [우리는 그들의 생전의 기억의 조각들]

　 [후대를 위한 길잡이가 우리들의 역할]

　 [오백년 동안 많은 아이들을 잃어버렸어]

　 [이제는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우리들은]

　 [순리의 금기를 깨고, 너의 영혼을 이곳에 태어나게 했어. 그리고 너에게 개입했어]

　 [너는 특별한 아이]

　 자신을 가운데에 두고 빙 둘러싼 그림자들은 동시에 두 손을 세이나를 향하게 위쪽으로 들었다.

　 그러자 붉은 물방울 모양의 현자의 돌이 세이나의 눈앞에 내려왔다.

　 그리고 곧 현자의 돌을 감싸고 있어야 했던 장식의 조각들도 주변에 모여들었다.

　 “아. 그거 필요 없어”

　 [..응?]

　 “그 장식들 말이야. 방해야”

　 세이나의 지적에 그림자들은 고개를 동시에 갸웃했다.

　 [하지만 이 장식이 있어야해]

　 [없으면 안 돼]

　 [이 돌의 힘을 억제하는 역할이야.]

　 모두가 설명을 덧붙였지만 오히려 세이나는 단호했다.

　 “아 그건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거 됐다고. 내가 누구인지는 나를 데려온 선대들이 잘 알잖아.”

　 [......]

　 그리곤 곰곰이 생각해봤다.

　 “으음... 어디가 좋으려나.. 역시 알기 쉽게 이쪽?”

　 그림자들에게 씨익 웃어 보이며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림자들이 화들짝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위험해]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혹여...]

　 “그만! 그러니까 잘 알고 있다고 했잖아. 군소리 말아.”

　 한명의 그림자가 작게 고개를 절래절래 젓다가 알았다며 끄덕였다.

　 그리고 곧 바로 돌이 은은한 빛을 내며 그대로 세이나의 이마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선대들과 이야기 하는 것도 오늘로 끝나나?”

　 [금기를 깬 우리들은]

　 [하지만 영혼은 아니기에]

　 [소멸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다시 무로 돌아갈 뿐]

　 덤덤히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 괜히 속이 썼다.

　 기억을 잃기 전에는 소중한 이야기 친구였기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아! 맞다. 그쪽 선대.”

　 [응?]

　 “선대는 약학의 천재였지?”

　 [나의 본 영혼은 맞아.]

　 세이나는 시간이 얼마 없음에 서둘러 중요한 것을 물었다.

　 “저거 해독약 있어?”

　 [있어. 인세에는 아주 오래전에 소실되어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아.]

　 그리고 그 선대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들으며 달달달 외운 후 세이나는 그들과 헤어졌다.

　 현실로 돌아가는 그 순간 한명의 그림자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부디, 그 선택만은 하지 않기를... 스...]

　 점차 희미해져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세이나의 정신은 그 곳에서 홀의 상단에 서있는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자,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서서히 엷어지며 사라졌다.

　 세이나에겐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현실에서 지난 시간은 찰나였다.

　 홀린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한번 스윽 훑어보자 한명씩 무릎을 꿇더니 모두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늘의 눈과 귀이신 대현자님을 뵙습니다.”

　 한명을 시작으로 저마다 복창하기 시작했다.

　 “대현자님을 뵙습니다.”

　 “주군을 뵙습니다.”

　 세이나는 그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단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다녀왔어. 반 오빠”

　 예전의 어렸을 때처럼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을 향하는 그녀의 미소에 바이안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세나....”

　 그녀의 기억이 돌아왔음을 직감했다.

　 순수하게 자신을 알아보는 세이나의 티 없는 말에 안심이 되어서였을까, 긴장을 하며 정신력을 박박 긁어서 버티고 서있었던 바이안은 그대로 허물어져 내렸다.

　 “오빠!”

　 후다닥 달려 내려가 넘어지는 바이안을 간신히 안았지만 그의 무게를 못 버티고 콰당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커헉 학 크읏.....”

　 자신의 품에서 고통으로 일그러져 괴로워하며 온몸을 비트는 바이안의 얼굴을 만져보고, 이마에 손을 대보던 세이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읏...”

　 그러다가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대며 찡그리자 옆에 있던 론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응.. 머리가 조금 아파서 그래. 후~”

　 작게 심호흡을 하며 바로 다시 론을 불렀다.

　 “지금 당장 펜과 종이, 아니, 적을 수 있는 것이면 아무거나 상관없어. 구할 수 있어?”

　 하지만 이 곳 홀 안에서 적을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에 론은 서둘러 나가서 구하려 몸을 틀자마자 황제의 기사들에 의해서 한쪽 구석에 피신해있었던 황후가 비집고 후다닥 달려왔다.

　 “내가 가지고 있어요.”

　 그러고는 황후는 자신의 드레스자락을 과감하게 찢고 품에 소중히 가지고 있었던 펜과 함께 세이나에게 건네주었다.

　 세이나는 황후에게 작게 목례를 한 뒤에 바로 드레스조각에 꼼꼼히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