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신나게 뒹굴며 논 뒤, 서로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바이안과 세이나는 집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호기심 가득 안고 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남성과 여성이 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바이안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굳은 듯이 서있었다.
“오빠?”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바이안을 의아해 하며 잡은 손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그를 부르자 바이안은 애써 웃어 보였다.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한 듯싶습니다. 폐하. 그리고 황후마마”
“그리 말하지 말아. 네 덕분에 우리 아들이 무사한 거잖니.”
황후는 환하게 웃으며 세이나의 어머니인 세일리아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셋은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바이안은 무거운 걸음으로 그들의 앞에 걸어갔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자마자 황후는 바이안을 꼬옥 안아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니? 이 어미는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단다.”
“죄송해요. 어마마마”
모두가 둘의 모습을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황제가 엄한 표정으로 바이안을 내려다보았다.
“짐을 싸거라. 바로 황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번 일은 그 후에 이야기 할 것이야.”
“...아바마마....”
하지만 바이안은 쉽게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화가 난 듯 보이는 황제에게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잡고 있는 손으로 느껴지자 세이나는 바이안의 손을 힘을 줘 더욱 꼬옥 잡아 주었고, 그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아바마마.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아느냐?”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하는 아들의 행동에 황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돌아간다. 채비를 하거라.”
“싫어요. 저는 여기가 좋아요. 이 곳에 있을래요.”
“아가? 왜 그러니?”
황후는 갑자기 고집을 부리는 바이안을 의아해 하며 살살 달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유도 없이 어리광만 부리는 것이냐? 너는 황자이다. 그런 것이 통할 입장이 아니야.”
화가 난 듯한 황제에게 바이안은 다시금 움찔 몸을 떨었지만, 자신의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있는 세이나를 힐끔 본 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황제에게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싫어요. 세이나랑 떨어지기 싫어요.”
황제는 생전 처음으로 고집을 부리는 바이안에게 살짝 놀라고 있을 때 황후는 세이나와 바이안을 번갈아 보며 무언가 눈치를 챈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흥미로워했다.
“어머나~ 세상에~”
“바이안!”
다시 한 번 강하게 바이안의 이름을 부르던 황제는 갑자기 자신의 팔을 잡으며 말리는 황후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폐하, 괜찮지 않을까요?”
“황후? 그게 무슨...”
오랜만에 보는 신나하는 황후의 태도에 황제는 오히려 더 영문을 알 길이 없다.
“바이안도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저희 아이가 어리광도, 고집 부리는 것도 처음 봅니다. 조금만 더 있게 해주십사 제가 부탁드릴게요.”
황후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바이안은 혹시나 하며 조금 기대감이 상승했다.
“허나, 황후.”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해해 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황족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륙으로 내려 와 마음대로 하기에는 그의 입장과 역할이 있기에 편애를 할 수 없는 것이 황제의 상황이다.
하지만 황후가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나중이라도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는 권리이기에 조금이라도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자유를 잠깐이라도 아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고, 세이나의 엄마와 모종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였다. 세이나의 엄마인 세일리아가 조심스럽게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례함을 알면서도 폐하께 감히 한 말씀 거들어도 되겠사옵니까?”
그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황제는 조심히 세일리아에게 그러하라 했다.
“황자전하는 아직 한참 어린아이입니다. 이 것도 무척 우연스러운 상황이오나, 저 역시 한 아이의 어미인지라 황후마마의 심중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다 생각하옵니다. 많은 시간을 달라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적은 시간이더라도 이 곳에서의 시간을 조금만 더 늘려 주실 수는 없는지요.”
고개를 조아리며 읍조리는 세일리아의 말에 황제는 홀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황후는 때는 이때다 싶은지 그녀의 말에 덧붙였다.
“폐하. 황자로서의 교육은 세일리아에게 맡기심은 어떠신지요. 예전부터 많은 귀족의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선생님이었지 않사옵니까. 부족함은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오히려 잘 되었지요. 그러니까 제발요. 폐하.”
황후의 간절한 마음에 황제는 끄응 거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후~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할 수 없지 않소이까. 황자 바이안.”
“예 아바마마”
자신을 부르는 황제의 말에 잔뜩 경직되었다.
“1년이다. 특별의례로 허락은 하지만 이곳에서의 공부는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 것이야. 그것이 조건이다. 그 후에는 어떤 말이라 하더라도 들어줄 수는 없느니라.”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바이안은 너무 좋아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의 세이나를 들어 안고 그대로 뱅글뱅글 돌았다.
“저 열심히 할게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너무나도 신나하는 자신의 아들의 모습이 몹시 귀여우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의 밝은 모습이 씁쓸하게 와 닿던 황제는 등을 돌리고 자신의 기사들에게 그대로 돌아간다고 명령을 내렸다.
황후는 그런 그의 커다란 품에 안겨들며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내가 잘 한 것인지 잘 모르겠소. 다른 귀족들이 뭐라 할지...”
“괜찮을 것입니다. 그래도 일 년 후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내려오게 해주시면 저는 너무 좋겠는데요?”
“으음? 무슨 의미이오?”
“호호호 아직은 비밀이옵니다. 폐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황제와 황후는 서로 속닥거리며 자신의 아들인 바이안을 그대로 놓아 둔 채, 천공의 땅으로 돌아갔다.
어김없이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에 작지만 한 침대에 나란히 앉아 세일리아를 똥그란 눈으로 말똥히 바라보는 둘의 모습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아이들의 의무는 뭐다?”
“잘 먹고 논다!!”
기운찬 세이나의 외침의 바로 뒤에 바이안이 이어서 큰소리로 대답했다.
“잘 놀고, 잘 잔다~!”
둘의 대답이 정답이라는 듯이 매우 흐뭇한 미소를 둘에게 건네주며 세일리아는 둘을 눕히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줬다.
“잘했어요~ 그럼 이제 잠자리에 들까요?”
““네에~~~~””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둘은 목까지 덮인 이불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 누워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기대하면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작게 마력을 이용하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별님도 달님도 반짝, 귀뚤귀뚤 찌르르 노래를 부르네~.....”
그녀만의 자장가의 노랫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자, 바이안도 세이나도 서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세일리아는 어느새 서로 끌어안고 곤히 잠이 든 둘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며 잠이 들면서 살짝 벌려진 이불을 다시 목까지 덮어주었다.
둘이 서로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모습도 마냥 예쁘다.
“잘 자요. 예쁜 아가들~”
1년이란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가끔씩 내려오던 황후와 바이안은 정말 오랜만에 카카리아에 내려와, 황후와 세이나의 어머니인 세일리아는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래도 언니, 너무 급한 것이 아닌지... 난 너무 걱정인데...”
“어머! 뭐래니?”
주변에 보는 사람들이 없어서 황후를 예전처럼 편하게 부르는 세일리아에게 황후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나무랐다.
“아이들이 좋으면 좋은 것이 아니니?”
황후는 무슨 소리를 하냐며 둘이 이야기 하던 핵심을 강조했다.
“페하도 찬성한 이야기야. 얘~”
하지만 세일리아는 그저 자신의 입장을 배려해 주기 위해서거니 하며 넘어가려했다.
“나도 그렇지만, 폐하도 지금은 세이나를 이미 며느리로 결정했는걸~”
“하지만...”
둘의 대화가 한참일 즈음에 세이나는 바이안을 데리고 주방으로 옮기고 있을 타이밍이었다.
“오빠?”
하지만 바이안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오히려 세이나에게 쉬잇 하라며 주방에 앉아 있는 둘의 대화에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세이나가 내 며늘아가면 너무 좋겠어.”
“내 딸이?”
“물론이지~ 얘~ 너도 잘 알지 않니? 폐하도 나에게 프로포즈 하셨을 때 말이야~”
황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이랑 그 말의 연결점을 이해할 수가 없던 그녀는 오히려 더더욱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나를 떠나서 세이나는 지상인이야. 언니.”
“뭐래니!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댔어.”
너무도 당당히, 그리고 확고한 황후의 대답에 세일리아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가 싶은 마음만 커졌다.
“나는 말이지, 우리 아들이 좋아한다면야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싶은걸~ 약혼이 뭐, 별거니? 서로 좋으면 하는 거지. 게다가 네 딸이야 얘~~”
“그래도 난...”
너무나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그녀의 모습에 황후는 그 걱정이 쓸데없다 표현했다.
“둘이 서로 좋다며 한번 붙으면 죽어도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는데 무슨~”
“아이들이잖아.”
아이들이라며 고개를 젓는 세일리아를 나무랐다.
“아이들이라서 뭐? 얘가 얘가 정말~ 그러니까 더더욱 약혼해야지 어른이 돼서 둘의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멀어지면 그때 가서 취소하면 그만이야. 어리든 어른이든 한번 사랑이다 싶으면 그 마음 평생 가더라. 예쁘게 응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오늘따라 유독 호들갑스러운 황후였다.
“후~ 아이들이 좋다면야 나도 응원해주지. 그래도 세이나가 나중에 위로 올라가서도 잘 할 수 있을 지도 걱정이야.”
그녀의 걱정 어린 말에 황후는 세일리아의 두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너도 다 포기하고 내려와 살려는 결심을 한 것도 사랑 때문이었잖아. 게다가 지금은 혼자구. 혼자서 아이 키우는 일 힘들잖아. 이걸 계기로 이제 다시 세이나랑 올라와서 살아.”
두 어른의 대화를 엿듣던 바이안의 두 볼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오빠 아파?”
“으 으응?”
붉어진 바이안의 얼굴에 아픈 것인가 싶어 세이나는 까치발을 들고 손으로 바이안의 이마를 짚었다.
“이상하네, 열은 없는데.”
“......”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는 세이나 덕분에 평소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바이안의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세..세이나. 그...저기... 나 좋아?”
“응 좋아.”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바이안의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다.
“헤~ 흐응~ 에헤헤 그렇구나. 그러엄~ 나중에 커서 오빠랑 결혼 하고 싶어?”
손가락으로 코 밑을 한번 쓱 훑으며 크게 용기를 내서 물어보자 세이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할래. 오빠랑 결혼 할래.”
갑자기 큰소리로 당당하게 외치는 세이나 덕분에 둘은 바로 엄마들에게 들켜버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은 황후는 때는 이때다 했다.
“후후후 굳이 약혼식을 해야 약혼한 것이 아니지. 이걸로 약혼 성립이야. 도장 쾅! 쾅! 퉤퉤퉤.”
황후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답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 끝내는 세일리아가 항복해버렸다.
“아하하 언니. 아무리 그래도 퉤퉤퉤가 뭐야~ 세이나한테 그건 또 언제 배웠어?”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아직도 빨간 볼을 감싸고 있는 바이안과 바이안의 손을 잡고 크게 앞뒤로 흔드는 세이나의 천진함이 집안 가득 온기를 퍼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