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가 본 현자의 돌은 붉은 빛을 머금고 있는 작은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여신의 눈물이라고 불렸었다는 그 돌은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붉은 빛은 더 진해졌다.
[위험해..]
“아씨~ 또, 시끄럽다니까.”
세이나가 다가가자 빛을 발하는 돌에 모두는 놀랐고 그런 세이나가 순간적으로 머리를 짚고 비틀거렸다.
[아직은...]
“좋은 말로 할 때 닥쳐라.”
[아지.....응]
만족한 음성이 들리자 세이나는 돌을 바라보며 설득했다.
“때라는 것이 있고 없고가 아니야. 빠르고 늦는 것은 없어. 내 앞은 네가 아니고 내가 선택하고 걸어가는 거야.”
자신에게 강조하듯 강하게 대꾸하며 그대로 현자의 돌을 잡아들었다.
화아아아아아악
붉게 번졌던 빛이 하얗고 강한 빛 무리로 변하며 순식간에 세이나의 주변을 감쌌고, 세이나는 그 순간 온몸이 떠오르는 듯 한 무중력을 경험했다.
그리고 한 번의 눈 깜박임에 그녀의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공간이지만 어둡지 않았다. 짙은 검은색 공간이 오히려 밝은 흰색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흰색 공간이 검은색 공간처럼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과 함께 갑자기 어마어마한 그림들이 한꺼번에 그녀의 머릿속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 것에 따라서 주변의 풍경들도 계속해서 바뀌며 머릿속을 헤집어댔다.
“읏..”
한참을 버거워 하면서 버티자 돌이 품고 있는 기록의 파도는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고, 자신의 옆에 흐릿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내.. 기억?”
그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긍정한다.
“내가 스스로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고 네가.. 내 기억을 숨긴 거였구나.”
[..미안.. 너마저 잃고 싶지 않았어. 넌 너무 어렸고, 그때의 공포와 충격은 어린 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으니까..]
“그래...”
[미안해. 우리가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너를 지키는 것 뿐 이였어.]
세이나는 그 그림자의 머리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사각형 모양으로 떠있는 작은 집이 보이는 풍경으로 걸어 나갔다.
풍경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주변이 순식간에 변한다.
카카리아의 작은 마을, 어디에서 굴렀는지 온몸에 풀과 흙 범벅이 되어있는 5살의 조그마한 세이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작은 숲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 뱀이다아~”
그 옆을 조용히 지나가던 한 마리의 가여운 뱀은 세이나의 조그마한 손에 덥석 잡혔고, 이내 멀미를 해야 했다.
꼬리를 잡고 뱅글뱅글 돌리며 흥얼거리기를 한참, 절벽 밑에서 반짝이는 생물을 발견했다.
세이나는 자연스럽게 뱀을 놓아줬고, 바로 그 반짝이는 생물에게 달려갔다.
무성하게 우거진 나뭇잎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빛이 나는 금발의 조그마한 소년이었다.
여기 저기 다쳤는지, 까지고 피가 나는 소년을 쪼그리고 앉아 유심히 살피다가 두 손 힘껏 옆으로 굴렸다.
데굴하며 엎어져있던 소년의 얼굴이 나타났고, 그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세이나.
“아! 시체다.”
세이나는 그렇게 외치자마자 그 소년에게서 작은 신음소리를 들었고, 곧바로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 좀비다.”
세이나는 가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독특한 아이,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했어도 그녀를 예뻐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틀린 말이다.
세이나는 3살 무렵부터 어디에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와 가끔씩 대화를 하기도 했고, 그 때 이후부터 마치 다른 세상을 모험하는 것처럼 잠을 잘 적엔 단편적인 꿈을 꿨다.
물론 잠에서 깨어나면 거의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가끔 하나씩 남아 평소에 썼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우와~ 좀비다. 예쁜 좀비다~~”
잔뜩 신이 난 채로 이내 그 소년의 발목을 덥석 잡고 질질질 끌어 집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엄마한테 자랑하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엄마! 나 좀비 주워 왔어.”
“응? 좀비가 뭐....어머나! 세상에!!”
세이나의 큰소리에 주방에서 나온 세이나의 엄마는 딸의 손에 한쪽발목이 잡힌 채로 질질 끌려온 소년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아가~ 이게 대체..”
“좀비. 좀비.”
나 잘했지? 라며 반짝이는 세이나의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엄마는 세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소년을 안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뉘였다.
“세이나 엄마 좀 도와주겠니?”
“응? 좀비를 왜 침대에 올려?”
“좀비가 뭐니?”
“움직이는 시체.”
세이나의 대답에 엄마는 작게 웃어준다.
그리고 이내 진지하게 세이나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이 아인 죽은 게 아니에요. 살아있단다. 크게 다쳐서 힘들어 하고 있잖니. 그러니까 엄마 도와 줄 거지요?”
엄마의 부탁에 고개가 떨어질 것처럼 크게 끄덕였다.
“응”
“깨끗한 천이랑 물 좀 챙겨다 주렴.”
“응”
다시 한 번 끄게 끄덕이며 그대로 방에서 뛰어나가는 세이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다가 힘들어 보이는 소년의 주변에 서둘러 이것저것 치료할 수 있는 약들을 챙겨놓았다.
그리고 소년의 상처를 돌보기 위해서 옷을 벗기려 했을 때에 그녀는 멈칫했다.
자신은 너무 익숙해서 인지하지 못했지만 소년의 옷은 이 곳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옷이다.
귀족의 소년이 대륙에서도 이런 오지에 어째서 다친 채로 기절해 있는지 상당히 의문이 들었지만, 우선은 치료하고 보자며 소년의 옷을 벗겼고, 다시 한 번 움직이던 손을 멈춰야 했다.
소년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새겨진 고대문자.
그 문자는 엘라이어 바이안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어떻게...”
“엄마~”
낑낑 거리면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세이나가 무거운 물그릇을 온 힘을 다해서 들고 왔다.
세이나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서둘러 소년의 몸을 닦아주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은 후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줌으로 치료가 일단락되었다.
그 옆에서 세이나는 신기한 표정으로 잠이 들어있는 소년, 바이안의 볼을 찔러봤다.
“아가~ 엄마가 잠깐 볼일이 있네? 엄마가 없는 동안에 옆에서 잘 돌봐 줘야한다.”
“응 나 잘 돌봐 줄 거야.”
조그마한 주먹을 쥐어 보이는 세이나는 엄마가 나가자마자 다시 바이안의 볼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기도 하면서 옆에 한참을 지키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나.. 졸려...”
“으음...”
정신이 들자 밀려오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몸을 살짝 뒤척이던 바이안은 왼편에서 무언가 따뜻하고 무거운 물체가 자신의 팔을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 물체를 확인했다.
“!@#$%^”
젖살이 가득한 오동통한 양 볼에 삐죽 튀어나온 조그마한 입술, 그리고 상당히 긴 속눈썹이 자신의 얼굴과 가깝게 붙어 있었다.
당황해서 서둘러 벌떡 일어나자마자 다시금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흐아아아~”
오히려 그 통증에 정신을 쉽게 차리게 된 바이안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왼팔을 감고 잠이든 조그마한 소녀는 여전히 깨어날 기색도 없이 팔에 매달려서 자고 있다.
“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당황스런 일인지라 그 소녀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소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그러지 않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암니야..”
꿈속에서 맛있는 것이라도 먹고 있는지 입가를 계속 오물거리는 소녀를 누워서 관찰했다.
어머니 외에 처음 느껴보는 사람의 온기와 숨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질인다.
이윽고 잠이 들어있는 소녀의 볼을 아프지 않게 살짝 꼬집어봤다.
“탱탱해..부드럽다.”
소녀를 뚫어지게 보던 바이안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쁘다..”
그리고 이내 그 소녀의 규칙적인 숨소리에 맞춰 스르륵 잠들었다.
자신의 키만 한 포대자루를 품에 안은 채로 무언가를 계속 집어 먹던 세이나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세이나~”
“오빠 여기!”
바이안은 세이나의 외침에 바로 들리는 방향으로 달려갔고 창고 안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세이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배를 잡고 폭소했다.
“푸하하하 세이나 너 얼굴이 왜 그래?”
고개를 갸우뚱 하며 왜 웃는지 모르겠어하자 바이안은 세이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히~”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본 세이나의 입가의 주변부터 얼굴의 반이 남청색 물이 잔뜩 물들어있었다.
거기다가 이를 보이며 씨익 웃는 치아도 파랗다 못해 보랏빛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하하~ 도대체 뭘 먹고 있는데 얼굴이 그렇게 돼?”
“이거? 나도 몰라. 집에 있었어. 오빠도 먹어봐 맛있어.”
세이나는 새끼 손톱만한 크기의 과일을 한 움큼 집어 바이안에게 내밀었다.
“아~”
내밀어도 반응이 별로 없는 바이안이 못마땅한지 아 해보라고 지시하자 바이안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어렵게 아했다.
철퍽 소리와 함께 입에 들어간 과일의 양은 적었고 남은 과일들은 그대로 바이안의 입 주변에 직격했다.
“으픕~”
세이나가 일부러 친 장난에 바이안의 얼굴도 세이나 못지않게 지저분해지자, 세이나도 깔깔깔 웃어댔다.
“아하하 오빠도 이제 나랑 똑같다.”
“너~”
둘은 그렇게 서로 먹여주는 척하면서 얼굴과 옷에 잔뜩 묻히고 놀다가 무섭게 등장한 엄마에게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번쩍 든 채로 잔소리 폭풍을 들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