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나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바짝 뜨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론이 갇혀있다는 감옥 쪽으로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론을 만나 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지만, 간신히 찾아간 감옥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그 곳을 노려봤다가 서성였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아주 거기에 눌러 사는 사람인 듯, 좀처럼 갈 생각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등을 돌려야 했다.
분명 가까이 갔다가는 들킬 위험도 있고, 자신은 힘도 없으니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서도 그 기사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고, 다시 돌아가야만 한 세이나는 침대에서 온몸을 비틀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비개를 머리에 푹 누른 뒤에 이불로 머리끝까지 덮어 방음을 완료한 세이나는 아주 작게 중얼댔다.
“하아~ 론을 만나봐야 뭘 알든지, 계획을 잡든지 할 텐데, 그 새끼 뭐하는 놈 인거야. 그 시간밖에 시간이 안 나는데... 어쩌란 거냐고..”
론의 행방은 쉽게 알았지만 만날 길이 요원해 계속 잠을 설쳐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그 기사 놈에게 괜히 원망을 섞어 욕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바이안에 대해서는 다들 쉬쉬 하는 입장이라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이유는 몇 가지로 대충 예측하는 것 밖에 없어 답답했다.
“의식의 날까지 하루 남았나? 그럼 플랜 C로 갈 수밖에 없겠네.”
밤이 안 된다면 낮으로 시선을 돌린 세이나는 이번에야 말로 라며 히데아에게 미안하지만 몰래 빠져나와 다시 감옥 쪽으로 향했다.
“..없다. 오~ 진짜로 아무도 경계를 안 하네.”
이때다 싶어 앞치마와 치마를 살짝 들고 샤샤샥 들어가려던 찰나에 뒤에서 묵직한 중저음이 들려왔다.
“이런 곳에 시녀가 왜 있는 것이냐?”
세이나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숨겼다.
“이 곳에 들어 온지 얼마 안 되어 헤매고 있었습니다.”
하일이 보기에는 분명히 감옥으로 내려갈 듯해 보였는데 헤매고 있었다는 시녀의 말이 미심쩍었다.
그렇다고 아무 힘이 없는 시녀가 굳이 감옥에 무슨 볼일이 있을까? 분명 쓸데없는 호기심일 것이 뻔해서인지 불쾌함을 잔뜩 드러내며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왼쪽으로 꺾어서 나가다 보면 아는 길이 나올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거라.”
“예.”
숙인 고개를 이제는 허리까지 숙이며 그대로 쇼쇽하고 빠져나가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서 히데아가 등장해 그대로 감자의 산으로 끌려갔다.
시녀를 쫒아낸 하일은 두 번 다시 찾아오는 일을 없다고 말한 것도 있고, 차마 론의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 시간이 날 때마다 매일 그 감옥 근처에서 서성였다.
하지만 하일 자신도 이대로만 있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자신들의 팀이 남아있었고,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동료들을 이제는 자신이 앞서서 지탱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스쳐 지나간 시녀가 생각이 났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보기 드문 검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던 그 시녀가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눈에 밟혔다.
요즘 자신이 예민해져 있어서 작은 것에도 신경을 쓰이는 것이라며 생각을 정리하면서,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을 돌리려했다.
“그래도, 분위기가 남달랐지.”
시녀에 대한 것의 정리를 마친 하일은 마지막으로 감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일이다.”
단 한마디가 끝이다.
플로아가 정식으로 그 자리의 주인이 되는 날을 지칭한 말이었고, 하일은 이제는 진심으로 론을 찾아 올 생각을 이 자리에서 접었다.
아직은 조금 이른 새벽, 침대위의 이불을 정리한 곳에 시녀복을 접어 올려놓고 처음 입고 왔었던 옷으로 갈아입은 세이나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을 걸어갔다.
“내 능력이 미숙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보니 상당히 번거롭네. 기사들도 지천에 널려있고, 괜히 잘 못해서 들키면 곤란하고.. 에휴 기어이 오늘이 와 버리냐..”
그러다 문득 자신의 양 손을 내려다 봤다.
생전 일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손은 겨우 3일 만에 퉁퉁 불어있었고, 몸은 몸살이 난 듯 쑤셔왔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든 히데아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늘이 의식의 날이라서 그런지 경비들이 한 쪽으로 쏠려 있는 덕분에 쉽게 이동이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서 조심하며 가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의식의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은 조금 편하게 감옥에 도착 할 수 있었고, 그 기사도 보이지 않아 편하게 감옥 안으로 걸어 내려갔다.
의식의 날인 당일이라 현궁의 모든 사람들이 더더욱 바쁘게 돌아다닐 때, 플로아의 방에서 플로아는 보이질 않고, 침대에 앉아 있는 바이안만이 있었다.
현재 바이안은 멍하니 자신의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풀밭에 앉아서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쫒아,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뛰어오고 있는 작은 꼬마여자아이가 자신을 향해서 손을 흔든다.
그 모습에 자신도 화답을 하려 손을 뻗었다.
“아...아....”
그리고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바이안을 주변에 있던 두 명의 기사들이 서둘러 받아내었다.
“야이 새끼야 갑자기 왜 이래.”
바이안을 다시 침대에 앉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그의 안색을 살피는 기사들은 바이안의 옛 동료이자 팀이었다.
플로아의 명령에 바이안의 수발을 할 사람을 뽑을 때 다른 기사들은 차마 나서지를 못했고, 오히려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하기로 자처했다.
그리고 정해진 두 명은 정말 지극정성으로 바이안을 돌보았다.
“너 뭘 보고 있는 거냐? 저기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직도 손을 휘적거리며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한 바이안에게 물었지만 바이안은 여전히 앞만 바라봤다.
“야.. 웃는다.”
“나도 웃는 건 처음 보네. 이런 식으로 볼 줄은 몰랐지만..”
열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바이안에게 둘도 같이 마주 웃었다.
하지만 둘의 미소는 행복한 미소는 아니다.
“차라리 이게 녀석에게는 낳은 걸지도 모르겠다.”
“......”
“혼자 늘 무엇인가를 짊어 진 듯이 무겁게 웃지도 않았잖아. 사람과의 관계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고, 우리들이야 함께 동고동락한 세월이 기니까, 그 정도였지..”
동료의 말이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님을 잘 아는 기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돌이킬 수도 없고, 이렇게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차라리 녀석에게는 행복할 수도 있겠다. 웃기만 해준다면야...”
둘이 상심이 가득한 복잡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방심한 순간 다시 바이안이 침대에 떨어졌다.
“으아아~”
서둘러 바닥에서 바이안을 안아 들었지만 다시 침대에 올려놓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힘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안겨서도 계속 버둥거리니 힘들 수밖에 없다.
“얌마 저기엔 아무것도 없어”
억지로 다시 침대에 앉혀서야 둘은 살짝 지친 기색으로 숨을 돌릴 때, 방의 주인인 플로아가 돌아왔다.
플로아가 들어오자마자 그와 동시에 바이안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별일은 없었겠지?”
“없었습니다.”
플로아는 여전히 인형처럼 있는 바이안의 얼굴을 훑어보며 오늘을 위해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치장에 나섰다.
본능인 것인지, 플로아가 있을 때는 그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바이안의 행동을 둘은 이미 파악했다.
그리고 굳이 그런 것을 그녀에게 보고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며, 자신들만 알기로 했고, 침묵했다.
바이안은 마력의 충돌이 뇌까지 상당히 가해져서인지, 한 번씩 환상을 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현실과 현실의 사이에 있다는 것쯤은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 비현실이 자신이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반복하니 정말 꿈속에 있듯이, 오히려 그 비현실이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더더욱 잡으려 애썼다.
신기하게도 플로아가 나타났을 때는 눈앞의 비현실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현실에서는 쉽게 몸을 움직이기도, 말을 하기도 힘든 것은 똑같았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제정신으로 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었을 때, 드디어 의식의 시작이 가까워졌다.
플로아는 당연하게도 화려한 자신의 자태와 오늘의 주인공인 자신에게 푹 빠져, 거동하기 힘든 바이안의 목에 목줄을 채워 데리고 나갈 준비를 했다.
고문을 받아 여기저기 흉이 나있는 몸은 대충 치료를 했고, 어차피 마력도 쓸 수 없는 몸인지라 그의 마력을 옭아 메던 보기 걸리적거리는 족쇄들은 진즉에 치워버렸다.
고급스럽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히고 빛나는 금발을 곱게 빗겨 꾸몄다.
“예쁘구나.”
나가기 전에 바이안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감상평을 늘여놓았다.
이제 오늘이면 이 곳의 진짜 주인이 된다.
특히 완벽한 인형인 바이안을 대동하면서 황제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서 이제는 이 세상에서 최상의 위에 군림하는 것을 모두에게 보일 것을 생각하자 몸이 떨려왔다.
또 다른 곳에서 황제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기사단들 중에 무력이 제일 강한 이들 몇과 함께 현궁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소수정예. 전투가 시작 될 때, 황제인 자신이 정면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었다.
그때 침대에서 누워있던 황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후”
단단히 벼르고 있는 황제는 갑자기 움직이는 황후를 서둘러 부축했다.
“폐하, 저도 따라가겠어요.”
“무슨 말이시오. 몸도 좋지 아니한데.. 무사히 데려 올 것이니 황후는 여기서 기다리시오.”
“폐하!”
황후는 억지로 기운을 짜내 황제에게 큰소리를 냈다.
황제는 그런 황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데리고 가주세요. 저는 폐하의 여인입니다. 이 곳의 황후입니다. 지켜볼 권리가 있어요. 그리고... 한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저의 아이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볼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파리한 안색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곧게 피고 얼굴을 들어 자신을 똑바로 주시하는 황후의 처음 보는 단호한 모습에 황제는 한손을 들어 황후를 에스코트했다.
“보기.. 괴로울 수 있소.”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황후는 황제의 손을 마주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항상 여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대도 참으로 강인하구려... 그대를 보면 왜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나오는지 알 것 같소.’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를 지켜드리리다.”
“믿고 있습니다. 폐하”
황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몇 걸음 떼던 황후는 아차 하며 후다닥 자신의 화장대에서 소중히 보관해 놓았던 작은 펜을 품에 넣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