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의 식당의 긴 테이블에는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태자와 황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이 오늘은 못내 좋지 못하다는 것을 표현하듯 분위기는 어두웠다.
그들에게 식사를 초대 받은 한명의 이방인 때문이었다.
황족에게 식사초대를 받은 사람은 현재 현궁의 주인이라고 하는 이었는데, 화려한 이미지 때문에 그 외모나 생김새가 한 번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다.
온몸을 색색의 보석으로 치장한 것인지, 드레스가 보석인지, 보석이 드레스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치켜 올라간 눈매가 돋보이는 미녀였지만, 보석들로 인해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자주빛 머리색도 탁하게 느껴져 천해 보인다.
황제는 드디어 나타난 대현자에게 그동안 자신이 대신 해 왔던 부분의 일들이나, 궁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서도 있고, 대현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보고, 지혜를 빌릴까 싶어 오늘 이렇게 만났지만, 그의 마음에는 오히려 의구심만 가득 늘어나버렸다.
500년의 공백동안 대현자라는 인물은 역사에 기록된 것들뿐이라 비교할 이가 없기도 했지만, 통일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있었다.
첫째는 지혜롭고, 현명함이요, 둘째는 그 누구보다도 공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셋째는 욕심이 없다 였다.
하지만 황제의 눈에 비치는 그녀는 그 특징이 단 한 개도 비춰지지 않으니 자연히 대화도 거의 없었고, 가족들도 호기심보다는 이 자리를 무척이나 불편해했다.
하지만 초대를 받은 대현자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 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식사를 돕는 시종들에게 뭐가 부족하다, 물이 차갑다 하면서 괴롭히기는 물론이고, 이 곳에 있는 시종들의 교육은 이러하냐며 은근히 그들을 까고 있었다.
큰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짜증과 두통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식사가 끝나자마자 황제내외는 따로 보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황후궁으로 따라 들어온 황녀는 그녀의 품에 쏙 들어가 참았던 불만을 표출했다.
“어마마마 정말 저 분이 대현자인가요?”
“그리 말하면 못써.”
황후는 황녀를 나무랐지만 황녀는 그 불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책에 기술 되어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걸요. 욕심보가 가득해 보이고, 멍청해 보이잖아요. 지혜로운 모습이 한 조각도 없어요. 거기에다가 어마마마의 외형도 깎아 내리는 말을 하지를 않나.. 난 그 여자 싫어요.”
“에바.”
황후는 황녀의 이름을 강하게 말하며 그녀를 막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처음 만난 대현자에게 못내 크게 실망하고 있어서 그 이상은 더 나무라지 않고, 툴툴거리는 황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생각이 있어서 일부러 저리 하시는 것일 지도 모르잖니.”
“그냥 멍청한 게 아니고요?”
“우리가 하늘의 존귀한 분의 속을 어찌 알겠니. 그러니, 더는 그리 말을 하지 말거라.”
황녀를 설득하려 꺼낸 말이지만 황후도 황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 말을 하면서 그럴 것이라 애써 정리한 것이다.
툴툴대며 한껏 어리광을 뿜어대던 황녀는 어느새 황후의 품에서 잠이 들자, 황후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오늘 식사 자리에, 그녀가 아니라 바이안이 함께 앉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는 그것도 요원하구나... 우리 딸도 바이안 무척 좋아하는데, 이 엄마가 너무 약해서 다 미안해.”
황녀는 이미 잠이 들어 들을 수 없다지만 황후는 그래도 타이르는 것처럼 말을 꺼내며 슬픔을 내 보이고 있을 때, 뒤에서 그녀를 부드럽게 안는 사람이 있었다.
“폐하.”
언제 방으로 들어왔었는지, 황제는 슬퍼하는 황후를 안아 그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황후.. 너무 심려 마시오. 그 아이라면 어디에 있든, 잘 할 것이오.”
“허나... 저는 이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니옵니다.”
“내가 왜 모르겠소. 우리들의 아이이지 않소. 믿어 줍시다.”
황제는 바이안의 추방령의 소식을 듣고, 아파하는 황후를 행여나 부서질까 조심히 달랬다.
“그 아이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한 행동이오.”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황제의 품에 의지하며 자신의 속내를 말하자 황제는 환하게 웃었다.
“보면 되지 않소.”
“예?”
놀라며 반문하는 황후에게 이점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기사였을 때야, 현궁 소속이다 보니, 가까워도 거의 볼 수가 없었고, 만나는 시간도 짧아 요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길게도, 몇일도 함께 할 수 있잖소.”
“폐하?”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대륙에 내려가면 되오. 바이안이 대륙의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조사에 들어갔소.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니, 그때처럼 지내고 오오.”
황제의 달램이 통했는지 오랜만에 보이는 환한 미소를 그에게 화답했다.
“연모합니다. 폐하.”
황제와 황후는 서로를 사랑스럽게 보며 핑크빛을 뿜어 댈 때, 황후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은 황녀의 귀가 쫑긋하면서 움직였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에 세이나는 창가 틀에 턱을 받히고 멍하니 그 밖을 쳐다보았다.
“심심해에...”
참으로 잉여 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세이나는 등 뒤에서 자꾸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의 주인과 마주봤다.
“이제는 거의 매일 붙어 있는데, 계속 그렇게 쳐다보는 거, 안 지겹냐?”
“안 지겨워.”
이놈의 스토커는 붙어있어도 자신만 쳐다보는 바이안이 이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너도 참 징 허다.”
“그러게.”
대답이 그게 뭔가요? 라며 뚱한 채로 직설적으로 툭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
“응.”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즉답에 세이나는 자신도 모르게 생김새와는 딴판으로 노는 저 귀여운 생물은 뭔가 순간 고민했다.
“손! 하고 말하면 바로 주겠...”
손바닥을 펴 앞으로 내밀며 말을 꺼내다가 말아버렸다.
손이라는 말과 동시에 바이안이 텁 하고 제 손을 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환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따라 좌우로 흔드는 그 꼬리가 더 기운차다.
“징헌 놈..”
주방에서 술과 안주거리를 챙겨 나오던 할아범과 론은 마주앉아 노는 모습을 뒤에서 짓궂게 바라봤다.
“끌끌끌”
“할아버님. 참 눈꼴 시려줘 죽겠습니다.”
“좋기만 하구먼~ 끌끌.”
뒤에서 수근덕 수근덕 대는 소리가 슬슬 거슬리기 시작하자 세이나는 둘을 확 째려봤다.
“떠들 거면, 앞에서 떠들어.”
“끌끌끌. 그러고 있잖냐. 네들이 어여 오든가.”
식탁에 자리 잡고 이미 론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마시고 있던 할아범의 말에 딱히 할 말이 없어진 세이나는 빈자리에 가 앉았고, 바이안도 바로 따라서 그 옆에 자리 잡아 할아범이 주는 술을 받았다.
“그 놈의 술은 지겹지도 않나.”
“캬~ 인생에서 술은 최고의 친구야. 크큭 특히, 할아버님께서 담으신 술이 세상에서 최고 아니겠냐? 있을 때, 마셔야지.”
투덜대는 세이나에게 보란 듯이 술을 비우며 찬양하는 론을 뚱하게 보다 옆으로 흘끔 시선을 돌렸고, 그 옆에서 바이안 역시 홀짝 홀짝 술을 쭉쭉 넘겨대다 괜히 뜨끔했다.
“기사들은 뭐, 거의 매일 술만 마셔대는 게 일이야?”
세이나의 질문이 꽂히자, 바이안은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슬쩍 피하며 들고 있는 잔을 비웠다.
바이안이 세이나에게 시선을 두지 않을 때 중 하나가 술 마실 때라 눈치 보며 마시는 것이 익숙하다.
“좋아하는 술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니까, 이럴 때, 실컷 마시는 거지. 캬~ 맛 좋다.”
“천천히 마셔라. 아주 물이네 물이야.”
잔에 술을 따르면 바로 입에 들이 붓고, 또 따르면 또 털어 넣는 론은 세이나의 말에도 좋다고 마셨다.
“술 언제쯤에 처음 마셨어?”
좋다는데 더 뭐라고 하기도 그런 세이나는 저리 좋아하는 술을 언제 마시기 시작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음.. 우린 아마 16살? 그쯤일걸?”
“...완전 애잖아!”
예쁜 꽃을 두 볼에 벌써 장착을 마친 론은 히죽히죽 댔다.
“매일 어른들이랑 뒹굴어 댔는데, 당연히 배우지. 오히려 늦게 배운 건데? 흐흐 나야 처음에는 입에 안 맞았지만, 저 녀석은 처음부터 잘만 마시더라.”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바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끌끌끌 네늠도 잘만 마시잖냐.”
술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 듯해서 몇 개 더 챙겨 나오던 할아범의 일침에 세이나는 뜨끔하면서 슥 시선을 피해버렸다.
“가끔이랑 거의 매일은 다르거든? 치~”
그 후에 말이 나와서 한다 라며 할아범은 세이나가 자신의 술 창고에서 몰래 홀짝이다가 들킨 것과 주량, 술주정 등을 나열하기 시작했고, 이내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세이나의 얼굴은 거나하게 마신 사람처럼 새빨개졌다.
대륙에 내려오고 세이나와 함께한 뒤로 계절이 한번 바뀌고 어느덧 두 번째 계절이 찾아오고 있는 겨울초반이 되었다.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는 세이나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바이안과 론.
특히 바이안은 이런 일상이 하루하루 늘어갈 때마다 평생 이대로, 이렇게만 지속 되었으면 좋겠다며 늘 속으로 대뇌였다.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하루가 시작 되었을 때, 세이나의 집에서 오랜만에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거기. 론. 삐뚤어졌잖아. 똑바로 안 해?”
“아 거참. 제대로 했잖아.”
“콱! 저 봐. 반은 잘하잖아. 좀 맞춰.”
추운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미리 하는 월동 준비에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여기저기 틈들을 막기도 했고, 현재는 창가를 고치고 있는 중에 역시나 세이나와 론은 서로 입으로 치고 박고 있었다.
“끌끌끌끌”
그 집에서 유일하게 느긋한 할아범은 애용하는 의자에 앉아서 젊은 것들이 있어서 좋구먼 이라며 한껏 여유를 만끽했다.
이른 아침에 시작한 월동 준비는 점심 즈음에 끝이 났다.
장정 둘이 있어서인지 항상 해오던 때 보다 일찍 끝나 오후부터는 여유로울 수 있었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해롱대는 론과는 다르게 바이안은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무언가에 들떠 보였다.
“끌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겨?”
할아범이 그런 바이안에게 물어보자 바이안은 조금 쑥스러워 했다.
“그... 곧 생일이라..”
생일이라는 단어에 세이나와 할아범은 바이안의 생일인가? 싶었고, 론은 누구? 라며 의문을 표했다.
셋의 시선이 따가워지자, 세이나를 한번 슥 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세나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이나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할아범은 기분 좋게 웃었다.
“끌끌끌.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내, 손녀딸의 생일도 몰라서 그동안 챙겨주지 못해 못내 안타까웠는데, 이제 알겠구먼. 언제 한번 물어본다는 것이 물어보지 못혔어.”
여태껏 자신의 생일에 대한 것을 생각 하지 않았기도 했고, 크게 신경도 쓰지 않던 일인지라 자신의 생일이 언급이 되자, 괜히 멋쩍어졌다.
이제 와서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막상 알 수 있게 되자,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언제인고?”
바이안은 마치 자신의 생일을 밝히는 기분으로 날짜를 밝혔다.
“새해가 오는 날입니다. 1월 1일입니다.”
“헤에~”
세이나는 처음부터 궁금하지 않았다는 척 하면서 감상을 흘렸다.
“뭐야. 아직 꽤 남았는데, 벌써 기대하고 있는 거야?”
론의 말에 벌써 라니 싶어 살짝 발끈 했지만, 바로 감정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바이안에게 이번 세이나의 생일은 특별하고 아주 중요했다.
그가 평생 지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세이나와의 약속, 대 사막화가 일어나기 전날에 생일에 꼭 축하파티 해주겠다며 한 약속이었다.
세이나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도 그는 좋았다.
“끌끌끌. 그렇구먼.”
“아이고~ 곧 성인이시네요. 철도 들지 않고 성인이면 성인인가요?”
역시나 그냥은 넘어가지 않는 론의 장난스런 비아냥에 세이나는 더도 덜도 말고 상큼하게 웃으며 론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로 환한 웃음을 바이안에게 주었다.
“반.”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마자 바이안은 상큼한 미소에 화답해서 아주 상큼하게 마력으로 그대로 공중에 론을 날려버렸다.
그동안 론을 혼내줄 방법으로 터득 한 것이 바이안이 집어 던지는 것이라, 너무도 일상적이고 화기애애하다.
물론, 당하는 론만 죽어났다.
“어흐흑~ 할아버님~”
론은 기어서 다시 자리에 앉으며 할아범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 옆에서 세이나는 바이안을 칭찬했다.
“끌끌끌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