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10-2 Trinity
작성일 : 18-06-30 07:03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1065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침 일찍 길을 걷던 소인은 창연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다. 소민을 때려눕힌 것을 생각하면 본때를 보여줘야 했지만,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기에 그를 마냥 미워하고 공격하기 어려웠다.

  소인은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걸었다.

 

 

  시영은 어젯밤 민화와 했던 약속 때문에 빵집을 향했다.

  두 사람이 스치듯 마주쳤다. 서로가 걸어갈 길을 위한 두 사람의 이끌림. 필연에 가까운 우연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

  어색한 듯 인사를 하는 그들은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날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서로 처음 만난 것보다도 더 어색했다.

  더군다나 소인은 예상외로 멀쩡한 시영을 모습을 마냥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 예상과는 다른 전혀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생각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수월했다.

 “형! 저랑 싸워요.”

  소인이 생각한 이야기는 그가 창연이 넘지 못한 시영을 이기는 것이었다.

  그의 과거를 들어 같은 조건에서 겨루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같은 상대와 싸워 이기는 건 충분히 강함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자신 있고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소인이었지만, 시영으로선 아직 소인을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보는 앞에서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추태를 부렸기에 더욱 껄끄럽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네가 이긴 걸로 해. 지금 좀 바빠서 말이야 그럼 안녕.”

  시영은 손인사로 작별을 고하려 했지만, 소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고, 그의 앞에 달려가 그를 막아섰다. 하지만 시영은 몸을 돌려 뒤로 가려 했고, 소인은 다시 그를 막아섰다.

 “가지 마세요. 형이 그러시면, 형에게 나설 자격이 없어요.”

 “무슨 소리야?”

  시영의 물음에 소인은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망설일 수는 없었기에 손으로 턱을 움켜쥐며 입을 천천히 움직였다.

 “제가 형을 많이 질투했었나 봐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소민이를 원래대로 되돌리려 한 사람은 형도 있었지만, 저도 같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소민이나 블러드리아나 모두 형만 치켜세우고… 그래서 죄송했어요!”

  시영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실에 눈만 껌뻑거렸다.

 “아냐, 괜찮아. 그런 걸로 나설 자격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서.”

 “그리고, 노트를 봤거든요.”

 “노트?”

  시영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고, 소인 대답 대신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형의 심정이 담긴 노트 말이에요. 그걸 보니 도저히 형이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전에 쉬라고 하면서 이상하게 행동한 거야?”

 “…네.”

  그의 진실을 알게 된 시영은 이마를 긁적이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그냥 그때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았잖아.”

 “하지만 제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형을 거짓말쟁이라 말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노트에 적어놓은 내용은 힘들다 말하는데, 왜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는 거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형이 거짓말쟁이로 낙인 됐을 때는 제가 가장 죄송스러웠어요.”

 “이제 그거 가지고 더 이상은 신경 쓰지 않아. 정말이야.”

  시영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너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어. 나로서도, 포우로서도.”

  그러고선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시영이형…”

 “노트를 봤으면 알 거야. 내가 왜 슬롯을 눌러 힘을 추구했는지, 최근에야 알게 된 포우라는 녀석의 힘을 추구했는지… 난 약해. 포우의 힘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오히려 지금은 소민이가 한 행동이 더 현명했다 느껴질 정도야.”

  시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소인이 느끼기엔 그만큼 우울한 목소리가 없었다. 결국 그와의 대결은 고사하고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모두의 미소를 위해…였죠? 그리고 모두를 위해 각오를 다진다. 이런 입에 발린 소리였잖아요.”

  익숙한 구절에 시영은 슬며시 소인의 눈을 바라봤다. 그럴수록 소인은 눈을 부릅뜨며 그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확실히 모두의 미소를 위해선 시영이형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약하다 생각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형은 약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소민이는 어리석은 행동을 취했지만, 형은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았잖아요.”

 “그래도 내가 그 사람을 공격해서 다치게 한 건 변하지 않아.”

 “그건 상대가 공격한 거잖아요! 만약 형이 거기서 순순히 죽어줬으면 모두의 미소는 보지도 못했을 거고, 실컷 다진 각오도 물거품이 되어버렸을 거예요.”

  시영은 죽음이라는 무서운 발언에 한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말이 너무 심하네. 내가 왜 죽어.”

 “그, 그건 실언이라 할게요. 아무튼 포우에 집착하는 이유, 마석에 집착하는 이유.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인류를 위하고, 사람들의 미소를 위한 길이었잖아요. 소민이는 실패했어요. 하지만 형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실패했다 생각하지는 않는데…”

 “포우를… 모르신다 했죠? 그렇다면 형을 믿을게요. 전 형을 6개월 전의 그 포우와 동일인물이라 생각하지만, 형이 정말 모르신다 하니까 형을 믿어드릴 거예요.”

 “소인아.”

 “아마 그 능력이 This Illusion이었죠? 그거랑 구체, 그리고 포우까지. 모두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소인아!”

  시영은 짧게 고함을 질렀고, 소인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날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어. 그런데 난 정말 괜찮아. 이미 거짓말쟁이든 뭐든 다 되어주겠다 생각했거든.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아도 모든 사람의 미소를 보고 싶어. 이상 세계 현상의 진실을 모두가 알게 될 즈음이면 그때는 알아주지 않을까?”

 “아까부터 시영이형이 하는 소리는 모두 입에 발린 소리잖아요.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말을 안 하는데 다들 어떻게 알아요?”

  소인은 투정부리듯 시영에게 물었다. 시영은 그의 말을 인정하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거야. 하지만 난 소인이 네 말을 듣고 잊어버렸던 노트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어.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뭔데요?”

 “확실히 네 말대로 내가 하는 말은 입에 발린 소리일지도 몰라. 모두의 미소를 위한다느니, 모두를 위해 각오를 다진다느니 하는 소리는 말이야. 하지만 그런 입에 발린 소리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

  시영은 뜸을 들였다. 소인은 그가 입을 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었다.

 “마냥 입에 발린 것 같아. 이상적이어도 너무 이상적이야. 그러니까 현실로 만들어 보고 싶지 않아?”

  시영은 활짝 웃어보였다. 소인은 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상적이기에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다.’ 이 말만은 그에게 확실히 전해질 수 있었고, 느껴지는 긴장감과 경이로움에 크게 숨을 쉬었다.

 “널 비롯한 여러 사람들 덕분에 정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

 “뭐에요 그게 오글거리게.”

  소인은 입으로는 불평했지만, 표정은 마냥 나쁘지 않았다. 그러고선 헛기침을 하며 그에게 삿대질을 시작했다.

 “그 말 꼭 증명해주세요. 그리고 저도 증명할거에요. 그러니 저와 싸워주세요.”

  시영은 계속되는 소인의 뜬금없는 결투 신청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각오를 마친 소인의 모습에 곧 예의를 갖춰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형이 모두의 미소를 위하듯, 전 소민이와 블러드리아의 미소를 원해요. 두 사람의 슬픈 표정은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기에 전 창연이라는 녀석을 꼭 쓰러뜨려서 두 손 두 발 모두 사과하게 만들 거예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녀석에게 승부를 제안할 수 없어요. 그래서 녀석이 꺾지 못한 형(포우)을 이김으로서 1차적으로 증명하고 싶어요.”

  소인의 간절한 바람에 시영은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얼마 전까지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고등학생인 소인이 나름대로 성장한 모습에 거절할 수 없었다.

 “아마 그때와는 달라졌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이번에는 날뛰어도 나 몰라라 할 거야.”

 “저도 그 자식한테 마냥 당하던 때와는 다를 거예요. 긴장 충분히 하세요!”

  두 사람은 서로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서로에게 느껴지는 생각의 무게감에 조금씩 긴장감을 느꼈다.

  시영은 해방기를 꺼내 녹색 돌풍 스크롤을 넣어 슬롯을 눌렀다. 소인은 사슬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얼마 전, 소민과 창연이 치열하게 싸우던 그 장소에서 서로의 이상의 증명을 위해 맞붙기 시작했다.

 

 

  포우는 녹색의 돌풍의 영향으로 몸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주변 바람을 이용해 창을 만들었다.

  문득 소인은 그 모습에 창연이 겹쳐보였다. 그랬기에 더욱 사슬을 꽉 쥐었다.

 “죄송한데, 창 말고 다른 건 안 되나요?”

 “이 모습으로는 생성할 수 있는 무기는 창뿐이야. 미안해.”

  불편한 사실에 소인을 혀를 차며 강제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빈 틈!”

  소인은 잽싸게 사슬을 그에게 찔러 넣듯 밀어 넣었다. 사슬은 방심하던 시영에게 힘차게 돌진했지만, 그의 몸 주변에서 부는 돌풍으로 인해 명중하지는 못했다.

 “어우, 가차 없구나?”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형이라도 장난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소인은 사슬을 밧줄 돌리듯 돌리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 때문에 시영의 마음은 뜨끔거렸다.

 “그래, 그렇지.”

  시영은 그렇게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증명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다쳐야 했다. 하필 소인이 싸우길 원하는 대상은 포우였기에 제대로 싸웠다가는 소인이 크게 다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도 증명하고 싶었다. 모두의 미소를 위해서는 포우의 힘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아야했기 때문이었다.

  이 한 번의 결투는 그런 의미를 가졌다.

 ‘아무래도 사슬로 타격하는 건 좋지 못한 선택이야.’

  소인은 창연이 그랬던 것처럼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사슬은 보기보다 위협적이었지만, 역시 그의 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위력은 낮아진다. 그는 시영을 묶고 근접해서 공격하는 걸 택했다.

  결과적으로 오랫동안 갈등하던 시영을 사슬로 묶을 수 있었다. 그가 당황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에게 달려가 발차기를 날렸다.

  사슬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과 진동. 시영의 온몸을 흔들었다. 마치 구체에 닿은 것 마냥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형이 제게 쏜 양방향의 회전. 그게 힌트가 되었어요.”

  소인은 잠시 공격을 멈춰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아차, 지금은 전투 중이었죠?”

  그렇게 다시 시영을 공격하려던 소인이었지만, 한 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그것은 도저히 맨 손으로는 시영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을 제외한 온 몸을 묶었기에 때릴 곳은 사슬로 묶은 곳에 한정되었다. 그랬기에 맨손으로 사슬을 쳐서 그에게 피해를 준다 하더라도, 자신도 크게 다칠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잠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소인은 또 다른 사슬로 그를 공격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재빨리 사슬을 생성하여 그에게 휘둘렀다.

  이대로 공격이 잘 먹혀들어간다면 포우를 소인이 이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휘두르던 사슬이 시영에게 닿기 직전, 회전하는 구체가 사슬을 타고 소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소인은 손에 쥔 사슬을 재빨리 놓아버렸다.

 

  포우는 This Illusion을 발동하여 환영과 자신을 바꿨다. 곧 환영은 사라져버렸다. 포우는 소인에게 구체를 잡은 손을 내질렀고, 방어할 수단인 사슬을 놓아버린 소인은 그의 구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포우가 전부는 아니었구나.”

  시영은 한숨을 돌렸다. 포우, 구체, This Illusion.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인은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구체의 영향으로 온 몸이 떨리는 와중에도, 세 번째 사슬을 생성하여 자신의 손과 시영을 묶어버렸다. 덕분에 구체의 영향은 소인의 손에서 사슬을 거쳐 포우에게까지 영향을 행사했다.

 “양… 방향의 회전을… 맞은 덕분에… 단 방향이라면… 약간은 버틸 수 있죠. 헤헤헤…”

  소인은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를 도발했다. 포우는 참신한 공격법에 잠시 넋을 놓았지만, 정신을 차리며 그를 나쁘지 않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역시 구체는 언제 맞아도 익숙하지가 않아.’

  포우는 천천히 집중하여 구체를 해제했다. 구체의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소인은 빠르게 회복하여 빈틈을 발견했고, 손에 묶인 사슬을 당겨 포우를 자신에게 끌어들였다.

  그 직후 소인은 포우의 이마에 박치기했고, 두 사람은 얼얼하게 느껴지는 크나큰 충격에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모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딱밤을 이자까지 해서 돌려드렸습니다. 형…”

  소인은 이마를 세게 움켜쥐며 입 꼬리를 올렸다. 애써 아프지 않다 생각했지만, 고통은 정직하게 돌아왔다. 사슬을 묶은 손에는 자연스레 힘이 풀렸다. 서서히 매듭이 풀려갔다.

 

  소인의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은 포우로서도 완전히 회복할 수는 없었다. 그저 지금은 그와 거리를 벌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머리가 깨질…”

  인상을 구긴 포우는 몸을 꿈틀대며 사슬을 풀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포우는 고통을 삼켰다. 구체를 생성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검은 도화지에 새빨간 잉크가 방해하듯 한 방울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소인의 각오에 한 번,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공격한 것에 두 번 놀란 포우는 각오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묘하게 소인과 창연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비록 두 사람은 원하는 것도 다르고,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두 사람이 겹쳐 보이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소인은 코에서 피가 나왔다. 포우는 흠칫 놀랐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가락으로 코를 지그시 눌러 잡았다.

 “이제 그만하자. 너 머리 다쳤을 수도 있어.”

  포우는 더 이상의 싸움을 말렸지만, 소인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림자 스크롤을 꺼내 네 번째 사슬에 장착했다. 은색으로 빛나는 사슬은 금세 새까매졌다.

 “나소인!”

  포우의 외침에도 소인은 기침을 콜록거리며 그림자를 품은 사슬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요염하게 움직이는 검은 뱀 같은 그림자를 품은 사슬은 꿈틀거리며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인은 머리가 울리는 느낌에 이마를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소인아!”

  포우의 외침은 곧 어둠 속에 삼켜졌다. 그의 그림자에서 깨어나듯 꿈틀대는 사슬은 그를 덮쳤다.

 “젠장!”

  포우는 돌풍을 타고 재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자에서 뻗어 나오는 사슬은 어디로 도망치던 그를 비웃듯 쫓아왔다. 돌풍을 머금은 창을 꺼내어 사슬을 하나씩 쳐낼 수밖에 없었다.

 “소인아 이거 당장 멈춰! 넌 지금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시영이형! 병원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소인은 포우(시영)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중에도 몸을 힘없이 비틀거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금세 오뚝이처럼 우뚝 일어섰다.

 “증명하겠다는 건,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죠. 지금껏 반쪽이었던 제가 그 포우를 이렇게라도 몰아붙일 수 있었어요! 병원은 형을 쓰러뜨리고 제 발로 당당하게 걸어갈 거예요. 세정 쌤한테도 병원 가서 학교는 좀 늦을 거라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 소민이와 블러드리아에게…”

  소인은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기침을 콜록거렸다. 여전히 몸은 휘청거렸지만, 무릎을 잡아서라도 쓰러지지 않았다.

 “저 녀석…”

  포우는 여전히 발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림자를 머금은 사슬은 그가 창으로 쳐내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설상가상 나무의 거대한 그림자에서도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슬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력으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맞서는 것밖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품속에서 붉은 불꽃의 스크롤과 노란 대지의 스크롤을 꺼내들었다.

  사슬은 포우를 덮치고 많은 수의 사슬은 서로 부딪치며 스파크를 발산했다.

  소인은 이겼다는 확신에 사슬에서 그림자 스크롤을 해제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겼다는 희열감이 더 크게 작용하며 눈을 똑바로 뜰 수 있었다.

  하지만 포우에게로 다가갈 수는 없었다. 소인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뿜어져 나온 수많은 사슬 중 몇몇 개는 시영을 묶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슬들 중 그 어느 것도 시영을 묶고 있지 않았다.

  그의 귓속으로는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슬 중 일부를 내려 상황을 확인했다.

 “시영이형?!”

  그곳에선 포우(시영)가 오른손에는 창, 왼손에는 검을 들고 자신을 묶으려는 사슬을 모조리 쳐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100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를 상대하는 용맹한 전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인을 놀라게 한 건, 사슬을 쳐내는 포우의 모습도, 용맹하게 그를 상대하는 사슬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것은 포우의 양 어깨에서 계속해서 회전하는 무언가에 대해서였다.

  마치 구체의 회전과도 같은 모습. 그것은 포우의 어깨에 스스로 회전하며 돌고 있었다. 약간의 틈 같아 보이기도 한 기묘한 자태에 소인은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날아오는 바람을 가르는 한 자루의 창.

 “!”

  비명을 지를 틈도 주지 않았다. 포우가 던진 창에 맞은 소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 창에 복부를 찔렸지만 피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이라며 바람이 모이기 시작한 복부에선 과녁 같은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포우는 양 손으로 검을 잡아 청소하듯 사슬들을 모조리 쓸어냈다. 그 직후 바로 소인에게 달려가 오른발로 발차기를 날렸다.

  모든 행위는 돌풍처럼 빠르게, 대지처럼 강하게, 불꽃처럼 화끈하게 이루어졌다. 돌풍의 과녁에 정확히 닿은 포우의 발차기에 소인은 털썩 쓰러져버렸다.

 

 

  눈을 뜬 소인은 깨끗한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알아챘다. 분명 쓰러진 장소는 길바닥이었기에 소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어디지?”

 “일어났어?”

  소인은 익숙한 시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시영은 피식 웃으며 사과를 깎는 중이었다.

 “형?”

 “으이그, 멍청아. 아무리 증명하고 싶어도 코에서 코피가 나올 때까지 싸우고 싶냐. 이 늘보야.”

  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과를 토끼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러고선 그 중 하나에 포크를 꽂아 그의 입에 넣어주었고, 소인은 아삭한 사과를 우물거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머리를 다친 소인은 방금 전까지 싸웠던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사과를 먹으며 하나 둘씩 기억해낼 수 있었다.

 “결국 난 졌구나.”

  허탈했다. 소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전술과 힘을 끌어냈음에도 기지를 발휘한 포우에게 지고 말았다.

  하지만 져서 분하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이미 창연과의 싸움으로 포우는 강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것은 그래도 선전했다는 것을 증명했기에 헛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었다.

 “졌지만 잘 싸웠던 것 같아. 하지만 두 번 다시 머리를 다칠 정도로 박치기는 하지 마. 무슨 코피가 날 정도로…”

  시영은 방금 전의 아찔했던 그 일을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에요?”

 “우리 집. 정확히는 누나 집.”

  소인은 기억을 되짚어 시영의 누나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비록 머리를 다쳤기에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분명 자신과도 가까운 사람이었다는 건 어렴풋이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방문을 열었다.

 “누나도 양반은 못 되나.”

 “소인아!”

  세정은 놀란 토끼 눈으로 다급히 소인에게 다가왔다. 소인은 그 대상이 자신의 담임이었다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아 기억이 돌아왔다.

 “서, 선생님?”

 “괘, 괜찮은 거 맞지?”

  세정은 두려움에 소인의 머리 이곳저곳을 만지며 마른 침을 삼켰다.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거렸고, 소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정없이 흔들렸다.

 “아마도 괜찮을 걸요?”

 “‘걸요’라니! 안 괜찮다면 아프다고 말해야지.”

  세정의 걱정 어린 다그침에 소인은 어깨를 움츠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죄송해요.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시영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제 3자가 끼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중에야 듣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미 세정은 소민의 일 때문에 마음이 아픈 상태였고, 소인마저 다쳐서 돌아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소인은 어쩔 수 없이 학교를 하루 쉬기로 했다. 등교 전에 심하게 다친 것도 이유였지만, 여러 악재가 한 번에 겹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병원에 있는 다른 가족들 때문이라도 학교를 빠지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시영이 보호자 역할로 그의 집에 데려다주기로 했고, 세정을 위로하며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오늘 네가 했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인지 알겠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정말 죄송해요.”

 “알면 됐어. 일단 너희 집으로 가기 전에 잠시 가야 할 곳이 있어.”

  시영은 민화와의 약속이 있었다. 도중에 소인을 만났기에 잠시 멈춰 섰을 뿐, 처음부터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현재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아직도 아침 일찍인 건 변함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건 그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녀는 이미 1시간 전에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새벽같이 시영에게 줄 빵을 만들며 그를 기다리다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시영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만든 빵 바구니를 받으면서도 찝찝함을 없애지 못했다.

  그렇게 소인과 빵을 나눠먹으며 그의 집으로 도착했을 때, 빵 밑에 숨겨진 하나의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형, 이게 웬 쪽지에요?”

 “나도 몰라.”

  소인은 호기심에 쪽지를 펼쳤다. 하지만 그곳에 쓰인 글자는 단 세 글자였다.

 “북쪽 산?”

  시영은 전기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느낌에 쪽지를 빼앗아 눈으로 확인했다. 틀림없는 ‘북쪽 산’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확실한 직감이 되고. 시영은 남은 빵을 바구니 채 소인에게 건네고 북쪽 산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56 World 13 무형-4(강혁) 2018 / 8 / 11 246 0 8752   
55 World 13 무형-3(유마) 2018 / 8 / 10 244 0 4574   
54 World 13-2 무형 2018 / 8 / 4 271 0 5408   
53 World 13-1 무형 2018 / 8 / 3 265 0 10136   
52 World 12-4 마법사 2018 / 7 / 28 275 0 4790   
51 World 12-3 마법사 2018 / 7 / 27 264 0 6519   
50 World 12-2 마법사 2018 / 7 / 22 280 0 5662   
49 World 12-1 마법사 2018 / 7 / 20 279 0 2825   
48 World 11-4 심야 식당 2018 / 7 / 15 255 0 6680   
47 World 11-3 심야 식당 2018 / 7 / 14 257 0 6119   
46 World 11-2 심야 식당 2018 / 7 / 13 284 0 10972   
45 World 11-1 심야 식당 2018 / 7 / 8 262 0 6451   
44 World 10-5 Trinity 2018 / 7 / 7 269 0 13607   
43 World 10-4 Trinity 2018 / 7 / 6 249 0 12442   
42 World 10-3 Trinity 2018 / 7 / 1 269 0 8403   
41 World 10-2 Trinity 2018 / 6 / 30 234 0 10650   
40 World 10-1.5 Trinity 2018 / 6 / 29 250 0 13820   
39 World 10-1 Trinity 2018 / 6 / 29 261 0 10804   
38 World 9-4 잠자는 공주 2018 / 6 / 24 265 0 7745   
37 World 9-3 잠자는 공주 2018 / 6 / 23 247 0 11530   
36 World 9-2 잠자는 공주 2018 / 6 / 22 259 0 23208   
35 World 9-1 잠자는 공주 2018 / 6 / 22 289 0 6406   
34 World 8-4 Who is FOW? 2018 / 6 / 19 291 0 9419   
33 World 8-3 Who is FOW? 2018 / 6 / 19 287 0 5891   
32 World 8-2 Who is FOW? 2018 / 6 / 19 257 0 5490   
31 World 8-1 Who is FOW? 2018 / 6 / 19 266 0 6364   
30 World 7-4 오해 2018 / 6 / 18 283 0 5282   
29 World 7-3 오해 2018 / 6 / 18 282 0 5699   
28 World 7-2 오해 2018 / 6 / 18 245 0 11517   
27 World 7-1 오해 2018 / 6 / 18 245 0 11120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