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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10-1 Trinity
작성일 : 18-06-29 10:39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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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공원에 홀로 외로이 핀 로즈마리. 시영은 벤치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았다.

  보랏빛으로 핀 로즈마리. 척박한 공원에 핀 오아시스 같은 아름다운 자태에 시영은 이끌리듯 물을 떠 주었다.

 “곰돌아, 기다려!”

  시영의 뒤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곧 그의 다리에 뭔가 부딪쳤고, 시영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부딪친 존재를 확인했다.

  그것은 눈이 보랏빛으로 빛나는 곰 인형이었다. 그것의 뒤쪽에선 어딘가 익숙한 소녀가 허둥지둥 뛰어오고 있었다. 시영은 낯이 익은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곰 인형은 스스로 움직이나 보네?”

  시영은 한숨을 돌리며 보랏빛 곰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 마냥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였고, 몸 주변에선 은은한 보라색 불꽃이 일었다.

 “저, 그거 제건데…”

  소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조심스레 곰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거니? 움직이는 거면 조심히 다뤄야지. 자, 여기.”

  시영은 웃는 얼굴로 곰 인형을 잡아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곰 인형은 소녀의 손을 탈출해 시영에게 달라붙었다. 마치 그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만져달라는 거니?”

  곰 인형은 머리를 강조하듯 교태를 부리며 움직였다. 시영은 소녀의 눈치를 살피고 그것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곰 인형 주변의 보랏빛 불꽃이 시영의 손을 통해 그에게 흡수되었다. 곰 인형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며 점점 움직임이 멈춰갔다.

  소녀는 그 신비한 모습을 두 눈에 똑똑히 각인시켰다. 시영은 별 다른 느낌이 없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멈췄네?”

  시영은 한 마디 내뱉고는 공원의 흙먼지를 뒤집어 쓴 곰 인형을 탈탈 털어주었다.

 “자, 여기. 굉장한 곰 인형이구나?”

  시영은 소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인형을 건넸다.

 “살아 있었는데, 오빠의 손으로 멈춰버렸어요.”

  인형을 건네받은 소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시영을 바라봤다. 하지만 시영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사실 전 오빠를 계속 볼 수 있었어요.”

 “그, 그래?”

  소녀는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반갑게 이야기하려 했지만, 시영은 떨떠름하게 몸을 뒤로 빼며 쓰린 입맛을 다셨다.

  이미 SNS를 비롯한 언론 플레이어 크게 데인 시영이었기에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건 별로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승혁의 경우처럼 또 파파라치일 경우에는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어린 소녀였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곰돌이 덕분에 오빠를 볼 수 있었어요. 가끔 얘가 맘대로 움직이는데, 항상 쫓아가보면 오빠를 볼 수 있었거든요.”

 “난 인형을 만든 사람도 아니고, 너랑은 처음 만나지 않았니?”

 “두 번째에요. 오빠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절 구해줬어요.”

  소녀는 손가락을 두 개 폈고, 시영은 소녀를 자세히 바라봤다. 얼마 전 일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 걔가 너였구나? 가만 있어보자. 이름이… 미…”

  시영이 이 소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구해줬었다. 고속이 없었다면 시영도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을 사건. 시영은 소녀를 구할 수 있었다면 자신이 다치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미래에요. 유미래.”

 “맞아. 그때 너희 어머니도 오시고 그랬었지?”

  시영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활짝 핀 꽃처럼 미소 지었고, 소녀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오빠가 키우는 꽃이에요?”

  미래는 보라색 로즈마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시영은 고개를 저었고, 미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많이 외로워 보여요.”

  이내 미래는 측은한 눈빛으로 로즈마리를 바라봤다.

 “그럴 만도 해. 이 공원에 핀 꽃은 이거 하나니까.”

  척박한 모래 위였지만, 로즈마리는 빛이 날 정도로 싱싱했다. 그 이면에는 시영의 헌신적인 돌봄도 있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돌보기 전에도 로즈마리는 싱싱했었다.

 “언제까지나 여기서 키울 수는 없을 것 같고… 이걸 어쩐담.”

  시영은 뺨을 긁적이며 고민했다. 그의 마음 같아서는 사무소에 가져가고 싶었지만, 막상 가져가도 잘 키울 자신은 없었다.

 “저기, 제가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미래는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시영의 표정은 화색이 돌았고 입을 동그랗게 모으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정말?”

 “네! 잘 키울 자신 있어요!”

 “정말 잘 키울 거지?”

  미래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시영은 즉시 로즈마리를 뿌리 채 캐내, 온전한 로즈마리를 바구니에 담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잘 키워줘.”

 “오빠는 좋은 사람 같아요.”

 “응?”

 “TV에서 말하는 오빠는 완전 나쁜 사람인데, 이렇게 이야기 해보니 좋은 사람이잖아요.”

  미래는 눈을 빛내며 시영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시영은 그녀의 부담스러운 눈빛과 듣기 좋은 소리에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저희 엄마도 그랬어요. 오빠는 나쁜 사람이 아닐 거래요. 모르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나무에 올라갈 사람이라면 확실히 좋은 사람이랬어요.”

  미래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엄마의 말을 그대로 전했을 뿐이었지만, 시영에게는 그 무엇보다 힘이 나는 말이었다.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시영은 그날 이후 며칠이 지난 현재. 자신에 대한 여론을 비롯한 포우에 대한 관련 자료를 대부분 확인했다.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났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양한 생각을 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결과적으로는 시영은 참는 것을 택했다. 오해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상황. 모두의 미소를 위한 결과를 위한 시련이라 생각하니 참지 못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영은 미래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미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멀리 보는 것보단 가까이 보는 게 나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역시 멀리 보는 게 나은 걸까.”

  시영은 유마와 첫 대면했을 때를 생각하며 벤치에 몸을 던졌다. 시선은 자연스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향했다. 고개를 푹 떨어뜨려 벤치 아래의 찌그러진 깡통을 향했다.

  찌그러진 깡통을 쓰레기통에 버린 시영은 자신의 나쁜 마음도 같이 버려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포우의 강대한 힘. 시영은 그저 강력한 힘이라 생각했었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해방기를 파악하기 위해 만지작거리던 중, 슬롯 부분만 건드렸는데도 엄청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공원 화장실 세면대로 발걸음을 옮긴 시영은 거울을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고선 손에 들린 해방기의 슬롯 부분을 눌렀다. 자신의 모습을 그제야 제대로 확인했다.

  전체적으로 하얀 모습. 외형은 검은 옷을 입은 시영이라는 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바뀌었다. 초인이라는 이미지에 걸 맞는 특별한 모습. 유일하게 붉던 두 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시 슬롯을 누른 시영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포우의 모습처럼 보였다. 시영의 검은 눈동자와 포우의 붉은 눈이 서로를 응시하며 반전된 움직임을 보였다.

  시영은 품 속 6장의 스크롤은 꺼내지 않았다. 해방기도 주머니 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난데없이 6개월 전 도시 전설의 영웅의 되어버린 시영. 그는 그저 강한 힘으로 사람들의 미소를 위해 행동했었다. 하지만 창연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괴로움을 줘버렸다.

  모두의 미소를 위한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어버렸다. 설사 말려든 것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시영은 죄책감을 느끼며 손을 깨끗이 씻었다.

 ‘포우…라고 했었지. 이 힘은 최대한 봉인해야해.’

  시영은 강해진 만큼 행동을 조심해야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에겐 힘이 없다. 포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모두의 미소를 보고 싶은 그의 목표, 더 나아가선 이상 세계 현상의 진실을 찾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랬기에 그는 대체할 것을 ‘This Illusion’에 있다고 보았다. 또한 구체도 포우를 대체할 힘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집중하여 원형에 가까운 구체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구체를 유지시키며 화장실 밖으로 나온 시영은 방금 전화번호를 교환한 미래처럼, 아미의 전화번호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기 아이돌이다. 우연히 그녀의 메일을 받고 자주 만나긴 했었지만, 엄연히 서로의 위치가 존재했고, 시영은 아직도 그녀를 어색하게 생각했다.

  This Illusion을 나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시영이었지만, 포우를 대체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 구체의 회전을 멈추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시 벤치에 앉아 미래의 번호가 제대로 저장되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과 ‘ㄱ’을 지나 ‘ㅅ’을 넘고, ‘ㅇ’에 도달한 시영은 ‘유미래’라는 이름으로 번호가 제대로 저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밑에 그가 전혀 모르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유 아 미 하트?”

  ‘유아미♥’라 저장된 전화번호였다. 시영은 친한 친구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성과 이름을 합쳐 저장한다. 하지만 기호나 이모티콘은 그가 절대 붙이기 않았기에, 이 낯선 번호에 기묘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시영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지친 목소리의 아미가 전화를 받았다. 시영은 그녀에게 전화가 걸린 것에 놀라 “여보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때 구석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낄낄거리며 시영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상한 사람의 어깨에 낯선 손이 올라가며 찰칵거리는 소리는 멈췄다.

 

 

 “먼저 전화를 주실 줄은 몰랐어요.”

  다음 앨범을 위한 연습을 하던 아미는 그의 전화를 받고 놀라기는커녕 매우 기뻐했다. 시영이 그녀와 만나자 말하기도 전에 아미는 강제로 그와 약속을 잡아버렸다.

  그들이 만난 곳은 한적한 골목길이었다. 오컬트 슬레이어라는 이명을 가진 시영은 얼마 전 있던 사건 때문에 이곳에 오길 꺼려했지만, 아미의 직업상 이런 곳에서 밖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녀의 복장은 고급스러운 로리타 드레스였다. 시영은 장소와 의복의 부조화에 눈만 깜빡거렸다.

 “옷이 참 화려하시네요?”

 “신경 좀 썼어요.”

  아미는 시영을 바라보며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시영은 어색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밥 먹을래요?”

 “아, 아뇨. 전 단지 아미 씨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요.”

 “뭔데요?”

  아미는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고, 시영은 그녀가 뭘 기대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음, 이게 실례되는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아미는 실례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안절부절 거렸다. 시영은 천천히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This Illusion말이죠. 혹시 다음 단계나 심화 학습. 그걸 빠르게 가르쳐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영의 말이 끝나자 아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직후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곁눈질했다.

 “맨 입으로 알려달라고요?”

  그 순간, 시영의 머릿속에서 퍼뜩하고 번개가 스쳤다.

  시영은 모든 것에는 등가교환이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당연히 이쪽에서도 그에 준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시영으로선 지금 가진 것은 현금 4만원뿐이었고, 신용카드는 사무소에 있었다.

 “다, 당연히 맨 입은 아니죠. 원하시는 거라도…”

  시영은 식은땀을 흘렸다. 표정은 우스꽝스럽게 구겨졌고, 억지로 짓는 미소는 당연하게도 썩은 미소가 되었다.

  아미는 그의 광대 같은 모습에 쿡쿡 웃어댔고, 시영도 그녀를 따라 억지로 웃어댔다.

 “같이 밥 먹어요. 연습 하느라 점심 안 먹긴 했는데, 안 먹길 잘한 것 같아요!”

  의외로 소박한 바람에 시영은 눈을 세차게 깜빡거렸다.

 “다이어트 때문에 많이는 못 먹거든요. 그래서 옷이라도 예쁘게 입었어요.”

  아미는 로리타 드레스를 강조하듯 살랑거리며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그럼 밥은 제가 살게요.”

 “아무리 시영 씨라도 그럴 수는 없어요. 절 무시하시는 거예요?”

  아미는 그에게 째려보며 불만을 토로했고, 시영은 즉시 사과했다.

 “그야, 제가 만나자 했으니까요.”

  시영은 조심스레 말했고, 아미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저도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러니 밥은 같이 사요. 헤헤.”

 

 

  그들이 향한 식당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한적한 식당이었다. 시영은 스테이크 정식을 아미는 샐러드 정식을 시켰다.

 “아미 씨, This Illusion의 심화 과정을 빨리 배우는 법은 없나요?”

  주문을 마친 직후, 시영은 아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물을 마시던 아미는 콜록거리며 사래가 들렸다. 시영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고마워요. 콜록!”

 “제가 괜한 걸 물었나요?”

 “네? 아뇨. 시영 씨가 무슨 생각이 있으시니 제게 물은 거겠죠?”

  시영은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죠?”

 “아미 씨.”

  등을 토닥이던 시영을 바라보던 아미는, 앞쪽에 앉은 시영에게 들리는 목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이, 이건?”

  시영은 이미 This Illusion을 발동한 상태였다. 그녀가 자각함에 따라 등을 토닥이던 시영은 슬그머니 형체를 감췄다.

 “This Illusion. 전 이걸 심화할 수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더욱 연습이 필요한 건가요?”

  시영은 양 손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왼손에선 구체가 회전하고 있었고, 오른손에선 환영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컵 가득한 물에 비친 그의 모습은 포우의 모습이었다.

 ‘트리니티?’

  아미는 어렴풋이 그를 꿰뚫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체, 환영, 포우의 모습은 마치 없던 것 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에게 느껴지는 불안한 조급함에 긴장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시영 씨가 하기 나름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죠?”

  아미는 조심스레 물었지만, 시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의 웃는 얼굴을 위해서인가요?”

 “…네.”

  아미는 물을 천천히 마시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실은 뉴스를 봤어요. 시영 씨는 그럴 분이 아닌데, 왜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밖에 말하지 않는 걸까요.”

 “전 괜찮아요. 못 믿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고요.”

  시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때마침 음식이 나왔고, 푸짐한 시영의 접시와 비교되는 아미의 소박한 접시에 시영은 흠칫 놀라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자, 선남선녀들 맛있게 드시구려. 음… 청년.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수?”

  음식을 가져온 어르신이 시영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턱을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할멈, 이 청년 어디서 봤더라?”

  어르신은 주방의 아내에게 시영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시영은 이 노부부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 뉴스에 나온 청년이에요. 그 포우인지 호우인지 하는 엄청난 사람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는데…”

 “예끼! 이 사람아. 당연히 그건 알고 있지. 내가 말하는 건 직접 본걸 묻는 것이야.”

 “직접 봐요?”

 “나와서 봐봐! 좀!”

  어르신은 아내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껴 큰 소리로 말했고, 아내는 한숨을 크게 쉬며 천천히 다가왔다.

 “이 청년은…”

  시영과 아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숨을 죽였고, 가게 안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이 조용했다.

 “아! 영감. 저번에 그 청년이에요. 여기까지 짐 들어준 그 청년!”

 “그랬지? 아, 글쎄 당신이 그랬잖아. 뉴스에 나온 검은 모자 청년이 무거운 짐을 들어줘서 참 고맙다고.”

 “멀리 있어서 잘 안 보였어요.”

 “그러니 가까이 와서 보라는 거 아닌가. 나 참.”

  어르신은 말로는 툴툴거렸지만, 내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영은 그제야 창연과 싸우기 전, 도움을 준 할머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청년, 그때 일은 고마워. 집 사람이 들기에는 꽤나 무거운 물건이었는데, 청년이 도와줘서 수월했다 하더라고.”

 “아녜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이름이 뭔가?”

 “박시영이라 합니다.”

 “시영? 오오, 좋은 이름이구먼.”

  어르신은 시영의 어깨를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 시영은 그의 미소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건 그렇고, 아가씨는 여자친구요?”

  어르신은 아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 시영의 뒷골에서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고, 본능적으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어머~ 할아버지. 당연한 소리를…”

 “아, 아녜요!”

  시영은 두툼하게 썬 고기를 포크로 찍어 단숨에 아미의 입 속에 넣어버렸다. 번개 같이 ᄈᆞ른 행동에 아미와 어르신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고, 시영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저, 저는 성인이고, 아미 씨는 미성년이래요.”

 “허허, 사랑에 나이는 필요 없다네.”

 “그, 그게 아닌데…”

 “이봐 시영이. 안사람하고 내 나이는 자그마치 7살이지.”

 “그래요 시영 씨, 사랑에 나이가 뭐가 필요해요.”

  어느새 고기를 꿀꺽 삼킨 아미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도 덩달아 껄껄껄 웃기 시작했고, 시영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코로 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거 먹고 괜찮겠어요?”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한 시영이 샐러드와 닭 가슴살만 먹는 아미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네,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그래도 너무 적은데…”

  시영은 샐러드를 껌처럼 질겅질겅 씹는 아미와 먹음직한 스테이크를 번갈아 바라봤다. 자신의 고기를 절반 잘라서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시영 씨?”

 “드세요. 밥은 살찔까봐 못 드리겠어요.”

  아미는 시영이 건넨 스테이크를 신주단지 보듯 바라봤다. 하지만 곧 먹음직한 그 자태에 침을 꿀꺽 삼키며 나이프와 포크로 그것을 잘아 입에 넣었다.

 “맛있어요!”

  아미의 미소에 시영은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나눠 먹지 않아도 한 접시 더 줄 생각이었다네.”

  마침 어르신은 그들의 테이블에 스테이크 정식을 한 접시 올려놓았다. 고기의 크기는 시영의 것보다 두툼했고, 밥은 세 공기 이상은 돼보였다.

 “부족하면 말 해주게나.”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시영과 아미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스테이크 정식은 8천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그에 비해 맛은 매우 훌륭했고, 시영도, 살이 찌는 걸 걱정하던 민화도 행복한 얼굴로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손님이 없는 거지?”

  하지만 시영은 의문이 들었다. 가게는 깔끔했고, 분위기도 고풍스러웠다. 또한 저렴한 가격에 비해 훌륭한 요리, 위치상으로도 외진 곳은 절대 아니었기에 밥과 고기를 먹으면서 계속해서 의문을 품었다.

 “왜 손님이 없냐고?”

  어르신은 옆 테이블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시영은 뭔가 실수했다고 느꼈다.

 “아, 아뇨. 말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응? 아냐, 아냐. 그게 파워 블로거인지 브로커인지 뭔지 하는 여편네가 온갖 이상한 걸 요구하더라고. 스프인지 라면 수프인지 뭔지 하는 게 왜 안 나오냐, 반찬이 왜 이렇게 적냐, 등 온갖 이상한 소리를 늘여놓는데다, 무슨 에스 앤 에스? 그런 거에 부정적인 의견을 남발한다더군. 그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줄어들었지.”

  어르신은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깊은 한숨으로 마무리했다. 시영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사실에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다.

 “사장님, 이따 저랑 사진 한 번 찍으실래요?”

 “아가씨랑? 허허, 이 늙은이랑 찍어서 뭣 할라고?”

 “스테이크도 너무 맛있고,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한 번 찍고 싶어서요.”

  아미는 어르신에게 스마트폰을 흔들며 말했다. 어르신은 나쁠 것 없었기에 흔쾌히 찍는 걸 수락했다.

 “맛있게들 들어요. 허허허.”

  어르신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시영 씨, 꼭 This Illusion이어야만 할까요?”

  아미는 고기를 꿀꺽 삼키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시죠?”

 “시영 씨가 This Illusion에 집착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제게는 아무 말도 안 해주셨잖아요.”

 “그랬죠.”

  시영은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에겐 아무런 설명 없이 This Illusion의 강의만을 받았었다. 그녀로서는 이 힘을 나쁜 일에 사용한다고 의심해도 시영은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또한 아미는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나 그에게는 웃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 웃음 속에도 불만이 녹아 있었다.

 “실은… 전…”

  시영은 해방기를 꺼내 슬롯을 가볍게 눌렀다. 그는 단숨에 포우로 변했고, 아미는 흠칫 놀라 우물거리던 입을 움직이지 못했다.

 “포우?”

  아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영은 슬롯을 다시 눌러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숨길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전 포우가 정말 뭔지 몰랐고, 그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구하기 위해 This Illusion과 해방기의 힘(포우)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구하려 한 거예요.”

 “그렇군요. 그것보다 포우가 뭔지 모르셨나요?”

  아미는 의외로 그의 말을 순순히 믿어주었다. 입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꿀꺽 삼켰다.

 “네.”

  시영은 더 이상 대답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모른다는 걸 모른다 했을 뿐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불신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미라면 믿어줄 것 같았다. 비록 단순한 예상에 불과했지만, 그럴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역시 그랬군요.”

 “믿어 주시는 건가요?”

 “못 믿을 것도 없지 않나요? 저도…”

  아미는 품속에서 해방기를 꺼냈다.

 “슬롯을 누른다는 건 몰랐거든요.”

  그러고선 슬롯을 누른 아미는 한 순간에 옷이 무대의상으로 바뀌었다. 분홍색과 검은색이 나름의 조화를 이룬 멋진 복장이었다.

 “아미 씨…”

 “뉴스도 봤어요. 모두가 시영 씨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지만, 전 믿고 있어요. 시영 씨는 절대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요. 이 가게 사장님 이야기만 들어봐도 알 수 있잖아요.”

  시영은 콧날이 시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헛기침을 하며 붉어진 눈시울로 천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모두의 미소보다는 제 미소로 충분했으면 해요.”

  아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시영의 귓가에 전달되지 못했다.

 “그리고 This Illusion의 심화 과정을 알려 달라 하셨죠?”

 “네,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하지만 알려드리는 건 힌트에요. 제가 다 알려드리면 절대 발전은 없을 테니까요.”

  시영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고, 침을 꿀꺽 삼켰다.

 “힌트는 ‘나=환영’이라는 거예요. 몇 분 전의 시영 씨의 모습을 보고 시영 씨에게 어울리는 This Illusion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아미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고, 시영도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어색하던 그의 모습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고, 그들은 식사를 계속했다.

 ‘시영 씨. 운명이란 이런 걸까요? 당신에게 느낀 운명은 틀린 게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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