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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9-3 잠자는 공주
작성일 : 18-06-23 10:38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1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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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이상하지 않아요?”

  세 사람이 탐정 사무소를 향해 걷던 중, 민화가 입을 열었다.

 “누나,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게, 창연 씨가 한 이야기를 천천히 곱씹었는데 뭔가 이상해서 말이야.”

  소인은 창연이라는 이름 두 글자만으로 미간이 찌릿 거렸다. 고속은 그의 감정을 대충은 알 수 있었지만, 아는 듯 모르게 가만히 있었다.

 “창연 씨의 과거를 알게 되어서 그 사람이 느끼는 마음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근본적으로 그가 왜 시영이를 공격하려 한 건지, 영원한 잠에 빠져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건지 등. 그런 이유를 모르니까 신경 쓰여서 말이야.”

  민화는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소인은 어느 정도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그를 걱정하려는 마음은 고이 접어두었다.

 “민화 씨는 외모에 비해, 강한 아가씨군요.”

  고속은 그녀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민화와 소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모에 비해서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외모에 비해서라는 건 다른 뜻이 아닌 유약한 외형에 비해 내면은 굉장히 강한 분이신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고속은 당황한 손짓과 말투로 자신의 뜻을 해명했다. 물론 민화는 그의 말을 듣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 소인은 그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 없이 창연을 공격하려는 소인을 막아선 것에 있었다. 격한 분노로 인해 자칫하면 자신도 다칠 위험이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막아낸 것은 그녀가 강한 여성이라는 걸 명확히 증명했다.

 “제 발언이 실례되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 아녜요. 괜찮아요.”

  민화의 말을 마지막으로 세 사람은 각자 창연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며 사무소로 걸어갔다. 서로 생각하는 것은 각자 차이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그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의문스러운 초점이 맞춰졌다.

  그 중에서도 소인은 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에 대한 반감이 더욱 더 거세졌고, 조만간 결판을 낼 것이라 굳게 다짐했다.

 

 

 “잠깐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쩐지 시영이가 전화도 안 받더라니…”

  사무소에 도착한 세 사람은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해성의 비서인 서연의 퇴원 관련으로 그녀의 가족들과 해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대화는 끝나고 있었다.

 ‘병원에서 본 리본 여인이었군. 그나저나 조금 의외인 걸? 장미 양이 저 리본 여인의 동생이었다니…’

  고속은 구석에서 노바와 놀고 있는 장미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서연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했다. 특히 장미는 자신이 준 알에서 나온 자그마한 새끼 드래곤을 소중히 키우고 있었다. 노바도 그 동물을 소중히 대했고, 고속은 그런 모습에 흐뭇함을 느꼈다.

 ‘마법사?’

  민화는 서연의 옆에 앉은 두 명의 후드를 쓴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았다. 음산한 느낌이 드는 후드로 눈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기회를 봐서 저 방에 들어가야 해. 하지만 난 지금 시영이형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없어. 어떻게 하지?’

  소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영의 방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그의 노트 덕분에 그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매개체의 위치를 알게 된 것과 현재 시영이 없는 게 확실하다는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명분이었다. 시영의 과거에 대해 들으러 온 것이었기에 이야기의 초점은 그에게로 맞춰질 것이었고, 그렇다는 건 은근히 그의 방을 비롯한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예의주시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소인은 그에게 은근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유마의 방에서 그에게 외친 ‘거짓말쟁이’는 본인의 마음을 속이고 있는 그에 대한 불평이었다. 진심으로 그런 건 아니었고, 기회를 봐서 사과하려 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그가 언론에 거짓말쟁이로 낙인 되었고, 소인은 자신이 내뱉은 한 마디 때문에 그런 것이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창연에게는 분노 섞인 연민을 시영에게는 원망스러운 미안함을 가진 그였기에, 마음은 더욱 더 복잡했다.

 “아무래도 민화 씨를 제외하고는 저희들은 시영이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탐정님께 와서 시영이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게 아무래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서요.”

  고속이 대표로 해성에게 모든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가 포우였다는 것을 비롯해 창연이 그를 죽이려 한 점, 그리고 여러 가지로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까지 그에게 말했다.

 “고속 씨라 하셨죠? 고속 씨는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것에 망설임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해성의 나지막한 말에 고속은 흠칫 놀라 소름이 돋았다. 그가 말한 것처럼 고속은 시영에게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는 이런 행위가 옳은 것인지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전 포우에 대해 알려 했고, 녀석이 포우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망설임이 있어도 알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고, 해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포우라… 역시 강 탐정님입니다. 그런 영웅을 제자로 두고 계셨다니…”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서연의 아버지는 해성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후드를 쓰고 있기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보였던 그의 입모양은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해성의 표정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안 것 까지는 좋았었지만, 막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아무튼, 서연 양은 3일 동안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탐정님.”

  서연은 도도하면서도 상사를 대하는 이상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도도한 모습에 고속, 소인은 은근히 긴장되는 느낌에 몸을 움츠렸고, 민화는 그녀의 멋진 모습에 은연 중 동경어린 시선을 보냈다.

 “장미야 가자.”

 “가, 가야해?”

  장미는 새끼용을 쓰다듬다 말고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거렸다. 애꿎은 새끼용만 새까만 연기를 내뿜으며 자그마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럼 여기 있을 거니?”

  서연은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과 말투는 어린 장미에게는 무섭게 느껴졌다. 단순히 의견만 물었음에도 장미는 그녀와 시선을 전혀 마주치지 못했다.

 “노바랑 용용이랑 시끄럽게 떠들면, 여기 계신 분들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그, 그래도…”

  장미의 눈은 눈물이 고여 일렁이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무거워진 분위기는 누군가 나서 수습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서연의 도도한 분위기에 눌려 함부로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그녀의 분위기에 구애받지 않은 해성이 손을 들었다.

 “서연 양? 좀 더 부드럽게.”

  해성은 서연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그녀는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자신의 표정을 확인했고, 흠칫 놀라 손가락으로 입 꼬리를 강제로 올렸다.

 “흠흠, 장미야. 시끄럽게 하지 않을 거지?”

 “응! 약속할게! 노바랑 용용이랑 조용히 놀다 갈게! 그치 용용아?”

  용용이는 그녀의 마음에 화답하듯 입을 벌려 새까만 연기를 내뿜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서연과 장미의 부모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해성과 세 사람은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렇게 서연과 그녀의 부모님이 사무소를 떠나고, 노바와 장미는 노바의 방으로 들어갔다.

 

 

 “멋진 여성이네요.”

  고속이 서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병원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도도한 모습이었다. 장미가 도도함에 집착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도 다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해성의 물음에 고속, 민화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고속 씨, 민화 씨. 다들 좋은 이름이군요.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 사무소의 소장 ‘강해성’이라 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해성은 친절한 중년 신사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겨댔다. 나이가 지긋함에도 그들에게 기꺼이 고개 숙여 인사했고, 격식 없는 편안한 분위기에 세 사람도 그와 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시영이의 과거인가요?”

 “네, 저희는 시영이의 과거를 알고 싶습니다!”

  고속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잠깐만요. 뭔가 이상한데요?”

  그때 소인이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모두의 이목은 자연스레 그에게 집중되었고, 소인은 마치 명탐정이라도 된 것 마냥 한껏 폼을 잡으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민화 누나는 시영이형의 친구였죠?”

 “응? 나? 맞아.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지.”

  민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맞장구쳤고, 소인은 한껏 우쭐대며 이를 보이며 미소 지었다.

 “과거라면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민화 누나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굳이 왜 바쁘신 탐정님을 귀찮게 하려 여기 온 거죠? 그리고 누나도 왜 그렇게 모른 척만 하고 계시는 거죠?”

 “인마, 네가 오자한 거잖아.”

  곁에서 그의 말을 계속 듣던 고속이 참다못해 그를 제지했다. 사실에 근거한 고속의 발언에 소인은 숨을 빨아들이며 입을 오므렸고, 멋을 낸 자세는 점점 요상하게 변해갔다.

 “소인아, 네 말이 맞긴 한데, 나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어. 말 할게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다 말했을 거야.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조금 부끄러운데,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시영이와 친구로 지냈어도, 나도 걔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

  민화는 말을 하며 점점 고개를 숙여갔다. 또한 탐정 사무소의 복고적인 분위기에 취해 마치 명탐정처럼 행동했던 소인은 그녀의 진심어린 한 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것도 반박할 수 없었다.

 “민화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모르니까 말 안한 것 정도는 대충 눈치로 알아야 하지 않니…”

  그에 더해 쐐기를 박는 고속의 눈빛에 소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오리처럼 입을 삐죽 내밀며 구시렁대는 모습에 민화와 해성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소인아. 그리고 방금 전 그 모습은 정말 명탐정 같았어.”

 “정말이에요? 누나?”

  민화는 해바라기와 같은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해성도 마찬가지로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소인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손가락으로 고속을 조롱했다.

 ‘저 자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소인의 자신감에 고속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증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소인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혀를 뱀처럼 날름거리며 그의 화를 돋우었다.

 “자자, 그만들 하시고. 음, 제가 뭘 말해드려야 할지.”

 “왜 그러시죠?”

  해성은 난처해보였고, 고속이 이유를 물었다.

 “저와 시영이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라고 불릴 만큼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라서 말이죠. 소인 씨의 말처럼 민화 씨에게 묻는 게 더 나을 것 같지만… 정작 민화 씨도 말해줄 게 없다고 하니…”

  해성의 말이 끝나자 소인은 코를 시큰거리는 훌쩍였고, 고속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세계 현상?”

  민화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이상 세계 현상?”

 “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고, 창연이라는 분도 그 사건과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시영이와 창연 씨의 어느 정도의 연관 점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두 사람에게 공통적인 점은 ‘이상 세계 현상’이잖아요.”

  그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은 말이었다. 세 사람은 창연의 과거를 알았으니, 시영의 과거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점에서 그들이 이곳으로 온 것이었지만, 고속은 필요 이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소인은 창연을 신경 쓰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보이는 민화의 의외의 모습에 그녀가 점점 다르게 보였다.

 “누나 굉장해요!”

 “헤헤, 고마워.”

  해성은 그녀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리고 잘 됐습니다. 실은 저도 알려 드릴게 이상 세계 현상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해성은 웃음을 지으며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은 갑작스런 그의 이동에 의아했지만, 곧 그가 가져온 다과와 주스, 커피를 보며 밝은 표정으로 반겼다.

 ‘와!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건데.’

  민화는 익숙한 맛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과를 입에 물었다.

 “먹으면서 들어주시죠. 6개월이나 지난 일이지만,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말해드리겠습니다.”

  해성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6개월 전, 그날에 저와 서연 씨, 그리고 시영이, 세 사람은 경찰들과 함께, 이상 세계 현상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을 구조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죠.”

  민화는 천천히 우물거리던 과자를 꿀꺽 삼켰다. 그 날의 일이 새록새록 기어나는 것 같았다.

 “저도 구조하던 당시, 포우를 봤었습니다. 칠흑의 어둠 속이었지만, 그의 검은 몸과 투명하게 빛나는 두 눈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무슨 눈이요?”

  소인이 주스를 마시던 중, 그에게 끼어들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눈이었습니다.”

 “저희가 본 건, 분명… 아!”

 

  소인의 머릿속에선 순간적으로 예전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것은 이상 세계 현상의 영향으로 소인의 집이 무너지던 때였다. 소인과 소민은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무너진 집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어린 소인으로서는 도망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무서움을 느껴 자신의 형인 거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거인은 무너진 건물 잔해에 다리가 깔려 움직일 수 없었다.

  항상 거대한 기둥같이 소인 쌍둥이를 지켜주던 그가 꼼짝없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자 소인의 마음은 무거운 짐이 떨어진 것처럼 덜컹 내려앉았다.

  소인을 안심시키려 괜찮다 말하는 거인이었다. 하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은 그의 모습과 점점 무너지려 하는 집의 상태는 소인의 모든 것을 앗아가기 위해 나타난 악마의 소행처럼 느껴졌다.

 ‘대체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우리 집 뿐만이 아니야… 왜 혜성 시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짓을 당해야 하는 거지?’

  그렇게 원망만 늘어가던 그때 나타난 존재가 바로 검은 전사 포우였다.

 

  소인은 당시 그의 모습을 가까이서 봤었고, 해성의 말대로 그가 ‘투명한 눈빛’이었다는 걸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소인 씨?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해성이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확실히 투명한 눈빛이었어요. 몸도 검은색이었고요.”

  소인은 확신에 찬 말투로 주먹을 쥐며 말했다. 하지만 고속은 그가 말하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그런데 우리가 본 포우는 붉은 눈빛이었잖아. 몸은 하얗다가 빨갛게 변했고.”

  고속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에 말할 수 있었다. 직접 본 포우의 모습은 확실히 붉은 눈빛이었다. 몸의 색은 그가 잘 알지 못했기에 확신할 수 없었지만, 몸이 바뀌더라도 눈빛만은 바뀌지 않았기에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혹시 시영이가 포우가 아닌 게 아닐까요?”

  차를 한 모금 마신 민화가 손을 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논점을 벗어난 의견에 세 사람의 시선은 그녀를 향해 집중되었다.

 “뭔가 저도 그렇게 느껴져요. 확실히… 시영이형이 변한 포우는 그때와는 뭔가 달랐던 것 같고…”

 “그럼 네가 시영이에게 느꼈던 그 느낌은 뭐지? 그에게 느꼈던 질투는 포우라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만?”

  고속은 병원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말했다.

 “고속이형?”

 “네가 시영이에게 느낀 질투는 사실상 걔를 포우라고 생각하면 말이 되는 거잖아. 네가 걔를 거짓말쟁이라 한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걔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질투심의 이유가 포우라고 하면 얼추 들어맞는 것 같은데?”

  소인도 병원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시영에 대해 생각했다. 완전히 들어맞는 건 아니었지만, 고속의 의견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긴 했다.

 “그, 그렇지만! 전 당시에 시영이형이 포우로 변할지는 정말 몰랐어요. 고속이형 말대로 시영이형에게 질투를 느낀 건 맞아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이유와 거짓말쟁이라 한 이유는 시영이형의 비밀 노트 때문이에요.”

 “비밀 노트?”

  소인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특히 해성은 전혀 알지 못했던 그의 물건에 유독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영이형이 자신의 심경을 적어놓은 노트에요. 이상 세계 현상을 비롯해서 형의 다양한 마음이 담긴 비밀스러운 물건이죠.”

 “그런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비밀 노트인데 이미 들켜버린 이상 비밀이 아니잖아?”

  고속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 말에 소인은 흠칫 놀라며 우물쭈물 거렸다.

 “시, 시영이형은 몰라요. 제가 실수로 본 거라…”

 “그래서 그 노트의 위치는 어디죠?”

  해성의 물음에 소인은 시영의 책장, 요리책 사이라 말했다. 해성은 그 말을 듣고 즉시 그의 방으로 이동해 시영의 비밀 노트를 꺼내왔다.

 “자, 다 같이 보도록 하죠.”

 “본인의 허락 없이 봐도 괜찮을까요?”

  해성이 그의 노트를 열기 직전, 민화가 다급하게 말했다.

 “당연히 안되죠. 하지만, 남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영이라면 노트를 본 것으로는 화내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이 단순히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이 노트의 내용을 발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하는 행동입니다.”

  해성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민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노트를 본 네 사람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 쓰인 것처럼 시영이는 이상 세계 현상 당시에도 빨리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죠. 물론 저도 당시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읽어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가는군요.”

  해성은 식어버린 커피를 쭉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씁쓸함은 시영의 심정인지, 커피의 맛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형이 포우라고 생각되니까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형은 영웅이고 영웅의 고독함을 노트에 적은거야.’

  소인은 다과를 우적거리며 흥분되는 마음을 억눌렀다. 그는 시영이 포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다시 본 노트의 영향으로 점점 그가 포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영웅의 고독. 소인이 동경하던 멋진 외로움이다. 소인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콧바람을 세차게 내쉬었다.

 “시영이가… 왜 이런 괴로움을 받아야 하는 거죠?”

  민화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나지막이 읊었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한기에 해성, 고속, 소인은 깜짝 놀라 그녀를 조심스레 바라봤다.

 “미, 민화 씨?”

  해성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민화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눈시울은 석양처럼 새빨갰고, 눈가에 맺힌 맑은 거품 같은 눈물은 불안하게 떨렸다.

 “시영이는 포우가 아녜요!”

  민화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그에 맞춰 고속은 근처에 있는 휴지 서너 장을 그녀에게 건넸다.

 “누, 누나. 직접 보셨잖아요. 시영이형은 포우에요. 붉은 눈이든 투명한 눈이든 시영이형은 영웅이에요! 영웅의 고독. 얼마나 멋진 말이에요.”

  소인은 그녀에게 조심스레 반박했다. 전면으로 포우를 부정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자의 눈물에 약한 소인이었기에 그저 그녀를 달래기 위해 티내지 않았다.

 “영웅의 고독? 그게 뭐가 중요해? 포우도 한 사람의 인간일거야. 고독은 좋지 않아. 그리고 시영이는 그저 평범한 하나의 시민일 뿐이야. 왜 걔가 고독해야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해?”

  민화는 핏대서린 외침에 고속과 해성은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영웅은 대의를 위해 필연적으로 고독할거예요.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가 행복해진다. 뭐, 영웅과 대립하는 악당은 예외겠지만요.”

  소인은 그녀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영웅의 희생과 고독, 그리고 한 사람의 희생을 이해하지 못했고, 소인도 그녀가 생각하는 희생은 옳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창연과 시영. 어느 정도는 닮았을지도 모르겠군.’

  고속은 커피에 설탕을 넣으며 홀로 생각했다.

  단지 시영과 창연이 싸운 이유를 서로의 과거를 앎으로서 해결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유는 조금씩 다른, 어딘가 비슷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들이 나서기엔 너무나도 큰 참견이 되어있던 상태였다.

  그들로선 그들을 이해하는 것밖에 해줄 수 없었다. 고속은 그걸 너무나도 잘 느껴버렸고, 설탕을 듬뿍 녹인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는 것으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미안함을 달랬다.

 “전, 시영이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젠 확실하게 알 수 있어요. 전 희생은 옳지 않다 생각해요. 그리고 시영이는 혼자 희생해서 모두를 위하려 하고요. 이상 세계 현상 때도, 지금도…”

  민화는 떨리는 몸을 애써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가도 괜찮을까요?”

 “아, 예. 편하신 대로…”

  민화는 정중하게 인사한 뒤, 사무소를 빠져나왔다.

 “나 참, 누나는 왜 고독의 멋짐을 이해 못하는 거야.”

  소인은 불퉁거리며 두 손을 뒷머리에 가져다댔다.

 “글쎄? 난 두 사람 모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라서.”

  고속은 달달해진 입 속을 혀로 닦으며 말했다.

 “고속이형,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난 두 사람에게 각각 이걸 묻고 싶어. 민화 씨에게는 ‘희생 없는 행복’이 있는지 궁금하고, 소인이 너에겐 희생이 옳은지에 대한 것을 묻고 싶어.”

 “당연히 희생이 있어야 행복이 있는 것 아닌가요? 영웅들은 그것 때문에 되도록 최소한의 희생을 위하고, 어느 정도의 공익을 위한 희생은 옳죠! 그런데 왜 갑자기 행복이라는 소리를 한 건가요?”

 “시영이 노트에 쓰여 있는 내용이 대체로 이런 것 아냐? 모두를 위해 각오를 다지고, ‘내가 하는 일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잖아? 내가 생각하기엔 녀석이 원하는 건 모두가 행복한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것 같아서.”

  소인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며 고개를 슬슬 끄덕였다. ‘이상향’이라는 멋진 단어에 소인은 헤벌쭉 웃으며 포우의 멋짐을 생각했다.

 “강 탐정님, 이거 말고 더 해주실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고속의 물음에 해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게 끝입니다. 이상 세계 현상에 관련된 시영이의 과거는 말씀드린 대로 ‘저희와 같이 사람들을 구조했다.’가 다입니다.”

 “그렇군요. 아쉽네요.”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해성은 미안함이 담긴 목소리로 조심스레 그에게 사과했다.

 “아, 아녜요. 탐정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죠. 그것보다 소인아.”

 “왜요 형.”

  소인은 기다란 다과를 조금씩 끊어먹으며 대답했다.

 “이제 어떻게 할래?”

  고속의 한 마디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소인은 어렴풋이 그의 말뜻을 눈치 챘고, 피식 코웃음을 치며 다과를 꿀꺽 삼켰다.

 “전, 시영이형이 포우라고 생각되고, 여전히 영웅은 고독이 따른다는 생각이거든요.”

 “그거 잘됐네. 난 여기서 발을 뗄 생각이거든.”

  고속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소인은 그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고속이형…?”

 “네 말대로 시영이의 행동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있었어. 그렇기에 난 이쯤에서 발을 뺄 생각이야. 생각해봐. 네 말대로 영웅에는 고독이 따르지. 하지만 그걸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영웅은 이해하기 힘든데, 그런 영웅의 고독을 충분히 해결해줄 수 있을까?”

  고속은 마시다 만 주스를 들어 들이켠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어쭙잖은 참견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일으킬 수도 있지. 그래서 난 여기서 빠지겠어.”

  고속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해성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러고선 사무소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영웅적 고독이라… 그만큼 멋지면서도 어리석은 행동은 없겠지. 시영이도 창연이도 모쪼록 잘 해결했으면…’

  고속은 사무소 문을 닫았다. 어느덧 다과는 바닥을 보였고, 거실에는 해성과 소인만이 남았다.

 “그럼 저도 슬슬 가볼게요. 주말이라 그런지 저희 형이랑 소민이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해서요.”

  소인도 그에게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해성은 밖을 향하는 소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모쪼록 다들 잘 해결했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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