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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굿나잇 파트너
작가 : 나비야
작품등록일 : 2018.6.11

“누워.”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시운이 젖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털었다. “둘이서 누워도 충분할 만큼, 침대도 가장 큰 거로 바꿨으니까.” 그 남자, 자꾸만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려 한다! [navi_yaa@naver.com]

 
<8> …우리 키스했어요?
작성일 : 18-06-21 12:12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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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우리 키스했어요?

 

  닿았다.

 

 “…….”

 

  입술이.

 

  시운은 그 상태로 굳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사고 아닌 사고를 친 로연은 이미 풀썩 쓰러진 상태였다. 로연은 시운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운은 뻣뻣하게 굳어있기만 했다.

 

  처음이었다, 이런 감각은.

 

  그저 손을 잡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히 손만 잡았을 때는 따스한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면, 입술이 맞닿았던 찰나에는 거친 불길이 몸속에서부터 빠르게 퍼지는 기분이었다.

 

  그 감각은 뼛속까지 파고들던 추위를 모조리 녹이고, 또 날 선 추위가 들어올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강렬한 열기였다.

 

  입술이 닿았던 순간은 찰나일 뿐이었으나, 시운에게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함을 선사했다.

 

  몸 전체가 굳어버릴 정도로.

 

  쉽게 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는 경험이었다.

 

 “…….”

 

  겨우 정신을 차린 시운의 시선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얼굴을 내려다봤다.

 

 “…이봐요.”

 

  쿡, 시운은 손끝으로 로연의 어깨를 가볍게 찔러봤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이봐요, 난로연 씨.”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꾹 감긴 두 눈은 다시 열릴 생각조차 없는 듯 보였다.

 

  시운은 보이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믿는 것도 아니면서 이토록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로연의 집 주소를 아는 것도 아니니,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함부로 시운의 집에 갈 순 없다며 도끼눈을 뜨고 반박하던 로연을 떠올린 그가 자그마한 실소를 흘렸다.

 

 “그건 고도의 연기였나, 난로연 씨.”

 “…….”

 

  나지막하게 묻는 말에도, 로연은 답하지 못했다.

 

 

   *  *  *

 

 

 “으음…….”

 

  로연은 자꾸만 뒤척거렸다. 푹신한 공간은 안락하기 그지없었지만, 짙은 더위가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더워.’

 

  다소 과장을 보태자면, 땀이 뻘뻘 날 지경이었다.

 

  로연은 더위를 피하고자 입고 있던 상의 단추를 하나둘씩 풀어헤쳤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단추가 풀어졌다.

 

  단추가 하나, 둘, 그리고 셋…….

 

  세 번째 단추를 풀어내려던 찰나, 단호한 손길이 로연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하, 진짜 미치겠네.”

 

  익숙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은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로연은 지금 당장 옷을 벗는 게 가장 중요했다.

 

  너무 더웠다. 옷을 벗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

 

  로연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길을 떨쳐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난로연 씨, 정신 좀 차려봐요.”

 “더워, 덥단 말이야….”

 “…보일러 다 껐으니까 조금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붙잡힌 두 손이 불편했다. 로연은 얼굴을 가득 찡그린 채, 자신을 이토록 불편하게 만든 이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래서 열리지 않던 두 눈을 억지로 번쩍 떴다.

 

 “어…….”

 “…드디어 정신 좀 차렸습니까?”

 

  눈앞에는 시운이 있었다. 로연은 멍한 얼굴로 두 눈을 깜빡였다.

 

 “…왜, 채시운 씨가 여기 있어요?”

 “왜겠습니까.”

 “…….”

 

  흘끗, 로연은 위를 올려다봤다. 시운의 양손이 자신의 두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 자세 때문에, 시운은 로연의 몸 위에 올라타 있는 자세였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

 

  상의 단추가 두 개씩이나 풀어져 있었다. 로연의 얼굴에 당혹감과 불쾌감이 스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설마, 지금 오해하는 겁니까?”

 “오해는 무슨 오해…!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오해죠?”

 

  시운의 눈썹이 들썩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로연이 그나마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다행이기는 했다.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린 건 굉장히 불쾌했지만.

 

  시운은 푹 한숨을 내쉬며 두 손에 쥐고 있던 로연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는 듯하던 자세에서도 벗어났다.

 

 “지금 화내야 할 사람은 난로연 씨가 아니라 접니다.”

 “하? 그쪽이 왜요?”

 

  손목이 자유로워지자, 로연은 잽싸게 상의 단추를 다시 잠갔다.

 

 “정말 기억 안 납니까?”

 “지금 일부러 말 돌리려고 이러는 거죠?”

 “난로연 씨가 나한테 입 맞춘 거.”

 “……예?”

 “기억 안 나는 겁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로연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두 눈만 크게 떴다.

 

 “…내가 뭘 해요?”

 “나한테 입 맞췄습니다.”

 “무슨 그런 거짓말을…….”

 “말했을 텐데요. 난, 거래 상대한테는 거짓말 안 한다고.”

 “……진짜로 내가 그랬다고?”

 

  시운은 단호하게 고갤 끄덕였다. 로연은 황당하다 못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미간을 가득 찌푸리며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 그럼 내 옷 단추가 풀려있었던 건 뭔데요?”

 “난로연 씨가 직접 풀었습니다.”

 “…내가 직접?”

 “덥다고 난리였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덥기는 진짜 더웠다.

 

  뒤늦게서야 로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큼지막한 방 안은 고급스럽고 깔끔한 인테리어였다.

 

  그 방 침대 위에 로연이 누워 있었다. 시운은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굳이 묻지 않더라도, 로연은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여기가…….”

 “내 집입니다.”

 

  역시나.

 

 “난로연 씨가 누워있는 건, 내 침대고.”

 

  여긴 이 남자의 집이었다.

 

 “…여기 왜 이렇게 더워요?”

 “덥습니까? 난 전혀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이렇게 더운데?”

 “보일러 껐으니까 금방 내려갈 겁니다.”

 

  보일러? 지금 이 더위가 보일러 때문이라고?

 

  침대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 로연이 바닥에 발을 짚었다.

 

 ‘아, 뜨거워…!’

 

  불에 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집에서 보일러를 틀어놓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뜨거웠다.

 

  방 안 전체가 후끈후끈 달아오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도대체 보일러를 얼마나 틀어놓은 거예요?”

 “난 항상 이렇게 틀고 지냅니다.”

 “항상? 안 더워요?”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할 겁니까? 난, 온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시운은 계속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밤에 잠들어보려고 보일러를 최대치로 켜놓다 보니 그런 겁니다.”

 

  혹시나 싶어, 시운은 항상 집안 보일러를 최대한으로 켜놓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는 추위 속에서 살았다.

 

  집 안에 있는 보일러도, 난로도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게 뭔지, 오늘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얕은 희망이 자꾸만 그를 미련하게 했다.

 

  어차피 안될 걸 알면서도, 이렇게 더울 정도로 집안에 보일러를 틀어놓았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놀러 오면 덥다고 안 해요?”

 “내 집에 들어온 건, 난로연 씨 당신뿐입니다.”

 “…내가 처음이라구요?”

 

  그랬다.

 

  시운은 이제껏 그 누구도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았다. 친구라고 할 법한 사람도 딱 한 명이 고작이었다.

 

  비즈니스적인 관계는 제법 널려 있지만, 사적인 관계는 협소했다.

 

  지금껏 시운이 로연에게 입이 닳도록 말했던 이유 때문이었다.

 

  온기를 느낄 수 없어서.

 

  게다가 타인과 접촉하면 날카로운 추위가 더 짙게 다가오는 까닭에, 시운은 지금까지 타인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어쩐지, 로연은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그래도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사람들도 집에 초대 안 했어요? 친구라던가, 애인이라던가….”

 “그것도 이미 말했습니다. 지금 내 애인은 난로연 씨라고.”

 “…나 말고,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이요.”

 “없습니다.”

 “……예?”

 

  아니,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가 아니었다.

 

 “과거에 사귀었던 사람, 없다고요.”

 “…한 명도?”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에이, 그래도 썸 탔던 사람은 있었을 텐데……?”

 

  굉장히.

 

 “없었습니다.”

 

  아주.

 

 “난로연 씨가 처음입니다.”

 “…….”

 

  너무나.

 

 “고로, 내 입술 가져간 것도 난로연 씨가 처음이죠.”

 

  부담스러워졌다.

 

  어느 순간, 로연의 머릿속에 어떠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주 차가운 입술과 자신의 입술이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이었다.

 

 ‘……나 정말 사고 친 거야?’

 

  단순히 입술만 스친 건지, 아주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는지는 아직 모호했다.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 키스했어요?”

 “말은 바로 합시다. ‘우리’가 아니라 ‘난로연 씨’가 한 거겠죠.”

 “아, 아무튼……! 했냐구요, …키스.”

 

  대답은 곧장 나오지 않았다.

 

  시운은 대답 없이 로연의 얼굴만 빤히 응시했다.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아무래도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인데.”

 

  휙, 로연의 상체가 다시 뒤로 넘어갔다. 시운이 그녀의 팔을 붙잡아 넘어뜨렸다. 기다란 그림자가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탔다.

 

 “…뭐해요, 지금?”

 “기억나게 해줄까요.”

 

  나직한 목소리가 조금 위험하게 들린 건 착각일까. 로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키스를 했는지, 안 했는지.”

 

  금방이라도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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