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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굿나잇 파트너
작가 : 나비야
작품등록일 : 2018.6.11

“누워.”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시운이 젖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털었다. “둘이서 누워도 충분할 만큼, 침대도 가장 큰 거로 바꿨으니까.” 그 남자, 자꾸만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려 한다! [navi_yaa@naver.com]

 
<5> 연애와 결혼과 거래
작성일 : 18-06-18 14:41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5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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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연애와 결혼과 거래

 

 “당장 갑시다.”

 

  이 남자, 이렇게 들이대는 걸 어쩌면 좋을까. 로연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내 집으로.”

 “…아니, 안 간다니까요.”

 

  벌써 몇 번째 반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운은 일단 본인의 집으로 가자고 제안했고, 로연은 극구 사양하는 중이었다.

 

 “우리 거래 내용 잊었습니까?”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의 거래 내용.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게 우리 거래입니다.”

 “…그건 알죠. 아는데…….”

 

  둘이서 함께 밤을 보낸다. 그게 바로 거래 조건이었다.

 

  계속 이렇게 레스토랑에서 밤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 집에 덜컥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럼 난로연 씨 집으로 가도 됩니다.”

 “그건 더 안 되죠!”

 

  이 남자는 무슨 마음이 이렇게 급한 건지……. 로연이 두 눈을 샐쭉 찢었다.

 

  바로 그때였다. 로연을 구원해줄 무언가가 울린 것은.

 

  핸드폰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소속사 대표님이었다. 조금 전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차마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자리를 피하려면 이 방법밖엔 없어……!’

 

  저 남자의 집으로 가느냐, 대표님께 한 소리 들으러 가느냐.

 

  둘 중에서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였다. 로연은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대표님!”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음성에 노여움이 가득했다. 로연은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크나큰 고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죄송해요, 일이 좀 있어서….”

 [일? 무슨 일? 지금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말도 안 되는 연애 기사가 터졌는데?!]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정말 귀청이 뜯어질 듯한 고함이었다. 로연은 핸드폰을 멀찍이 가져간 채 푹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금 로연이 말문을 열려던 찰나, 손에 들고 있던 무게감이 쑥 사라졌다.

 

 “안녕하십니까. 채시운입니다.”

 “이봐요…! 지금 뭐하는……!”

 

  핸드폰을 확 낚아챈 시운은 겁도 없이 소속사 대표님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마침 난로연 씨도 지금 저와 같이 있으니 함께 가겠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운은 제 할 말만 하고서 툭 통화를 끊었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일어나요. 지금 가야 하니까.”

 “아니, 왜 남의 전화를 멋대로 뺏어가냐구요.”

 “어차피 언젠가는 만나 봬야 할 분인데, 빨리 끝내놓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나, 뭐든 질질 끄는 건 질색합니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시운이었다.

 

 

   *  *  *

 

 

  서 대표는 본인 눈앞의 연인을 번갈아 응시했다.

 

  오늘, 그리고 지금까지도 실시간 검색어를 뜨겁게 오르내리고 있는 두 사람을…….

 

 “둘이 어떻게 만난 건데?”

 

  서 대표는 다리를 꼰 채 물었다.

 

 “우리 병원 옥상에서 만났습니다. 우연한 만남이었죠.”

 

  시운이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정말 신화 병원의 옥상에서였으니까.

 

  고작 닷새 전에 있었던 만남이었지만 말이다.

 

 “제가 첫눈에 반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려웠다. 실제로, 시운이 먼저 그녀에게 거래를 제안했으므로.

 

 “그래서……”

 

  서 대표의 눈동자가 기민하게 빛났다. 서 대표는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연예계에서 몇 안 되는 여성 대표이기도 했다.

 

  로연과 소윤, 그리고 재헌은 그녀가 막 기획사를 설립했을 당시에 발굴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을 키워온 것과 같았다.

 

  아역 때부터 그녀와 함께 연기를 시작한 그 아이들은 서 대표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공개연애를 하고 싶으니, 열애 인정 기사를 내달라는 말이지.”

 

  아직 두 사람의 연애를 인정하는 기사는 나가지 않았다. 그저 ‘열애설’만 퍼졌을 뿐. 이제는 그 열애를 인정한다는 기사만 남았다.

 

  그러나 소속사와 상의 없이 열애 인정기사조차 멋대로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담판을 지으러 온 것이다.

 

  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공개연애, 해야겠습니다.”

 “이봐요, 채시운 씨. 아직 로연이는 배우로서 제대로 빛조차 못 본 아이예요. 그런 아이를 공개연애로 발목 잡겠다는 뜻인가요?”

 “발목을 잡을지, 날개를 달아줄지는 대봐야 아는 거죠.”

 

  그야말로 자신만만한 어투였다.

 

 “날개를 달아줘?”

 

  서 대표는 우스운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실소를 흘렸다.

 

 “그러다 헤어지면?”

 

  일순 서 대표의 날카로운 눈빛이 시운에게 향했다.

 

 “헤어지면, 채시운 씨 당신은 상관없겠지. 연예인이 아니니까. 게다가 여자가 아니니까.”

 “…….”

 “하지만 우리 로연이는 달라요. 아직 아무런 힘도 없는 무명 배우고, 더군다나 여자란 말이에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요?”

 

  서 대표에게는 자신의 소속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다 소중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을 뽑자면, 그건 고민할 것도 없이 로연이었다.

 

  부모가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왔던 로연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키우다시피 했다. 정말 친딸처럼 키워왔다.

 

  그런 로연이 아직도 배우로 이름을 날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서 대표가 가장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지금 현실이 그래요. 남자 연예인과 여자 연예인이 스캔들이 나면, 여자 쪽이 욕을 듣죠. 여자 연예인에게 스캔들은 치명적입니다. 스캔들만 나도 그 정도인데, 공개연애까지 하다가 헤어지면?”

 

  서 대표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로연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헤어진 다음에 우리 로연이 이미지는? 그 이후에 배우 인생은? 그건 다 누가 책임지죠?”

 

  시운과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결코 아니었다.

 

  그 어떠한 ‘사랑’에도 끝은 존재하건만, 사랑이 없는 연애에 끝이 있는 건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 거래가 끝이 나면, 애초에 시운이 제안했던 100일이 지나면 우스운 공개연애도 끝이 날 테니.

 

 “…그 부분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인정하죠.”

 

  시운은 담백하게 대꾸했다.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이 의외였던 모양인지, 서 대표의 눈썹이 작게 꿈틀댔다.

 

 ‘마냥 건방진 녀석인 줄 알았더니…….’

 

  자신만만하게 날개를 달아줄 거라 말하던 모습만 봤을 땐, 자신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건만.

 

  예상과 달리 시운은 자신의 짧았던 생각을 인정했다.

 

 “저는 연예인도 아니고, 말씀하셨다시피 남자니까 미처 난로연 씨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운의 목소리에는 또렷한 단단함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난로연 씨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미심쩍은 서 대표의 시선을 올곧게 마주한 채, 시운은 말을 이어나갔다.

 

 “결혼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

 

  이건 서 대표뿐 아니라, 로연까지 놀라게 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로연은 애써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시운의 돌발 발언에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면, 눈치 백 단인 서 대표에게 들켜버리고 말 테니까.

 

 “…결혼?”

 “예.”

 “그 정도로 진지한 사이야?”

 

  이번에는 시운이 아닌, 로연을 향한 서 대표의 물음이었다.

 

  로연은 침착함을 가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대표님.”

 

  일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만든 시운에게 당장에라도 무어라 말을 쏟아내고 싶었으나, 서 대표의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로연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는 시운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이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요.”

 “…….”

 “그러니까 허락해주세요.”

 

  시운은 로연이 붙잡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따스한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몸 전체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고작 이렇게 손이 닿는 것만으로 이럴진대, 그녀를 품에 안으면 이보다 더 짙은 온기를 만끽할 수 있을 터였다.

 

  나쁜 마음으로는, 지금 당장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

 

  꽉 끌어안고,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 온기를, 이 따스한 체온을 단 한 순간도 잃고 싶지 않았다.

 

  서 대표는 두 사람이 마주잡은 손을 한 번, 그리고 각자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응시했다. 그리고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네.”

 

  로연은 최대한 씩씩하게 답했다.

 

  후회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로연은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기로 했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더는 자신을 기만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

 

  지금은 나중에 일어날 일보다, 그저 눈앞에 닥친 일만 생각하기로.

 

 “…어쩔 수 없지. 두 사람 각오가 그 정도라면, 그래. 한 번 해봐.”

 

  결국, 서 대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했다. 결혼 이야기까지 진지하게 오가는 사이라는데, 아무리 서 대표라 하더라도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열애 인정기사는 내일 아침까지 나갈 거야.”

 

  열애 인정기사……. 아직 로연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문득 아직 붙잡고 있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탓일까. 시운은 로연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얽혔다.

 

  깍지 낀 두 손은 더 깊게 맞물렸다.

 

 

   *  *  *

 

 

 “결혼이라니…….”

 

  대표실을 빠져나오자마자 짙은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몇 시간 전에 연애를 수락했더니, 이번엔 결혼이야?’

 

  진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진심이었어요?”

 “뭘 말입니까?”

 “결혼 말이에요.”

 

  설마, 그냥 해본 소리겠지. 로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난, 거래 상대에겐 거짓말 안 합니다.”

 “…다른 사람한텐 하고?”

 “필요하면 해야죠. 하지만… 거래는 서로 신뢰가 최우선이니까.”

 “그럼, 서 대표님한테 한 소린 거짓말이었겠네요?”

 

  시운의 ‘거래 상대’는 로연이었지, 서 대표가 아니었다. 그러니 서 대표에게 했던 결혼 발언은 거짓이 분명하다고, 로연은 그렇게 멋대로 결론 내렸다.

 

  어쩐지 진이 다 빠진 기분에, 로연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얼른 가요. 피곤해 죽겠네….”

 

  그러나 시운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로연의 등 뒤로, 나직한 목소리가 퍼졌다.

 

 “거짓말, 아니라면요.”

 

  멈칫.

 

  그녀의 두 걸음이 멈추었다.

 

 “거짓말, 아닙니다.”

 

  휙, 로연은 뒤돌아 시운을 응시했다.

 

 “내 결심이 그 정도라는 거. 알아줬으면 합니다, 난로연 씨.”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데요?”

 “아무리 나라도, 단순한 거래로 내 평생을 맡길 선택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벅저벅, 시운은 두 사람 사이에 벌어졌던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달라.”

 

  어느새 시운은 로연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난, 당신을 끝까지 책임질 각오까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

 “진심으로, 결혼까지 생각할 만큼.”

 

  그 정도로 이 거래가, 그녀의 존재가 시운에게 중요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으므로.

 

  또렷한 눈동자에는 자그마한 흔들림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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