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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7-1 오해
작성일 : 18-06-18 08:17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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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괜찮으세요?”

  시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계속해서 자신의 안부를 묻는 소인 때문이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 대신 계속해서 괜찮냐 묻는 탓에 시영은 눈만 깜빡였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시영은 한편으로는 그에게 미안함과 걱정스러움이 들었다. 평소 그가 밥을 자주 굶고 다니는 걸 알고 있었고, 더 챙겨주지 못해 이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찮으신 것 맞죠? 이런 그림 그리시지 말고 그냥 쉬세요!”

  소인은 시영의 노트를 뺏으려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시영도 뺏기지 않으려 노트를 꽉 잡았다.

 “너야말로 왜 이래? 괜찮은 거 맞아?”

 “됐으니까 형은 쉬세요!”

  두 사람은 안간힘을 벌였다. 시영은 소인의 의외의 힘에 잠시 놀랐지만,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그의 힘을 분산시키며 노트를 사수할 수 있었다.

 “비, 비겁해요. 갑자기 옆구리를 찌르다니…”

 “좋아. 난 지금 여유가 넘치다 못해 흐를 정도야. 무슨 일 때문인지 말해봐. 들어줄게.”

  시영은 의자를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소인은 입을 열어 무슨 일인지 설명하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마음의 서리가 내려 그럴 수는 없었다.

  노트의 내용은 그의 비밀 일기와도 다름없었다. 만약 그걸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버릴게 분명했다.

  소인의 왼 눈동자에는 현재 자신이 이러는 이유가 궁금한 시영의 모습이 보였고, 오른 눈동자에는 글로만 읽었던 그가 절망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너무나도 다른 두 개의 모습에 소인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그냥 심술이었구나?”

 “아, 아녜요!”

 “그럼 그냥 놀러온 거면 책이라도 읽을래?”

  시영은 그에게 책을 건네기 위해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소인은 빠르게 책장으로 이동해 양 팔을 뻗어 그가 책을 꺼내지 못하게 막았다.

 ‘얘 진짜 왜 이래?’

  시영이 책에 손을 가져다대려 하면 팔을 그곳에 뻗어 손을 쳐내며 꺼내지 못하게 막았다. 특히 요리비법이 적힌 책은 더더욱 철저하게 막아내었다.

 “소인아.”

 “네 형!”

 “휴우…”

  시영은 차마 욕은 하지 못했다. 대신 한숨을 땅이 닿을 정도로 쉬었다.

 “원하는 게 내 휴식이냐.”

 “맞아요. 형이 휴식을 취하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난 많이 쉬었는데? 그리고 이제 쉴 시간도 없어.”

 “그래도 하루 정도라도, 아니 한 달 정도?”

 “너 지금 정말 이상한 거 알지?”

 “형이야 말로 더 이상해요!”

 “내가 뭘.”

  이유나 들어 보자라는 심정이었던 시영은 그가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려 했다. 하지만 소인은 그때마다 말을 하지 못했고, 그에게 이유 없는 무조건적인 휴식만을 요구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봐봐 말도 못하면서.”

  시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소인은 이유를 말 할 수 없다는 답답함에 놓였고, 그가 자신의 마음을 그냥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어려운 바람까지 바라게 되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시영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시영은 그것이 유마에게 온 전화임을 확인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 유마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시영 군.”

 “무슨 일이세요?”

 “이제 슬슬 그 이야기를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이야기… 아! 그거요?”

 “그겁니다! 지금 제 연구실로 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유마가 시영을 부른 이유’인 ‘이상 세계 현상의 의문’이었다.

 “지금 당장 갈게요.”

 “알겠습니다. 주소는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조심히 오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고, 시영은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모자를 꺼냈다.

 “어디 가세요?”

 “아아, 이거 저번에 유마 씨하고 이야기하다 흐지부지된 건데, 이번에 그 이야기를 하러 가야해서.”

 “무슨 주제인데요?”

 “이상 세계 현상.”

  시영의 말을 들은 소인은 그를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의 노트에 쓰인 대부분의 고뇌는 바로 그 이상 세계 현상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지 마세요.”

 “왜?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형 대신 제가 갈게요.”

  소인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시영은 그를 무시한 채, 방을 빠져나왔다.

 “시영이형!”

  소인은 뒷목이 뻐근해졌다. 자신조차 이런 이유조차 대지 못하는 억지가 통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막상 먹혀들어가지 않았고 기분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소인은 조심스레 그의 노트를 원래 있던 곳에 꽂아놓고는 뒤늦게 그를 쫓았다.

 

 

 

 “하아, 너 정말 조용히 있어라. 시끄럽게 하면 누나한테 이상한 짓 하며 돌아다닌다고 일러버린다.”

 “어쩔 수 없어요. 이게 다 형을 위하는 일이니까요.”

  유마가 알려준 미르 코퍼레이션의 본사의 입구 근처에 도착한 시영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날 위해서라고?”

 “그래요! 형을 위해서…”

 “날 위한 거라면 더더욱 그러지 마. 이건 부탁이 아니야. 경고 겸 모두를 위하는 일이니까.”

  시영의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었지만, 그가 차갑게 노려보는 것만 같은 오싹함이 느껴졌다.

 “뭐, 소인이 너는 나보다는 너희 형하고, 소민이를 더 위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하하.”

  시영은 이내 그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강렬한 인상이 뇌리에 스쳐 그 웃음이 결코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분위기 한 번 살벌하네, 멀리서 볼 때는 호숫가 위에 올려 진 수정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시영은 맨입으로도 평화롭다 하기 힘든 이곳의 분위기에 살이 떨렸다.

 “잠깐 무슨 용무십니까?”

  경비원들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고유마라는 분이 절 찾는다고 해서요.”

 “교수님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경비원들은 헤드셋처럼 보이는 머리띠의 왼쪽 버튼을 눌러 어딘가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오오, 저런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형? 저거 한 달 전에 미르 코퍼레이션에서 나온 물건이에요.”

  시영은 처음 보는 세련된 머리띠에 감탄했지만, 소인은 그를 당황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래? 아, 미안해. 저런 거 관심이 별로 없거든. 그리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아, 참. 여행 다녀오셨죠? 그래도 저런 건 TV에서도 광고 많이 해주는데…”

  소인의 말에 시영은 입을 삐쭉 내밀며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박시영 씨 맞으신지요?”

 “네. 맞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런데 옆에 붙은 나소인 씨?”

 “네, 제가 나소인인데요?”

 “교수님께서는 시영 씨만 초대하신 걸로 알고 있으시다합니다만?”

 “저, 경비원님. 실은 얘가 억지로 따라 나온 거예요.”

  시영의 조심스러운 발언에 경비원은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다시 한 번 유마에게 연락을 걸어 그 상황을 설명했다.

 “소인 씨도 들어와도 괜찮다고 합니다. 다들 그 백색의 기계장치를 가져오셨는지요?”

  경비원이 말하는 물건은 해방기였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전부 백색 해방기를 소지한 상태였다. 그들은 그것을 경비원에게 보여주고는 입장을 허가받았다.

 “교수님의 연구실은 꼭대기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미르 코퍼레이션에 들어갔다. 대기업의 본사에 초대받은 것이었기에 이유 없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감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사내 분위기가 너무나도 우중충한 장마였기 때문이었다. 구조나 시설 등은 대기업답게 개성 있고,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앉아서 일하는 사원들,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 등 모든 사람의 표정이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형, 잘못 온 거 아닐까요?”

  소인이 그의 팔을 꽉 잡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으음, 내게 물어봐도…”

  결국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음에도 꼭대기 층까지 올라갈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TV에서만 보던 엘리베이터 예쁜 누나가 있는 건 좋은데…’

  소인이 괜히 눈치를 봤다.

 ‘엘리베이터가 투명한 강화유리로 되어 있는 건 좋은데…’

  시영이 바깥의 반짝반짝한 호수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이런 분위기면 좋아하지도 못하잖아…’

 ‘이런 분위기면 좋아하지도 못하잖아…’

  두 사람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시영 군 환영합니다.”

  유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즐거운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왜 갑자기 축 처지셨죠?”

 “직원 분들이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아보여서요…”

  유마는 그들의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입을 크게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뭐.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 이 회사 회장님 아드님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라서 말이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요?”

  시영과 소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런 일도 있고… 한 선생, 그 망할 양반이 최근에 크게 터뜨려 준 덕분에 회사 분위기는 더더욱… 흠흠!”

  소인과 시영은 그 날 있었던 의도치 않은 해프닝이 자연스레 머리에서 떠올랐다. 소인은 시영이 오컬트를 간단하게 때려잡는 장면이었고, 시영은 승혁이 힘의 논리를 지껄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마냥 우울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러니 대화는 최대한 즐거운 분위기로 이어나갑시다.”

  유마는 말을 마친 직후 이빨을 보이며 활짝 미소 지었다. 그 역시 밝은 웃음에도 약간의 우울함을 가졌기에 시영과 소인은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소인 군은 왜 온 겁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유마는 그들에게 진한 핫초코를 건네주며 소인에게 물었다.

 “있어요! 그런 거! 묻지 마요!”

  소인은 역정을 내며 대답을 거부했고, 유마와 시영은 갑작스런 화에 잠시 당황했다. 그래도 그가 ‘사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인 군, 전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그리고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는데다, 최근에 한 선생이 제 방에 카메라를 설치한 것 때문에 조금 예민해서 말이죠.’

  유마는 양해를 가장한 비웃음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마음을 읽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저 ‘시영이 걱정된다.’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그것보다 시영 군. 정말 극찬을 아낄 수가 없겠군요. 뱀파이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하하하, 아뇨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단지 절 믿고 뱀파이어 관련 이야기와 다른 여러 가지를 잘 해주신 경찰 분들과 저희 스승님, 서연 씨, 노바,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가장 노력한 소인이 덕분이죠.”

  시영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소인은 그의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칭찬은 없이, 나머지 조력자들에게 칭찬을 돌렸다는 점이었다.

 ‘사실상 시영이형이 다 한 거 아냐? 이런 건 자기 자랑해도 괜찮은 건데?’

  유마는 당황한 소인의 표정을 방아쇠삼아 그의 마음을 읽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시영이 ‘자기혐오’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마는 단지 시영이 겸손한 걸로만 생각했었기에 소인이 확대해석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아뇨,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영 군이 아주 큰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습니다. 또, 시영 군이 가져오신 그 녹색 약으로 다른 신약을 개발할 수도 있다고 하고, 또, 그 블러드리아라는 분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뱀파이어를 비롯한 오컬트들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 생각한다며 기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전, 그저 예전에 얻은 정보를 사용했을 뿐이에요. 단지 그것뿐이고… 또,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떨어진 덕분에 빨리 해결될 수 있던 거죠.”

  머쓱해진 시영은 앞에 놓인 핫초코를 허겁지겁 들이키려 했다. 하지만 뜨거운 핫초코에 혀를 데었고, 바닥에 조금 흘렸다.

 “아이쿠! 조심 하시지…”

  유마는 그를 걱정하며 휴지를 가져오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그가 휴지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모자로 바닥을 닦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그로 하여금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고, 마찬가지로 소인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 카펫에 스며들까봐 급히 닦은 거예요. 흘려서 죄송합니다.”

 “아뇨, 어차피 세탁할 시기가 되었기는 했는데…”

  유마는 그제야 소인이 확대해석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정확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영의 행동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아무튼 그대로 두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대로 두기에는 죄송한데…”

 “그냥 그대로 두세요.”

  유마는 단호히 말했고, 시영은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유마는 잠시 그에 대해 뭔가를 고민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저번에 하지 못한 제가 시영 군을 부른 이유에 대해서겠죠?”

 “그렇죠. 어서 말해주세요.”

 “제가 말씀드릴 건 간단합니다. 그것은 약 4분의 3정도 되는 사람들이 이상 세계 현상에 대해 잊어버린 것 같다는 내용입니다.”

  시영과 소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보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유마는 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시영 군을 만나기로 한 그날 오후 6시 전까지 계속해서 생각했었습니다만… 역시 제가 생각한 내용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4분의 3이라면, 예를 들어 저, 유마 씨, 소인이, 그리고 그 한 선생이라는 사람까지 생각하면 4명이잖아요. 그렇다면 확률상 이들 중 한 사람은 이상 세계 현상을 잊어버렸다는 말씀이신가요?”

 “공교롭게도 시영 군이 예로 든 사람들 전부 그 현상을 잊지 않았지만, 그렇습니다.”

  시영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사람들 모두 이상 세계 현상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역시 소인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최근 일주일 안으로 이상 세계 현상을 한 번 이상을 겪었고, 일부는 직접 없애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믿기 어려우신 표정들이군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잠깐만요. 만약 그렇다면 저랑 소인이, 그리고 유마 씨가 잊지 않은, 정확히는 나머지 4분의 1 정도의 사람들이 잊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요?”

 “역시 예리하시군요. 그것은 바로 해방기에 있습니다.”

  유마는 그들의 품속의 해방기를 가리켰다. 이들은 홀리듯 그것을 꺼내들었다.

 “역시 가지고 오셨군요. 하긴, 시영 군이라도 해방기를 가지고 오시지 않으셨다면 들여보낼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역시 괜한 걱정이었군요.”

 “과학자님.”

  소인이 선생님께 질문하듯 손을 들었다.

 “네, 소인 군.”

 “혹시 해방기에서 무슨 파장이 나오고 그래서 저희는 괜찮다는 건가요?”

  유마는 소인의 물음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파장은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접근은 훌륭했습니다.”

 “해방기가 우릴 지켜 준건가…”

  시영은 해방기를 손에 쥔 채, 그것을 바라보며 낮게 혼잣말했다.

 “정확히는 해방기 속 ‘제어 장치’가 지켜준 것이라 봐야겠죠.”

 “제어 장치요?”

  시영은 처음 듣는 제어 장치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소인과 유마는 그를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해방기는 원래 제어 장치라는 물건이었고, 사정이 생겨 해방기로 바뀐 것입니다만…”

 “그랬어요?”

 “아, 맞다. 시영이형은 모를 만도 해요. 그 이유는 스크롤을 6장이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스크롤인지도 몰랐대요.”

  소인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유마는 그가 스크롤을 6장이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는 활짝 웃기 시작했다.

 “혹시 스크롤도 지금 가지고 오셨는지?”

  유마의 기대치 가득한 물음에 시영은 재킷 속에서 형형색색의 스크롤 6장을 전부 꺼냈다.

  그것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의 6장이었다. 그것들은 테두리가 백금 색으로 되어 있었고, 여타 스크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풀풀 풍겼다.

 “혹시 나머지 4장은…”

  유마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시선은 유마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낮게 말했기 때문에 시영과 소인은 그가 하는 이야기까지는 듣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기하다. 6장 모두 테두리에 백금색이 둘러져있네?”

  소인은 그가 내려놓은 스크롤 중 녹색의 스크롤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그런 게 없는데…”

  소인은 주머니 속에서 ‘그림자’ 스크롤을 꺼내들었다. 그 검은 스크롤은 시영이 꺼낸 다른 것들과는 달리 아무런 테두리가 없었다.

 “음, 아무튼 제어 장치란 제가 이상 세계 현상을 막기 위해 만든 24개의 기계 장치를 말하는 겁니다.”

 “24개나 되는 건가요?”

 “될 수 있는 대로 만들다보니 24개가 되었습니다.”

  시영은 지그시 해방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것과 같은 물건이 23개나 더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었기에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그럼 왜 제어 장치가 이런 해방기가 된 거죠?”

  소인의 물음에 유마는 잠시 인상을 썼다. 그러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헛기침을 하며, 바깥 경치를 바라보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입을 열었다.

 “누군가… 이곳으로 출입했었습니다. 사실 24개의 제어 장치는 제가 만든 ‘억제기’ 안에서 이상 세계 현상의 발현을 억제했었는데, 누군가의 침입으로 인해 억제기의 일부가 소실되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억제기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었고…”

  시영이 입을 열었다.

 “이상 세계 현상이 일어나게 된 거로군요.”

  소인이 말했다. 유마는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제어 장치가 해방기로 바뀌게 된 이유는 저의 실수이기도 합니다.”

 “실수요?”

 “그렇습니다. 당시 이상 세계 현상의 발현으로 너무 정신이 없던 저는 눈에 보이는 제어 장치 중 하나를 가지고 급하게 기계장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이상 세계 현상을 없앨 수 있는 기계장치 ‘해방기’였습니다.”

  유마는 씁쓸한 표정으로 해방기 한 개를 꺼내들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럼 정황상 급박한 상황 속에서 임기응변으로 만들어 내신 건데…”

  시영은 갑작스레 나타난 이상 세계 현상에 자신의 해방기를 가져다대었다.

 “이렇게나 성능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신 건가요?”

 “그러고 보니 해방기가 세 개가 모였었군요. 뭐, 맞습니다. 의외의 천재성이라고 할까요? 하하.”

  유마는 자화자찬했다. 시영은 그가 마냥 대단해보였고, 소인은 그가 꼴불견처럼 보였지만, 그의 천재성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스크롤.”

  유마는 책상 위에 놓인 블랭크 스크롤 두 개를 그들에게 한 개씩 넘기며 말했다.

 “이게 현재 진행형인 스크롤 시스템이고, 제가 마냥 놀지만은 않았습니다.”

  시영과 소인은 그것을 받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현재 이상 세계 현상은 드문드문 나타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4분의 3 정도의 사람들이 이 현상에 대해 잊어버렸죠. 뭐, 시영 군과 소인 군, 그리고 제가 이상 세계 현상을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제어 장치’의 효과 같습니다.”

 “그럼 과학자님. 이 해방기가 주변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가족들 같이 가까운 사람들은 잊지 않을 수 있는 거라는 건가요?”

 “Exactly. 바로 그겁니다. 그나마 해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4분의 1 정도만은 이 현상을 기억할 수 있던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일이…”

 “그건 저도 알아보는 중입니다.”

  유마는 단호하게 말했고, 시영은 고개를 털썩 떨어뜨렸다. 유마는 그가 예상 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다음 말을 꺼렸지만, 언젠간 해야 할 말이었기에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시영 군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소인 군도 마찬가지죠. 이상 세계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실 겁니까?”

 “물론이죠!”

  시영은 고개를 번쩍 들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혼란 그 자체였고, 소인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아뇨, 형은 안돼요.”

  노트를 본 것은 잘못된 행위였지만, 그랬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소인은 그를 이상 세계 현상에서 멀리 떨어뜨려야 했다.

 “난 괜찮아. 지금도 이렇게 웃고 있잖아?”

  하지만 그의 가식적이라 생각될 수밖에 없는 미소에 소인은 그를 경멸에 가까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터져버리는 소리가 가득 맴돌았고, 소인은 이를 바득 갈았다.

 “형은 거짓말쟁이에요!”

  그리고 그 순간 소인은 입을 틀어막았다. 당황한 표정과 함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 내가… 무슨 말을…’

  시영과 유마는 그를 놀란 눈길로 바라보며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갑작스런 소인의 폭언은 실수와 다름없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한 순간 터져버린 감정의 폭발은 그를 실수하게 만들어버렸다.

  시영은 그에게 이유를 묻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소인은 그 손을 쳐내며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 사람… 왜 저러는 거죠?”

  갑작스러운 탓에 그의 생각을 읽지 못한 유마가 말했다.

 “오늘 평소와는 달라보였었는데, 결국 터져버렸네요. 정말 왜 저러지?”

  시영은 그가 떠나간 곳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깊은 숨을 쉬었다.

 “뭐, 원래는 시영 군과 둘이서만 이야기하기로 한 거니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잘되었군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시영은 고개를 돌려 유마를 불쾌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유마는 그 표정과 마음에서 은근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고, 흠칫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저 사람을 모욕한 게 아니라는 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 시영 군과 소인 군에게 해방기를 제게 잠시 맡겨주실 생각 없으시냐고 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소인 군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고, 결과적으로 제게 호의적인 시영 군만 남은 게 잘되었다는 소리였습니다.”

  유마는 차근차근하게 설명하여 그를 안심시켰고, 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방기를 맡기면 되는 거죠?”

 “정확히는 시영 군이 보유한 6장의 스크롤도 포함해서입니다.”

  유마는 소인이 놓고 간 스크롤을 잡아들며 말했다. 해방기를 꺼내려던 시영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건… 제 물건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의 당당한 대답에 시영은 조금은 놀라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제가 제작자니까요.”

  간단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스크롤은 유마가 제작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시영이 가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뭐, 어떻게 그 ‘10장’을 시영 군이 가지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4장을 잃어버린 건 제 실수예요. 그건 사과드릴게요.”

 “아닙니다. 스크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살다보면 물건 정도는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죠.”

  유마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고, 잠시 어두워졌던 시영도 꽃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아, 그리고 시영 군. 지금은 이르지만, 나중에는 꼭 소인 군과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게요. 그런데 쟤가 왜 그러는지 도통 알지 못해서요.”

 “뭐, 저는 더더욱 모르지만, 시영 군에 대해선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있죠.”

  호기심을 자극한 유마의 말에 시영은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시영 군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이죠.”

  유마는 그에게 미소를 보였고,

 “앞으로도 그 정직을 꾸준하게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시영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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