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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5-5 블러드리아
작성일 : 18-06-16 07:27     조회 : 13     추천 : 0     분량 : 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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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하고도 약 닷새 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리아야.”

  항상 소민이는 제 이름이 길다며 ‘리아’라는 애칭으로 불어주었죠.

 “왜 그래 소민아?”

 “전부터 네가 말한 그 마석이란 거 말이야.”

 “마석? 그게 왜?”

  소민이는 항상 밝은 아이였어요. 생각해보면 뱀파이어인 절 편견 없이 대해준 첫 번째 친구였기에 그 밝은 모습은 더욱 더 빛이 나 보였죠. 하지만 마석 이야기를 꺼낸 그 때는, 정말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어두운 아이처럼 보였어요.

 “그거, 지금도 가지고 있지?”

 “응! 당연히 가지고 있어. 임상 실험을 도와줄만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는 내가 잘 보관하고 있어야지.”

 “그렇구나.”

  소민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안색은 좋지 않았지만, 전 그것도 모른 채 그냥 따라 웃었어요.

 “그럼 내가 해봐도 괜찮을까?”

 “소민이 네가?”

 “응! 리아, 네가 그랬잖아. 이상 세계 현상을 겪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그래서 언젠가 이 현상을 인류 스스로 잠재웠으면 한다고.”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어.”

 “괜찮아. 난 리아를 믿어. 우린 친구잖아.”

  그 친구라는 말은 소민이가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려주는 말과 같았어요. 따스하고, 편안한 마치 햇살 같은 느낌이었죠. 그 말로 인해 전 소민이에게 마석을 넘겨주었어요. 하지만 마냥 괜찮다고 생각했고, 소민이도 힘이 넘치는 느낌이라 말했어요. 그래서 성공이라 생각했었죠.

  시영 씨와 소인이가 불행한 사실을 전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여어, 리아!”

 “소민아? 무슨 일이야?”

 “친구 집에 오는데 이유가 있어야 오냐?”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계속 소민이가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진화를 위한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했었죠.

 

  처음에는 사흘, 그 다음에는 이틀, 그리고 하루, 어느 날은 반나절 만에 찾아온 날도 있었어요. 항상 소민이는 마석을 가지고 갔죠.

  그렇게 나흘 전부터는 소민이는 이곳에 오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렇게 찾으러 나가려 할 때, 문득 느낄 수 있었어요.

  미약하지만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맑은 피가 소민이의 마석에 닿는 느낌이었죠. 그것으로 생각했어요. 아직은 안심해도 괜찮겠다. 소민이는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같은 무책임한 생각이었죠.

  그 날이 아마 시영 씨를 만난 날로 기억해요. 마석에 피를 묻힌 사람의 느낌이 전해졌고, 쓰레기를 버리는 김에 잠시 나가서 반갑게 맞았던 거예요.

 

 

 

 “여기까지가. 소민이가 마석을 가져간 이유에요.”

  시영은 그녀가 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하고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소인을 바라봤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소인은 믿기 힘들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 일이…’

  거짓말로 치부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이해해버릴 수밖에 없었기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음, 그럼 블러드리아. 오늘 문을 열어준 이유는 제가 피를 흘렸기 때문이 아닌가요?”

 “오늘 문을 연 이유는 그게 맞아요.”

 “역시 그랬죠. 뱀파이어는 피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고, 또 다친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좋은 특성을 지니고 있죠.”

  시영은 씩 웃어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블러드리아는 그의 의외의 해박함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인에게 고개를 돌려 입모양으로 “이 사람 정체가 뭐야?”라고 뻐끔거렸다.

 “저 형. 전직 오컬트 슬레이어였어. 나머지는 나도 잘 몰라.”

 “소인아, 그 말은 진짜 하지 말아줄래? 진짜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

  시영은 간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소인은 혀를 내밀며 그의 말을 무시할 것을 암시했고, 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신을 집중하고는 작은 구체를 그에게 튕겼다.

  구체에 맞은 소인은 온 몸을 덜덜 떨며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시영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웃으며 입을 열었다.

 “뱀파이어들의 특징이 다친 존재들을 보면 그냥 두지 못한다는 점이죠. 아무래도 마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지금 몸 상태만 괜찮은 걸 보면, 그게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그럼 소민이는, 소민이는 괜찮은 건가요?”

 “상태는 아주 좋죠. 몸 상태만…”

 “몸 상태만?”

  블러드리아는 애매한 시영의 대답에 슬쩍 소인을 바라보았다.

 “의식 불명 상태라고… 의식 불명…”

  소인은 덜덜 떨리는 상태에서 힘겹게 대답했다. 시영은 그가 안쓰러워 구체를 해제했다.

 “제발, 슬레이어든, 살해자든 정말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난 오컬트 중 누구도 살해한 적 없어.”

 “예, 죄송합니다.”

  소인은 거친 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구체에서 시영이 정말 그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되도록 언급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의식 불명이란 건…”

 “네. 저희가 찾아온 이유죠. 블러드리아의 마석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의식 불명에 빠졌죠. 다만 몸 상태는 아주 좋은 상태라는 게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문점이라 할 수 있죠.”

  블러드리아는 시무룩해졌다. 시영은 조심스레 몇몇 환자의 진료차트를 그녀에게 보여주었고, 그 중에서는 소민의 진료차트도 존재했다.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사람들의, 소민이의 의식을 구할 방법이 없나요?”

 “있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마석은 결국 실패했다고 밖에…”

 “아냐, 실패는 아냐.”

  블러드리아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침울해질 때, 소인이 나섰다.

 “소민이 녀석, 힘 하나는 엄청났다고. 네가 말한 힘이 이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힘 하나는 엄청났었어.”

  거짓말이다. 소인은 그녀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고, 공사 현장에서 그녀와 싸웠던 창연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는 엄청난 힘이었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이었다.

  소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블러드리아와 조금 더 가까이 지냈더라면, 소민이 그런 행동을 하려 하는 걸 알았더라면,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들에게 미안하고,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가장 원망스러운 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이었다.

  블러드리아는 비록 뱀파이어지만, 편견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그건 시영이 보여준 자연스레 그녀와 겸상을 한 것에서 깨달을 기회가 있었다.

  오컬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에 살고 있다. 그 뿐이었다. 시영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은 우리의 이웃과도 같다는 것’일 것이었다.

 “정말 그랬어?”

 “그랬을 거야.”

  소인은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그녀가 시무룩해지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랬나?’

  시영은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블러드리아.”

 “그래, 소인아. 말해도 괜찮아.”

  소인은 쭈뼛거렸다. 여전히 블러드리아는 그에게 친절했고,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미안해!”

  허리를 숙여 사과한다.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었지만, 더 이상 늦을 수는 없다.

 “내 잘못된 생각으로 소민이가 그렇게 된 것도, 그리고 네게 편견을 가진 것도 미안하고, 또, 또, 아무튼 여러 가지로 정말 미안해!”

  소인은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 같이 울먹거렸다. 하지만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은 나중에 실컷 흘릴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적어도 지금은 흘리고 싶지 않았다.

 “헤헤, 난 괜찮아.”

  블러드리아는 특유의 밤이 어울리는 미소로 활짝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 소인은 눈을 깜빡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 날 용서하는 거야?”

 “용서? 헤헤, 처음부터 널 미워하지 않았어.”

 “정말 날 미워하지 않았다고?”

  어안이 벙벙해진 소인을 뒤로하고 기지개를 폈다. 그러고선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베란다로 이동했고, 어둡게 펼쳐진 커튼을 걷어내며, 진실 된 어두움이 드리운, 별이 만발한 밤하늘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실은 나도 쌍둥이 남동생이 있어서 알고 있거든. 그 녀석, 지금은 저 하늘의 별이 되었겠지?”

  블러드리아는 밤하늘의 별들 중, 붉은 색으로 빛나는 가장 큰 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소인과 시영은 구체적인 사정은 알지 못했지만, 단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고개를 숙여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헤헤, 내 남동생 녀석도 소인이 너랑 같은 상황이었으면 똑같은 행동을 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네가 무례한 행동을 해도 마냥 미워할 수는 없겠더라고.”

 “그래도, 이게 잘한 행동은 아니잖아. 시영이형도 계속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고…”

 “흠흠, 여기서 내가 끼어드는 게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시영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고, 헛기침을 한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걸 알고 고쳐나갈 생각을 한다면 그게 바로 힘을 가진 게 아닐까?”

  시영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때 소인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맑고 투명한 울림이었다.

 “형 치고는 꽤 괜찮은 말… 아, 죄송해요. 아 제발 구체만은…”

  소인은 오글거리는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그에게 장난스레 말하려 했지만, 어느새 구체를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는 시영을 발견하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블러드리아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소인이는 블러디를 꼭 닮았네!”

 “블러디가 누구야?”

 “내 쌍둥이 남동생이야.”

  블러드리아의 대답에 시영과 소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영은 이내 지그시 웃음을 보였고, 블러드리아와 소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소인이네 쌍둥이하고 블러드리아는 정말 많이 닮은 것 같다.”

 

 

  그렇게 블러드리아와의 대화는 얼추 마무리 되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블러드리아, 네 말은 이 녹색 액체를 혈관에 주사하면 마석의 영향이 깨끗하게 사라질 거라고?”

 “네, 맞아요.”

  시영은 블러드리아 넘긴 코르크 마개가 끼워진 유리병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리저리 흔들었다.

 “아무래도, 제 마석은 인류에게는 너무 이른 물건이에요. 나중에 인류가 그만한 힘을 가질 자격이 되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폐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좋은 선택이야.”

  시영과 블러드리아는 서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전부 다 같은 마석이라면 왜 소민이만 그렇게 미쳐 날뛴 건지…”

 “그건 지금으로썬 뭐라 말씀 드리기 어렵지만…”

  블러드리아는 조심스러워졌다.

 “아무래도 소민이와 마석의 적성이 너무나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적성이 너무나도 잘 맞아?”

 “마석의 영향을 줬기에 전혀 다른 새로운 힘이 또 하나의 심장이 되어 움직였다던가하는 그런 걸로 밖에 생각을 할 수 없어요.”

  블러드리아는 말을 마친 직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고, 몸을 은근히 떨고 있었다. 반면 시영은 그녀가 말하는 말을 자세히 몰랐기에 눈을 깜빡거렸지만, 곧 그녀의 심각한 표정에 좋은 현상은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Dual Action(듀얼 액션)?”

 “듀얼 액션?”

  시영의 되물음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빠르게 저어버렸다.

 “아닐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보다도 어서 그 걸 마석의 피해자들과 소민이에게 사용해주세요.”

 “아, 그래야지. 자, 소인아 가자.”

  시영은 소인을 불렀다. 하지만 불러도 대답 없는 그의 상황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고, 이내 그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만 해도 급격한 감정 변화를 보이던 그였다. 피곤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시영은 미소를 지으며 블러드리아를 바라보았다.

 “블러드리아. 여기 네 친구 소인이 좀 부탁해.”

  시영은 슬며시 미소로 방을 나갔고, 그가 깨지 않게 문을 살포시 닫았다.

 

 

  몇 번이고 시영은 생각했다. 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진실을 찾기 위해 그 길만을 갈 것이었다. 믿는 것을 위해 달리다 넘어져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달리다 넘어지면 아프고, 상처가 날 것이었다.

  아픈 건 싫지만, 아프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밤하늘은 며칠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느낌은 색달랐다.

  그리고 지금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돌아오길 잘한 것 같아.”

  이유는 확실하게 없었다. 동기 또한 유마가 불렀기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시영은 남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것만으로도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는 기분이었다.

 “어이, 동생!”

  그런 그에게 하나의 경찰차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운전석에는 젊은(막내) 경찰이 타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다급한 표정의 로제가 있었다.

 “사건은 해결 한 거야?”

 “네, 여기 기록일지랑, 의식을 깨어나게 하는 약이요.”

 “오오, 동생 대단해! 하지만 지금은 마냥 칭찬해줄 수는 없어. 사건이 터졌거든.”

 “사건이요?”

 “그래, 사건이야. 자칭 ‘금화의 겜블러’라는 녀석이 동전을 쏘면서 건물을 폭발시키고 있다고 하더라고. 잠시 도와줄 수 있어? 동생?”

  시영은 그 순간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난 6개월 동안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희열이었다.

 “물론이죠!”

  시영은 수첩(기록일지)과 녹색 약을 로제에게 넘기고, 경찰차 뒷좌석에 탑승했다. 이내 그들이 탄 차는 폭발음이 들린 건물을 향했다.

 “오랜만이네 동생이랑 이렇게 달려보는 건.”

 “저도요. 누님. 성심성의껏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의욕 넘치는 경찰차 뒤로 차가운 인상의 창연이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그는 떠나는 경찰차 뒷좌석의 시영을 무감정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창끝으로 그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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