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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림자 이야기
작가 : 문려현
작품등록일 : 2018.6.11

대기업의 사생아로 태어나 조용히 삶을 이어가던 요한.
하나뿐인 혈육이었던 누나마저 괴물에 손에 처참히 살해당하고...
그를 구해준 남자, 단테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결심한다.

스스로를 촉매로 타오르는 한 줌 불꽃이 된 요한.
이제 그의 칼날이 부유하는 환영의 땅, 그림자의 세계를 향한다

 
Prologue
작성일 : 18-06-11 00:36     조회 : 389     추천 : 0     분량 : 6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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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치직.

 

  싸구려 구형 스피커에서 잡음과 함께 그럴듯한 허밍음이 흘러나왔다.

  차가운 수은등이 비추고 있는 실내는 흡사 중세 양주점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도색한 지 꽤 오래된 것 같은 콘크리트 벽면에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커플들의 사진이 차압 딱지마냥 중구난방으로 붙어있었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고전풍의 내부에 입구는 스크린 도어, 심지어 진짜 종이 아닌 소형 스피커로 내는 종소리라니......아무래도 이곳의 주인은 앤디 워홀의 추종자쯤 되는 모양이었다.

  이 묘한 불일치에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들어온 이는 백금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전형적인 슬라브 계 외국인이었다.

 

  "흠."

 

  조금 이른 저녁인 탓에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검은 코트의 옷깃을 가볍게 여미던 그는 이윽고 미간을 좁히며 라운지에 앉아있는 남자를 주시했다.

  그 남자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베레모를 쓰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희끗한 옆머리가 언뜻 엿보였다.

 

  한창 드라이 마티니의 알싸함을 음미하던 그는 느껴지는 시선에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한국인이 이렇게나 여유로운 민족이었던가? 정보를 제공한 주제에 내가 누군지 모를리는 없을텐데?"

 

  어느새 다가온 이 외국인 사내는 부드러운 착석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으르렁 대었다.

 

  "응? 설마 당신이...? 이것 참 실례했군요."

 

  생김새와는 달리 유창한 한국어에 당황한 중년의 남성은 애꿎은 베레모만 만지작거렸다.

 

  "쥐새끼 주제에 내 인상착의를 몰랐다거나 여기서 오줌을 지렸다거나 하는 건 아무래도 좋아. 그래서 녀석은 어디있지?"

 

  무시무시한 기세로 사내가 채근하자 중년인은 갓 기합을 받은 이등병처럼 재빨리 대답했다.

 

  "한 시간 전에 5번가 중심에 있는 클럽에 들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안내해."

 

  댄서라도 되는지 앉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몸짓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는 의식없이 취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주변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한국의 전형적인 밤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수은과 네온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빛의 조합을 사내는 잰 걸음으로 지나쳤다.

  저것은 부덕의 산물이다. 그도 그럴게 단시간 내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곳이 이 나라다.

  그 자신은 비록 마르크스와 단 한 줌의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지만 남의 것을 강탈해 제 배를 불린다는 점에서 추악한 '그것'들과 다를 게 하등 없지 않은가?

  누군가 들었다면 틀림없이 간첩 취급을 받을 만한 생각을 마친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추하군."

  "네?"

  "아니, 아무것도."

 

  그들은 골목을 돌아 건물 뒷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딱봐도 험하게 구른 2009년형 2세대 SM3가 주차되어 있었다.

  사내는 거칠게 그 트렁크를 열어제꼈다.

  그 안에는......혹시라도 눈에 띈다면 공중파 뉴스 톱기사를 장식할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총기가 널부러져 있었다.

  일개 분대 정도는 충분히 무장시키고도 남을 만한 장비들을 사내는 덤덤하게 하나씩 점검해나갔다.

 

  "헉."

 

  뒤늦게 따라온 중년인은 쥐같은 표정을 더욱 좁쌀처럼 일그러뜨렸다.

  비록 그가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쳤고 불법 체류부터 장기 밀매까지 손 안대본 건수가 없는, 꽤나 잔뼈가 굵은 브로커라지만 눈앞에 펼쳐진 진풍경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세상 어느 미친놈이 총기 규제가 엄격한 이 나라에서 잠금장치도 없는 트렁크에 총기를 실어나르겠는가?

 

  중년인이 충격을 받든 말든 사내는 마지막으로 잿빛 권총의 슬라이드를 한번 당겨보더니 중년인에게 던져주었다.

  그것은 유독 대한민국 경호원들에게 인기있는 모델인 발터사의 P99ASS 였는데 설마 자신에게 건넬 줄은 몰랐는지 중년인은 바람빠진 소리를 냈다.

 

  "엑?"

  "못말리는 애송이로군.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켜야지, 안 그래?"

 

  얼굴만 보면 띠동갑은 한참 넘긴 연배일텐데......아무리 서양이 동양에 비해 나이 서열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의 언행은 확실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중년인은 속으로만 구시렁 댈뿐, 소태 씹은 표정을 지은 채 얌전히 권총을 품에 넣고 운전대를 잡았다.

 

  "응?"

 

  막 엑셀을 밟으려던 찰나 위화감을 느낀 중년인은 품에서 권총을 다시 꺼내들고는 멈치를 눌렀다.

 

  '......'

 

  이런 씨발.

  텅 비어있는 탄창을 보자 그의 머리 한 구석 어딘가가 끊어지는 듯 했다.

 

  "아주 애송이는 아니로군."

 

  별 일 아니라는 듯 무미건조하게 내뱉은 사내는 밀봉되어있는 탄환을 그에게 툭 던져주었다.

 

  "이게 그...어메리칸 조크인가 뭔가하는 그겁니까?"

  "천만에. 하지만 당신이 이대로 엑셀을 밟지 않는다면 진짜 조크가 뭔지 볼 수 있지 않을까?"

  "...출발하겠습니다."

 

  속으로 연신 욕을 곱씹으며 그는 신경질적으로 엑셀을 밟았다.

 

  #

 

  한상동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소인배 중 하나였다.

  젖살이 한창 통통할 무렵부터 곧장 자신보다 약한 이를 희생양으로 반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무리에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호랑이를 업은 여우마냥 주저없이 자신의 강함을 과시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흔해빠진 호가호위와, 어디까지나 본인 기준에서 바닥에 맛깔나게 침을 뱉는 게 다였던 그가 조직폭력배가 된건 지극히 필연적이었다.

 

  허나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자랑거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살면서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같이 놀던 날라리 여고생을 임신시켰을 때도, 조직에 들어가 같이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던 친구를 손수 파묻었을 때도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살면서 처음으로 후회를 하는 중이었다.

 

  "What the hell?"

 

  국산차에서 외국인이 내릴 때까지는 그려려니 했다. 당장 여기서만 보이는 클럽 간판만 해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설마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검은색 코트에 결 좋은 백금발을 늘어뜨린 외국인 사내는 곧장 이곳을 향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그는 자신들이 말을 걸기 무섭게 그 즉시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었다.

 

  "야 좆됐다, 씨팔. 하필이면 내 순서에 양키가 걸려."

  "한상동 너 고졸이라며. 무슨 고졸이 영어 하나 못하냐?"

  "닥쳐."

 

  아무리 요즘 고등학교 외국어 영역이 외국인들조차 어려워 하는 수준이라지만......애초에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공부를 했다면 뭣하러 여기서 삐끼짓을 하고 있겠는가?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동료의 무식함에 혀를 차던 상동은 그가 자신들을 지나치려하자 다급하게 옷깃을 붙잡았다.

 

  "저기 잠깐..."

 

  말을 끝내고자 했던 상동이었지만 이미 사내의 주먹이 그의 입을 뭉개버린 뒤였다. 가볍게 내지른 잽이 어찌나 빠른지 뭔가 아른거리는 것이 상동이 기절하기 전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순식간에 동료가 당하자 곁에 있던 남자는 깡패답게 두말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너 뭐야 씨발!"

 

  으레 말단 깡패들이 그렇듯 자세도 잡혀있지 않은 막주먹이었다. 사내는 코웃음친 후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피해내고는 답례로 시원한 보디블로를 먹여주었다.

  깔끔한 클린히트에 남자의 눈이 부릅 떠졌다. 금속 활자마냥 허리를 접은 남자는 숨 한번 못 쉬고 그대로 기절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일을 끝낸 사내의 뒤에서 베레모를 쓴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단하군요."

  "대단? 만약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당신 몸으로 그 대단함을 체험하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됐든 여기 이놈들은 전부 인간 아닌가?"

 

  사내가 그리 힐난하며 걸음을 옮기자 중년인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조명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대놓고 퇴폐미를 풍기는 그 광경에 사내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걸음을 옮겼다.

  거친 걸음으로 클럽 이곳저곳을 수색하던 그는 이윽고 고급스러운 벨벳 커튼이 쳐진 홀 입구 앞에서 멈춰섰다.

 

  "빙고."

 

  서양식 매너는 쌈 싸먹었는지 그는 다짜고짜 커튼을 치윘다.

  거대한 홀 안에서는 후끈한 열기와 함께 난교가 한창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클럽의 풍경이지만......여성들의 어느 신체를 사내놈들이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뭐야?"

 

  제법 푸짐한 팔뚝을 삼키는데 여념이 없던 한 녀석이 입에 피칠갑을 한 채 난데없는 불청객을 쏘아보았다.

  스너프 필름이라도 제작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던 중년인은 문득 어느 식인종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그에 따르면 그들의 식인행위는 생존을 위한게 아닌,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했다.

  하지만 입 아래로 붉은 실선을 그린 채 별미라도 되는 양 인간의 육편을 삼키고 있는 저 모습의 어디가 주술적이란 말인가?

 

  틀림없다. 저것들은 지금 맛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야들야들한 여성의 살결. 그래, 이쪽의 입장으로 보자면 양념치킨 쯤 되려나.

  사업상의 비밀로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이 기이한 광경에 중년인은 꼴깍하고 침을 삼켰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콰앙!

 

  이쪽을 향해 눈을 부라리던 녀석은 폭음과 함께 소파째로 날아가며 그대로 절명했다. 어느샌가 코트 안에서 거대한 검은 권총을 꺼낸 그가 군말없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또르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총신에서 튀어나온 탄피가 바닥을 굴렀다.

  바닥에 깔린, 척봐도 한 가격 할 것 같은 호피 양탄자는 붉은색으로 질척였다.

  소총탄 보다도 더 큰 규격을 벗어난 그 탄피는 이내 붉은색으로 곱게 단장한 양탄자 위에서 멈춰섰다.

 

  "놈의 흔적이 맞군."

 

  짙은 초연 사이로 사내의 입술이 움직였다.

  식사에 여념이 없던 남자들은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된 듯 흉성을 토하며 뼈마디를 기괴하게 뒤틀었다.

  현실이어서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싸구려 호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출.

  그러나 그 추태가 끝나기도 전에 사내의 총구가 다시 불을 뿜었다.

 

  -콰앙!

 

  탄환은 선두에 있던 놈의 머리를 박살내고 이어서 뒤에 있던 녀석의 흉부마저 꿰뚫어버렸다.

  물풍선이 터진 것처럼 튄 피가 홀 구석구석,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처음 나가 떨어진 녀석처럼 드러누워 사지를 못가누는 녀석들.

  사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타박했다.

 

  "바로 앞에서 대놓고 변신을 하다니, 니네가 무슨 파워레인저냐?"

  "...변신이 아니라 변태가 아닐까요?"

  "닥쳐."

 

  그들이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변신, 아니 변태를 마친 놈들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사내는 코웃음치더니 맨 오른쪽에서 다가오던 놈에게 한 발 쏴준 후 크게 반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달려오던 놈들이 귀신같은 몸놀림에 당황하는 찰나 그는 예의 그 거대한 권총으로 괴물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캭!"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들의 머리통이 하나씩 박살났다.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괴물의 두부를 부숴버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잘 짜여진 연극을 연상케 했다.

  아니, 설사 짜고치는 연극이라 하더라도 이보다도 자연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흠."

 

  일 분은 지났을까? 콘서트를 해도 될 것 같은 거대한 홀 바닥이 온통 빨간색으로 도배될 때쯤 사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탄을 장전했다.

  그가 매만지는 권총 아래로는 붉은 핏물이 방울진 채 떨어져내렸다.

 

  "난 이쯤에서 실례하지. 몇 놈 흘린 것 같으니."

  "엑? 설마 저보고 뒷감당을 다 하란 말입니까?"

  "경찰과 맞닥뜨릴 일은 없어. 어짜피 저것들은 당신이 알아서 할 거 아닌가?"

 

  이 근방에서 나름 번화가인 오성동 5번가 한가운데서 대포같은 권총을 난사한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뻔뻔한 태도다.

  아무리 한국 경찰이 나태함으로 욕을 먹은게 어제 오늘이 아니라지만 이렇게 대놓고 총을 쏴댔는데도 침묵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년인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널부러져있는 시체로 다가갔다.

  그는 가슴에서 자그마한 칼을 꺼냈는데, 이른바 멕가이버 칼이라고 불리는 다용도칼이었다. 좀 다른게 있다면 전장 30cm정도 되는 제법 큰 사이즈라는 것 정도다.

  중년인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사체의 오른쪽 가슴에 갖다대었다.

 

  때 아닌 해체작업에 여념이 없는 중년인을 사내는 혐오의 눈빛으로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날렸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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