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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3 포우-4(시영)
작성일 : 18-06-10 06:38     조회 : 12     추천 : 0     분량 : 17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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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영은 모자를 푹 숙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돌아온 고향에서 다양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유마와의 대화 이후로 외국으로 돌아갈지, 이곳에 남지에 대한 갈등이 파도쳤고, 마음속은 뒤틀릴 듯 답답했다.

  밤하늘은 별로 가득했다. 외국에선 볼 수 없던 빛나는 아름다움이었다. 시영은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밤하늘에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기에 한숨을 쉬었다.

 “시영아 왜 그래?”

  옆에서 같이 별은 보던 노바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치 청금석을 그대로 박아 넣은 것처럼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조금 답답해서 그래.”

 “표정은 그렇지 않아 보여.”

  노바의 말에 시영은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뒤늦게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였지만, 노바는 이미 그가 뭔가 고민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말해라! 말해라!”

  노바는 시영의 다리를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찔러댔다. 투정 부리듯 찔러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시영은 몸을 움츠리며 웃음을 억지로 참기 시작했다.

 “아, 알았어. 말해줄게. 간지러워. 하하하!”

  노바는 우쭐대며 손가락을 거뒀다. 시영은 찌르기의 여파로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고, 멈춘 뒤에도 한참동안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후아! 이제야 살겠네. 흠흠! 노바는 내가 왜 외국으로 갔는지 알고 있지?”

 “응! D-Zero를 조사하러 갔지? 노바는 당연히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왜?”

 “바로 그거야! 그게 답답한 거야. 난 지금 D-Zero의 진실을 알고 싶어. 그런데…”

 “그런데?”

 “왜, 계속해서 쌍둥이들이랑 유마씨가 걸리는 걸까. 더군다나 아침부터 계속해서 정체모를 사람들만 만나고 있고…”

  시영은 마치 망가진 나침반 같았다. 그의 표정은 혼란스러웠다.

 “시영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오지 말 걸 그랬어. 괜히 와서 마음만 복잡하고…”

  시영은 붉어진 눈시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하늘에 별들은 발 디딜 틈 없이 저마다의 빛을 비추고 있었다. 별이 가득 찬 모습은 마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노바는 그의 한심한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시영이는 바보 같아!”

  노바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갑작스런 매도에 시영은 화난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바가 알던 시영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 그런 용감한 시영이였어. 하지만 지금의 시영이는 그렇지 못해. 바보 멍청이 같아. 겁을 먹은 것 같은 발톱 빠진 매 같아!”

 “노바야…”

 “몰라! 아무튼 바보 같아!”

  노바는 벌처럼 독설을 쏘아대고는 사무소 안으로 내려갔다.

  시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겁을 먹은 것 같은 발톱 빠진 매. 어느 정도는 맞는 소리인 것 같았다. 하지만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겁을 먹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가려는 길은 불안정한 한 가지의 길이었고, 오직 그것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왔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보지 못한 잔가지처럼 널리고 널린 다른 길들이 수 없이 존재했다. 그의 눈에는 현재 두 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만 뒤로 가보면 점점 많이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지는 못한 것일까? 과연 나 혼자 진실을 조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유마는 말했다. 당신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추구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단지 두 가지의 물음이었지만, 시영은 그 어느 것도 답하지 못했었다.

  그저 지금은 노바를 따라 탐정 사무소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시영이 1층 탐정 사무소로 내려오자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었니?”

  해성이 노바의 방문과 시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시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노바를 화나게 했어요.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주렴.”

  시영은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말했다. 해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제가 노바를 화나게 한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난 알 것 같구나.”

  시영은 눈을 크게 뜨며 스승을 바라보았다.

 “노바는 네 한 길로만 나아가려는 그 모습을 좋게 봤던 거란다.”

  해성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모습이요?”

 “어쩌면 탐정과도 같다고 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다르단다. 그들은 숨겨진 진실을 찾으려는 거고, 시영이 너는 잃어버린 진실에 도달하려는 차이점이 있지.”

 “잃어버린 진실이요?”

 “D-Zero. 더 나아가서는 6개월 전 그 날의, 그 자체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 아니니?”

 “네, 맞아요.”

 “그래서 잃어버렸다고 말한 거란다. 그날은… 뭐랄까,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해성의 말에 시영은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 역시 6개월 전 그날의 사건은 숨겨졌다기보다 잃어버렸다는 데 무게를 두었다. 의도적으로 숨겼다기보다는 자연스레 잃어버렸고, 그랬기에 지금까지 그 누구도 진실에 도달하지 못했다 생각하고 있었다.

  시영은 스승과 어느 정도 생각이 통한 것에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도 노바와 같단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그것에 도전하는 것. 어쩌면 너라는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지거든.”

  해성은 천천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영은 알 듯 말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동기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건 아니지. 마음이 시켜서 움직일 수도 있고, 정말 하고 싶다면 자연스레 몸이 움직일 거란다.”

  시영은 스승님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이 느껴졌지만, 그게 아닌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 초점 잃은 눈동자, 길을 찾지 못하는 모습 등에서 도출한 결과를 알려줬을 뿐이었다. 살아있는 20년 이상의 경력에서 나오는 역사와도 같은 능력이라는 걸 시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뭐, 중요한 건 시영이 너의 결정이란다. 그것만 잘 알아두렴.”

  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지만, 해성이라는 밧줄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시영은 아직은 스승이 말한 것들이 제대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선택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 이것만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참, 다시 외국으로 돌아갈거니?”

 “고민 중이지만, 일단 돌아가긴 해야 해요. 만약 이곳에 남을 거라면 짐들도 다 가져와야 하잖아요.”

 “하긴 그렇겠구나. 비행기 시간은 몇 시니?”

 “슬슬 가야 해요. 10시 40분이에요.”

 “조심히 다녀 오거라.”

 

 

  현재 시각은 오후 10시 정각. 공항으로 걸어가던 시영은 오싹한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시영은 두 개의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오싹한 느낌은 두 곳 모두에서 느껴졌다. 묘하게 기분 나쁜 느낌에 시영은 양쪽을 경계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영이 공항을 가기 위해서는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다. 어느 쪽이든 시간도 비슷했고, 느껴지는 분위기만 조금씩 다를 뿐이었다.

  왼쪽은 포근하고 따뜻한, 마치 해바라기와 같은 편안한 느낌이었고, 오른쪽은 뜨겁고 간지러운, 마치 장미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때 양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거의 동시에 들린 소리는 시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포근한 왼쪽, 간지러운 오른쪽. 계속 고민하던 시영은 왼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히히히!”

 “이러지 마세요!”

  민화는 약 다섯 마리 정도의 귀신들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녀의 머리와 팔, 다리 등을 툭툭 치며 그녀가 싫어하는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민화는 계속해서 팔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형체가 없는 귀신의 특성상 아무런 효력을 주지 못했다. 그녀가 저항할수록 귀신들은 그녀를 더욱 더 강하게 괴롭히려 했다.

 “야!!!”

  그때 시영이 망설이지 않고 귀신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귀신들은 무작정 달려드는 그를 비웃으며 피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귀신에게 주먹을 날렸고, 그가 날린 모든 공격은 귀신에게 명중하며 그것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괜찮으세요? 어? 너는 민화 아냐?”

 “시, 시영아? 여긴 어떻게?”

  두 사람은 서로를 검지로 가리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반가움에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영은 엉거주춤 쓰러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일어나.”

 “고마워. 그런데 네가 왜 여기있는거야? 외국에 있다고 하지 않았니?”

 “그건 조금 있다가 설명해줄게. 일단은 저 잡귀들을 손봐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시영은 어안이 벙벙해진 귀신들을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변에서 보라색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손에서 세차게 회전했다.

 “시, 시영아. 그래도 너무 심하게 하지마.”

  민화의 말에도 시영은 귀신들을 정성스럽게 공격했다. 모두에게 같은 횟수, 같은 위력의 주먹질과 발길질로 타격을 주었다. 귀신들은 도망치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가 던진 회전하는 보라색 구체에 닿아 도망칠 수 없었다.

  시영이 귀신들을 제압한 시간은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았다. 민화는 눈을 깜빡거리며 무슨 반응을 보여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비록 자신들을 괴롭힌 귀신들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시영에게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통쾌하기보다는 안쓰럽다는 느낌이 더욱 크게 들었다.

 “이것들이… 사람을 봐가면서 장난쳐야지!”

  민화는 씩씩거리는 시영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민화야. 일단 반대쪽 길에도 비슷한 비명소리가 들렸었거든? 같이 가볼래?”

 “으, 응. 알았어.”

 

 

  시영의 생각대로 반대쪽도 상황은 비슷하게, 한 여성이 유령들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에는 여성을 구하기 위해 두 사람이 유령을 향해 공격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그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그 모습만은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시영은 정신을 집중해 보라색 구체를 생성했다.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갖추자 그것을 회전시키며 유령들을 향해 던졌다.

 “거기 두 분 피하세요!”

  시영은 큰 소리로 그들에게 외쳤다. 그 목소리를 들은 창연과 강혁은 시영이 날린 구체를 보고 피했다. 뭉쳐있던 유령들은 구체에 닿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오호? 신기한 구체구만? 우리가 아무리 용을 써도 귀신에게 뭘 해볼 수가 없었는데 말이야.”

  강혁은 두 방향으로 회전하는 구체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건들려 했다.

 “그거 건들지 마세요. 그랬다간 몸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돼버리니까요.”

  시영은 덤덤하게 말했다. 강혁은 흠칫 놀라 손을 뒤로 뺐다.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강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회전하는 그 자태를 주시했다. 난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회전하는 보라색의 자태는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그랬기에 손대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더욱 손을 대고 싶어졌다.

  그 무렵 달려가던 시영은 움직일 수 없는 유령들에게 발차기를 날리려 했다. 그렇게 그들에게 점프했고, 발차기를 날리려는 그 순간!

 “Specter!! Necro!”

  누군가 주문을 외웠고, 사악해 보이는 악령과 주술사처럼 보이는 형체 없는 유령이 시영의 앞에 우뚝 나타났다. 그들은 시영에게 충격을 주며 튕겨냈다. 그 바람에 그는 민화의 앞까지 날아가 버렸다.

 “시, 시영아!”

 “아야야. 대체 뭐야. 아으…”

  시영은 인상을 쓰며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민화와 창연, 강혁은 주문을 외웠다 생각되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스펙터, 네크로. 어서 저 고스트들을 회수해오세요.”

  주문을 외운 사람은 후드를 쓰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맨발에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담담하고 나른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명령을 받은 강령(스펙터)과 주술령(네크로)은 구체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유령들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그것들이 유령에 간섭하자 회전하는 구체의 영향이 그들에게도 전해지며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뭐, 뭐죠?”

  후드를 쓴 여성은 적잖게 당황했다. 강혁은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는 구체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네놈이 이 트러블의 원인?”

  창연은 창끝을 후드를 향해 가리키며 물었다. 수정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얼음 창은 반짝거렸고, 그만큼 날카로운 자태를 자랑했다. 그의 위협에 후드는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봐 창연아. 너무 무섭잖아.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말해줄 것도 못 말할 거라고.”

  강혁이 창연의 어깨를 토닥거리자, 창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그시 창을 거뒀다.

  강혁은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후드를 향해 옮겼다. 후드는 그런 그의 움직임을 경계했고, 여차하면 도망치려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해코지하려는 게 아닙니다.”

  강혁은 뒷걸음질 치며 걸음을 멈추었다.

 “일단 저 유령들에 대해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고선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제 실수로 빠져나온 유령들이에요. 조용히 회수만 하고 돌아갈게요.”

  후드는 말을 마친 직후 침을 꿀꺽 삼켰다. 시영의 구체는 어느새 사라졌고, 그녀는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그곳에 모든 유령을 회수했다.

  잠깐 동안의 트러블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던 강혁은 후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문득 그녀에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며, 무언가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생각을 거듭했다. 곧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얼음계곡 근처의 밭에서 작물을 서리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그건?”

  강혁의 개인적인 질문에 근처에 있던 모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후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들짝 놀라며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치 귀신들린 것 마냥 예측할 수 없게 날뛰기 시작했다.

 “아뇨. 해코지하려는 게 아니고.”

 “정말 죄송합니다!”

  후드는 수많은 영혼들이 들어있는 투명한 수정구를 꺼내 하나의 영혼을 발사했다. 그것에 맞은 강혁은 부동자세로 우뚝 섰고, 양팔을 부산스럽게 흔들며 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닐까?”

  시영과 함께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민화는 강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초에 나는 비명을 지른 사람 두 명을 위기에서 구할 생각만 하고 있었어. 이건 저 사람들의 문제잖아. 후드 쓴 사람이 위험한 귀신을 쏜 건 아닌 것 같으니 괜찮을 거야.”

  시영은 민화를 안심시키듯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시영은 뭔가를 갈등하고 있었고, 눈치 빠른 민화는 이 상황도 그런 갈등 중 하나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민화는 강혁을 바라보았다. 시영의 말처럼 유령에 맞은 그는 뒤로 걷기만 할 뿐 위험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부자연스런 그의 행동이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구해줘.”

  민화는 시영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여전히 뒤로 움직이고 있는 강혁을 가리켰다. 시영은 못 본 척 하며 그녀의 말을 무시하려 했다.

 “가만히 있을 거야?”

  민화는 시영과 눈을 맞대며 다그치듯 말했다. 시영은 많은 것을 내포하는 그녀의 눈빛을 보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견딜 수가 없을거라 느꼈다.

 “휴우… 알았어. 대신 저 사람하고 유령만 분리할거야. 그것뿐이야.”

  민화는 그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영은 손을 위 아래로 펴고 정신을 집중했다. 회전하는 보라색 구체가 손에 생성되자, 회전시키며 강혁에게 던졌다.

 ‘대체 저 구체는 뭐지?’

  창연은 시영이 생성한 구체에 대해 의문을 느꼈다. 구체는 빠르게 회전하여 강혁의 몸에 닿았고, 이내 그의 몸을 타고 머리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궁금하군.’

  창연은 품속에서 블랭크 스크롤 한 장을 꺼내 구체를 향해 던졌다. 구체는 강혁의 몸 속 귀신을 끌어올리고는 그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며 사라졌다. 창연이 날린 스크롤은 유령에게 명중해버렸다.

 “!”

  유령은 스크롤의 영향으로 봉인되었다. 스크롤은 회색으로 물들었고, 강혁의 아래로 툭 떨어졌다.

  시영과 민화는 스크롤을 던진 창연을 멀뚱멀뚱 바라보기 시작했다. 창연은 그런 시영을 바라보았다. 곧 두 사람의 눈은 마주쳤다.

  서로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만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오늘 처음 본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어이, 창연. 쫓아가자.”

  어느새 창연의 근처로 달려온 고속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 달려갔다. 창연은 눈을 슬며시 감으며 고개를 저었고, 떨어진 스크롤을 줍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넌 누구지.”

  시영의 곁을 스쳐 지나가던 창연은 그에게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특유의 감정 없는 말투 때문인지 시영은 그가 하는 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창연은 스크롤을 줍고 강혁을 따라갔다. 시영은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럼 가볼까?”

 “저기 여성분은 어떻게 하고?”

  민화는 손으로 가로등 밑 넘어진 여성을 가리켰다. 민화처럼 유령에게 괴롭힘을 받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분홍색 드레스을 입고 손목에는 하트모양 시계를 차고 있었다. 시영은 어딘지 그녀가 낯이 익었고, 뺨을 긁적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구하는 게 목적이었고, 원흉이었던 귀신들과 유령들은 퇴치했으니까 가던 길 가면 되지 않을까?”

 “넌 얘가 어떻게 생각을 일직선으로 밖에 못하니?”

  민화는 시영을 쏘아붙이듯 나무라기 시작했다.

 “저분이 움직이지 못하는 걸 봐. 만약 다리라도 삐었으면 우리가 도와줘야지!”

  시영은 쓰러진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민화는 계속해서 그를 타박했고, 이제야 다리를 다친 걸 확인한 그는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시영은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운명…! 절 구하러 와주셨군요.”

  시영은 그제야 그녀에게 느꼈던 낯익은 느낌을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장미 향기를 남기고 사라졌던 그 소녀, 아미였다. 아미는 그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시영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 아뇨. 이게 운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다리는 괜찮으세요?” 시영의 말에 아미는 오른쪽 다리를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삔 다리는 그녀에게 통증만 주었고, 그녀는 인상을 쓰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흐…”

 “많이 아프신가요?”

 “업어주실 수 있으세요?”

 “네?”

  시영은 그녀가 눈을 지그시 뜨며 부탁하는 탓에 마지못해 등을 내어주었다. 아미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허리, 팔, 팔꿈치, 어깨를 차례로 잡고는 그에게 업혔다.

 “시영아, 아는 사이야? 어? 잠시만, 너 정말 이분이랑 정말 아는 사이야?”

  천천히 걸어오던 민화는 아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그에게 경박스럽게 물었다.

 “응? 아니 오늘 한 번 본 게 끝이야. 누군지 잘 몰라.”

 “거짓말!”

  민화는 믿을 수 없었다. 인기 아이돌인 아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영은 믿을 수 없게도 유명인을 업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표정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저 마지못해 업어준다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은 인기 아이돌인 아미야!”

 “우흣~ 인기 아이돌까지는 아녜요.”

  아미는 웃으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다. 시영은 곁눈질로 자신의 등에 업힌 아미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침에 한 번 본걸 제외하면 정말 본적이 없었기에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이 사람 그렇게 유명해?”

 “정말 몰라?”

  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화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떨떠름하게 믿으려 했다.

 “이런 만남은 운명이라 생각해요. 절 모르는 분이라면 그야말로 운명…”

 “운명이라니? 무슨 소리야?”

  민화는 시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영은 자신도 묻고 싶었지만, 물어본다면 분명 귀찮아질게 뻔했기에 입을 굳게 다물고 택시를 잡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곧장 병원 응급실을 향했다. 아미의 발목 상태는 심하게 다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혼자서 움직일 수는 없었고, 민화가 그녀의 보호자 역할로 곁에 있어주었다.

 

  시영은 병원 로비에서 홀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11시…”

 “시영아 무슨 일 있니?”

  민화가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게 오늘 사정이 생겨서 여기 잠시 들린 거야, 10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다시 가야 했었거든. 그런데 놓쳐버려서 말이야.”

  시영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민화는 몰랐던 그의 사정을 듣자마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 미안해. 그렇게 바쁜 줄 몰랐어.”

  민화는 우물쭈물대며 사과했다.

 “응? 아냐. 그래도 너랑 저 아미라는 분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해. 비행기야 다시 탈 수 있지만, 만약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잖아?”

 “그래도 내가…”

  시영은 활짝 웃었고, 그 미소에 민화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솔직히 택시 타고 오면서 계속 생각했어. 아니, 솔직히 예전부터 계속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니?”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라는 생각? 뭐, 지금은 D-Zero의 진실을 찾기 위한다는 목표가 있기는 해. 그런데 내가 점점 그 진실에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어. 정말…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길 바라는데…”

 “시영아…”

  민화는 측은한 눈빛으로 시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시영의 미소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 약간의 빛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지만, 그 빛마저 어두워보였다.

 “생각을 일직선으로 밖에 하지 못한다. 동감이야. 그런데 이건 내가 하기 싫어서 외면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그래.”

  시영은 활짝 웃어보였고, 민화는 그 미소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할 수 없었고, 공감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이해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반감만 늘어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영이라는 사람에 대한 연민만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어느새 측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생각을 일직선으로 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 네가 정한 길에 대해 후회하려는 그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을 믿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는 법이잖아. 잘 이겨내서 다음을 향해 도약하는 게 어떨까?”

  민화는 웃으며 말을 마치자마자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자기를 믿는다라…”

  시영은 혼잣말하며 아미에게 향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민화야.”

 

 

 

 “저, 아미 씨, 괜찮으세요?”

  민화는 아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녀는 민화를 보자 활짝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아, 네. 한결 편해졌어요. 고마워요 민화언니.”

 “어, 언니?”

  급격하게 가까운 호칭에 민화는 당혹감을 느꼈다.

 “예. 언니요. 앞으로 자주 볼 사인데”

  반면 아미는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 민화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도통 적응할 수 없었다.

 “제가 아이돌이랑? 에이, 어쩌면 이젠 못 볼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자주 볼 사이라뇨.”

  민화는 손사래를 쳤다. 여전히 아미는 미소 짓고 있었고, 묘하게 느껴지는 고혹스러움에 민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미는 그녀의 행동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언니는… 시영 씨랑 아무 사이도 아니신가요?”

 “아, 아뇨. 친구인데… 그게…”

 “친구인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그, 그… ”

  민화는 금세 얼굴이 새빨개졌다. 민화는 그녀가 말하려는 단어를 예측할 수 있었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우흣~ 언니, 소꿉친구라는 단어도 있어요.”

 “그, 그래요! 소꿉친구! 그거에요! 소꿉친구! 아하하! 소꿉친구라고요!”

  민화는 어색하게 큰 소리로 웃어댔고,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아미는 그런 모습에 귀여움을 느끼며, 지그시 눈웃음을 지었다.

 “그, 그럼 정말 반말 써도 될… 아니 되겠지?”

 “얼마든지요. 언니.”

  아미의 말이 끝나자 때마침 간호사가 그녀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가까이 왔다. 간호사와 아미의 대화가 오가던 중, 민화는 문득 시영과 아미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간호사가 다른 곳으로 가자마자 아미에게 물었다.

 “저, 아미야. 시영이랑 정말 모르는 사이야?”

 “네. 이게 두 번째 만남이거든요.”

  민화의 물음에 아미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 그래? 난 너희들이 서로 아는 사이인줄 알았어.”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니까 더 친한 척 하고 그래서 그렇게 보였을 거예요.”

 “아아, 그랬던 거야? 응? 뭐라고?”

 “전 시영 씨에게서 운명을 느꼈어요.”

  민화는 생각 이상으로 황당함을 느꼈다. 뒤통수를 뿅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얼얼함에 잠시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못 보던 사이에 미성년자나 유혹하고 다녀?’

 “그래서 더 알아가고 싶은 거예요.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저렇게 이끌리는 느낌의 사람은 처음이거든요. 우흣~ 비밀을 들켜버렸네요.”

  민화는 시영은 몰라도 아미는 그에게 마음이 있다고 느꼈다. 묘한 상황에 눈썹을 만지작거렸다.

 “시영이의 어디가 좋아?”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요?”

 “그래도 어디가 좋은지 그게 궁금해서 말이야.”

  민화의 말에 아미는 이마에 검지를 대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입술을 내밀고, 눈을 감고, 미간을 찡그려도 별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음, 아직 자세히 생각은 안 해봤어요. 단지 시영 씨에게 느껴진 이끌리는 느낌. 그게 다에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속에서 운명을 느꼈다는 것. 지금은 그것뿐이에요.”

 “그래? 운명이라… 대, 대체 무슨 만남이었을까?”

 “우흣? 알려드릴까요?”

  아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민화의 뺨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고, 손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 모습에 아미는 입을 가리며 순하게 웃었다.

 “우흣, 언니는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내, 내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럼 좋은 분으로 정정할게요.”

  아미는 특유의 처진 눈으로 민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영 씨에 대해서는 앞으로 천천히 만나면서 알아갈 거예요.”

 “시, 시영이는 곧 외국으로 나가야해. 만나려면 연락이라도 주고받아야 하지 않아? 그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우흣~ 다 방법이 있죠. 아, 마침 저기 오네요.”

  아미는 손가락으로 커튼 밖을 가리켰다. 그 순간 민화는 깜짝 놀라 눈이 커졌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서는 또 다른 아미가 왼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댄 채 그녀들을 눈웃음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미가 둘?”

 “제 능력인 This Illusion이에요. 저기 있는 아미는 제 환영이랍니다.”

  그것은 환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환영은 하늘색과 연두색이 조화로운 문양을 이룬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오른 손에는 단색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언니, 저 스마트폰.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이죠?”

 “시영이꺼잖아?”

 “우흣~ 맞아요. 저건 시영 씨의 스마트폰이죠. 저는 비록 환영에 불과하지만 본체와는 기억을 비롯한 다양한 걸 공유할 수 있어요. 시영 씨는 환영인 저라도 굉장히 불편해하던데요?”

 “수고했어.”

  아미는 환영과 웃으며 대화했다. 민화는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기묘한 모습에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감탄했다. 환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민화는 오랫동안 환영의 특이함에 빠져 나오지 못했다.

 ‘환영이라. 대단해.’

  아미는 시영의 스마트폰을 켰다. 그것에는 아무런 보안 장치가 있지 않았고, 아미는 조금 놀란 반응을 보이며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곧 아미의 화려한 분홍색 스마트폰에 벨소리가 울렸다.

 “이제 이 번호를 저장해놓으면…”

  아미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번호를 연락처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고, 저장을 완료했음에도 한참동안 손을 스마트폰에서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민화는 그녀를 조심스레 바라봤고, 이내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미야?”

 “네, 네?”

  민화의 부름에 아미는 화들짝 놀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케이스에 있던 하트 장식이 깨져버렸고, 민화와 아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아? 왜 그래?”

  민화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긴장한 것 같아요.”

  아미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지만, 표정은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민화가 스마트폰을 주워주자 그제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고마워요.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아미는 민화의 물음에 침을 꿀꺽 삼킨 다음에야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게, 남의 휴대폰을 몰래 가져온 건 처음이에요. 그것도 시, 시영 씨의 휴대폰을 가져 온데다, 그게 저한테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미는 여전히 긴장한 모습이었고, 이따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뺨은 어느새 홍당무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민화는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아주었다.

  민화는 TV에서만 보던 아이돌인 아미도, 그저 한 명의 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 소녀. 단지 행동이 과격할 뿐인 소녀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민화는 그녀에 대한 긴장을 완전히 풀 수 있었다.

 

 

 “저기, 혹시 내 스마트폰 못 봤어?”

  시영이 곤란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그녀들에게 다가왔다. 민화는 화들짝 놀라며 아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시선을 옮겼다.

 ‘이, 이걸 어쩐담?’

  민화는 당혹감을 느꼈다. 솔직하게 말하기도, 그렇다고 당장 거짓말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저 아미의 손과 시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아미가 손을 들었다.

 “언니가 주워왔어요. 곧 시영 씨에게 돌려주러 가신다고 했는데, 마침 오셨군요?”

  아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민화에게 스마트폰을 넘기며 말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시영을 바라보았지만, 몸은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

 “아, 그래? 고마워. 택시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거든.”

  시영은 민화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아미는 그의 웃음에 마음이 안심되었다.

 “으, 응! 다행이야!”

  민화는 당황하여 목소리가 높게 나왔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그것보다 아미 씨? 다리는 괜찮으세요? 방금 전에는 조금 걸으실 수 있던 것 같던데.”

  시영은 어색한 시선으로 아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아미는 화들짝 놀라,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네? 하하, 잘못 보신 거예요.”

  아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지그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 그렇겠죠? 제가 피곤한 것 같네요. 하하.”

  시영은 머쓱하게 웃으며 조심스레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미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문득 민화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미는 왜 혼자 다닌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연예인은 보통 매니저와 같이 다니기 마련이었고, 아미 같은 인기 아이돌은 매니저의 극진한 대접과 보호를 받는다 생각했기에, 혼자 다니는 그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저, 아미야. 혹시 매니저 분은 지금 어디 계시니?”

 “매니저 오빠요?”

 “응. 연예인은 보통 매니저랑 같이 다니지 않니?”

 “같이 다니긴 했었죠. 몇 시간 전까지는…”

  아미는 말을 아꼈고,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삔 다리를 주물럭거렸다.

 “몇 시간 전까지라면 혹시?”

 “혹시?”

 “다치신 거야?”

 “예? 아, 아뇨. 저희 매니저 오빠는 다치지는 않았을 거예요.”

  민화는 나쁜 일이 없었다는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단지 자동차와 대등한 속도로 달리는 한 남성 때문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신세이긴 해요.”

 “자동차와 대등한 속도라니? 혹시 나쁜 사람에게 쫓기는 거야?”

 “잘 모르겠어요. 갑작스레 저희 오빠한테 ‘포우의 정보를 얻으러 왔다’ 라며 마치 도전장을 건네듯 나타났어요. 정말 눈에 보이지 않았거든요. 뭔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것 같은데…”

  민화는 문득 쑥대밭이 된 공원에서 만난 한 남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오전에 만난 그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혼자서 집으로 가다가 유령을 만났고, 시영 씨와 언니를 만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언니는 여기 오기 전까지 뭘 하셨어요?”

 “나? 나는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시네요.”

 “하하. 그런 일이 조금 있어서.”

  민화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애써 미소를 드리웠다. 아미는 곤란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데려다주신다니 기뻐요.”

 “하하하.”

  시영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등에는 아미가 업혀 있었고, 그녀는 시영의 등에 편히 몸을 기댔다.

 “그나저나 정말 미안해.”

 “나중에 가도 괜찮아. 어차피 비행기를 놓쳐서 조금 이따 갈 생각이거든, 그것보다도 아미 씨를 쉽게 업을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잖아?”

  민화는 웃는 얼굴로 말하는 그에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길을 안내해주는 아미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고 있을 시간이기도 했지만, 시영, 민화는 어색함에 할 이야기가 없었다.

 “맞다. 오늘 포우가 나타났었어요.”

  아미는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입을 열었다.

 “포우?”

  민화가 되물었다.

 “예, 포우요.”

 “어, 어디서 본거야?”

  민화가 숨을 죽이며 말했다.

 “오후쯤이었고, 짓다만 공사현장이요! 그때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무서운 눈을 가진 사람 둘이서 싸우고 있었고, 이상 세계 현상이 일어나고…”

  아미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민화에게는 당시의 느낌이 충분히 전해질 수 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이 포우였구나.’

 

 

  시영은 아미가 사는 숙소에 그녀를 내려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지만, 시영은 여전히 그녀가 부담스러웠다.

  시영은 민화도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역시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영이 그녀에게 인사하고 돌아가려 할 때, 민화가 그를 불렀다.

 “저, 시영아.”

 “응? 왜?”

  시영은 고개를 돌려 민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연신 입을 달싹거리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지금도 널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도와도 괜찮을까?”

  용기를 내서 한 말이었다. 그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시영의 표정은 미묘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만 깜빡일 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시영은 머리를 넘기는 시늉을 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거절할게. 미안해.”

  민화는 그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그랬다.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며, 줄 수 있는 도움도 거절하는 그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민화는 계속해서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그의 행동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고, 깊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조금 흘러, 탐정 사무소에서는 노바와 해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 노바가 잘못한건가요?”

  노바는 훌쩍이며 말하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훌쩍임은 곧 오열로 바뀌어갔다. 해성은 그녀에게 휴지 5장을 건네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네가 잘못한 건 없단다.”

 “하지만, 노바가 시영이한테 뭐라 하지 않았으면 사무소를 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노바는 옥상에서의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의 한심한 모습이 보기 싫어서 그랬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가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은 시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접어들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시영이는 돌아올 거야.”

 “정말요…?”

  노바는 훌쩍이는 코를 풀었다. 하지만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아직도 코 속에는 콧물이 남아 있었다. 해성이 도와주자 그제야 코를 시원하게 풀 수 있었다.

 “당연하지! 시영이는 노바가 싫어서 나간 게 아니라, 단지 일이 생겨서 나갔을 뿐이란다.”

  해성의 다정한 목소리에 노바는 그제야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사무소의 문이 열렸고, 그곳에선 한밤중의 어두움과 어울리는 검은 복장의 사내, 시영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노바?”

  시영은 노바를 바라보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이유는 그가 알 수 없었지만, 펑펑 운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노바는 시영을 보자 미안함에 훌쩍거렸다. 그녀에게선 자신에 대한 반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던 것 마냥 안심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시영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다녀왔어, 그리고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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