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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세계의 환상
작가 :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18.6.8

6개월 전 일어난 이상 세계 현상.
그 이후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World 2 괴물의 마석-4(시영)
작성일 : 18-06-09 06:17     조회 : 17     추천 : 0     분량 : 10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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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영은 자신과 피자를 사이에 둔 유마라는 사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시영은 유마라는 사람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단순히 편지와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이었기에 당연했지만, 유마가 그를 알고 있었기에 만남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유마와의 대화는 시영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속을 읽고, 대화하는 것 같았다. 시영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영 군은 해방기에 대해 잘 모른다는 말씀이시군요?”

  유마가 사이다를 마신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미 그에 대해 파악이 끝났기 때문에 D-Zero 관련된 이 마을에서의 일을 잘 모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해방기를 잘 모르는데 어째서 해방기를 가지고 있던 거지?’

 “네, 어제 유마 씨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시영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넘기는 시늉을 했다. 유마는 자신의 접시에 놓인 피자를 툭툭 건드리며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정직한 사람이라 확신했기에 미심쩍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 판단했다.

 “그럼 그동안 어떤 명칭으로 부르셨나요?”

 “카드 덱?”

 “카드 덱이요?”

  시영은 모르는 게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가 해방기의 제작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온 게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카드 같이 생긴 건 알지만, 그건 카드와 관련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유마는 그의 마음속을 다시 읽었지만, 확실하게 거짓이 아니었다. 그로서도, 시영으로서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뭐, 일단 해방기를 잘 사용하시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시영 군은 D-Zero와 이상 세계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피자 한 조각을 접시에 가져가던 시영은 눈을 깜빡거렸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제가 꼭 해결하고 싶은… 원인 불명의 자연 현상이요.”

  시영은 먹으려던 피자도 잠시 잊어버린 듯,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실내에서도 벗지 않은 모자를 왼손으로 더듬거렸다.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는 그의 목표였다. 풀리지 않는, 왜 일어난 건지, 왜 그래야 했는지, 모든 것이 의문인 D-Zero. 그는 스스로도 불쾌한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마음을 읽고 있던 유마도 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유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종업원에게 시럽을 부탁했고, 그것을 자신의 피자에 젖을 정도로 뿌렸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D-Zero에 적대적인 사람이군.’

  유마는 솔직하게 말하면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이 마을 사람이라는 것과 더불어, 이 마을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상 세계 현상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기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에게 느껴지는 적대적인 느낌은 너무나도 정직했기에 유마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저렇게 드시면 물리지 않을까?’

  시영은 흔들리는 눈빛과 함께 시럽에 젖은 피자를 베어 무는 유마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목이 막히는지 초코 셰이크를 시키는 유마를 바라보며, 그는 단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피자를 크게 베어 물었다.

 “시영 군을 만난 이유는 이상 세계 현상 때문이었지만, 하나 더 생겼습니다. 아니, 생겨버렸다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

  시영은 피자의 테두리를 빨아들이듯 먹으며 유마를 올려다보았다.

 “생기다뇨? 제게 뭐 있나요?”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죠. 시영 군은 이 마을을 사랑하시나요?”

  시영은 입 안 피자를 오물거리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마을이요?”

 “네, 그렇습니다. 이 6개월 만에 급속도로 성장을 이룬 도시, ‘혜성’을 당신은 사랑하십니까?”

  유마의 물음에 시영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이상 세계 현상이 일어나는 도시, D-Zero라는 전대미문의 공간 붕괴 현상이 일어난 도시, 그리고 그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 간단하고, 쉽게 말할 수 있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것만큼 대답하기 힘들고 어려운 질문이 없었다.

 “…전 그럴 수 없어요.”

  이번에도 시영은 대답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말을 마친 직후, 팔꿈치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두 손을 모았다. 유마가 본 모습은 마치 회개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외국으로 떠난 건가?’

  유마는 시영과는 평소처럼 대화하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 유마는 사람은 겉과 속이 어느 정도는 다르기 마련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그게 아닌 사람들도 없지 않아 존재했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선 이터널과 시영이 그 부류에 속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땐, 마음을 읽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의 진솔한 대화를 원했다.

  유마는 진심으로 이런 사람들을 원했고, 손해를 싫어하는 그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사귀고 싶어 했다.

 “이번 건 제가 쓸데없는 걸 물었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유마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마침 그에게 주문한 초코 셰이크가 배달되었다.

 “아뇨, 유마 씨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궁금하셔서 물은 건데요. 사과할 필요 없으세요.”

  유마는 그 순간, 사레에 들렸다. 시영은 그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거렸다.

 “감사합니다. 시영 군. 콜록!”

  시영의 친절에도 유마의 사레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처음 만났음에도 망설임 없이 자신을 도와준 시영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따스함에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혹시 시영 군,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아뇨?”

  너무나도 당연한 부정이었다. 유마는 그를 어렴풋이 한 번 본 게 끝이었다. 그마저도 그를 만나려는 누군가에게서 정보를 얻은 뒤, 흥미롭게 생각했을 뿐이었고, 그를 기억한 것도 그가 모자를 비롯해서 수수한 단색 검은 옷을 입은 걸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유마는 그에게서 약간의 그리움을 느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었기에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했다.

 “잠시 딴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유마는 잠깐의 추태를 사과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 마을을 사랑하냐 물은 이유는 아무래도 시영 군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얼마나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많은 일이 있었죠. 도시로 바뀐 지금에도 이상 세계 현상, D-Zero, 그리고 현재 제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 모를 의식 불명 까지… 시영 군은 분명 ‘그럴 수 없다.’라 말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죄송해요. 그건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 드리기 힘들어요.”

  시영은 양해를 구했다. 유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존중했다. 물론 금방이라도 그는 시영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의식 불명 현상이요? 또 무슨 사건이 터져버린 건가요?”

 

 “에… 그렇긴 합니다. 불리는 대로, ‘이유 모를’이라는 점이 걸립니다만…”

  유마는 자꾸만 말을 흐렸다. 시영은 그의 말을 되짚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이유 모를 의식 불명 사건의 범인이 저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예? 아, 아뇨. 왜 그렇게 생각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아닙니다.”

  당황한 시영과 유마, 특히 유마는 손사래를 치며 그의 예상을 전면 부정했다.

 “단지 어젯밤 시영 군과 메일을 나눈 뒤, 제 동료에게서 들은 정보 때문에 그런 겁니다.”

  유마는 승혁과 나눈 이야기로 차근차근 시영을 설득시켰다. 그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듣던 시영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던 거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의심 가는 게 한 둘이 아니지만, 적어도 그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유마가 말을 끝내자마자, 시영은 미심쩍은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증하실 거죠? 뭐 때문에 제가 관련이 있다는 소리를 하시는 지 잘 모르겠지만, 전 약 5~6개월 동안 외국에 나가 있었어요. 더군다나 이유 모를 의식 불명 사건은 여기서 처음 들었고요. 제가 원하는 건 단지 D-Zero의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보고,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유마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승혁이 자신에게 주는 정보는 거짓이 아님을 확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리라 생각되지 않았고, 스스로도 시영이 의식 불명 사건과 관련이 없다 생각했기에 말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때, 유마의 뇌리에는 승혁이 건넨 사진이 떠올랐고, 잽싸게 주머니에서 구겨진 사진들을 꺼냈다.

 “이게 뭐죠?”

  시영은 구겨진 사진을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사진 속에선 보라색 괴인들이 검은 모자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시영은 사진을 보자마자 사고가 정지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의 시간도 필요 없이, 이 검은 모자가 자신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이거… 누가 찍은 거죠?”

  시영의 눈빛은 급격히 흔들렸다. 잘못된 행동을 들킨 것 마냥 일렁이기도 했다. 유마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건 제 동료인 한 선생이 준겁니다. 누가 찍은 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유마는 적어도 그가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지만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이거 저 맞아요.”

  시영은 한숨을 쉬며 사진을 유마에게 돌려주었다.

 “오컬트를 왜 공격하신 거죠?”

  시영은 대답을 망설였다.

 “시영 군?”

 “…목소리가 들렸어요.”

 “목소리요?”

  유마는 그에게 집중하며, 마음속을 다시 읽었다.

 “D-Zero가 일어난 그 날 이후, 저는 ‘오컬트가 D-Zero를 일으킨 범인이다.’라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누군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단지 그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컬트들에게 덤벼들었을 뿐이에요.”

 “아무리 봐도 오컬트는 괴인인데, 이들과 단신으로 싸우셨다는 말씀인가요?”

  유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사진 속 장면들은 좋게 보면 괴인들과 단신으로 싸운 용감한 청년이었지만, 나쁘게 보면 일방적인 한 사람의 폭력이었다. 다수의 오컬트가 아닌, 시영 혼자서 이들을 상대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어려움은 없었어요. 단지 제가 이들을 이렇게까지 공격해도 되려나? 싶은 정도였죠.”

  시영은 고개를 숙인 채, 해방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 네…”

  유마는 초코 셰이크를 들이켜며 생각했다. 승혁의 발언은 그가 사진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시영은 이 일이 널리 퍼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히려 오컬트에게 폭력을 휘두른 걸 후회하고 있었다. 겉과 속 모두 같았다.

  그는 초코 셰이크를 조심히 내려놓으며 다시 생각했다. 승혁은 무언가 알고 있고, 오컬트는 적어도 ‘D-Zero’와 ‘의식 불명 사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모종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유마가 알고 있는 오컬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음산한 골목 자체의 분위기 탓에 그 누구도 그들을 알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영은 혼자서 그들에게 덤벼들었고, 그들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렇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오컬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오컬트와 같이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것 같은, 수수하지만 화려한 이 남자를 좀 더 알아가고 싶었다.

 

 “시영 군,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거지만, 마석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마석이요?”

  유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마석입니다. 혹시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마석도 오컬트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시영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재킷 안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아뇨, 이건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여쭙는 겁니다.”

  그 순간, 시영은 재킷 안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공원에서 주웠던 붉은 마석. 그가 가지고 있는 건 그것뿐이었기에 조심스레 테이블 위로 마석을 올려놓았다.

 “마석이라면 한 개 있어요.”

  유마는 마석의 존재에 눈을 빛내며 은근히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마석입니까?”

  하지만 그가 꺼낸 돌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너도나도 평범한 마석의 모습에 유마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마석과 시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

 “마석 치고는 너무나도 평범해 보입니다만… 끙…”

  유마는 시영의 마음을 읽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큰 혼란을 느꼈다.

  시영은 이런 반응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밴드 붙인 손을 뗐다. 그는 계산대에서 뾰족한 이쑤시개를 가져와 손가락을 찔렀다. 맑은 피가 솟아올랐고, 그것을 마석에 떨어뜨렸다.

  피가 묻은 마석은 읽을 수 없는 붉은 글자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유마는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시영은 어느 정도 마석의 글자가 선명해지자, 다시 손가락에 밴드를 붙였다.

 “정말 마석이군요!”

  유마는 마석 특유의 기묘하고 신비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스승과 소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마석에 홀린 것처럼 느껴지자, 시영은 테이블을 세게 쳤다.

 “유마 씨, 정신 차리세요.”

 “아, 네.”

  유마는 얼떨떨해보였다. 시영은 마석을 여러 번 봐왔지만, 별 다른 감흥이 없었기에 유마를 비롯한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찾고 계신 마석이 이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주웠거든요. 그래서 한 번 연구해보실래요?”

 “연구요?”

  유마는 조심스레 붉은 빛이 나는 마석을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영롱한 자태에서 눈길을 돌리기 힘들었지만, 고개를 홱 돌렸다.

 “돌 연구가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유마의 말에 시영은 미소를 지었다.

 “참, 이 사진은 제가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시영은 마석을 그에게로 밀고, 사진에 손을 뻗었다.

 “사진은 어디에 쓰시려고?”

 “이름이 한 선생인가요?”

 “아뇨, 그건 제가 부르는 별명입니다. 본명은 한승혁입니다.”

 “승혁 씨군요. 알겠습니다.”

  시영은 다시 한 번 사진을 바라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누가 찍었는지, 승혁은 어떻게 이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치욕적이고, 크나큰 불길이 그의 마음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가 취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했다. 일단은 조심스레 주먹을 쥐며 화를 누그러뜨렸다.

 

 “시영 군, 괜찮으십니까?”

  그가 사진으로 인해 분노하고 있다는 건, 유마로서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겉과 속이 똑같은 시영의 특성상 얼굴 표정으로 다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마는 그가 내뿜는 묘한 살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아, 네!”

  연기가 바람에 날아가듯, 시영의 표정도 차즘 평온해졌다.

 “이제는 D-Zero. 가장 중요한 이 이야기를 해야죠.”

  시영이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D-Zero’이기에 화가 누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습니다. 시영 군이 D-Zero에 이렇게까지 투지를 불태울 줄은 전혀 몰랐고…”

  유마는 한껏 조심스러워졌다. 반면, 시영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힘이 넘쳤다.

 “괜찮아요. 뭐든 상관없어요. 별 정보가 아니어도, D-Zero라면 어떻게든 왔을 거예요.”

  시영은 유마가 마석에 눈을 빛내듯, 밤하늘의 별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대체 무엇이 시영 군, 당신을 이렇게 불타오르게 만드는 겁니까?”

 “당연히 D-Zero겠죠?”

 “그렇다면 시영 군은 D-Zero를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진실을 밝히고 싶어요.”

  시영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대답은 짧았지만, 그만큼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럼 진실을 밝힌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죠?”

  유마의 다음 질문은 시영의 입을 스르륵 다물게 했다.

 “단순히 진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다음 행동을 정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진실을 알려는 행위 자체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결과’로 향하기 위한 과정. 전 당신만의 ‘결과’를 듣고 싶습니다.”

 “그럼 유마 씨는, 그 결과라는 게 있으신가요?”

  시영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유마는 몸을 움찔거렸지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제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제 행동의 ‘결과’가…”

  시영은 그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죄송하지만, 제가 찾은 정보가 시영 군에게 알려드리기엔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일에 말을 아껴서 죄송하지만, 제 말의 뜻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당황한 시영은 생각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은 한 번도 결과를 정한 적이 없었다. 그저 막연했다.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는 유마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수긍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사과했다.

 

  두 사람은 피자를 한 판 더 시켜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피자가 다 식어버렸고, 유마는 식은 피자를 좋아하지 않았고, 허기졌기에 선뜻 계산하겠다 말했다. 하지만 시영은 식은 피자를 모조리 먹어 치우고는 자신이 계산한다고 말했다.

 “왜죠?”

 “쿠폰이요.”

  시영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남이 산 피자의 쿠폰은 받을 수 없어요. 제가 산걸 받아야 의미가 있는 거예요.”

  정직한 시영이었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유마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렇게 새로 시킨 피자가 두 조각이 남았다.

 “혹시, 외국으로 다시 가실 건가요?”

 “예?”

  시영은 남은 피자를 유마의 접시와 자신의 접시에 한 조각씩 나눴다. 하지만 배가 불러진 유마는 손을 저었다.

 “제 기억이 맞았다면 시영군은 외국에서 메일을 받은 거로 알고 있는데, 다시 돌아가실 건지 궁금해서요.”

 “아아, 그랬었죠.”

  시영은 목을 긁적거리며 유마의 접시를 슬그머니 가져왔다.

 “원래는 유마 씨에게 정보를 들은 다음 바로 가려 했는데…”

 “했는데?”

 “고민 중이에요. 유마 씨의 말도 들어보고, 소인이라는 얘의 사정도 들어보고, 또 오늘 오전에 봤던 여러 가지 만남? 그런 것들을 겪고 나니 돌아가기에는 너무 걸리는 게 많아요.”

  시영은 자신의 접시의 피자를 크게 베어 물었다. 그 직후, 그는 입을 오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는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면 그만입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십시오. 마음이 따르는 대로 옳은 것을 행하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유마의 말에 시영은 음식을 꿀꺽 삼켰고, 모자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그때 유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시영은 유마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닮은 듯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세히 보니 인상뿐만이 아닌 풍기는 느낌, 분위기 등 여러 가지가 닮았다 느껴졌다.

  하지만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부정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나중에라도 정의를 내리고, 제 목표의 결과를 정한다면, D-Zero의 정보를 알려주실 건가요?”

  시영은 유마의 접시의 피자를 집었다.

 “물론입니다.”

  유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시영 또한 미소 지었고, 손에 들린 피자를 크게 베어 물었다.

 

 

  그렇게 피자집을 나온 시영은 유마라는 사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D-Zero에 대해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조언을 아낌없이 줬기에 좋은 사람인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시영은 미리 주문해 둔 피자를 들고 누나와 동생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편안한 곳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아파트가 가까워지고, 시영은 오늘 오후에 봤던 소민에 대해 생각했다. 소인의 누나이자, 아침에 서늘한 눈빛의 사내와 싸웠던 소민. 그녀는 새빨개지다 못해 탁해져버린 눈동자로 이 아파트를 응시하며 걷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덜덜 떨렸고, 입을 움직이며 뭔가를 말했다. 그렇게 아파트로 가려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곧 어디론가 이동해버렸다.

  공원에서 봤을 때보다 상태가 더욱 좋아 보이지 않았다. 소인에게 들은 몇 가지 사실 덕분에 ‘마석’의 영향으로 현재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존재만으로 시영은 경계심을 가졌다. 더군다나 그녀가 가려 했던 이 아파트는 그의 가족들이 사는 장소였기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영은 조심스레 생각했다. 유마는 왜 마석을 언급한 것일까. 개인적인 이유라고 했지만, 소민을 봤던 시영으로서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시영은 갑작스레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듯 생각에서 일어났다.

 “예?”

 “아직 가을이지만, 그래도 밤공기는 차가워요.”

  낯선 소녀의 목소리. 작은 체구에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이목구비, 처음 봤지만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 분위기, 묘하게 밤이 어울리는 소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묘하게 느껴지는 거부감과 기분 나쁜 느낌이 시영에게 전해졌다.

 “누구세요?”

 “그냥 쓰레기를 버리러 온, 이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에요.”

  소녀는 어느 정도는 선을 그었지만, 묘하게 시영에게 치근덕대었다.

 “어디 사세요? 전 405호 살아요.”

 “아, 저는 누나 집에서 가끔 머물거든요. 우리 집은 404호에요.”

 “와, 가깝다. 반가워요.”

  소녀는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시영은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몸을 숙여 악수에 응했다.

 “다음에도 만나길 바라요~”

  소녀는 발랄한 목소리로 말하며 아파트로 걸어갔다. 하지만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그 발랄한 목소리도 치명적으로 들려왔다. 그 때문에 시영은 괜스레 긴장되어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사람… 묘하게 내 왼손을 바라봤었지?’

  시영은 반창고를 붙인 왼손을 바라보았다. 마석에 피를 묻히기 위해 바늘로 찌른 손이었다. 이야기하면서도 이따금 왼손을 바라보는 모습에 시영은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반창고의 모양이 분홍색 하트모양이었고, 어울리지 않은 발랄한 반창고에 신기해하며 쳐다보았다고 생각하니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시영은 긴장을 풀고, 아파트를 향해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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