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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Blood Rose
작가 : 사로야
작품등록일 : 2017.10.30

천년에 한번 태어난다는 뱀파이어 로드. 선대 뱀파이어 로드는 반란으로 인해 죽으며 저주를 남긴다.
그 저주는 다음에 태어날 뱀파이어 로드는 인간인 블러드로즈를 옆에 두지 않는 이상 인간의 피를 마시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느낀다는 저주였다.
저주를 두르고 태어난 뱀파이어 로드 '라티안스' 와 그의 블러드 로즈 '임지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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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6 20:42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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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는 조금 평화로운 듯했으나, 4시 정도가 되어 그들을 감시하던 브리지트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그들 중 어느 한 명의 뱀파이어의 집에서 모임을 하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 모임에 모이는 뱀파이어 중 한 명이 헤레이스라는 것도.

 지유는 그 소식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라티안스의 편이라고 했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그새 마음이 변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로드가 될 생각이였던걸까.

 지유는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헤레이스 씨를 믿고 있었는데….’

 

 헤레이스가 라티안스의 적이 된 게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런 지유와는 반대로 헤레이스는 건물 안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기분이 꽤 괜찮았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큰 소리로 웃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었다.

 다들 자신에게 깍듯이 인사하며 자신을 차기 로드 후보로 대해주고 있었다.

 귀족 여자의 입김과 자신을 밀어주겠다고 말했던 뱀파이어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권력이라는 건 이렇게나 달콤한 것이었다. 뒷골목을 전전했던 자신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접이라니.

 이래서 내가 로드라는 자리를 포기할 수 없는 거야.

 헤레이스는 귀족들 사이를 유유히 돌아다니며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그때, 누군가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 파티 주체자의 귀에 뭐라 속닥거렸다.

 주체자는 그가 전한 말을 듣자, 와락 인상이 구겨졌다.

 말을 다 들은 나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고, 집에 모인 이들에게 입을 열었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방금 저에게 별로 좋지 못한 소식이 전해져서요.”

 

 “좋지 못한 소식?”

 

 “그게 무엇인가요?”

 

 “그것이 저희 집에서 열린 ‘홈 파티’를 로드께서 유심히 살펴보고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유독 홈 파티, 라는 말을 강조하며 그곳에 모인 뱀파이어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모두 눈치챈 듯 옅게 웃었다.

 라티안스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로드를 추천하기 위해 모인 것이지만, 홈 파티로 위장하겠다는 뜻이었다.

 비록 여기에서 처음 만난 뱀파이어들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죽이 척척 맞았다.

 

 “어머, 로드께서 홈 파티에 왜 그런 관심을 가지실까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희는 그저 홈 파티에 초대된 것뿐인데.”

 

 “맞습니다. 그저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인데, 로드께서 꽤 불안하신 모양입니다.”

 

 넉살 좋은 그들의 반응에 헤레이스는 피로 목을 축이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한순간에 로드는 홈 파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피곤한 로드가 됐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정말 파티에 온 것처럼 쓰잘머리 없는 말을 나눴다.

 그들중 누구도 새로운 로드를 추천하러 온 뱀파이어 같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순수하게 친목을 쌓으러온 것처럼 춤까지 추기 시작한 그들을 보며 헤레이스는 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정말 어리군, 라티안스.’

 

 그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주면 그들은 이렇게 쉽게 빠져나간다.

 이들을 잡으려면 천천히 숨통을 조이며 도망칠 구석 따위 없이 몰아가야 했다.

 몰이 사냥도 못하는 로드라니. 정말 로드로서 자격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뭐, 그가 바닥을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만 좋은 일이니까.

 

 “자, 여러분! 방금 얻어온 신선한 인간의 피를 마시세요.”

 

 집주인의 말에 다들 환호하며 신선한 피를 마시기 위해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뱀파이어들 사이로 헤레이스도 들어갔다.

 그렇게 파티는 밤까지 계속됐고, 헤레이스는 조금 지친 기색으로 집에서 나왔다.

 헤레이스가 집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밖에 서 있던 여자 귀족이 헤레이스에게 다가왔다.

 

 “헤레이스 님…….”

 

 “아, 미안.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어.”

 

 “네? 하지만 로드로 추천한다면 피를 주시기로 약속하셨잖아요!”

 

 “좀 기다려. 내일까지 기다리는 것도 못 해? 내가 피곤하다고 하잖아.”

 

 “저도 오래 기다렸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얼른 피를……!”

 

 “귀찮게 하네….”

 

 헤레이스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자 여자 귀족의 얼굴은 한순간 밝아졌다.

 그리고 헤레이스는 망설임 없이 여자 귀족의 목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아름다웠던 그녀는 싸늘한 주검이 됐다.

 뒤에서 따라오던 렌도크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으나 여상한 얼굴로 헤레이스 근처로 다가왔다.

 

 “제가 뒤처리가 귀찮으니 아무 데서나 죽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던가?”

 

 “그랬습니다. 이 모습을 다른 뱀파이어가 봤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같이 죽이면 되지.”

 

 덤덤한 투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헤레이스를 보며 렌도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렸을 때부터 투기장에서 커온 헤레이스는 목숨 귀한 줄을 모르고 컸다.

 죽이고, 죽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 그것뿐인 세상에서 컸으니 당연한 걸까.

 어쩌다가 자신이 이 뱀파이어와 손을 잡아서는 귀찮은 일을 떠맞게 됐는지…….

 렌도크가 귀찮아하는 기색을 보이자 헤레이스는 렌드크에게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했다.

 

 “너무 귀찮다는 표정 짓지 마, 우리는 한배를 탄 사이잖아?”

 

 “그 사실을 후회하는 중이었습니다.”

 

 “왜 그래. 로드가 되라고 먼저 말한 건 네 쪽이었잖아.”

 

 “…그 사실도 후회 중이었습니다.”

 

 렌도크의 말에 헤레이스는 뭐가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그 호쾌한 웃음소리에도 렌도크 그저 인상만 찌푸릴 뿐이었다. 도저히 웃을 기분이 아녔다.

 정말 그 당시에는 눈에 뭐가 씐 게 분명했다.

 안 그렇고서는야 은빛의 광검사에게 로드가 되지 않겠냐고 말했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정말, 헤레이스에게서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한 강렬한 끌림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이런 망나니인 줄 알았다면 그에게 로드가 되겠냐고 묻지 않았을까….

 그것은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런 면을 알고도 로드가 되지 않겠냐고 말했을 수도.

 

 “일단 이 사체는 제가 처리 할 테니 먼저 가보세요. 더 있다간 곤란합니다.”

 

 “들키면 곤란하다는 거지? 알았어, 갈게.”

 

 “알고 계시면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 여자가 귀찮게 했는걸. 내 잘못만은 아니야.”

 

 “알겠다고 말하는 법을 모르시는 겁니까?”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냅다 대답만 하는 건 취미가 아니라서. 그럼 뒤처리 잘 부탁해.”

 

 손을 흔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헤레이스를 보며 렌도크는 작게 한숨 쉬었다.

 도대체 내가 저 살인광의 어디에 끌린 거였더라…….

 과거를 떠올리며 뒤처리를 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그에게 로드가 되지 않겠냐고 말 걸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는 그때도 은빛 광검사로 불리고 있었으며, 투기장 최고의 검사이자 최악의 검사였다.

 그리고 렌도크는 그런 투기장을 가끔 들리는 귀족의 사생아였다.

 처음 보는 신출귀몰한 속도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칼솜씨에 매료됐다.

 그래, 태양 아래 서 있는 가장 어두운 자는, 그 존재와는 모순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 자다. 저 자가 내가 찾던 자야.’

 

 어디에서 그런 확신이 왔는지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저 본능이, 직감이 그가 자신이 찾고 있었던 로드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완전무결한 강함. 그가 원하던, 그가 바라던 뱀파이어 로드.

 칼립같은 간악한 술수도 쓰지 못하고 라티안스처럼 로드로 태어난 뱀파이어도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찾던 로드가 맞았다.

 그래서 렌도크는 싸움이 끝나 채 피를 닦지도 못한 그에게 다가갔다.

 

 “…뱀파이어 로드가, 되어보지 않겠습니까?”

 

 헤레이스는 그의 말에 어디에 끌린 건지 순순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집안에서 언젠가 나가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으로 헤레이스를 투기장에서 사 왔다.

 투기장에서 빠져나온 그는 어디로 뛸지 모르는 야생마 같았다.

 그런 그에게 최소한의 예절, 예의, 도덕을 가르치느라 꽤 진땀 뺏었지.

 물론 지금도 렌도크 눈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어쩌겠는가.

 

 “저게 최선인 거겠지.”

 

 한참 모자라 보이는 저 모습이 그에게는 최선이라는 사실을 렌도크는 잘 알고 있다.

 저 정도도 많이 변한 것이었다. 처음 만났던 그때의 그라면, 블러드 로즈의 검술 선생님 따위 꿈도 못 꾸겠지.

 첫 만남에 블러드 로즈를 죽여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었다.

 

 “더 귀찮아지기 전에 빨리 일을 처리해야겠어.”

 

 시간은 부족했다. 라티안스가 궁지에 몰린 지금이 적절한 시기였다.

 내가 원하는, 내가 바라는 로드를 로드의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헤레이스는 곧 로드의 자리에 앉을 유일무이한 뱀파이어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는 금기라는 뱀파이어의 피까지 뿌리지 않았던가.

 

 “온전한 모습 그대로 쥐기 위해선…. 잘 숨겨야겠지.”

 

 렌도크는 죄책감 하나 없는 모습으로 시체를 땅속 깊은 곳에 파묻고 일어났다.

 허물은 숨기면 된다. 진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게 하고, 입을 다물게 해야 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게 만들어 그저 순순히 따라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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