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무협물
황월비천가(㬻月庇天歌)
작가 : 불괴
작품등록일 : 2018.2.20

그 놈의 출신을 알려달라고? 그건 아무도 모를 걸세. 뿌리가 없거든. 소문으로는 가전무공만 연성했다는 데, 그 놈의 집구석이 워낙 다양해서 가전무공이라 부르는 무공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서로간에 개연성이 없어. 워낙 처세 질에 능해서 어딜 가나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놈이야. 정을 쉽게 주면서도 금세 학을 띠고 사라지는 놈이라. 어쨌든, 그 성장과정은 나도 궁금하다네 - 철공계 황천후

 
제 15화 - 고정화된 성
작성일 : 18-03-11 20:36     조회 : 377     추천 : 0     분량 : 842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백리웅 아니, 예운각은 점심시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밥을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예담과의 수련은 오전으로 정해져 있다.

 새벽의 가전무공을 수련한 이후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수련과 수련 사이의 도피처라고 할 수 있는 시간대가 바로 오후이다.

 오후엔 고통이 없는 시간.

 내일이 두려우나 당장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는 시간.

 오늘 오후는 아버지 예담이 출타하지 않았다.

 

 

 "아버지, 오늘은 안 나가세요?"

 

 "오늘은 딱히 바쁠 게 없다 보니 장원에서 쉬어야겠구나."

 

 "그럼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언제든 물어봐도 된단다. 우린 부자지간 아니었더냐? 하하하"

 

 " 새주에 대해 알고 계세요?"

 

 " 오 새주를 말하는 것이냐?"

 

 "네. 새주는 대단한 존재라고만 들었지. 실상 알고 있는 바가 없어서….

 간단한 거라도 알려주세요."

 

 "흐음, 오 새주는 대단하지. 중원에서 그들을 모르는 자가 어디 있더냐?

 헌데, 실상 알려진 새주는 네 명이다. 함양의 '혁련', 북경의 '주' 그리고…."

 

 "북경에도 새주가 있었나요? 제가 살던 곳에서 가까운 함양에도 새주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북경에도 새주가 있는지는 몰랐어요."

 

 

 아버지의 서한에서 누님은 북경으로 간다고 했다. 가서 가르침을 받을 거라고 했는데, 설마 새주에게 사사하는 것일까?

 

 

 " 함양과 북경에 있는 두 명의 새주는 관을 담당하고 있지. 해서, 일반인들이 그나마 소문으로 듣는 새주는 그 둘일 게다."

 

 " 그런데 왜 '주'라고 부르세요? 이름이 외자인가요?"

 

 " 얘기하자면 길지만, 간략히 설명해주마.

 

 어떤 이를 부를 적에 그를 나타내는 두 개의 낱말.

 이름이 중요할까? 성이 중요할까?

 성은 자신을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이름은 그 위에 자라나는 줄기.

 둘 다 중요하다.

 

 하지만 수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의 뿌리.

 그것을 독점하는 자들이 존재한단다.

 그들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단지 성.

 성으로만 불린다. 누구나 원치 않아도 물려받고 굳어지는 것.

 

 성(姓)

 그 성을 혼자 감당할 자격을 갖춘 자. 당당히 이름을 버린다.

 오롯이 그 혼자서 성(姓)을 대표하는 성(城)이 된다.

 

 성을 불러서 나타내는 것은 씨족 전체가 되어야 하건만…. 광오(狂傲)하게도 이제 고정화 되어버렸다.

 그가 곧 성을 대변하고 성을 부르면 그를 뜻한다.

 아는 이 얼마 없고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이는 보편성을 띠고 하나의 약속이 되었다.

 성을 짊어진 자는 상하의 관계 속 상을…. 위계질서 속 최상위를 차지한다.

 

 이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하나의 직책은 새주(璽主).

 오 새주는 각각 성으로만 대변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극강의 철벽(鐵壁)이란다.

 

 

 그러한 새주 가운데 현재 유일한 여성.

 더군다나 제왕의 권위를 가지고도, 왕은 아닌 자.

 북경의 연 나라에 자리잡고 있는 인물이 바로 '주' 새주이다.

 '주' 새주는 새주로서의 무공과 재상으로서의 학식을 겸비한 문무겸전의 당대 최고의 인재. 그래서 본인의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를 위한 투자를 과감히 한단다.

 북경에서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리고 연 나라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관이 운영하는 학당과 무관에 부담 없는 돈으로 입관할 수 있다.

 

 싹수가 보이면 북경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인재 양성소에 들어갈 수 있지.

 숙식이 제공되는 건 기본이며 별도의 용돈이 제공되어 북경 생활을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단다.

 

 이름하여 효원(曉然)이라는 영재 수학기관과 용무원(勇武院)이라는 용맹스러운 무부 양성기관이다.

 이른바 이 두 개의 인재 양성기관이 북경을 넘어 대륙에 이름을 널리 곳인 게지."

 

 "우으으와아아아! 새주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한 설명은 처음 들었어요.

 

 누님이라면 용무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동네에선 이미 아이들의 전설이 돼버린 지 오래다.

 운각이 괜히 누님한테 반항을 못 하는 게 아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누님이 일곱 살이었을 무렵 이미 서안에서 까부는 꼬맹이들은 혼자서 다 두들겨 패버렸다. 서안 곳곳을 누비며 나이완 상관없이 골목대장을 자처하는 남자애들을 전부 깨부숴버린 것이다.

 

 누님이라면 반드시 용무원이라는 곳으로 발탁될 것이고, 잘만하면 새주의 눈에 띌 수도 있다.

 아니, 확실하다.

 삼십 년 적공을 앞당겨주는 영약을 먹었으니, 이제 설란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인이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고 강호 독보 행을 진짜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설란의 매질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그 꼴을 두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볼 운각이 아니다.

 뒤처지면…. 죽을 만큼의 고통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아버지, 삼악을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제가 이대로 꾸준히 연마하면 용무관 출신은 다 때려잡을 수 있겠죠? "

 

 " 이놈이, 좀 전까지 살려달라 그만하자 외치던 그 놈이 맞는 게냐?

 어쨌든, 수련의 의지가 강해지면 가르치는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이지.

 용무관이 문제겠느냐?"

 

 "그럼... 봉황지무의 우승자는요?"

 

 "어이가 없구나, 여인네들의 칼춤 따윈 걱정할 바가 아니다. 우승자라고 해 봤자지."

 

 "오오오오! 그럼 삼악을 기필코 대성하겠습니다."

 

 "새주가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내가 기죽을 정도는 아니지. 그놈들은 우르르 몰려와 몰매를 놓고서는 극강이니 철벽이니 떠들어대는데. 난 혼자 힘으로 지금의 명성을 이룩해내었다.

 용무원이고 봉황지무고 간에 쓸데없는 걱정이고 정말 견주어 볼 생각이라면 새주 정도는 되어야지. 크흠."

 

 

 이 정도나 대단했던가? 허풍이나 허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성격인데.

 새주와 어깨를 견줄 정도 실력이라니.

 새주는 중원 전역에서도 알아주는 데. 항익도 그렇게나 대단한 존재란 말인가?

 

 운각이…. 그동안 너무 쉽게 생각했다.

 수련 중에 힘들면 '예담, 그 자식이니 늙은이니' 함부로 지껄였는데….

 속으로도 중얼거리다 보면 말이 허투루 나올 수 있으니, 수련 시에 잔말 말고 열심히 따라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예운각.

 

 사실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누님의 포악한 성질을 받아줄 실력을 기르기 위한 성장의 기회.

 뭇 중원인들이 들으면 이런 고통의 시간따윈 백번이라도 감내해야 한다고 운각에게 쓴소리를 퍼부을 것이다.

 사사하는 존재가 그만큼 중원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러니 예운각은 앞으로 중원 모두가 인정하는 강자가 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눈물이 흘러도 닦아내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고통을 참아야 한다.

 

 .

 .

 .

 

 해가 저물고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원단(元旦, 새해의 정월 초하룻날)을 맞이하여 중원 각지에서 덕담이 오고 갔다.

 

 신년을 맞아 모처럼 부자지간이 함께 외출했다.

 아이들에 입맛을 끌어들이는 것은 단맛인지라 당과(糖菓, 사탕과 과자)를 사서 운각에게 쥐여주고 백청각에 데려왔다.

 

 예담은 술을 마시고 운각은 반대편 의자에 앉아 당과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한 동이의 술을 가져다 놓고 조금씩 퍼마시던 중, 옆 탁자에 앉은 낭인들의 입에서 구도자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낭인들의 입에서 구도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점차 그 몸통을 키워가며 조금은 구체적인 정보까지 오고 가고 있었다. 같은 탁자에 앉은 것은 아니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글자들이 또박또박 내 귀에 박혀 들어왔다.

 

 

 "아니, 글쎄 백개들이 제일 처음 목격하였다지?"

 

 

 백개(白丐)란 대놓고 거리를 활보하며 빌어먹는 개방거지들인데, 이들이 정보수집 담당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하오문의 검사 단에서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였다지 않은가? "

 

 "몽혈루는 지금 특별 청탁을 제외한 의뢰를 받지 않기로 공표했다던데."

 

 

 몽혈루의 경우 피 바람을 예측하여 차후 이득이 될 의뢰인이 누군지 선별작업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들어오는 의뢰는 우리도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될 거 같구먼. 이런 판세에 함부로 뛰어들면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야.“

 

 .

 .

 .

 

 예담이 지금 이렇게 어린 꼬맹이의 수련을 맡아주고 달래가며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것은 바로 단천림의 부흥을 위해서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금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헌데, 그러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이제 첫 삽을 뗀 지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 앞으로의 기대수익이 더욱 크다.

 

 백리세가에서 넘어올 순이익의 팔 할.

 개인에겐 엄청난 돈이지만 세력을 일구는 데는 적지 않은 돈이 흥청망청 버려진다.

 단천림 쪽에서는 딱히 돈 관리에 대한 개념이 없다.

 사기진작과 욕구표출의 대용으로써 돈을 만지기 때문이다.

 

 

 ' 고작 이 할의 수익을 굴려 상단을 팽창시키고 있는 백경이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내 쪽으로 넘어오면 엄청난 수확이고 반대로 상대진영으로 넘어가더라도 우리에 대한 호감을 잊지 않도록….

 만약 적대감이 생긴다면 백경의 아들을 담보로….

 지금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이책(二策)을 끌어들이면 좋겠지만, 지닌바 능력이 워낙 출중해 통제를 벗어나 오히려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 수도 있다.

 

 모리배처럼 지나가는 상인의 여비를 뜯거나 도둑질 따위로는 단천림의 유지가 힘들다.

 그래서 음지에서 벗어나 꾸준한 수입을 등에 엎고 양지에서 활동할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는데….

 

 전대 림주의 뜻과는 다르지만, 구도자들이 대거 중원으로 유입되어 활개를 치기 시작하면 근 시일 내에 반드시 충돌이 벌어질 것이다. 회피만이 정답은 아니다.

 

 일단은 림주(林主)가 적절히 대처하면서, 나는 자금을 공급하는 것으로 간접적인 지원을 나갈 것이다. 내가 무력시위를 벌이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현재의 수익기반을 송두리째 버리는 셈이 돼버린다. 일단은 억불(抑佛)을 림주께 천거해야겠다.

 그 역시 구도자와의 악연이 있고 나와의 선연이 있으니….'

 

 "아버지 그렇게 혼자서 술을 마시면 뭐가 좋나요?

 평소와는 달리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갑작스럽게 운각의 개입으로 길게 이어지던 예담의 상념이 깨졌다. 그렇지만 큰 줄기에 대한 고민은 끝마친 듯 무겁고 답답해 보이던 표정이 홀가분해 보이는 예담.

 

 

 "갑자기 옛 생각도 나서 상념에 젖어 들었다.

 내 너를 데려와 놓고는 말 상대도 못해주었구나.

 신년이 되어 너도 이제 한 살 더 많아졌으니, 내일부터는 여섯 살의 늠름한 인내심을 보여주거라. 하하하! "

 

 "아니, 하루가 지났다고 어떻게 갑자기 늠름해 지나요!

 하루가 지났으니 하루 더 늙은 것뿐이에요.

 전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하루 더 지났으니 연륜이 쌓여 수련 법을 좀 더 쉽게 개량하실 수 있겠네요? 안 아프게 말이죠."

 

 "..."

 

 " 이 수련 법은 상고 무림시대부터…. 음, 아니다. 내가 졌구나.

 이렇게나 나이 차가 한참 벌어졌는데도 말싸움에서 눌리지 않는 것도 능력이구나. 능력."

 

 

 "그런 칭찬은 참 듣기 좋네요. 제 말에 수긍한 적은 아버님이 처음이에요. 히히!

 그동안 말이 통하지 않는 애들만 있었고 말싸움을 할 만한 어른이 없었거든요."

 

 "녀석, 그 나이에 말 상대에 대해서도 평가하고 있었더냐?

 영특하다. 영특해.

 보통은 소꿉놀이에 빠져 세상과 자기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네 나이 아이들이 하는 짓인데.

 어쨌든 내일도 양손을 백 가닥의 실로 수놓는 작업은 계속될 테니. 이겨내거라~"

 

 "..."

 

 .

 .

 .

 

 어제 저녁나절까지 제법 내리기 시작한 눈이 그쳤다.

 수많은 단원들이 연무장에 모여 각자 단련에 힘쓰고 있는 그때, 차르릉! 소리가 들리며 한쪽 벽면이 열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일제히 쏠리고 한 인영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침 일과를 위해 방문을 열고 허옇게 깔린 눈을 밟으며 등장한 인물은 노인이었다.

 

 " 오늘도 열심히 단련 중이구나? 보기들 좋아. "

 

 따듯한 말투와는 달리 차가운 음성을 발하는 인물은 중원 천지를 벌벌떨게 만드는 유명인사였다.

 

 

 "오늘은 순환 대련이냐 살수지공에 대한 강의였더냐? "

 

 " 단주님! 오늘은 순환대련을 하는 날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오는 기회라서 저희는 일찍부터 나와있었습니다."

 

 

 '어느덧 팔순을 넘긴 나는 특별 청부 이외에 다른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 뼈마디가 쑤시고 관절이 점점 퇴화되는 상황에서 세월을 빗겨나갈 묘책이 없었다. 내공은 아직도 차오르고 있으나 신체의 쇠락이 시작된 이 시기. 지천(至天)에 이르렀다고 자만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극천(克天)에 이를 방도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이 유명인사는 사자의 칼을 중원에서 가장 잘 쓴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일 단주였다.

 

 일 단주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립(而立)이하의 단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몸을 풀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에 당도한 그를 보자,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사는 어떤 존재에게 느끼는 동경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 보며 읍을 올려 인사의 뜻을 전했다.

 

 

 "자! 그럼 누구 차례부터냐?"

 

 "오늘은..."

 

 " 단주님, 그보다 급전으로 이 단주로부터 소식이 도착하였습니다."

 

 

 본 루와 지국을 총괄하여 의뢰 수령과 연락망 등을 관리하는 비마각(飛馬閣)의 각주 서극이 동봉된 서한을 가져왔다.

 

 뜻밖의 서한.

 신임 이 단주가 첫 임무수행을 위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급전으로 왔으니 일단 읽어본다.

 

 

 "일 단주 님께,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정체 모를 흑의 인들이 먼저 치고 들어왔습니다.

 진양과 의뢰계약을 마친 당일에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주쳤습니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놈들은 결코 쉬이 생각할 수 없는 전력이었습니다.

 전체 흑의 인들의 수준도 높았을 뿐 더러, 그 중에서도 일곱 명의 인물들은 모두 일류를 상회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십 여명에 육박하는 인원수로 저희 단과 진양의 표사들을 상대했습니다.

 

 첫 임무에 좀더 높은 성과를 얻고자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라 생각됩니다.

 게서... 총관과 재협상을 시도 했다가 결렬이 되자, 이기심의 발로로 현장에서 떠났습니다.

 다음 날 진양에 사람을 풀어 확인 해보니 하 총관이 살해 당했습니다.

 

 의뢰자가 사라진 지금 임무의 수행여부도 애매해졌기에...

 흑의 인들의 뒤를 밟았고 도착지에서는 백리상단의 총 행수와 만남을 가진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보고와 함께 이후 움직임에 대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 이 단주 배상 "

 

 

 "흐음,,,"

 

 

 일 단주의 눈에서 사나운 피빛 기류가 솟아 오르며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단주는 내가 키웠다. 단주로 승격시키고 일급임무까지 담당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허,허..."

 

 

 일 단주가 헛웃음을 토해냈다.

 

 '단주로 승격하고 처음 부여 받은 임무인지라 본인 역시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차 몽혈루를 이끌 중진으로 선택 받은 항기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분명하다.

 임무를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뢰인이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도망친 것.

 물론 제 목숨이 아까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항기는 초절(超絕)한 신공을 바탕으로 지금껏 내가 담금질 해왔으니 실력은 확실하다.

 

 휘하 단원들의 예상피해를 따져보고 욕심을 부려 의뢰인을 버리고 간 것.

 진양 총관의 목이 달아날 것이라 판단하지 못한 것.

 

 이 두 가지가 금번 이 단주의 실책. '

 

 

 "극아, 이걸 읽어보려무나".

 

 

 짧은 서신이었기에 서극은 금새 읽은 후 일 단주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몽혈루는 신비에 쌓인 청부살인단체로서, 그간 임무실패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지금처럼 황당한 임무실패는 일 단주조차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하여, 몽혈루의 이름값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 임무 실패는 논외로 치고, 백리세가의 움직임은 확실히 이상하지 않으냐?"

 

 

 " 그렇습니다. 단주님!

 

 첫째, 종전의 백리세가를 파악해 보니, 중원에 이름을 떨칠 만큼의 세력이나 규모가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한달 만에 성장했다고 보기에는 불가능하고….

 벌써 중원 전역에 이름을 펼칠 만큼 거대해 지고 있다는 점이 수상합니다.

 

 둘째, 이 단주로부터 전해진 소식을 분석해보면 백리상단의 칼잡이들은 표사라기보다는 무인의 느낌이 강합니다.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표물이나 지키고 있을 실력이 아니라, 각자의 기량이 표물을 탈취하는 데 더욱 돋보이는 몸놀림이라는 것도 수상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양 총관의 죽음.

 착수금을 받자마자 의뢰인이 죽게 되어 현시점에서 알력싸움에 대한 정보를 더 이상 캐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진양에 접근하였고 정확히 어떤 식으로 거래가 진행되었는지는 사자(死者)가 되어 버린 총관밖에 모르니 말입니다.

 욕심 많고 의심 많았던 총관이 제살 깎아먹는 증거들을 소장해두진 않았을 것입니다."

 

 " 그래, 이상한 점이 여러 군데에서 드러나고 있지.

 이는, 기존의 흩어진 세력이 양지에서 규합되고 있다.

 백리상단을 돌봐주는 뒷배가 있다기보다는 백리상단 자체가 거대세력의 자금줄로 보인다.

 그리고 상단을 발판으로 숨통을 트면서 내실을 다진 모종의 단체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 판단된다. 그렇다면,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일단 의뢰인이 죽었으니 의뢰자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고…."

 

 "..."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냐? 이 나이가 되면 너도 알 것이다. 말을 하는 중간에 잊어버리니…."

 

 "재고가 필요하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일 단주로서 살아온 지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 현업에서 살행(殺行)하기보단 지금은 뒤에서 지원을 해주며 조직을 위해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향후 이십 년 정도는 필요시 전력으로 내가 나설 수 있다. 일단 이번 임무는 미결로 남겨둔다.

 향후 여유가 나면 이 단주가 백리상단에 들어가 금번 실패에 대한 대가를 물어오도록 해야겠다."

 

 

 일 단주는 짧은 답신을 적어 서극에게 돌려주었다. 서극이 서둘러 비마각이 자리잡은 전각으로 달려간다. 비마각에는 구편(鳩便, 길들인 비둘기를 이용하는 통신)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니 급전으로 다시 이 단주에게 소식을 전할 것이다.

 

 "자~ 오늘은 누구부터라고 했더냐?"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3 제 22화 - 쓸모 없는 볼모 2018 / 3 / 24 349 0 6032   
22 제 21화 - 외톨이 2018 / 3 / 23 358 0 6016   
21 제 20화 - 명가의 저력 2018 / 3 / 21 374 0 7291   
20 제 19화 - 장중득실(1권 끝) 2018 / 3 / 20 353 0 6859   
19 제 18화 - 수라장에서 드러나는 은거고수 2018 / 3 / 18 363 0 7248   
18 제 17화 - 각자의 입장 2018 / 3 / 16 362 0 8025   
17 제 16화 - 수라계(修羅界) 2018 / 3 / 12 370 0 6880   
16 제 15화 - 고정화된 성 2018 / 3 / 11 378 0 8424   
15 제 14화 - 무허대사의 죽음 2018 / 3 / 10 368 0 7498   
14 제 13화 - 삼악입문(고악) 2018 / 3 / 9 368 0 5953   
13 제 12화 - 삼악입문(일악) 2018 / 3 / 8 375 0 6752   
12 제 11화 - 오역부지(吾亦不知, 나 또한 모르는 … 2018 / 3 / 7 373 0 7638   
11 제 10화 - 맹수의 조건 2018 / 3 / 5 366 0 7758   
10 제 9화 - 꿈과 운명 2018 / 3 / 4 361 0 6764   
9 제 8화 - 하여간, 정의투합 2018 / 3 / 3 375 0 9059   
8 제 7화 - 아이들의 무림 2018 / 3 / 2 372 0 6235   
7 제 6화 - 그 남자의 사정 2018 / 3 / 1 399 0 6930   
6 제 5화 - 경계를 허무는 자 2018 / 2 / 28 375 0 6482   
5 제 4화 - 무풍지대 2018 / 2 / 27 408 0 6524   
4 제 3화 - 협가 2018 / 2 / 26 397 0 6097   
3 제 2화 - 백사 2018 / 2 / 25 401 0 6134   
2 제 1화 - 전통 2018 / 2 / 24 412 0 6731   
1 서두(序頭) 2018 / 2 / 20 578 0 109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