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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상속녀의 남자
작가 : 은하연
작품등록일 : 2017.6.4

한날 한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대일그룹 상속녀 인 유세희와 아버지를 잃은 천재 소년 도현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녀 딸을 지키기 위해 유 회장은 도움이 필요한 현준을 받아들이고 세희를 대신해 그룹의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세희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현준은 세희를 노리는 탐욕스러운 그룹의 세력들의 노림수로 인해 강제로 그녀와 헤어지게 되는데......
10년후, 그녀가 돌아왔다.

 
80. 드러나는 진실 (5)
작성일 : 18-03-09 00:31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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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놔! 헉. 이거 놓으라고!”

 “아니, 절대 안 놔. 너 같이 미친 X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너처럼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모인 곳에 가둬야 해. 그래야 울 오빠를 못 건드리지.”

 

 색색거리며 그를 대신해서 화를 세희를 보며 싸늘해졌던 그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세희가 오해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세희야.”

 “오빤 왜 답답하게 말도 못 하고 있어? 아니다. 헛소리하지 마라. 왜 화를 못 내느냐고!”

 

 현준은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기에 반박하지 못했지만 그걸 소리 내 말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 걱정했어. 혹시라도 저자처럼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으니까. 나는 오해 받아도 되는 데 너와 회장님까지 진흙탕으로 끌고 가고 싶진 않았거든.”

 “우리가 가는 길이 꽃길이든 진흙탕이든 같이 하기로 한 약속을 잊지 마.”

 “미안해.”

 

 켈리는 눈치껏 끼어들어 세희의 손에서 규민을 넘겨받았고, 세희는 고개를 숙이는 현준의 손을 잡고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민영 씨한테 이리로 오라고 전화해 놓을게. 같이 검찰에 넘겨.”

 

 그리고는 불안에 눈을 떨고 있는 규민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할 말이 있으면 변호사한테나 해요. 우리는 들을 말이 없으니까.”

 “아, 안 돼!”

 

 절규하는 규민을 남겨둔 채 오피스텔로 올라온 세희는 당하고만 있었던 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던 거야? 설마, 내가 그놈이 한말을 믿을 거로 생각한 거야?”

 “미안하다.”

 “대체 뭐가 미안한데?”

 “저런 놈이 하는 말을 듣게 해서. 너 지금 내가 그런 말을 들어서 화내는 거잖아. 난 괜찮은데.”

 “괜찮기는.”

 

 세희가 끝까지 볼멘 목소리로 쫑알거렸지만, 그에게 쏟아지던 악의 짙은 말들에 상처받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대신해 속상한 마음에 화를 토해내던 세희는 현준의 품에 안겨 쓰렸던 마음을 달랬다. 악의가 담긴 말들을 쏟아내는 규민의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진짜야. 난 괜찮으니까 넌 다 잊어.”

 “오빠가 당하고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잊어?”

 “대꾸할 가치가 없어서 조용히 있었던 거지, 당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진짜지?”

 “그럼, 근데 여기 어쩐 일이야?”

 

 현준은 코끝에 밀려드는 그녀의 향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오빤 맨날 바빠서 얼굴도 보기 힘들고, 회사 일은 계속 많고 그래서 위로해 주려고 왔지.”

 

 세희가 고개를 들며 그의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그가 필요한 위로가 뭔지 알게 된다면 당장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오면서도 당장은 품에 안긴 그녀를 맛보는 것이 먼저였다.

 

 먼저 발끝을 들어 그의 혀를 가르는 세희의 허리를 감싸 안은 현준은 그녀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 듯 세희의 유혹적인 반응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규환이 왔다 가며 던진 작은 불씨에 불안했던 현준은 순순히 그에게 안겨 오는 세희를 그러잡고 그 유혹적인 살결과 체향에 모든 근심을 벗어 던졌다.

 

 

 그의 거친 침입에도 불평 없이 그를 감싸주느라 기력을 소진한 세희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던 현준은 땀에 젖은 그녀의 옆머리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쓸어 넘겼다. 잠결임에도 그의 손길에 칭얼거리며 안겨 오는 사랑스러운 모습에 그의 얼굴 위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조금 전 주차장에서 세희가 다가왔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규민이 그를 찾아와 자신의 주장을 펼쳤을 때, 그 역시 일부 주장에는 반박할 수 없었으니까. 그가 세운 계획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 많은 혜택이 그에게 집중된 건 부정할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현준은 세희를 마음에 품은 그 순간부터 봉안당을 방문할 때마다 그의 이기심에 대해 아버지께 용서를 구했다.

 그건 그만 알고 있는 작은 비밀이었다. 어차피 그가 인정하지 않은 이상 그 일이 구설수에 오를 리가 없으니까.

 

 차갑게 가라앉았던 그의 시선이 곤히 잠든 세희에게 닿았다. 둥글게 말려있는 가냘픈 몸과 작게 오물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보자 냉기가 밀려나고 허기가 밀려왔다. 강렬한 열기와 열망이 그를 휩쓸고 지나가자 허기를 참지 못한 현준은 그녀의 입술을 입에 물고 밀려오는 갈증을 채워나갔다. 그 과정에서 잠이 깬 세희가 그의 열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스락대는 동안 현준은 쌓여있는 갈망을 쏟아내며 그녀를 가지고, 또 가졌다.

 

 현준은 이른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밤새 괴롭혔던 세희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밤새 그녀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인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에도 세희는 꿈속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조금 더 쉴 수 있도록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인 현준은 샤워 후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드르르륵.

 양복 안에 넣어 놨던 핸드폰이 진동으로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문자를 확인한 현준이 문을 열자 민영이 들고 있던 샌드위치 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검지를 입가에 올려놓은 현준은 샌드위치 봉지를 받아 들고는 잠시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 인분의 샌드위치를 접시에 먹기 좋게 꺼내 놓은 뒤 덮개로 덮어 놓은 그는 나머지 몫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와! 세희 먹을 거 챙기느라 새벽부터 날 부른 거였냐?”

 

 민영이 예비 신부를 각별하게 챙기는 그를 향해 한 마디 던지자 현준이 싸늘한 시선을 던지며 그의 몫으로 남겨 놓은 샌드위치를 건넸다.

 

 “누가 보면 넌 맨날 굶은 줄 알겠다. 이거나 먹고 조용히 가자.”

 “내가 말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구박하냐!”

 “수다는 됐고, 규민은?”

 “어제 켈리 씨가 차장검사한테 넘겼어. 그분이 자료조사에 범인 인도까지 친절하게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밤늦게 전화 왔었다.”

 

 민영이 자정이 넘어 차장검사에게 받은 신경질적인 멘트를 떠올리며 말을 전했다. 범인을 잡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는 했으나 꼭두새벽에 그놈을 검찰에 넘겨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새벽부터 검찰은 긴급사건을 발표하며 13년 전 있었던 살인교사 사건을 발표했고 그 사건으로 죽은 사람이 대일 그룹의 후계자 내외였다는 점에 놀랐던 사람들은 살인교사를 지시했던 이가 황 이사의 아들이라는 점에 또다시 놀랐다.

 

 납치 사건을 비롯해 비리와 횡령, 그리고 살인교사까지 가족들이 모두 검찰과 구치소에 잡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 회장 일가를 향한 언론이 동정표를 형성했다. 시련과 비련을 이겨내고 바르고 건실한 기업의 이미지를 내건 대일 그룹이 현준의 주도로 빠르게 자리 잡아 갔다.

 

 한편 검찰의 조사에도 모른다고 발뺌하던 규민은 차장검사가 들이미는 증거 자료에 결국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황 이사와 함께 엮여있던 횡령과 비리 조사도 날개를 달았다. 살인교사를 인정한 규민이 황 이사가 그에게 뒤집어씌웠던 횡령과 비리 사건에 대해 양심고백을 선언한 덕분이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이들 가족이 벌인 비리와 횡령, 살인 교사, 그리고 손자인 규호가 저질렀던 폭력사건들이 고개를 들이밀면서 이 세 부자를 향한 비난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현준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결혼식 날이 밝았다. 그녀가 찾아왔던 날 제 욕심껏 세희를 품에 안았던 덕분에 세희가 심한 몸살에 걸려버렸다. 덕분이 졸지에 수절하며 기다려야 했던 그는 밀린 일과 미신을 믿는 유 회장 덕분에 예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사와 함께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던 현준은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는 세희를 보며 말문이 막혀버렸다.

 

 느슨하게 땋아 올린 머리 위에는 눈부신 티아라는 쓰고 그 뒤로는 눈처럼 하얀 베일이 넘실거렸다. 어머니의 웨딩드레스는 현준의 요구에 따라 가느다란 목과 약간의 쇄골을 제외하고는 레이스와 보석으로 뒤덮여 그녀의 하얀 살결을 은근히 드러냈고 드러난 상체와 흐트러지게 퍼지는 치마 선은 그녀가 원하던 대로 드레스 원본 그대로 우아한 모습을 그리며 펼쳐져 있었다.

 

 “어머, 신부가 너무 아름다워서 말도 못 하는 신랑이라니! 이런 건 사진으로 찍어야 해욧!”

 

 신부 옆을 지키던 소연의 재촉에 사진 기사는 넋이 나간 신랑의 얼굴을 마음껏 찍어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희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현준 씨, 손 안 잡아줘?”

 

 도발적인 그녀의 말에 발을 떼고 그녀에게 걸어가면서도 현준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걸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정신이 없었던 그는 세희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목에 걸린 수호천사 팬턴트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뭐? 아, 이거?”

 

 자유로운 세희의 손에 잡힌 수호천사가 한가로이 움직였다.

 

 “이건 내 부적. 내 첫사랑이 준 부적인데 진짜 내 소원을 이뤄줬거든.”

 “네 소원이 뭐였는데?”

 “오빠가 내 남자가 되는 거.”

 

 어느새 수호천사를 만지던 손이 그의 턱시도 위를 위험스럽게 쓸고 있었다.

 

 “네, 신부님. 아주 잘하고 계세요. 근데 신랑님이 너무 굳으셨네요. 조금 더 밝게 웃어보세요. 자, 치즈.”

 

 세희를 보며 달아오르던 열정은 남자의 말과 함께 산산 조각나 흩어졌고 현준은 뒤늦게 그가 있는 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신부 대기실.

 그와 세희를 바라보는 친구들과 사진기사, 결혼식에 초대받은 임원들이 신부에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

 

 현준이 세희 옆에서 내내 얼이 빠진 모습을 보이는 동안 그 모습은 입에 입을 타고 직원들에게 퍼져 나갔다. 냉혈사장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이날을 계기로 ‘신얼사’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신부를 얼이 빠지게 보는 사장’이라는 의미의 별명은 결혼식에 참가한 임원들과 거래처 사장들의 입을 타고 널리 퍼져나갔다.

 

 그렇게 둘이 사진 찍는 시간이 끝나고 현준이 하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방을 나서자 사랑스러운 신부에게 눈도장을 찍고 싶어 했던 사람들로 신부대기실이 미어터질 뻔했으나 신랑과 함께 신부의 상냥함도 사라져 냉기가 흐르는 대기실에는 이내 네 사람만 남아 정적에 휩싸였다. 홀로 신부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기사를 향해 세희가 얌전하게 입을 열었다.

 

 “기사님도 나가계시다가 식이 시작할 때 다시 와주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가는 기사를 보며 세 사람이 조용히 웃었다.

 

 “많이 불편했나 보네.”

 “그러게요. 안 보냈으면 울었겠어요.”

 “잘됐지 뭐.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낯선 시선들은 신경이 쓰였다.

 

 “근데 세희야. 넌 후계자 자리에는 관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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