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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상속녀의 남자
작가 : 은하연
작품등록일 : 2017.6.4

한날 한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대일그룹 상속녀 인 유세희와 아버지를 잃은 천재 소년 도현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녀 딸을 지키기 위해 유 회장은 도움이 필요한 현준을 받아들이고 세희를 대신해 그룹의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세희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현준은 세희를 노리는 탐욕스러운 그룹의 세력들의 노림수로 인해 강제로 그녀와 헤어지게 되는데......
10년후, 그녀가 돌아왔다.

 
79. 드러나는 진실 (4)
작성일 : 18-03-08 00:04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5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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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가 밝게 인사를 건네며 휠체어를 밀어주자 유 회장이 준비해온 꽃다발을 제단에 올려놓았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리운 아들의 얼굴을 보며 냉철한 유 회장의 얼굴이 촉촉해졌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슬픔은 덮는다고 덮어지지도 묻는다고 묻히지도 않았다.

 

 “오랜만이구나. 상현아. 그리고 아가야.”

 

 민주는 그리움이 담긴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는 유 회장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찾아와서 미안하구나. 이래저래 세희를 데려오려고 노력하느라 아주 바빴단다. 너희들도 봤지? 우리 세희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과거를 추억하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아련해졌다.

 

 “얼마 전에는 세희가 현준이 함께 찾아 왔단다. 사이라면서……. 난 진즉 알고 있었는데 저희 끼리 까칠하게 굴어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더니 잘 풀었나 봐. 현준이 옆에 있던 얼굴 반반했던 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도 봤지? 그 아이 옆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먹다 떨어져 나갈 것이지 뭔 욕심이 그리 많아 그 사단을 낸 건지 모르겠더구나. 암튼 내 현준이 자식을 좀 혼내 주려고 했는데 세희 고것이 현준이가 없으면 안 된단다. 결혼 허락도 받으러 왔는데 아무래도 손주를 보기엔 빨리 허락해 주는 것이 나을 듯싶어.”

 

 10년이나 기다렸으면 충분한 거 아니냐며 눈을 부릅뜨던 현준을 떠올리며 유 회장이 작게 미소 지었다. 29년 동안 본의 아니게 홀로 지냈으니 세희를 가만 놔뒀을 턱이 없었다.

 

 ‘쯧쯧.’

 

 유 회장이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라고 했던 이유가 황 이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런 일을 예방하자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애들이 어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이던가! 품으로 돌아온 손녀딸을 끼고 지내고 싶기도 했지만 그 아이가 낳아줄 꼬물꼬물한 증 손주 욕심이 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요즘 젊은 애들이 결혼하는 비율이 줄어들어 출산율이 저조하다는데 가고 싶다고 할 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암! 나쁘지 않아.’

 

 유 회장이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와 세희를 품에 안았을 때를 생각하자 새로 생긴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유 회장의 머릿속으로 결혼식 계획이 스쳐 지나갔다. 비록 뭘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친정엄마와 함께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세희를 안고 있는 사진 속 며느리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 네가 곁에 있으면 이것저것 많이 챙겨 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많이 서운하겠구나. 그래도 걱정 말거라. 내 부족한 것 없이, 모자란 것 없이 다 챙겨서 보낼 것이야. 그리고 여기 있는 민주한테 결혼식 준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단다. 네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여기 있는 민주가 세희 곁에 있어 줄게야.”

 

 며느리의 눈빛이 따스하게 빛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유 회장은 아들 내외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두 사람의 밝은 미소와 함께 곁에 자리 잡은 도 부장의 내외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했다. 두 사람의 소식을 전할수록 그의 마음속에서는 증 손주를 볼 때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켜야 했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유 회장의 재촉에 회장실 비서진들에게 비상이 내려졌다. 최고의 결혼식을 위한 호텔, 예물, 웨딩드레스, 축가를 부를 가수와 예식장을 장식해줄 플로리스트들을 섭외한 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결혼식 수정 요청서. 유 회장의 요구에 따라 초호화, 최고급을 내건 결혼식은 신부의 요청으로 뒤집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언니, 난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결혼식은 싫어. 왜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웃으면서 인사하고 아는 척하는 가식을 떨어야 해?”

 “세희야. 그래도 결혼식이라는 건 가족들을 위한 행사이기도 한데 네가 하고 싶은 데로만 할 수는 없지 않겠니? 회장님은 온 세상 사람들한테 손녀딸과 손녀사위를 알리고 싶어 하시는 건데 그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아니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너와 현준이 사이가 공개되면 더는 너와 현준이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줄어들 거야.”

 

 

 서로 팽팽하게 자기 입장을 말하는 와중에 현준은 묵묵히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세희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었고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으나 유 회장의 심정 또한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손녀딸의 결혼식이었으니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단속하려는 의미도 있을 터였다. 세희가 없는 동안 그와 현준이의 눈치를 보느라 큰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먼 친척들은 그에게 후계자 자리가 넘어갈까 봐 뒤에서 그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복달했으니까.

 

 서로 팽팽하게 맞서던 세희와 유 회장은 현준의 제안으로 서로를 위해 한 가지씩 양보했다. 세희가 조용한 결혼식을 양보하는 대신 유 회장은 호화롭지만 세희의 부모님이 결혼하신 장소라는 점과 그녀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어머니의 웨딩드레스를 고쳐서 입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나도 엄마가 입었던 옷 입고 결혼할래.

 

 세희가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화려하게 빛나는 드레스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봤던 그 날을 떠올리며 눈앞에 배달된 드레스를 보며 눈물 흘렸다. 이날을 위해 그녀의 어머니가 고이 간직해왔다는 유 회장의 노트에 적힌 말에 한참을 울던 세희는 그녀가 입을 수 있게 치수를 손봐야 한다는 말에 팅팅 부은 눈으로 디자이너들의 손에 이끌려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식장과 웨딩드레스가 결정되었고 유 회장은 심적 부담을 느끼는 세희를 배려해 초대하는 하객을 제한했다.

 

 세희가 결혼식 준비와 저택을 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현준과 유 회장은 세희의 납치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황 이사와 연이 닿아있는 관계자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더불어 잠적해 있는 규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사람을 풀어놓았다.

 

 뒤늦게 규민이 강문식과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손에 넣은 현준은 그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에게 자료를 넘겼다. 고인과 안면이 있던 검사는 13년이 지나서야 살인교사에 대한 증거 자료가 나왔다는 점에 착안해 빠른 속도로 조사를 재개했고, 조사한 자료에서 둘이 통화한 내용이 발견되었다.

 검사는 통화내용과 돈이 오간 거래내용을 증거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고, 1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블랙박스 영상을 보관하고 있던 민아는 유 회장에게 구원을 받았다. 그는 손녀딸을 이용한 잘못을 용서해 줄 수는 없었으나 그녀의 가족들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면죄부를 건넸고 민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한참이나 흘린 뒤 돌아갔다.

 

 “규민은? 아직도 위치를 파악 못 한 거야?”

 

 한때 증오했던 여인의 도움으로 수사가 제기된 터라 현준은 더 악착같이 그를 찾기 위해 눈을 붉혔다. 민아에 대한 미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유 회장과 세희가 그녀를 용서한 지금은 그녀보다는 규민을 잡는 게 먼저였다.

 

 “그게, 우리 예상보다 꼭꼭 잘 숨어 있네. 이미 서울 시내에 있는 호텔은 다 뒤졌고 지금은 모텔을 뒤지고 있는데 아직 이야.”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거 맞아?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민영은 혹시나 해 호텔을 뒤지며 황 이사의 일가가 소유한 별장과 빌딩도 살폈다. 그래도 규민을 찾을 수 없어 모텔과 비즈니스호텔로 범위를 넓혀 사람을 풀어놓은 그였다.

 

 “미안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민영은 서울 시내에 모텔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아무리 검찰과 협력해 사람을 풀었지만, 서울 시내의 모텔을 다 뒤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가나 번화가는 빼고 외진 곳으로 알아봐. 눈에 띄는 띄지 않게 숨은 거로 봐서는 CCTV도 없고 오래된 곳일 수도 있어.”

 “알았어. 그렇게 전달할게.”

 

 현준은 회사 일을 보는 틈틈이 민영에게 지시를 내렸고 민영이 지시사항을 처리하느라 바쁜 동안 감찰부는 횡령과 뇌물수수로 황 이사를 고소했다.

 

 

 황 이사가 자택에서 검사에게 연행되는 영상은 매시간 속보와 뉴스의 머리기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때마침 모텔에서 정신을 차리고 텔레비전을 보던 규민 역시 초취한 모습의 아버지가 잡혀 들어가는 영상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버지? 아버지가 왜……!”

 

 언제나 당당하고 거침없었던 기억 속의 아버지와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초라하다 못해 궁색 맞아 보이는 행색의 아버지를 보자 자신의 처지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잠바를 집어 들었다.

 

 ‘잠깐! 내가 가면 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규민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 역시 아버지의 지시로 여러 차례 자금을 횡령 한 전적이 있었다. 거기다 그 사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사건이 떠오르자 규민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의 악몽 속에 나타나는 모습들이 떠오르자 규민은 격하게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며 몸을 웅크렸다. 여전히 그를 잠 못 들게 만드는 그 사건과 함께 여지없이 핏빛으로 물든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규민은 그를 향해 다가오는 세 사람의 모습에 기겁하며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미, 미안해 상현이 형. 으흑. 용, 용서해줘. 흑 제발.”

 

 어려서 아버지에게 그와 비교당하며 혼날 때마다 그를 위로해 주었던 상현이었다. 아버지로도 모자라 아내까지 상현과 비교하며 그를 무시하자 곪고 있던 상처가 터지며 그릇된 선택을 했지만 그를 제 손으로 처리했다는 죄책감에 오랫동안 고통받아왔다. 고개를 숙인 채 울부짖는 그의 가는 목 위로 두꺼운 올가미가 드리워지며 그의 숨을 조여 왔다.

 

 “……. 흐윽. 끅. 으흑. 헉.”

 

 죄책감과 두려움에 무너져 내리면서도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옷으로 입을 막고 흐느끼는 규민의 모습이 어두운 모텔 방구석에서 텔레비전의 불빛을 받아 음산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빚어냈다.

 

 

 눈 깜짝하는 사이 결혼식이 사흘 뒤로 다가왔다. 주요 이사인 황 이사가 횡령과 뇌물수수죄로 조사를 받는 중이라 회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세희는 신혼여행을 미루고 현준과 함께 회사를 안정화하는데 힘썼다.

 

 뇌물을 건넸던 하청업체 재선정부터, 황 이사의 움직임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었던 직원들까지 모조리 잡아 들이는 검찰 덕분에 회사의 주식이 널을 뛰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세희와 현준의 결혼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안정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세희는 다급히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며칠째 얼굴 보기 힘들었던 그를 만나기 위해 켈리와 함께 오피스텔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켈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던 둘은 통로를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이게 무슨?”

 “쉿!”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에 세희의 눈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더는 들어 주기 힘든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세희가 켈리의 팔을 뿌리치며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해?”

 “세희야!”

 

 갑자기 나타난 세희를 보며 현준이 당황하자 그녀는 오히려 옆에 있는 남자의 팔을 움켜잡았다.

 

 “넌 인간도 아냐! 우리 아빠가 잘해줘서 좋아했다며! 그런 사람을 죽이려고 사주한 놈이야. 근데 뭐가 어째? 너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오빠한테 내 덕분에 인생이 폈으니 도와달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가냘픈 손목이었으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규민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자 세희는 단번에 그의 팔을 잡고 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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