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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황월비천가(㬻月庇天歌)
작가 : 불괴
작품등록일 : 2018.2.20

그 놈의 출신을 알려달라고? 그건 아무도 모를 걸세. 뿌리가 없거든. 소문으로는 가전무공만 연성했다는 데, 그 놈의 집구석이 워낙 다양해서 가전무공이라 부르는 무공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서로간에 개연성이 없어. 워낙 처세 질에 능해서 어딜 가나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놈이야. 정을 쉽게 주면서도 금세 학을 띠고 사라지는 놈이라. 어쨌든, 그 성장과정은 나도 궁금하다네 - 철공계 황천후

 
제 10화 - 맹수의 조건
작성일 : 18-03-05 20:09     조회 : 371     추천 : 0     분량 : 7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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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이잇.

 

 

 "크윽."

 

 

 또 단도가 날아온다.

 전방에 대기 중이던 표사들이 급히 검집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칼을 막아냈다.

 비교적 쉽게 대응할 수 있는 화살 따윈 날아오지 않는지라 정신이 없다.

 검을 고쳐 잡고 자세를 취할 시간이 생기면 습격이 끝나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지만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경계가 풀어질 만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의인들이 한 차례 공격을 퍼붓고 사라진다.

 

 

 파앙.

 

 "으아아아악!"

 

 

 이번엔 강력한 쇠뇌가 거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쟁자수 두 명을 꼬치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은 낙엽으로 가려진 구덩이함정

 그 다음은 후방에서 주먹만한 돌덩이가 날아왔었다.

 적과의 조우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만 받는데 피해가 너무 늘어났다.

 

 .

 .

 .

 

 "두두두두!"

 

 네필의 말이 끄는 사두마차 한 대가 아직도 쌀쌀한 밤공기를 뚫고 달리고 있었다.

 마부석에 앉은 마부는 챙이 넓은 죽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용모를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탄탄한 상체로 봐서 아직 젊은 나이로 보였다.

 그러나 네 마리의 말을 다루는 솜씨는 평생 말만 다루어 온 어떤 마부보다 섬세하고 노련했다. 조금은 두꺼운 천으로 창이 가려진 마차 주위로는 수십 여명의 사람들이 마차를 따르고 있었다. 일행 중 일부는 상당한 경지에 다다른 기마술을 자랑하며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마차 안.

 평범한 마차의 모습과는 달리 안은 상당히 넓었다.

 그러나 타고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다.

 중년인과 소년.

 흑의와 회의를 입은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중년인은 이해 가지 않는 일이 있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천생 무인으로 보이는 중년인과는 달리 소년의 얼굴은 갸름하고 흰 것이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란 명문대가의 공자같았다.

 한동안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던 중년인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 웅아. 무슨 일로 나와 함께 하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 예?"

 

 

 소년의 대답을 듣지 못했는지 중년인은 재차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집을 떠나, 그것도 이렇게 황급하게 달려가는 지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는 게냐? ."

 

 "..."

 

 

 소년은 중년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데, 별로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래. 이제 너와 나는 같은 처지이니 너도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중년인, 항익이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와 백리세가의 가주인 백리제천과는 앞으로 공동의 사업을 벌이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가 나에게 와서는 자식의 견문을 넓혀달라 부탁하기에 거절할 수 없었단다. "

 

 "무슨 일을 하기에 제가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신지...?"

 

 

 소년, 백리웅은 이해가 가지 않는지 물었다.

 기실 백리웅과 항익은 서로 대면한 것이 어제 처음이었고 무슨 연유로 이 상행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해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세가에서 궁금함이 생길 때는 스스로 생각이 바로 선 다음, 질문을 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에 대해 혼자서만 고민하고 있었던 백리웅이었다.

 

 중년인, 항익은 백리웅의 대답에 적절한 답을 생각할 수 없었다.

 볼모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어린아이에게 해 보았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해한다고 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마차 밖에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결국 마부가 전음을 보내왔다.

 

 

 " 장로님! 더 이상 추격을 떨쳐내기 힘들어 보입니다. 저희들끼리 도모하기엔 상인들을 모두 지켜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

 

 

 다행이었다. 항익이 자연스럽게 이 자리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가뜩이나 말 주변이 없어 가주를 만나 대화를 하는 것도 상당한 준비를 통해 가능했다.

 그런데 고작 다섯 살 먹은 아이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 하나에 쩔쩔매는 자신이 답답했다.

 자신은 역시 말보단 주먹이다. 몸으로 떼우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었다.

 

 

 " 마차를 세워라! "

 

 

 결국 웅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하고 항익이 달리는 마차를 세웠다.

 사상자가 열명이 넘어가자 이를 부르르 갈면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 말도 없이 전방을 응시하면서 대오를 이끌었다.

 

 겨울의 초입인 십일 월의 끝 무렵. 등골을 스치며 서늘한 느낌이 좌중을 휩쓸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살기에 노출되어서 그런지 단순히 찬 기운을 몰아내지 못해서 그런지를 구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김이 뭉게구름처럼 퍼져나간다.

 뭉게구름 속에서는 혈 향이 짙게 베어 있다.

 관도를 따라 말을 달리던 때와는 달리 많은 이들이 군데군데 부상을 입었고 채찍질로도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상태의 말이 여럿 보였다.

 

 

 항익의 인상이 굳어졌다.

 

 

 "적의 습격이 끝날 때까지 원형진을 유지하고 마차와 백리웅을 보호하도록!"

 

 

 항익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하는데 모든 이에게 소식이 생생히 전달되었다.

 백리 상단은 규모가 작아 쟁자수 위주에 행수가 따라붙는 방식으로 상행을 떠난다.

 그래서 딸린 표사의 숫자도 적었다.

 사십여 명 이상의 대규모 상행에서는 특히나 표사가 전체를 보호해 줄 수가 없다..

 

 

 "누구냐! 감히 어느 놈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공격에 공격을 이어나가는 가.

 용기가 있다면 모습을 드러내고 아니면 더 이상 파리마냥 주변에서 앵앵대지 말고 썩 꺼져라!"

 

 

 항익 어르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한 식경이 지나도록 다른 움직임은 없었고 사위가 점차 어두워져 갔다.

 

 

 "단주님. 저놈 저거 배포가 큰 건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지 모르겠네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흑의인들. 거리낌없이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인원은 열댓 명 가량이었다. 눈을 제외한 신체는 모두 꽁꽁 싸매서 당최 신원을 알 수 없었다.

 

 "미안하오들.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우리도 목이나 축이러 가야겠소.

 뭐 알다시피, 이런 일에 종사하는 지라 여러분에게 양해는 구할 수 밖에 없소.

 대신 고통 없이 단 칼에 보내주리다. "

 

 

 집에서 출발한지 고작 하루가 지났고 다음날 점심부터 초저녁까지 습격이 발생했다.

 아버지와 선산을 둘러보러 갈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역시 강호에 발길을 돌릴 때마다 험난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상단의 한가운데서 주변 어른들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 처지라서 몸은 성하지만, 이 상황이 결코 순탄한 여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들끼리 태연하게 수 근덕대면서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걸 보니,

 긴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고 다 잡은 물고기를 어찌 처리할지 고민하는 모양새다.

 

 항익은 여전히 팔짱을 낀 손을 풀지 않고 있다.

 

 백리웅은 호기심에 결국 마차의 창을 열어 젖혔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 밖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려는 모습을 보이니 궁금했다.

 어마 무시한 고수라고 들었는데, 여태껏 자신과 함께 마차에서 버티더니, 헛소문이었나?

 총 행수답게 행동한다고 보기엔 별로 말주변이 좋은 것 같지도 않고 영 미덥지 않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제대로 된 강호유람인데...

 급작스런 습격을 받고 공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벌써 한 시진은 지났다.

 

 이렇게 허망하게 짧은 인생을 마치기는 싫은데, 자신이 마차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동안에 항익 어르신은 자신과 대화를 하려고 용을 쓰는 것을 보면서 이 상황이 점점 암담해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

 .

 .

 

 어, 어, 어라?

 항익 어르신이 사라졌다.

 

 

 두 명의 흑의인.

 항익 어르신에게 한 손에 한 명씩 머리채가 잡혀있다.

 

 빠각.

 

 마른 나무를 도끼로 쪼개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두 흑의인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다시 어르신이 사라졌다.

 

 빠각.

 빠각.

 빠각.

 

 계속해서 흑의인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시뻘건 피와 머리 속에 있던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이이익! 죽어라!"

 

 

 흑의인의 도가 사선을 그리며 내리쳤다.

 

 어르신이 어떻게 피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왼손이 흑의인의 검을 잡은 양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검 날을 잡고 천천히 위로 빼낸다.

 

 꽈득.

 

 흑의인의 두 주먹이 송자크기로 압축되었다.

 왼손으로 그저 틀어 잡고 아귀 힘만으로 찌그러트린 거 같다.

 지극히 무식하고 위협적인 공격이다.

 

 

 "크윽."

 

 

 두 손이 붙어서 송자로 변해버린 흑의인의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앞으로 쓰러진다.

 고통도 심할 테고 놀란 마음이 커 의식을 차려도 정상생활을 영위할 순 없을 게다.

 

 털썩.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모든 사람들의 귀에 그리고 시선에 들어왔다.

 

 

 "어디서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기어들어와서는... 크크클

 계속 놀아볼까?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어. 나도 이해하니깐.

 대신 내가 양해를 구해볼게.

 이런 거지같은 상황은 내가 참을 수가 없어.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말이지.

 

 도망가지마.

 도망갈 생각도 하지 말고. "

 

 

 촌각이 걸리지 않았다. 덤벼들던 적들의 과반수 이상이 개죽음을 당하는 데 걸린 시간이.

 그리고 나머지 흑의인의 눈에선 경련이 일어나고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느껴진다.

 

 아무도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신위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항익의 움직임을 쫓은 사람이 없다. 그저 움직임의 결과만을 목격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상단의 다른 아저씨들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여어~ 단주라고? 어디서 빌어먹던 놈인지 관심 없고 누가 보냈을까?

 분명 백리상단을 목적으로 고용된 놈들인 거 같긴 한데 말이지.

 설마, 나를 벨 심산으로 고작 그 수준의 애들을 데리고 몰려온 거야?

 너희가 그 악명 높은 몽혈루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실망이고."

 

 " 죄,죄송합니다. 이곳에 고명(古名)한 기인이 계신 줄도 모르고 함부로 까불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아니, 그저 고통 없이 보내주십시오."

 

 

 단주라는 이의 입에서 이미 기세가 꺾인 고양이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야? 언 놈이 의뢰를 한 거야? 청산표국인가?

 내 바다와 같은 포용 심으로 아량을 베풀어 볼까 하는데.

 혹여 관심이 있거든 칼 내려놓고 이리와. 선착순이야."

 

 

 순식간에 남은 인원들이 칼을 내려놓고 항익 어르신에게 두 손을 읍한 채로 달려간다.

 

 

 "크크클."

 

 

 빠각

 빠각

 빠각

 

 .

 .

 .

 

 빠각

 

 맨 처음 도착한 단주를 제외한 나머지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사람의 뼈가 이리도 쉽게 아귀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단 말인가.

 내 입장에선, 밤이나 호두는커녕 배나 사과도 쪼개지 못하는데

 

 

 "처,처 청산이 맞습니다. 청산표국에서 의뢰를 했습니다."

 

 "음, 그래? 의뢰조건은?"

 

 "신양으로 향하는 백리상단의 씨를 말리고 오는 것이 의뢰내용입니다. 대인!"

 

 "정확히 가는 길목에 배치해서 중간중간에 습격을 가할 수 있었군.

 우리가 출발한 지점과 도달지점을 알고 있으니 말이지.

 출발 인원에 맞게끔 구성된 습격인원들...

 상당히 노련한 놈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정체는 밝힐 생각 없는 거지?"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낭..."

 

 

 빠각.

 

 

 "아쉽네. 몽혈루였으면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자네를 가장 오랫동안 살려두었으니 고맙게 생각하게나."

 

 

 항익 어르신이 고개를 돌려서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미안하네, 소란을 좀더 일찍 해결했어야 하는데. 총 행수가 되어가지고 시작부터 흉한 모습만 보이고 말았네. 일단은 가까운 객잔에 가서 몸부터 녹이자고 서두르세."

 

 "네넵!"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항익 어르신은 모기 잡듯이 몇 번 팔을 휘둘러서 절반을 처리했고 남아서 대항하는 자들의 전의를 꺾으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곤 태연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훌쩍 말에 올라탔다.

 

 

 엄청나다.

 진짜 강호의 고수가 뭔지 단박에 증명해내었다.

 허리춤에 달린 칼은 꺼내지도 않았고 무언가 현란한 몸놀림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켜본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실력자였으며 누구도 감히 말 한마디 붙일 수 없었다.

 

 

 "몸 성한 사람들은 저놈들 몸이나 한번 털어서 가져와주겠나?

 궁금하진 않지만 그래도 거창한 환영 식을 해줬으니 나도 보답을 해줘야겠어."

 

 

 순식간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나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상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부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

 .

 .

 

 한 시진이 지날 무렵, 제법 풍치가 있는 반점(飯店,식사와 술이 제공되는 숙박시설)에 들렀다.

 동화반점이라는 패목(牌木, 글을 써 놓은 네모난 팻말)이 건물 상단에 부착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손님이 없어 상단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쨍그랑.

 탁,탁.

 

 항익 어르신이 앉은 탁자에 수북이 돈다발이 쌓인다.

 그리고 검지 한 개가 지문으로 찍힌 패 하나와 중지 두 개가 지문으로 찍힌 나머지 패들이 나왔다.

 

 

 "안타깝군, 검지 한 개를 찍기 위해 수많은 의뢰를 수행했을 텐데 말이지."

 

 

 이게 무슨 소린가? 백리웅은 손가락의 지문이 찍힌 패가 궁금했다.

 

 

 " 어르신, 이 패가 무슨 의미입니까? "

 

 

 기어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놀렸다.

 

 

 "아, 이건 낭인곽에서 발행하는 낭인패란다.

 엄지가 가장 으뜸이고 새끼로 갈수록 실력이 떨어진다.

 거기에 같은 손가락이 두 개라면 다음 등급으로 올라가진 못했으나 한 개의 지문을 찍은 사람보단 뛰어난 낭인을 가리키지."

 

 "아... 낭인들의 세계는 실력의 고하가 명확하게 나눠지나요? "

 

 "음, 귀찮아서 승급을 미룬 사람은 있어도 쥐뿔도 없는 놈이 승급욕심을 낸다고 해서 낭인곽에서 쉽게 인정해주지 않지. 그래서 공신력이 있고 낭인패를 기준으로 의뢰를 받아 수행한단다."

 

 

 순순히 응대해주는 어르신 덕분에 강호에 대한 지식이 조금 생겼다.

 항익 어르신은 흑의인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나온 돈으로 갖은 요리와 술을 주문했고 상단 사람들은 기뻐하며 항익 어르신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현 상황과 앞으로 대책 마련에 행수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부상자들을 챙기면서 음식을 기다렸다.

 

 술자리라면 응당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다들 조용히 맞은편이나 옆 사람과 대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항익의 비위를 건드릴까 걱정되는 마음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어르신의 곁에서 떨어져 앉았고 아무 생각 없던 백리웅은 어르신의 옆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 자. 백리웅 도련님은 그 간 여정이 어떠신가? 맘에 드는가?"

 

 "네. 어르신 덕분에 험난한 강호에서도 평안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가슴의 흥분을 진정시키질 못하고 있습니다."

 

 " 무명(武名)을 쌓아 올린 놈들은 분야는 달라도 한가지는 특출 나지.

 그게 뭐냐 면, 본인이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 없어.

 주위사람들은 필시 그 뛰어남 혹은 남과 다른 장점을 포착하여 알아서 모시지.

 

 동물들이 맹수 앞에서 자연스레 도망치는 이유는 바로 주위에서 맹수의 특성을 말해줬기 때문이야. 맹수는 그저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고 아니면 말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된다는 말이다."

 

 "어르신의 가르침 새겨듣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보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핫. 그러고 보니 오늘 습격이 끝나고 기뻐하는 놈들은 있었어도 나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건 너뿐이로구나. 그리고 지금 노인네의 적적함을 덜어주는 것도 너 뿐이고.

 신양에 당도하고 여유가 생기면 내 '필히' 보답해주겠네. "

 

 

 심성이 고약하다는 건 들었고 오늘 목격한 바가 있어 이해가 되고 어디로 튈지 모를 것 같은 분위기도 어쩔 수 없지만, 웅의 입장에선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여태껏,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어른들이었고 모두가 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어른들에게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하고 있을 뿐인데. 항익은 꽤나 기뻐하고 있었다.

 

 세상에 우연한 만남이란 없다고 했다. 옷깃을 스쳐도 그 인연의 굴레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딱 들어 맞아야 한다.

 

 항익이 백리웅의 삶에 들어왔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거나 과격한 행동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어쨌든, 백리웅은 이 만남이 필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첫 만남에선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이번 계기로 정해진 섭리를 깨달았다.

 사연이 있는 만남이든, 찰나를 스치는 만남이든, 평생을 관통하는 만남이든,

 그가 자신의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듣고 배워 채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한 단계 성장하여, 강호의 맹수로 거듭날 디딤돌로 이용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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