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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황월비천가(㬻月庇天歌)
작가 : 불괴
작품등록일 : 2018.2.20

그 놈의 출신을 알려달라고? 그건 아무도 모를 걸세. 뿌리가 없거든. 소문으로는 가전무공만 연성했다는 데, 그 놈의 집구석이 워낙 다양해서 가전무공이라 부르는 무공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서로간에 개연성이 없어. 워낙 처세 질에 능해서 어딜 가나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놈이야. 정을 쉽게 주면서도 금세 학을 띠고 사라지는 놈이라. 어쨌든, 그 성장과정은 나도 궁금하다네 - 철공계 황천후

 
제 8화 - 하여간, 정의투합
작성일 : 18-03-03 20:05     조회 : 381     추천 : 0     분량 : 9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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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다툼 이후로, 아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명랑 활발한 성격의 성찬이 형을 필두로 약간은 거만한 경윤이 뒤를 따른다.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종투즉세에 참여하지 않았던 영진이 형도 다시 아이들의 대오에 합류했다.

 새침하게 침묵을 지키는 경윤과 영진이 형의 조잘거림은 의외로 합이 잘 맞았다.

 

 영진이 형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묵언 수행을 해왔고 이젠 다시 분출할 곳이 생긴 거다.

 참았던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옆에서 경윤이가 경청하는 모습은 진짜 예상하지 못했다.

 타지에 와서 또래들과 어울리고자 하였으나, 경계하는 아이들로 인해 심심했었나 보다.

 

 

 그리고 백리웅에겐... 폭풍이 휘몰아쳤다.

 동네 어떤 놈한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누님의 귀에 동생이 여덟 방이나 얻어맞고 왔다는 소리가 전해졌는데, 하여간

 오늘 아침에 모란 향기 그윽이 퍼지는 방에서 기지개를 켰는데, 하여간

 누님의 성질이 하도 급한 나머지

 웅이 눈을 뜨자마자 손에 잡힌 물건으로 두들기는 데, 하여간

 어찌하면 이걸 곡소리 나게 잘 때렸다는 소문을 고민하는지, 하여간

 누님의 매타작은 무시무시했다.

 얻어맞는 중에 짱구를 굴리다가

 이런, 그럴싸한 묘책을 착상해내었으니….

 방 안에 있는 유일한 호신 무기인 책! 서책을 잡아버렸는데, 하여간

 누님은 서책을 피해 요리조리 잘만 두들겼다.

 줄행랑을 쳐볼 심산으로 헐레벌떡 문짝까지 접근했으나, 하여간

 귀신같이 동생의 허리춤을 붙잡고 메쳐버렸다.

 논리와 진실을 거부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는 누님의 행동방침은 속수무책이었다.

 

 하여간, 실로 오랜만에 남매상봉이었다.

 

 

 집안에서 아버지보다 무서운 사람이 있었으니….

 백리웅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소녀.

 자유를 꿈꾸는 소녀, 그 이름은 백리설란이다.

 

 세가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공교롭게도 화(花)가 아니라 지(知)

 주제가 어떤 것이든 간에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수 없게끔 대화의 양상이 흘러간다.

 누님은 이러한 세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머니의 자유로운 상행을 쫓아보고자 했으나 아버지가 이를 만류하였다.

 올 겨울이 지나면 충년(沖年, 열 살)을 맞이하는 설란누님..

 가정 환경 덕에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자유로운 강호를 동경하게 되었다.

 

 자유라는 권리를 얻는 대신 아버님께서는 하나의 책임을 내려주셨다.

 바로 봉황지무의 우승.

 그 전에 갖춰야 할 것은 아버님께서 모두 마련해주시기로 약조했다.

 그래서 올 겨울을 넘기면 그 준비를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온갖 모략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강호무림의 세계를 독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당연히 무(武). 세가의 무공으로는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

 새해가 밝으면 새주의 그늘에서 성장할 것이다.

 봉황지무의 우승자가 되기 위해서

 일단 새주의 직전제자(直前弟子)로 들어가기 위해 매일같이 땀을 흘리며 기본 공을 쌓고 있었다.

 어떤 새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누님이 간절히 바라는 자유를 위한 방책인 무.

 수단이라 치부하기엔 무 자체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다른 누님이다.

 그런 누님이 진실이 왜곡된 사실관계만을 듣게 되었다.

 

 동생이 승리한 것은 누님의 귀에 박히질 못했다.

 그저…. 많이 얻어맞고 왔다는 것만이 누님의 머릿속에 멤 돌뿐.

 

 

 "웅아! 왜 맞았어? "

 

 

 누님은 그저 자기 할 말만 내뱉으며 계속 구타를 이어갔다.

 

 

 " 더 빨리 더 강하게 상대를 제압했어야지!"

 

 

 누님이 어깨가 결리나 보다 드디어 폭력이 종결되었다.

 

 

 "누, 누나. 오, 오랜, 만이야…."

 

 

 한참을 두드려 맞은 후에 문안 인사를 올렸다.

 누님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며 공격을 위한 준비자세를 취한다.

 

 

 "내가 요즘 바빠. 그러니깐 한 번만 더 내 귀에 그런 소식이 전해지면……."

 

 "쩍!"

 

 

 주먹으로 머리를…. 아니…. 망치였나…?

 둔중한 무기로 장작 나무를 패듯 끔찍한 소리가 방안에서 메아리쳤다.

 

 남매간이 그리 살갑지는 않다.

 

 동생이 얻어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속이 상한 누님.

 그 속 풀이를 위한 대상이 되어버린 동생.

 

 하여간, 알다가도 모를 남매의 정

 

 

 "나한테 진짜 혼날 줄 알아! 알겠지, 웅아?"

 

 "응, 다음부턴 한 대도 안 맞고 더 많이 때릴게…."

 

 "오늘은 할머니 대신에 내가 모란꽃 발라줄게."

 

 

 세가의 전통 악습을 만들어낸 금종탈식....

 그리고 그걸 더욱 부추기는 용도의 모란꽃으로 만든 고약(膏藥)

 

 동생의 겉옷을 찢어발기듯 벗기는 누님.

 그리곤 전신에 고약을 덕지덕지 발라주는 자상(?)한 누님

 신속한 의료행위를 마치고, 누님은 다시 수련을 위해 건넛방 너머 누님만의 연무장으로 향한다.

 

 

 하여간, 이름은 겨울 속에서도 그윽한 향기를 휘날리는 난초라는데….

 성격은 활화산이다.

 

 이 집구석은 항상 이례적이다.

 

 사물의 단면만을 보다가는 큰코다친다.

 어머니를 닮아 곱상한 외모에 잡티 하나 없이 자란 누님.

 그러나, 백리웅에게 있어 경계대상 일 호이다.

 

 누님이 나가고 나서야 손에 붙들려 있는 호신용 무기인 서책을 내려놓았다.

 책은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자산이고 보물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신명 나게 놀았더니 움직일 기력이 없다.

 졸리지도 않고 가만히 있기 힘들어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게 뭐가 대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사부님과 함께하는 공부시간 이외에 백리웅은 책을 손에서 잡아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영진이 형의 이야기도 항상 한 귀로 흘려들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거창한 목표는 아니었다.

 세상의 어울림에 지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냥…. 말 그대로 그냥 책을 펼쳤다.

 

 사실 방에는 작은 서고가 마련되어 있다.

 지식함양을 위한 어머니의 바람이다.

 아버지가 하나의 사물을 깊게 바라보는 특성이 있다면 어머니는 박문강기(博聞强記, 사물에 대하여 널리 듣고 보고, 그것을 잘 기억함)를 강조하신다.

 

 쉽게 말해서, 다양한 것을 보고 접하라고 말씀하신다.

 백리웅의 집중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펼친 책이 모사부님과 함께 익히던 그 지루한 책 때문도 아니다….

 다만…. 다양한 것을 보고 접하려고…. 어머님의 뜻을 이어받아…….

 

 

 하여간, 펼친 책을 금세 덮고 일어나 서가를 바라본다.

 

 

 서가의 가장 높은 곳 가장자리, 백리웅의 키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놓인 왼편의 책을 들었다.

 다양한 지식을 쌓진 않았으나 적어도 글을 읽고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처음으로 펼친 책에서는 백사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선정되고 사실의 관계구성을 마친 다음 그에 대한 사견까지 들어있는 백서.

 인물열전의 경우는 가끔 다루거나 특집으로 지역별 인물에 대해 품평을 한다.

 

 백사가 웅의 방에 있었다. 그것도 삼 층 서가대의 절반 가까이가 백사다.

 

 그런데, 이게…. 꽤 오래전 이야기들이다.

 웅이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있다.

 배포된 백사를 책으로 엮어 대대손손 이어져 왔나 보다.

 원래 백사는 방문(榜文)의 형식으로 중원전역에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문득, 지난밤 비재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는 백벽에 대해서 물어왔다.

 

 찾아보자. 여기 있는 백사에서

 

 소문에 불과한 이야기

 사실만 나열한 이야기

 진실을 내포한 이야기

 거기에 들어간 개인의 이야기까지

 어떠한 이야기가 됐건 간에 뭐라고 언급되어 있는지 찾아보자.

 

 

 이따금 찾아오는 통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호기심의 해결을 위해서….

 

 .

 .

 .

 

 장강이 멀리 내다보이는 곳.

 수평선은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차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

 땅바닥이 촉촉이 젖어있고 임시로 펼친 천막과 축대 역시 눅눅하게 젖어있다.

 이른 새벽, 드디어 호출이 왔다.

 

 이득(利得)이 될 자와 아닌 자를 대함에 있어 목소리가 달라지지 않게

 지금껏 기다리며 언사를 점검했다.

 

 대인과 소인을 대함에 있어 눈빛이 달라지지 않게

 행동거지도 정돈했다.

 

 스스로의 나약함과 추악함을 드러내지 않게

 마음가짐도 굳게 다졌다….

 

 

 이제껏, 백리세가는 조사의 유지(有志)를 받들어 왔다.

 역대 가주들은 그 뜻을 이어받아 끝없이 많은 방법으로 노력해왔다.

 나는 사철의 하늘. 그중에서 봄에 해당하는 창천(蒼天)을 바란다.

 

 이를 위한 대계로 소금전매권을 노린 것이다.

 제걸인과의 은밀한 연대는 더는 수면 아래로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노릇.

 이러한 상태로는 세가에도 제걸인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불 보듯 뻔하다.

 

 미끼를 풀었고 그걸 진양에서 덥석 물었다.

 공개적으로는 시골의 지역 유지가 밑천을 전부 끌어와 일확천금의 도박을 한 셈이다.

 진양 측에서는 전매권을 다시 받아낼 명분도 없고 굳이 일감을 떠맡지 않고도 수익을 배분받기로 약조한 상황.

 귀찮지만 지난번에 전매권을 확보할 때 알게 된 연줄을 이쪽으로 대주기만 하면 끝이다.

 큰 기대가 없었을 것이다. 미련만 가득할 뿐

 

 그런데…. 그 놈의 총관이 일을 벌였다.

 그것도 너무 큰 판으로 벌려 버렸다.

 

 거각도(去殼刀) 항익은 일급 중에서도 일급.

 현재 강호에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무림인 중에 거각도의 무력과 동수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잘 해봐야 백 명. 그런데…. 그가 움직였다.

 

 

 천막 입구의 가림막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민머리에 긴 팔의 큰 손바닥을 펼쳐 좌우로 흔드는 걸음걸이.

 허리춤에는 깊은 역사를 간직한 도를 차고 있었다.

 겉보기엔 누추해 보이는 저 칼은 본래 사악도인이 애용하던 무기.

 필시 그는 단천림의 잔존세력과 함께 행동하고 있을 거다.

 

 

 누가 봐도, 거각도의 용모는 눈에 뜨인다.

 성성이를 닮은 그의 외모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은 없다.

 그는 진짜배기 강자. 그의 무공은 최소 지천(至天)이다. 하늘에 이른 수공을 지녔다.

 

 별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가로막는 상대의 몸을, 정확히는 허물을 칼로 벗겨버린다.

 산채로...

 

 그래서 그의 악명은 가진 무공보다 더욱 높다.

 수공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별호에 칼이 들어가니 말이다.

 그를 자극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간에 꿈도 꿀 수 없다.

 

 

 지금 이 탁자엔 진양의 하 총관, 거각도 그리고 내가 자리를 잡았다.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 정확히 아흐레가 걸렸다.

 진양을 지지하던 다른 곳들은 그의 악명에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버렸다.

 이런저런 변명을 대면서….

 거각도는 배짱을 튕겨왔고 총관은 벌써 수익금을 계산하느라 정신없었다.

 

 육백여 년의 인고의 계절을 견뎌 창천으로 도약할 시기.

 기필코 이번 거래를 무난하게 성사시켜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와중에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백리제천이라고 합니다.“

 

 

 포권지례를 행한다.

 

 .

 .

 .

 

 마음속으로 열까지 셌다.

 거각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고 옆의 총관은 사뭇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고, 백리가주! 다시 착석하시지요. 지금은 예를 차리고 긴 시간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다행히, 진양의 총관 하서청이 분위기를 환기해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팔 할!!!"

 

 "..."

 

 "이 보게! 가주. 지금 소꿉놀이하는 장소가 아닐세!

 

 

 거각도는 말이 없이 칼집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하 총관은 몸이 달아올랐다.

 

 

 "팔 할의 수익금을 포기하겠습니다."

 

 "..."

 

 

 아무도 말이 없었다.

 

 

 "대신, 금번 전매권에서 나오는 수익금 이 할에 대한 조건으로 거각도 대협이 우산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당 총관뿐 아니라 저희 세가식솔들까지."

 

 

 두 명의 표정이 급작스럽게 바뀐다.

 

 

 "아니, 가주. 이 할이라면…. 괜찮겠습니까?"

 

 

 총관이 방긋 웃으며 입을 놀렸다.

 

 

 "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거각도 대협이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신다면 사 할.

 진양에서 경영에 참여하지 않지만, 기존에 전매권에 투표하는 윗분과의 연줄을 저희에게 이어줄 터이니 그에 대해 보답을 하는 차원에서 총관 님께 이 할 진양에 이 할.

 제가 생각한 조건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 참, 이 친구가 나를 아주 높게 평가하는구먼! 그건 고마울 따름이지.

 내 이름을 듣고도 자리를 마련한 용기.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안겨주고.

 마지막으로 내 앞에서 비굴하지 않게 자신의 수익금을 언급한다…."

 

 

 거각도 기쁜 마음을 감추진 않았지만, 어디 더 해보라는 양 표정을 짓는다.

 

 

 "대협! 제가 일전에 말한 데로, 백리가주가 배포도 있고 사람이 참 좋습니다."

 

 

 총관은 본인에게 떨어지는 수익금에 눈이 뒤집혔다.

 

 

 "허면, 그대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간이며 쓸개며 다 떼주고 말이지."

 

 "제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명성을 돈으로 사고자 합니다.

 세가가 그 동안 성장하며 일궈온 살림이 있어, 우리 지역에서는 비교적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높은 관직이나 커다란 상행을 하기에는…. 이름값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지요.

 이번 전매권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전매권만 확보되면 저희 세가의 이름은 중원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 좋군. 난 찬성일세. "

 

 

 대 표국의 총관치고는 단순하다. 그저 이익만을 좇아 움직이는 모양새.

 

 

 " 명예라…. 물욕을 채우기 위한 발판으로 명예라…. 그대는 원하는 게 확실하군,

 그렇다면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 대협께서는 이득을 얻고자 하시지요. 다만 이름값에 어울리는 이득을….

 무명(武名)의 높이와는 상관없이 이런 일에 대협께서 움직이신 이유는 급전이 아주 많이 필요하신 듯 보입니다…….

 청산이 아닌 이곳 진양에 합류하신 걸 보면 그 뜻이 명확하죠.

 

 그러나…. 공개석상에서 활동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구도자들과의 적대관계는 공공연한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해서, 대협이 바라는 만큼 이름값을 지급하겠습니다."

 

 "총관께도 양해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진양의 명성을 제가 가지겠습니다. 대신, 진양의 명분을 저희가 만들어드리죠.

 진양은 의사가 없었으나 저희 세가가 강력히 밀어붙인 판으로 말입니다.

 더군다나 '실권을 잡지 못하고 꼭두각시 노릇 하는 백리상단'이라는 소문을 윗분들에겐 넣어드리고 공식적으로는 저희 상단이 실권을 잡고 세를 넓히는 것으로 말이죠."

 

 

 "하하하하하하“

 

 "크크클“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하 총관이 누런 이를 보이며 답변했다.

 

 "충분하지, 충분하고말고! 우리 셋 다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니

 허나! 나는 장난질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명석한 놈들을 보면 배알이 뒤틀리거든.

 주어진 장단에 놀아나는 기분은 썩 내키지 않는단 말이지.

 그대의 조건을 받고 나도 단서를 달겠네."

 

 "어떤 단서를…."

 

 "그대의 자식! 앞으로 나와 함께 할 걸세. 함께 소금을 팔러 다니며 산천 구경을 다녀야겠어."

 

 "..."

 

 "저에게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딸은 이번에…."

 

 "딸은 필요 없네. 상관하고 싶지 않아. 내가 여자아이 재롱 봐줄 심보가 못되어 말이야.

 아들이 있다니. 다행이네. 내 그놈의 견문을 넓혀주겠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본디 사람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상대의 이득을 먼저 제시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이득을 취하는 방식으로….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이 할을 취한다고 말하지 않고 팔 할을 포기한다 말했다.

 

 이 거래는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풀어나가는 중이었다.

 

 아들이라니……. 내 자식을……. 거각도에게 어찌….

 경화의 안위를 위해 방문한 자리이건만…….

 또 다른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신세가 되었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부족하지만, 못난 자식놈의 견문을 넓혀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그대의 언행을 보아하니, 단순히 명성을 사들인다고 하기엔…. 물욕이 엄청나군.

 금쪽같은 아들을 선뜻 내어주다니 말이야."

 

 "자~ 그럼 우리 계약성립이 된 거 같은데.

 이보게, 가주! 이렇게 좋은 날 술이 없으면 안 될 거 같은데?"

 

 

 빌어먹을 총관 놈!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저놈 벌써 술 얘기로 빠진다.

 그것도 자기가 사는 게 아니라…. 나에게 간접적으로 언질을 주는 형태로….

 

 

 "알겠습니다. 좋은 벗들과 술 한잔 걸친다면 이보다 기쁜 바가 없지요.

 그럼 세부사항은 나중에 조율하기로 하고 공개석상에선 백리의 이름값을 챙기겠습니다."

 

 "잠깐, 자네 혹시 별호가 어떻게 되는가?"

 

 

 토의가 끝나고 일어서는 와중에 거각도가 나를 보며 묻는다.

 

 

 "가전무공(家傳武功)을 익히고 있으나 무명(武名)을 쌓지 못한바…. 별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기념으로 자네의 별호를 지어 주겠네. 어떤가?

 

 백경(白鯨)!

 

 자네의 넘치는 물욕은 장강이 아니라 바다를 마셔도 모자를 듯 보이네.

 저 바다에 사는 가장 거대한 물고기.

 본 적은 없지만, 오다가다 들은 말은 있어서 말이야.

 자네를 이제부터 백경이라 부르겠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빌어먹을. 별호야 어찌 됐든 무슨 상관인가. 내 아들이 볼모로 잡혀가는데….

 

 새벽녘에 일찌감치 일어나 장강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희뿌연 안개로 인해 반듯한 수평선과 일출을 보지 못했다.

 오늘따라, 아침의 저 수평선과 사람의 일이 겹치는구나.

 반듯하게 가를 수 없었고 좌우의 균형도 달랐던….

 

 동녘 하늘의 맑게 갠 하늘과 태양을 보고자 했고, 방대한 수평선 너머를 보고자 했거늘….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백사와 제걸인 그리고 백리세가

 큰 그림에 집착한 나머지.

 

 자식을 내어주는 우(愚)를 범했다.

 

 지키지 못했다.

 

 입관식 후에도 아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건배!”

 

 "건배!”

 

 "건배!”

 

 

 

 분위기를 음미하듯 입술에 적시며, 정겨운 미소로 이들의 안색을 살핀다.

 

 .

 .

 .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 자리에 어떻게 당도했는지 기억에 없다.

 체면치레한답시고 어찌어찌…. 마음에도 없는 농담을 뒤섞어 가며 술자리를 보냈다.

 

 

 그리곤 어느새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가을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이파리를 털어내고 있는 나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마음의 불길이 타올라선지, 떨어진 잎사귀의 색이 강렬한 핏빛으로 보인다.

 아들을 내주면서 술자리를 하는 한심한 아비의 모습이다.

 

 정오의 햇살이 깊숙이 치고 들어와 내 마음의 불씨를 더욱 지핀다.

 

 이젠 걷는다. 걸으면서 공기를 가른다.

 공기가 내 마음의 불길을 이내 터트렸다.

 

 .

 .

 .

 

 진정 바란다면…. 되겠다. 백경이 아니라 백경까지도 잡아먹는 백사(百事)가...

 

 

 비상이 시작되면 내 반드시 추락을 위한 준비도 들어갈 것이다.

 제걸인과 백리세가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그간 음지에서만 행하던 골치 아픈 활동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너희만의 하늘과 자유라고 믿겠지만, 그 자유 속에 날카로운 비수가 싹을 틔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비수를 이빨 삼아 너희까지 잡아먹는 백사(白蛇)가 될 것이다.

 

 .

 .

 .

 

 아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거취가 정해졌다.

 맹수는 새끼를 싸고돌면 안 되는 법

 평지풍파를 견뎌내기 위한 성장통을 조금 일찍 겪게 도와주는 것이라 여기자….

 

 그리고 진짜 문제는 외부의 위협보다 내부 강자의 비위를 살피는 것.

 거각도에 대한 설명을 직접 하면 무의식적으로도 거부감을 일으킬 터이니,

 무림의 강자들이 가진 변덕에 관한 이야기들을 최대한 아들에게 전해줘야겠다.

 

 

 옥상이라면 총명하니….

 거각도와 함께 하는 시간은 의외로 유익할 수 있다.

 강자와 같은 것을 보고 경험하며, 때로는 강자의 시선을 곁눈질이라도 하며 강자에 휘둘리지 않도록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한 수 배울 수도 있지 않은가! 좋게 생각하자….

 

 

 오호통재로다! 이 소식을 경화에게는 또 어찌 전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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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 22화 - 쓸모 없는 볼모 2018 / 3 / 24 359 0 6032   
22 제 21화 - 외톨이 2018 / 3 / 23 370 0 6016   
21 제 20화 - 명가의 저력 2018 / 3 / 21 383 0 7291   
20 제 19화 - 장중득실(1권 끝) 2018 / 3 / 20 361 0 6859   
19 제 18화 - 수라장에서 드러나는 은거고수 2018 / 3 / 18 371 0 7248   
18 제 17화 - 각자의 입장 2018 / 3 / 16 371 0 8025   
17 제 16화 - 수라계(修羅界) 2018 / 3 / 12 379 0 6880   
16 제 15화 - 고정화된 성 2018 / 3 / 11 385 0 8424   
15 제 14화 - 무허대사의 죽음 2018 / 3 / 10 372 0 7498   
14 제 13화 - 삼악입문(고악) 2018 / 3 / 9 375 0 5953   
13 제 12화 - 삼악입문(일악) 2018 / 3 / 8 384 0 6752   
12 제 11화 - 오역부지(吾亦不知, 나 또한 모르는 … 2018 / 3 / 7 380 0 7638   
11 제 10화 - 맹수의 조건 2018 / 3 / 5 371 0 7758   
10 제 9화 - 꿈과 운명 2018 / 3 / 4 369 0 6764   
9 제 8화 - 하여간, 정의투합 2018 / 3 / 3 382 0 9059   
8 제 7화 - 아이들의 무림 2018 / 3 / 2 381 0 6235   
7 제 6화 - 그 남자의 사정 2018 / 3 / 1 408 0 6930   
6 제 5화 - 경계를 허무는 자 2018 / 2 / 28 379 0 6482   
5 제 4화 - 무풍지대 2018 / 2 / 27 413 0 6524   
4 제 3화 - 협가 2018 / 2 / 26 403 0 6097   
3 제 2화 - 백사 2018 / 2 / 25 407 0 6134   
2 제 1화 - 전통 2018 / 2 / 24 418 0 6731   
1 서두(序頭) 2018 / 2 / 20 586 0 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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