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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변장공주 개정판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8.1.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잉글랜드의 에반젤린 공주가 자신이 늙어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소녀로 변장해 모험에 나선다. 자신을 스코틀랜드의 왕자에게 강제로 시집보내려는 아버지 마이클 왕의 명을 거역하고 공주의 신분을 버릴 각오로 모험에 나선 에반젤린 공주는 과연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리처드와 함께 드라이브하다
작성일 : 18-02-06 09:00     조회 : 74     추천 : 1     분량 : 8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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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뜻을 따르겠느냐?"

 

  순간, 에반젤린 공주의 뇌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못생긴 얼굴로 변장해 로버트 왕자가 달아나게 만들면 이 결혼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에반젤린 공주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혼은 평생에 가장 큰일인데, 어찌 만나보지도 않고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로버트 왕자를 만나본 후 결정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좋다, 그렇게 하려무나."

 

  마이클 왕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덧붙였다.

 

  "실은 조만간 레이디 제인이 스코틀랜드로 사신으로 가서 로버트 왕자의 사람됨을 확인해본 후에 너와의 결혼 여부를 결정짓기로 했는데, 네 뜻이 그렇다면 로버트 왕자를 만나보고 결정하거라."

 

  레이디 제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에반젤린 공주는 깨달았다.

 

  '레이디 제인이 날 스코틀랜드로 보내고 자기가 리처드와 결혼하려고 나와 로버트 왕자와의 결혼을 추진하려는 것이 틀림없어!'

 

  공주는 레이디 제인이 리처드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마이클 왕이 레이디 제인을 철석처럼 믿는 것이 답답했지만, 공주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남자는 남자가 봐야 잘 안다는 말도 있는데, 제 생각에는 여자인 레이디 제인을 사신으로 보내기 보다는 차라리 남자인 리처드 경이나 토마스 경을 사신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공주는 마이클 왕이 리처드를 보내기 바라는 마음에 그의 이름을 먼저 언급했다.

 

  고개를 끄덕인 마이클 왕의 말은 공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그래, 네 말이 일 리가 있구나. 토마스 경을 레이디 제인과 함께 보내는 것이 더 좋겠구나."

 

  에반젤린 공주는 속으로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아버님께서는 여우, 아니 독사처럼 못된 꾀만 내는 레이디 제인을 철석처럼 믿으시니, 나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지만, 어머님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실까?'

 

  토마스 대신 리처드를 보내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공주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리처드가 레이디 제인과 함께 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테니, 차라리 그동안 리처드의 진심을 다시 시험해보는 것이 좋겠어.'

 

  이런 생각이 들자 에반젤린 공주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사신을 보내는 일은 아버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거라."

 

  마이클 왕이 처소를 떠나자 에반젤린 공주는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로버트 왕자와의 결혼을 피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궁리 끝에 공주는 별안간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손뼉치며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추녀로 변장해 잠적한다면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을 테고, 리처드가 추녀로 변장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궁전을 떠나 잠적해서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공주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중얼거렸다.

 

  "내가 궁전을 떠나 잠적한다면 어머님께서 몹시 걱정하실 테니, 어머님께는 말씀드리자."

 

  결심을 굳힌 에반젤린 공주는 화장대 서랍에서 밀가루 반죽 하나를 꺼내 밀가루 가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화장대 거울을 보며 이전과 똑같이 변장한 공주는 면사포를 쓴 후 시녀들을 불렀다.

 

  "어머님의 처소로 갈 것이니, 따라오너라."

 

  에반젤린 공주가 면사포를 쓴 채 찾아오자 안젤리카 왕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네가 행방불명되었다더니, 폐하께 많이 혼났느냐?"

 

  안젤리카 왕비는 공주가 마이클 왕에게 뺨이라도 맞아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줄 알았다.

 

  에반젤린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께 주의만 들었을 뿐입니다."

 

  안젤리카 왕비는 공주가 궁전을 나갔을 때 얼굴을 다쳐 면사포를 쓴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궁전을 나갔을 때 얼굴을 다쳐 면사포를 쓴 것이냐?"

 

  "아니예요."

 

  "그럼, 왜 면사포를 쓴 것이냐?"

 

  "별 일 아니니 신경쓰지 마세요."

 

  왕비를 안심시킨 에반젤린 공주는 이 한마디로 운을 뗐다.

 

  "실은 어머님께 저의 혼인 문제를 상의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안젤리카 왕비는 올 것이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대로 폐하께서 너를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왕자와 짝지어 주시기로 결정하셨구나."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너도 이미 예상했을 테니, 이제는 잉글랜드 공주 생활을 청산할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부모에게 순종적인 공주는 이번 만큼은 따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머님, 저는 스코틀랜드 로버트 왕자와도 다른 나라의 왕자와도 결혼할 마음이 없어요. 저는 세월이 지나 제가 늙어도 저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왕비는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에반젤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너의 바람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구나. 잉글랜드 공주들이 타국 왕자와 결혼하는 것은 관례인데, 어찌 너만이 관례를 어길 수 있겠느냐?"

 

  공주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어머님, 관례란 사람이 만든 것인데, 제가 관례에 매여 행복하지 못하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부디, 어머님만이라도 아버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래요."

 

  왕비는 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해는 하지만, 폐하께서 네가 관례를 어기는 것을 용납하시겠느냐?"

 

  에반젤린 공주는 손으로 면사포를 잡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님, 지금 제가 밀가루로 만든 가면을 썼으니, 제 얼굴이 이상하다 해도 놀라지 마세요."

 

  순간, 왕비는 공주가 밀가루로 만든 가면을 쓰고 궁전을 나가는 바람에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에반젤린 공주가 면사포를 들춰 얼굴을 보여주자 안젤리카 왕비가 놀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변장하면 나도 몰라보겠구나."

 

  왕비는 공주가 추녀로 변장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확실히 알기 위해 물었다.

 

  "그래, 그런 얼굴로 로버트 왕자를 만나 혼담이 깨어지게 만들 셈이냐?"

 

  "네, 그럴 생각이예요."

 

  "하지만, 네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잉글랜드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인데, 스코틀랜드 로버트 왕자와 다른 나라 왕자들을 모두 속인다 하더라도 폐하까지 계속 속일 수 있겠느냐?"

 

  "제가 이렇게 변장한 채 잠적한다면 아버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거예요."

 

  이때서야 왕비는 공주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찾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평생 못생긴 얼굴로 변장한 채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리라.

 

  안젤리카 왕비가 확인하듯 물었다.

 

  "만약 폐하께서 네가 관례를 어기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면, 평생을 그렇게 못생긴 얼굴로 살아갈 생각이냐?"

 

  에반젤린 공주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생각이예요."

 

  왕비는 공주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연신 한숨을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서야 왕비가 그 어느 때보다 다정히 공주의 이름을 부르며 말문을 열었다.

 

  "에반젤린, 나는 내 딸이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니, 네 뜻대로 하거라."

 

  안젤리카 왕비는 딸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울 작정이었다.

 

  공주가 추녀로 변장해 자신이 찾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야 행복할 수 있으리라.

 

  감격한 에반젤린 공주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님께서 제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허락해 주시니 말할 수 없이 감사드립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처소로 돌아온 공주는 면사포를 쓴 채 에리카를 불렀다.

 

  "리처드 경을 부르거라."

 

  부름을 받고 당도한 리처드는 면사포를 쓴 공주를 보자 어째서 처소 안에서 면사포를 쓰고 있는지 의아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인사했다.

 

  "공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에반젤린 공주는 한숨부터 내쉬더니 외마디 탄식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아, 리처드 경, 폐하께서 오늘 혼담 이야기를 꺼내시며 스코틀랜드 왕자에게 시집갈 마음의 준비를 하라 하셨어요. 난 조국을 떠나지 않고 싶은데, 폐하께서는 내게 스코틀랜드 왕자에게 시집갈 것을 종용하시는군요."

 

  순간, 리처드는 충격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공주의 호위기사가 된 지난 3년 간 일편단심으로 공주만을 마음에 두어왔던 리처드로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라 스스로를 위안해 왔으면서도 막상 공주와 이별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자 리처드는 뭐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리처드는 애써 충격을 감추려 했지만, 감추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간신히 위로의 말을 건넸다.

 

  "폐하께서도 공주님을 위해 숙고를 거쳐 결정하셨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리처드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는 공주는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요?"

 

  리처드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렸다.

 

  "저, 저는 다만......"

 

  에반젤린 공주는 리처드를 난처하게 만든 것 같아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아도 리처드 경의 진심을 잘 알고 있어요."

 

  리처드가 자신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리처드는 뭐라 말해야할지 몰라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런던 시내를 드라이브하려 하니 마차를 준비해 주세요."

 

  리처드는 어쩌면 공주와 드라이브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숙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주님의 분부대로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에반젤린 공주는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마치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듯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리처드 경이 직접 말을 몰아주세요."

 

  리처드는 공주가 마차에 타기도 전에 미리 말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님의 분부대로 오늘은 제가 말을 몰겠습니다."

 

  리처드가 떠나기 전에 인사하려 하자 에반젤린 공주가 손을 내저으며 재촉했다.

 

  "인사는 되었으니 어서 마차를 준비해 주세요."

 

  에반젤린 공주는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오래 리처드와 드라이브하고 싶었다.

 

  좀처럼 재촉하지 않는 공주가 재촉하자 리처드는 서둘러 처소를 떠나 마차를 준비했다.

 

  이윽고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공주가 마차에 오르자 리처드도 마차에 올라 마부석에 앉았다.

 

  "공주님, 이제 출발할까요?"

 

  에반젤린 공주가 출발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리처드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출발했다.

 

  "이쪽으로 갈까요?"

 

  공주는 마차가 런던 시내 중심을 지나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리처드가 어느 쪽으로 갈지 물을 때마다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리처드는 평소 마차에 함께 타면 런던 시내의 정경에 대해 말하곤 했던 공주가 단 한마디조차 하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공주님, 이제 그만 궁전으로 마치를 돌릴까요?"

 

  에반젤린 공주는 싫다는 듯 고개만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오래 리처드와 드라이브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어찌 알겠어?'

 

  리처드는 로버트 왕자와의 혼담으로 인해 공주의 마음이 심란해져 그런 것이라 지레 짐작해 말했다.

 

  "공주님께서 기분 전환도 하실 겸, 런던 시내를 한바퀴 드라이브할까요?"

 

  에반젤린 공주는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공주님의 뜻대로 런던 시내를 한바퀴 드라이브하겠습니다."

 

  마차가 런던 시내를 한바퀴 돌 무렵이었다.

 

  "리처드 경! 공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잠시 마차를 멈춰주세요!"

 

  레이디 제인의 목소리였다.

 

  공주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레이디 제인이 마차를 타고 오고 있었다.

 

  에반젤린 공주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생각했다.

 

  '흥! 레이디 제인이 대체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는 걸까?'

 

  리처드는 레이디 제인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마차를 계속 몰며 공주에게 물었다.

 

  "그냥 갈까요?"

 

  에반젤린 공주는 말없이 손만 들었다.

 

  마차를 세우라는 뜻이었다.

 

  레이디 제인의 마차 옆에는 기사복을 입은 토마스가 말을 몰고 오고 있었다.

 

  에반젤린 공주는 혹시라도 바람에 날릴까봐 면사포를 붙잡은 채 생각했다.

 

  '토마스와 함께 있는 걸 보면 레이디 제인이 스코틀랜드로 떠날 모양인데,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나 봐야지.'

 

  이윽고 레이디 제인의 마차가 공주의 마차 옆으로 다가왔다.

 

  "공주님, 폐하께서 리처드 경을 함께 스코틀랜드로 데려가라 명하셨으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에반젤린 공주는 속으로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림없는 소리지. 리처드 경이 밖에서 날 호위하는 동안에는 아무대도 갈 수 없는데, 그것도 모르나 보군!'

 

  이때 토마스가 나섰다.

 

  "공주님의 호위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이때 에반젤린 공주가 떠나자는 뜻으로 손짓했다.

 

  "토마스 경, 레이디 제인, 공주님께서 떠나라 하니 이만 떠나겠소. 잘 있으시오."

 

  리처드가 마차를 몰아 앞으로 나가자 레이디 제인이 고함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님!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폐하의 명인데 따르셔야지요!"

 

  에반젤린 공주는 계속 가라는 뜻으로 손짓했고 리처드는 그녀의 손짓대로 마차를 앞으로 몰았다.

 

  레이디 제인이 공주를 쫓아가려 하자 토마스가 만류했다.

 

  "공주님을 쫓아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임을 모르시오?"

 

  레이디 제인은 공주의 마차가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에반젤린 공주는 레이디 제인의 마차가 보이지 않자 배를 잡고 웃었다.

 

  "호호호......"

 

  리처드도 마차를 몰며 공주를 따라 웃었다.

 

  "하하하......"

 

  레이디 제인을 한방 먹인 것이 통쾌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바로 이때였다.

 

  "엇!"

 

  두 손으로 배를 잡고 웃던 공주의 면사포가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날려 들리자 공주의 변장한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깜짝 놀라 외마디 소리를 낸 리처드는 공주의 행방이 걱정되어 물었다.

 

  "공주님이 아니셨군요. 지금 공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에반젤린 공주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공주님은 공주님의 처소에 계실 거예요."

 

  리처드는 그래도 의문이 생겨 정중하게 말했다.

 

  "레이디께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여쭈어봐도 될지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레이디 제인이 레이디를 공주님으로 오인하고 마차를 멈춰달라 했을 때 어째서 마차를 멈출 것을 명하셨습니까?"

 

  "그건......"

 

  리처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재빨리 임기응변으로 대답했다.

 

  "레이디 제인의 음모를 알아내기 위한 작전이었어요."

 

  "그러셨군요."

 

  리처드는 여전히 어찌 된 일인지 납득되지 않았지만, 상대방은 공주의 친구라는 생각에 정중히 물었다.

 

  "레이디께 여지껏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실 것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에반젤린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 질문은 공주님께서 대답해 주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공주님을 뵈러 궁전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드라이브도 끝났으니 이제 궁전으로 돌아가요."

 

  레이디 제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설레이는 가슴으로 리처드와의 드라이브를 즐겼지만, 이제는 흥이 깨어졌다.

 

  다시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공주가 손짓하자 리처드는 곧장 마차를 몰아 궁전으로 돌아갔다.

 

  리처드가 공주의 처소가 있는 궁전 앞에 마차를 세우자 공주가 말했다.

 

  "런던 시내를 한바퀴 드라이브시켜줘 고마웠어요."

 

  리처드는 공주의 친구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답례했다.

 

  "천만에요. 저는 공주님의 분부대로 런던 시내를 드라이브했을 뿐입니다."

 

  에반젤린 공주는 신신당부하듯 말했다.

 

  "공주님 대신 저와 런던 시내를 한바퀴 드라이브한 것에 대해 지금 공주님께 꼭 여쭈어보세요."

 

  이 말을 듣자 리처드는 에반젤린 공주에게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디의 말씀대로 지금 공주님을 뵙고 여쭈어보겠습니다."

 

  처소로 돌아온 공주는 급히 얼굴에서 밀가루 가면을 떼어낸 후 리처드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리처드가 나타나 인사하자 에반젤린 공주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내 친구와의 드라이브는 즐거웠나요?"

 

  리처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주님의 친구 분과 저를 드라이브시키신 이유에 대해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에반젤린 공주는 말하기 쑥스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리처드 경, 내 친구와 결혼하지 않겠어요?“

 

  리처드는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공주님께서는 나와 공주님의 친구이신 레이디를 짝지어 주시기 위해 내가 그녀와 함께 런던 시내를 드라이브하도록 하셨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공주의 제안에 리처드는 무슨 말을 할지 떠오르지 않아 말을 더듬었다.

 

  "공, 공주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공주님의 친구 분이신 레이디와의 혼인을 제의해 주시니,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만, 저는 아직......“

 

  오직 에반젤린 공주만을 사랑하는 리처드로서는 다른 여자와의 혼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뭐라 거절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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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리처드와 악수를 나눈 로버트 왕자 2018 / 4 / 5 455 0 5624   
33 에반젤린 공주를 심문할 것을 허락하다 2018 / 4 / 4 471 1 6681   
32 레이디 제인의 모함 2018 / 4 / 3 473 1 6662   
31 변장을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다 2018 / 4 / 2 483 1 6967   
30 에반젤린 공주의 품위에 눌린 토마스 2018 / 4 / 1 477 1 5996   
29 토마스를 따라갈 것을 자청하다 2018 / 3 / 31 501 1 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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