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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성범죄 수사팀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12.11

과거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성범죄 피해자 차유연, 유연은 형사가 되자마자 성범죄 수사팀을 만들고 팀장인 한상혁과 함께 끝없이 일어나는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강남역에 일어난 강간사건의 해결을 위해 출동한 유연은 예상밖의 인물과 마주치는데, “네가 날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해?” 뗄레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악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유연과 강간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택해버린 동생의 복수를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든 상혁의 미스터리 로맨스.

 
File 20. 차이
작성일 : 17-12-11 16:17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4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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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보름달이 서슬퍼런 빛을 쏟아냈다. 유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애꿎은 시간만 태우고 있었다. 이시완의 손에 쥐어진 라이터를 보자, 더 이상 사고 회로가 진행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건 미친 짓이 확실했다. 적어도, 유연이 아는 이시완은 거짓말을 할 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시완은 진심으로 김주니를 죽일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그것도, 불로 활활 태워서 말이다.

 

  "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글쎄요, 그냥, 좋아서?"

 

 이시완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칙칙, 불이 붙었다가 꺼지는 라이터가 시선을 붙들었다. 김주니의 몸이 꿈틀거리며, 애처로운 발악을 이어갔다.

 

 미친새끼, 이를 악문 유연이 결국,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바닥으로 툭 떨어트렸다. 미친 짓이 확실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시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았으니까.

 

  "이야, 역시 형사님은 눈치가 빠르시다니까."

 

 뒤로 살짝 물러난 이시완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유연의 시선은 줄곧 김주니를 향하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시완은 별 상관 없다는 듯, 유연을 빤히 응시했다.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꽤 매력적으로 생긴 여자인 듯했다. 눈꼬리하며, 살짝 솟은 입꼬리하며, 전에 보던 여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이상해질 만큼.

 

  "난 사실, 형사님이 마음에 들었어요."

  "……."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았거든요."

 

 이시완의 말을 듣던 유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시완과 같은 사람으로 묶인 다는 것이, 혐오스럽다는 눈빛이었다. 이시완은 빙긋 웃으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유연의 심기따위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말투였다.

 

  "나는 여자 혐오증, 형사님은 남자 공포증, 어때요? 필이 딱 통하지 않아요?"

  "……."

  "우리 천생연분이였나?"

 

 어이없다는 듯, 이시완을 바라보던 유연이 하, 하는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전부터 미친 놈인걸 알고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미친놈인 듯했다. 이렇게 쓸데 없는 소리를 짓껄이는걸 보면.

 

  "사실 남자 공포증인 여자 꼭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이시완의 얼굴엔 즐거운 기색이 가득했다,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나타나, 기분이 좋아진 것 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람이랑 이야기 하느라 좋을테지.'

 

 유연은 속으로 그를 한껏 비꼬았다. 적어도, 유연은 이 상황이 즐겁지 않았으니까.

 

  "근데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완전 신기하지 않아요?"

 

 주절주절 떠드는 이시완의 목소리는 양쪽 귀를 통과해 공기중으로 흩어진 뒤였다. 이래저래 짓껄이는 말은 많았지만, 유연의 귀에 그런게 들어올리 만무했다.

 

  "남자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별 반응 없네요? 약 효과가 떨어지려면은 더 있어야하는건가?"

 

 이시완은 지금, 허점을 보이고 있었다. 유연이 남자를 무서워한다는 생각에 대놓고, 유연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연은 그런 조롱에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였다. 남자는 무서웠지만, 범죄자는 무섭지 않았다. 벌벌 떨려오는 손끝이나, 벌렁거리는 심장은, 여태껏 당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으니까.

 

  '이시완이 허점을 보이고 있다면…….'

 

 순간, 머리속으로 기가막힌 생각이 하나 스쳐지나갔다. 이시완과의 거리는 불과, 1M. 이시완의 손에 라이터가 들려있긴 했지만, 손만 뻗으면 닿을거리였기에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말의 뜻은, 바닥에 내려놓은 총은 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수갑은 채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 수갑!'

 

 유연은 제 뒷주머니에 넣어놓았던 수갑을 떠올렸다. 혹시나 필요할때 쓰라며, 오늘 아침 수갑을 억지로 쥐어주던 상혁의 얼굴이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하여간, 이럴때만 팀장이라니까.

 

  "그러게, 우리 천생연분이였나보다."

  "인정하는거에요?"

  "응, 인정."

 

 유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이시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유연의 말이 의외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빙긋 웃어보인 유연이 허리를 숙여 이시완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코끝이 닿을만한 거리임에도, 이시완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뭐에요?"

 

 범죄자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것 만큼 힘든 건 또 없었지만, 오히려 유연은 그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해결 될 듯했으니 말이다.

 

  "왜? 놀랐어?"

  "하, 그 약 끊으면 사람이 미쳐요?"

  "어, 미쳐. 미치지 않고서야 못버티니까."

 

 투덜투덜대는 이시완을 바라보던 유연이 쓸데 없는 소리로 시선을 끌며, 뒷짐을 지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봐선, 이시완은 유연의 행태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왼쪽 손으로는 뒷주머니에 넣어놓았던 수갑을 꺼내, 오른손에 한쪽 수갑을 채웠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이시완의 손목을 잡아챘다.

 

  "뭐, 뭐야?"

 

 철컹, 이시완의 오른쪽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놀란 표정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유연은 제 쪽을 향해 휙 수갑을 당겼다. 휙 몸이 기울자, 이시완의 머리가 창가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아차, 이시완은 한껏 얼굴을 구겼다. 손에 쥐고 있던 라이터를 놓치고 만 것이었다. 8층 높이에서 떨어진 라이터가 바닥에 떨어지자, 파스슥, 소리를 내며 부숴졌다.

 

  "제기랄."

 

 하, 이시완은 짧게 웃었다.

 

  "한방 먹었네."

 

 충격이 가해진 머리가 띵했다. 이시완은 미친 사람처럼 픽, 픽거리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기가막혀서 아무런 말도 튀어나오질 않았다. 하, X발 진짜. 이가 악물렸다.

 

  "너……."

 

 말을 하려 할때마다, 왈칵 화가 치밀어올랐다. 남자공포증이라고 마음 편히 시간을 끈 것이 화근인듯했다. 이렇게 쉽게 당한걸 보면…….

 

 이시완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살짝 고개를 들었다. 유연은 손목에 붉은 생채기가 날정도로, 수갑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요즘 약이 참 좋나보네."

  "……."

  "남자를 보고 놀라지도 않는걸 보면."

 

 이시완의 표정은 변함없이 평온했다. 이 상황을 포기한건지, 아니면 정신줄을 놓아버린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 역시 별다른 변화가 없어보였다. 유연은 그런 이시완을 바라보다가, 기가차다는 듯 대꾸했다.

 

  "너가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

  "난 너 남자로 안봐."

 

 말을 끝내자마자, 유연은 또 다시 수갑을 팽팽하게 당겼다. 휙 당겨진 이시완의 몸이 창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살벌한 눈이 유연을 응시했다.

 

  "그냥 더러운 범죄자로만 보지."

 

 하. 이시완에게선 기가찬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순간, 벌컥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검은색 수트와 높은 콧대, 그리고, 짙은 눈빛까지.

 

  "유연씨!"

 

 눈앞에 들어온 것은, 상혁이었다. 버럭 소리를 친 상혁이 다급히 유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훅, 끼치는 땀냄새 속에 묘한 상혁의 체취가 섞여있었다.

 

  "하, 미안해요."

 

 상혁은 유연이 차고 있던 수갑을 풀어 제 손목에 채웠다. 이 모든걸 계획했던 사람 같은 일사분란한 움직임이였다. 유연은 수갑이 풀리자마자, 바닥에 떨어져있던 총을 주워들었다. 실제 총은 아니였지만, 어느정도 겁은 줄 수 있도록 만든 장난감 총이었다. 이게 통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이시완은 허점 투성인듯했다.

 

  "나 안늦은 거죠?"

 

 이마의 땀을 닦으며 상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유연은 손목을 탈탈 털며 망설이다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미 늦었어요."

 

 아, 탄성을 낸 상혁이 잔뜩 울상을 지었다. 아까 전 CCTV를 확인하자마자, 죽어라 달려왔더니, 생각보다 일이 많이 진행된 듯했다. 사건이 이렇게 커진걸 보면. 축 쳐진 어깨를 바라보던 유연이 살풋 웃었다.

 

  "하지만, 뭐 나쁘진 않았어요."

 

 유연은 괜히 퉁명스런 어투로 답했다. 살짝 고개를 든 상혁이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유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왔으니까."

 

 부끄러운 듯, 휙 시선을 돌린 유연이 괜히 뒷머리를 매만졌다. 살풋 웃어보인 상혁이 반대쪽 손을 뻗어 붉은 생채기가 난 손목을 조심스레 그러쥐었다. 아까전 부터 마음에 걸렸던 상처였다. 조금만 더 빨리왔다면 이럴일이 없었을텐데, 상처를 보자,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사실 상혁은 성범죄 사무실에 몰래 설치해놓은 CCTV를 보다가, 수갑을 차고 있는 유연을 보고 놀라서 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그건, 저녁쯤 유연이 자신의 약이 없어졌다며,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해놓았기에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CCTV를 설치해놓지 않았다면, 만약 제가 CCTV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유연은 큰 위험해 처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잘 풀린 상황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그 사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미안해요."

 

 상혁은 유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곤, 부드러운 손길로 유연의 손목을 쓰다듬었다. 이번 사건이 끝나면, 꼭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상혁은 다짐했다.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제 마음이 좋지 않은 탓이었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에 유연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어느새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뒤였다.

 

 머지않아, 몇십명의 경찰들이 사무실과 이시완의 건물로 쳐들어갔다. 그리곤, 김주니를 구하고, 이시완을 다시 체포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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