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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성범죄 수사팀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12.11

과거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성범죄 피해자 차유연, 유연은 형사가 되자마자 성범죄 수사팀을 만들고 팀장인 한상혁과 함께 끝없이 일어나는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강남역에 일어난 강간사건의 해결을 위해 출동한 유연은 예상밖의 인물과 마주치는데, “네가 날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해?” 뗄레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악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유연과 강간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택해버린 동생의 복수를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든 상혁의 미스터리 로맨스.

 
File 11. 살려줘
작성일 : 17-12-11 16:10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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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만 밀라니까요!”

 

  따가운 눈총이 온 몸에 박혔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온 공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경찰서 곳곳에선 상혁을 향해 안쓰러운 시선을 쏟아냈다.

 

  상혁은 유연의 등을 쭉 밀며, 꾸역꾸역 경찰서 밖으로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가는 내내 유연이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경찰서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은건 당연했고, 다른 팀 반장님에게 한소리 들은 것 역시 당연했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나가기 싫다며 죽어라 버티는 유연 덕에 주차장 까지 오는 것도 한참이 걸릴 정도였다.

 

  “갑시다, 예?”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또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가 없는 유연 탓에 상혁은 그야말로 개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방금 전에도 아이의 엄마에게 달려들려고 하던 유연을 몇 번이나 뜯어말렸을 정도였으니, 이미 말은 다한 듯했다. 제발 말 좀 들어줬으면 좋으련만, 유연은 언제나 그랬듯 끝없는 반항을 쏟아냈다.

 

  “왜 이러세요, 정말!”

  “제발요, 제발.”

 

  몸을 이리저리로 뒤틀던 유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이 왜 이렇게 센 거야 정말, 입술이 삐죽. 상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연은 잔뜩 투덜거리며 꾸역꾸역 차에 탑승했다. 금세 쿵, 닫히는 문 뒤로 찌릿한 시선이 상혁을 매섭게 훑어 내렸다.

 

  온 몸에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기를 다루 듯, 유연을 어르고 달랜 상혁이 차 조수석에 유연을 앉히자마자, 안도의 숨을 터트렸다. 어찌나 고집이 세던지, 유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느라, 상혁은 땀을 한바가지 넘게 흘렸을 정도였다.

 

  “뭐야, 정말.”

 

  유연의 얼굴이 불퉁했다. 사무실에서 여기까지 오는 내내 유연은 가기 싫다며 한참 난리를 쳤지만, 결국 상혁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엔 없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성범죄 수사팀 팀장인 상혁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굳이 따지자면 힘에서도 한참 밀리기도 했고.

 

  쳇, 혀를 찬 유연이 팔짱을 꼈다. 금세 후다닥 달려가, 운전석에 타는 얼굴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렇게 안절부절 못 하는 거야?”

 

  삐죽 튀어나온 입이 잔뜩 투정을 쏟아냈다. 유연의 말을 뻔히 들었음에도, 모르는 척 시동을 건 상혁이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조차도 얄밉게 보이기만 해, 유연은 잔뜩 이를 갈았다. 언젠간, 저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너무한 거 아냐? 내가 뭐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냐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상혁의 멱살을 붙잡고 마구잡이로 쏟아낼 말들은 많았지만, 유연은 굳이 그것을 하진 않았다. 뭐, 따지고 보자면, 상혁의 행동이 그렇게 잘못된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상혁이 유연을 말리지 않았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될지 뻔했다. 또 사람에게 달려들어 수습할 수도 없는 큰 사고를 쳤겠지. 저번엔 상혁이 막아줘서 감봉이라는 징계로 끝났지만, 이번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게 확실했다. 왜냐, 유연은 윗선에게 단단히 찍혀버린 상태였으니까.

 

  상혁에게 고맙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워하는 감정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혼자만 멋있는 척 하는 상혁은 영 유연의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뭐, 유연이 워낙 남자를 싫어한 것도 한몫했고.

 

  누구랑 사귀게 될지 그 여자가 불쌍하다 불쌍해.

 

  유연은 혀를 내두르며, 안타까운 탄성을 터트렸다. 그게 멀지않은 미래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알지 못한채.

 

 

 

 *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시언은 병실 주변을 빙빙 맴돌며, 애꿏은 머리만 벅벅 헝클였다. 민식이 정신을 잃은 지 벌써 12시간째, 그동안 수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병실을 들락날락거렸지만, 민식은 아직까지도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머리가 지끈했다. 갑자기 도주를 한 이시완과 생사의 위험 길에 갈린 민식까지. 정말이지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일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상태에서 수사팀까지 말썽이라니, 시언이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지게 된 건 안 봐도 뻔했다. 가뜩이나, 성범죄도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민식의 부재는 생각보다 위험했으니까.

 

  성범죄수사팀은 남자의 수가 현저하게 적었다. 총 10명 중에 여자가 7명, 남자가 3명이였으니, 비율적으로나 수적으로나 남자의 수가 달리는건 확실했다. 그런데, 민식까지 빠지게 되었으니,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건, 사건 현장에 투입될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니까.

 

  뭐, 워낙 체력이 좋은 유연 같은 경우는 남자라고 말하기에도 무방했지만, 아무래도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범죄자를 체포하는 건 주로 남자들이 담당해왔기에 사건이 많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민식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큰 타격이 되어 돌아올게 뻔했다.

 

  “어떡하냐, 정말.”

 

  시언은 머리를 벅벅 헝클이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해결해야할 사건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끝난 줄 알았던 과거는 훅 하고 다가와 시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드디어 새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시언의 모든 것을 무너트리고 말았다.

 

  ‘수민이가 살아있어.’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경과를 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의사는 매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시언은 제길, 욕을 뱉으며 신경질적으로 병실 문 옆에 놓인 의자를 걷어찼다. 생각할게 많은 이 시점에서 의사의 말은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듯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더욱 더 복잡해졌으니까.

 

  답이 없었다. 병실을 비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일을 나갈 수도 없고,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뭐, 굳이 따지고 보자면 민식은 병원에서 죽치고 있는 선경에게 맡기고 가도 되지만, 그건 기분이 영 내키질 않은 탓에 시언은 딱히 그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만한 게,

 

  “감사합니다.”

 

  선경은 정말이지 눈치가 없었으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시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경은 허리를 숙여 꾸벅 건네며, 의사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딱 붙어있는 손을 보자마자 어찌나 베알이 꼴리는지, 시언은 저도 모르게 하, 하는 기가 찬 숨을 내쉬며 잔뜩 미간을 구길 정도였다.

 

  “쟤는 또 뭐야?”

 

  금세 멀어져가는 의사의 뒷모습으로 매서운 시선이 꽂혀들었다. 흔히 말하는 미친개의 시선이.

 

  “야.”

  “네?”

 

  시언은 불퉁한 얼굴로, 선경을 불러세웠다. 곧장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선경이 어정쩡한 자세로 선채 멍한 얼굴로 시언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커먼 얼굴이 어찌나 짜증으로 가득 차 있던지, 선경은 결국 그 시선을 참지 못한 채 먼저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뭐 하러 손까지 잡냐?”

  “…예?”

 

  매서운 목소리가 귓가에 꽂혀들었다. 선경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며, 시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손을 잡다니? 그게 무슨?

 

  “아, 진짜.”

 

  답답한 속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제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귀가 한없이 뜨겁기만 했다. 시언은 휙 몸을 틀더니, 애꿎은 머리를 마구잡이로 잡아 뜯었다. 아휴, 내가 얘한테 무슨 말을 하냐.

 

  “아, 아니다.”

 

  금세 멀어진 뒷모습이 머지않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선경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으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설, 설마?

 

 

 *

 

  주니는 힘겹게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니, 좀처럼 몸에 힘이 나질 않았다. 주니는 침대 맡에 올려둔 약통을 집어 올리더니, 뚜껑을 열고는 안에 들어있던 것들을 입안에 탈탈 털어놓았다. 입안을 가득채운 알약들이 혀끝을 맴돌 때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뭐 하는 거냐,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꽤나 많은 양을 물 없이 씹어 삼켰음에도 퍽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코끝을 맴도는 약냄새가 한없이 고약하기만 해 몇번이나 눈물을 집어삼켜야만 했다. 주니는 혀끝으로 까슬까슬한 입술을 적시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속에서는 늘 이시완의 모습이 보였다.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과, 섬뜩하게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교차되며 수없이 주니를 괴롭혔다. 그래서, 주니는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끔찍한 얼굴이 나타나서 주니의 숨통을 조여 왔으니까.

 

  완벽하게 끝난 일이라는 거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시완은 잡혔고, 증거도 확실했으며,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기만 한다면 더 이상 고통 받을 일 따위는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질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아.”

 

  몸속에 수 백 마리의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샤워를 하지 않으면 더러워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루 종일 샤워를 하느라 쓰러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닐 정도로, 수없이 몸을 씻어내고, 닦아내도, 더럽고 찝찝한 기분은 좀처럼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

 

  “제발, 살려줘.”

 

  슬프게도, 주니는 울었고, 이시완은 웃었다.

 

  그게, 성범죄의 지독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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