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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성범죄 수사팀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12.11

과거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성범죄 피해자 차유연, 유연은 형사가 되자마자 성범죄 수사팀을 만들고 팀장인 한상혁과 함께 끝없이 일어나는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강남역에 일어난 강간사건의 해결을 위해 출동한 유연은 예상밖의 인물과 마주치는데, “네가 날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해?” 뗄레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악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유연과 강간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택해버린 동생의 복수를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든 상혁의 미스터리 로맨스.

 
File 10. 지하철 성추행 사건
작성일 : 17-12-11 16:09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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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민식의 사고에 대한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젯밤, 이시완 사건의 피해자인 김주니에게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느라, 밤을 꼬박 새운 탓이었다. 안 좋은 일은 연속으로 터진다더니, 그게 거짓은 아닌듯했다. 이시완의 도주에 민식의 사고까지, 밤을 새서 해결해야할 일들만 한 가득이었으니까.

 

  어젯밤은 힘겨웠다. 김주니의 증언은 생생했고, 끔찍했으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평생 흘릴 눈물을 다 빼낼 것처럼, 엉엉 울음을 토해내던 김주니의 얼굴이 눈에 훤했다. 가슴에 남겨진 상처들은 끔찍하게 굳어가며,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겼다. 김주니의 몸에도, 마음에도.

 

  “되는 일이 없네, 진짜.”

 

  기분이 바닥을 쳤다. 김주니의 증언에, 이시완의 도주까지, 충격적인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김주니는 그렇다고 쳐도, 이시완은 도대체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범죄자가 수갑을 풀고 도주할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며칠 새 안 좋은 일만 계속해서 일어나니, 인생에 마가 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해야 할 일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으니, 안 좋은 생각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했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옷을 챙겨 입던 유연은 상혁에게서 온 연락으로 인해, 급히 수사팀 사무실로 향했다.

 

  ‘하여간, 나없으면 일이 안돌아간다니까?’

 

  운전대를 잡은 유연이 잔뜩 투덜거렸다. 늘 일에 치여 살긴 했지만, 요즘처럼 바쁜 적은 처음인 듯했다. 성범죄가 아무리 많아졌다고 해도, 이렇게 심각한 사건들이 연속으로 터진 적은 없었으니까. 도망간 이시완도 잡아야하고, 여대생 사건의 범인도 잡아야했으니, 며칠 밤을 새야하는 건 안 봐도 뻔했다.

 

  유연의 빨간 승용차가 탁 트인 도로 위를 달렸다. 오랜만에 안경 대신 렌즈를 낀 유연은 뻑뻑한 눈을 계속해서 깜빡거렸다. 시간은 어느새 9시 반, 출근 시간인 9시를 넘기긴 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수사팀을 만든 이후로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은 무의미해졌으니까.

 

  “민식이는 괜찮으려나.”

 

  헤실헤실 웃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침에 문자를 확인하고 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시완이 워낙 미친 새끼라는 건 전 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이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듯했다. 민식은 결국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고 했으니까. 속사정은 잘 알지 못했지만, 이시완을 하루빨리 체포해야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유연은 경찰서 안으로 들어서며, 옷매무세를 매만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민식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물밀듯 쏟아진 일 때문에 그건 다음으로 미뤄야할 듯했다. 다행이게도, 민식의 병실에는 시언과 선경이 함께 있다고 했으니까.

 

  “이 남자가 제 엉덩이를 만졌어요.”

 

  사무실 밖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유연은 수사팀 식구들의 인사를 받으며, 재빨리 사무실 안으로 향했다. 그세 또 뭔 일이 터진 건지, 가슴이 훅 파인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던지 수사팀 멤버들은 둘을 말리려다가 포기하고는 뒤로 물러서 있을 정도였다.

 

  “왔어요?”

 

  검은색 스키니 바지와 딱 맞는 흰 셔츠를 입은 상혁이 유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몇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금세 코앞이었다.

 

  “예.”

 

  유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간, 살인사건 전담팀과 같이 일을 하느라 밤을 새웠다고 하더니, 그게 거짓은 아닌 듯 상혁의 얼굴이 꽤나 퀭해보였다. 듬성듬성 올라온 수염에 부스스한 머리까지. 초췌한 몰골임에도, 상혁은 그 나름대로 멋이 났다.

 

  “많이 놀랐죠?”

 

  상혁은 유연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마, 민식의 사건을 돌려서 묻는 듯 했다. 유연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덮은 우울한 표정을 애써 거둬냈다. 힘들고 속상해도 지금은 일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에는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유연은 열띤 논쟁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턱짓을 했다.

 

  “누구에요?”

  “아, 여자는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에요, 남자는 가해자구요. 여자는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다고 하는데, 남자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며 우기네요.”

 

  흐음, 작게 신음 소리를 낸 유연이 매서운 눈길로 두 사람을 살폈다. 20대 초반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자는 짙은 화장과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향수로 샤워라도 한 것인지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꽤나 독했다. 남자는 뭐, 딱 보기에도 평범한 회사원 같았고.

 

  “목격자는 없어요?”

 

  유연은 담담한 목소리로 상혁을 향해 물었다.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의 신고로도 처벌이 가능하긴 하지만, 목격자가 있다면 사건을 해결하기에 더 수월했다. 뭐, 만약에 가해자가 안했다고 끝까지 우긴다면, 강제 합의로 끝나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 쪽을 향해 고개 짓을 했다.

 

  “다행이게도 있어요, 8살 남자아이요.”

 

  유연은 휙,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아이를 살폈다. 빵모자와 멜빵바지를 입은 아이는 8살이라고 하기엔 몸짓이 꽤나 커보였다. 엄마와 함께 온 건지 소파에는 아이 말고도 중년의 여성이 함께 앉아있었는데, 아이의 엄마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그럼 뭐,”

 

  목격자도 있다고 하니, 사건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듯했다. 유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어보였다.

 

  “됐네요.”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열띤 토론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더니, 결국 유연의 만류로 인하여 잠시 보류하게 되었다. 지하철 성추행 사건은 다른 부서로 넘겨지게 된 상태였다. 원래 같으면 성범죄 수사팀이 해결을 해야 했지만, 어제 낮 민식에게 해를 가하고 도주한 이시완을 하루라도 빨리 체포해야하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피해자 여성은 자리를 옮기는 내내,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기껏 지하철에서 부터 가해자를 끌고 경찰서 까지 왔더니, 사건 해결 속도가 영 느렸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확실한 사건을 뭐 이렇게 끄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여간, 우리나라 경찰들은 이래서 틀려먹었다니까.”

 

  여자는 잔뜩 투덜대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8살 아이는 목격한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그걸 증언으로 채택하기엔 좀 무리가 있었다. 그게, 아이의 엄마가 그 당시에 아이가 잠이 들어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아니라고 우겼지만, 엄마의 의견이 너무 강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증언이 없으니, 사건은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죽어도 아니라고 우겼고, 여자는 죽어도 제 말이 맞다고 우겼으니까. 또 다시 커지는 실랑이 사이에서 경찰들은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이었다. 빨리 집에라도 보내면 좋으련만, 아이와 아이의 엄마는 아직도 경찰서에 남아있던 상태였다.

 

  아이의 엄마는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뭐가 이렇게 조사할게 많은지, 경찰서에 온지 1시간이나 지났음에도 달라지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야할 약속도 있는데, 뭐하는 거야 진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화는 머지않아 피해자 여성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여자는 아이의 엄마를 향해 버럭 화를 냈고, 엄마 역시 여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기가 세?”

  “허, 왜요, 여자는 기가 세면 안돼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경찰들은 거의 자포 자기한 상태로, 혀만 내두르고 있던 상태였다. 여자는 아이의 엄마의 앞에 팔짱을 끼고 선채로,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툭툭, 튀기는 침이 늘어갈수록, 싸움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져만 갔다.

 

  경찰서가 꽤나 시끌시끌했다. 작은 불씨로 시작된 싸움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며, 경찰서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유연은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가려다가, 앞을 가로막는 상혁 탓에 몇 걸음 떼지 못하고 우뚝 멈추어 섰다.

 

  “이건 다른 부서가 해야 할 일이에요, 우리가 참견하면 안 좋아 할 거예요.”

  “나도 알거든요.”

 

  입이 삐죽, 유연은 상혁의 어깨를 손으로 툭하고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때는 멍청해보이다가, 꼭 이럴 때만 팀장인 척한다니까. 상혁이 맞는 말을 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유연은 괜히 투덜거렸다.

 

  “옷 꼬라지하고는.”

 

  아이의 엄마는 여자를 아래위로 훑어 내리며, 조롱 섞인 말을 던졌다. 한 뼘밖에 되지 않는 길이와 가슴이 푹 파인 원피스까지. 딱 보기에도 ‘나 술집여자에요’ 하는 티를 내고 다니는 듯했다. 여자는 하, 하는 기가 찬 숨을 흘리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쓱 쓸어 올렸다.

 

  “너 그렇게 입고 다니는 거 일부러 만져달라고 그런 거 아냐?”

  “뭐요?”

 

  여자는 버럭 소리를 쳤다. 툭툭 튀어나온 뜨거운 입김이 여자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이 아줌마가 보자보자 하니까? 매섭게 달려들려는 여자를 본 경찰이 후다닥 달려와 온 몸으로 여자를 막아냈다.

 

  “아니 그렇잖아, 길가다가 툭 칠 수 있지. 뭘 그걸 경찰서까지 끌고 와서 난리야.”

 

  둘 사이의 언행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아이의 엄마는 얄미운 목소리로 여자를 한껏 조롱하며, 마구잡이로 혀를 내둘렀다. 끔찍한 경악이 터져 나왔다. 눈이 확 돌아간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의 엄마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이 아줌마가 진짜!”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경찰서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보다 못한 형사들이 달려와, 아이의 엄마를 여자에게서 멀리 떼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영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여자는 손짓 발짓을 다하며 분노를 표출해냈고, 아이의 엄마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경찰들을 떼어내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여자의 머리채를 한껏 쥐어 잡았다.

 

  “아악!”

 

  흠칫 몸을 떤 유연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하잖아.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온 신경이 아이의 엄마에게로 쏠렸다. 저절로, 불끈 쥐어진 주먹이 금방이라도 뻗어나갈 듯했다.

 

  아차, 상혁은 탄성을 냈다. 유연의 표정을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일을 칠 듯했다. 얼마 전에도 사고를 치는 바람에 골머리를 썩었었는데, 이번에도 또 사고를 친다면 저도 유연도 징계를 피하지 못할게 뻔했다. 성큼성큼 걸어온 상혁이 유연의 등을 밖으로 쭉 밀었다.

 

  “갑시다, 네? 가요.”

 

  상혁은 유연을 힘껏 잡아끌며 말했다. 등을 미는 힘이 꽤나 강해서 놀랄 정도였다. 유연은 멍한 표정으로 질질 끌려가며, 소파에 앉아있는 아이를 살폈다. 고작 8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푹 하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제, 이런 일은 지겹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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