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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성범죄 수사팀
작가 : 유지
작품등록일 : 2017.12.11

과거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성범죄 피해자 차유연, 유연은 형사가 되자마자 성범죄 수사팀을 만들고 팀장인 한상혁과 함께 끝없이 일어나는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강남역에 일어난 강간사건의 해결을 위해 출동한 유연은 예상밖의 인물과 마주치는데, “네가 날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해?” 뗄레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악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유연과 강간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택해버린 동생의 복수를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든 상혁의 미스터리 로맨스.

 
File 08. 충격
작성일 : 17-12-11 16:07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4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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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이 홧김에 저지른 타격은 생각보다 후폭풍이 심한 듯 했다. 그도 그럴만한게 팀장인 상혁은 윗선에게 끌려가 징계를 받아야만 했고,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이시완은 병원 치료를 받아야만했기 때문이었다.

 

  뭐, 이시완이 다친 거라고 해봤자, 입술이 터진 것 뿐이였는데, 그마저도 아프다며 하도 징징대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병원까지 오게 된 상황이었다.

 

  병원은 꽤나 북적거렸다. 다행이게도 유연이 아는 의사에게 전화를 해 미리 예약을 해논 뒤라, 치료는 빨리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병원에 들어선 내내,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이시완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치며 펄쩍 펄쩍 사방을 뛰어다녔기 때문이었다.

 

  날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몸뚱이를 잡으려고 어찌나 뛰어다녔던지, 헛구역질이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꾸역꾸역 이시완의 뒷통수를 잡아채 진료실 안으로 밀어넣은 박형사가 힘겨운 숨을 토해냈다. 이시완은 상처 치료보다, 정신 치료를 더 먼저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이시완은 애정 결핍증에 걸린 아이처럼 굴었다. 누군가의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어린 아이처럼,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다. 범죄자가 무슨 사랑을 받고 싶어하나 싶었지만, 이시완이 부모 없이 홀로 커왔다는 이야기를 듣곤 난 후로, 민식은 금세 수긍할 수밖엔 없었다.

 

  치료는 금방 끝이났다. 박형사와 함께 병원 밖으로 걸어나온 이시완이 끄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위로 쭉 기지개를 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간호사가 얼굴을 치료해주는 내내, 이시완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간호사의 얼굴이 예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그랬듯, 병원은 좋았다. 의사도, 간호사도 다 제 말을 경청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아프다고 말하면, 치료를 해줬고, 정신이 아프다고 하면, 정성스럽게 상담도 해주었다. 평생 받지 못했던 관심을 받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기만 했다.

 

  경찰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박형사는 땀으로 젖은 이마를 손으로 대충 훔쳐내며, 조주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루종일 이시완을 감시하고, 달래주고, 데리고 다녀야했더니, 온 몸이 그야말로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이시완은 순순히 뒷자석에 탑승했다. 헤실헤실 웃고있는 이시완의 얼굴이 꽤나 멍청해 보여 민식은 픽 하는 웃음을 흘렸다. 저런 또라이는 또 없을거라고 생각하면서.

 

 

 

 *

 

  김주니는 한없이 힘들어했다. 하긴, 강간에 폭행까지 당했으니, 멀쩡한 정신 줄을 붙잡고 있는게 더 이상하긴 했다. 흰 셔츠에 검은색 긴바지를 입은 그녀는 힘겹게 수사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원래 같으면 형사과에서 조사를 해야했지만, 유연이 무조건 자신이 해야한다며 부득부득 우긴탓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결정이기도 했다.

 

  수사팀은 텅텅 비어져있었다. 그건, 유연이 김주니가 온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팀원들을 모두 퇴근 시켰기 때문이었다. 끔찍한 기억을 꺼내는데, 많은 관중은 오히려 독이였다. 아무리, 괜찮다고 달래고, 아무리 따뜻하게 대한다고 해도, 마음에 남겨진 상처는 쉽게 씻을 수 없을테니까.

 

  수사팀 끝에 위치한 둥그런 탁자엔 작은 커피잔 하나와 소형 녹음기가 놓여져있었다. 녹음을 해도 되냐는 유연의 물음에 김주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야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유연은 김주니에게 대답을 보채거나, 눈치를 주는 것 없이 그녀의 마음이 진정될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힘겹게 입을 연 김주니는 그날의 사건을 천천히 토로했다. 왜 모텔에 가게 되었는지 부터, 어떻게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까지.

 

  “이, 이, 시완이 제 옷을 벗겼어요.”

 

  가끔씩 이시완의 이름이 튀어나올때마다, 흠칫 떨리는 여린 몸이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하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하며, 피해자 김주니는 아까 전 취조실에서 본 가해자 이시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기분이 바닥을 쳤다. 가해자는 웃는데, 피해자는 울었다. 유연은 그 사실을 깨달을때마다 좀처럼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아무리 가해자에게 죗값을 치루게 해준다고 해도, 피해자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는게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이시완의 모습이 떠오를때마다,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피해자는 치료도 못하는 병에 걸렸는데, 가해자는 태연히 병을 치료하다니. 이토록 애통한 경우가 또 있을까?

 

  유연은 주먹을 꽉 쥐며, 꾸역꾸역 분노를 참아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시완에게 죗값을 받게 해줄거라고 다짐하면서.

 

  “그러더니, 날카로운 꼬챙이로 제 가슴을 찔렀어요.”

  “가슴을요?”

 

  고개가 끄덕, 유연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힘겨운 숨을 토해냈다. 사건현장에 놓여있던 쇠꼬챙이를 보고,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결국 그런 용도로 사용한듯했다. 나쁜새끼, 부들부들 떨리는 몸 위로 뜨거운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제 가슴이 풍선같다면서요, 너무 커서 터트리고 싶다고, 그래서….”

 

  김주니는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아 유연이 그녀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김주니는 유연이 말릴새도 없이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툭툭 풀어헤쳤다. 금세 드러난 하얀 살갗엔,

 

  “제 몸을 쇠꼬챙이로 마구 찔렀어요.”

 

  다신 지울 수도 없는 끔찍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

 

  민식은 화장실에 간 박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러게 좀 작작 먹으라니까. 아까전 점심으로 시켰던 짜장면과 탕수육을 마구잡이로 흡입하기에 저거 탈나는거 아냐? 하고 걱정했더니, 그 걱정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듯했다. 박형사는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치더니, 급히 주유소 화장실에 들어가, 20분째 나오질 않고 있었으니까.

 

  “변기에 빠졌나, 왜이렇게 안와?”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창밖을 살피던 민식이 버럭 소리를 쳤다. 아무리 배탈이 났다고 해도, 20분이나 기다리게 만드는건 좀 심한 듯했다. 아니, 오래걸리면 문자라도 넣어주던가. 연락 한통 없이, 긴시간을 기다려야하다니, 정말이지 지겨워서 죽을 맛이었다.

 

  박형사는 꽤나 단단히 탈이 난 듯했다. 아까전 부터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걸음도 제대로 못걸은걸 보니, 아마 급성 장염인 것 같았다. 그러게 병원을 가라니까. 차에 탄 내내, 민식이 병원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싫다고 부득부득 우기던게 박형사였다. 그리곤, 이런 꼴이라니. 쯧쯧.

 

  “저러다가, 병원비가 배로 깨진다니까.”

 

  민식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경찰들은 왜이리 병원을 가는 걸 싫어하는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는건지, 아니면 돈이 아까운건지, 자세한건 알지 못했지만, 민식은 늘 전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왜냐, 제 자신도 그래서 병원을 안갔으니까.

 

  뒷자리에 앉아있는 이시완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차에 갇혀있어야만 하니, 정말이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담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오는길에 담배도 똑 떨어진 탓에 민식의 짜증은 최고조에 다다라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3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민식은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퍽퍽 내리치며, 짜증을 토해냈다. 어느정도면 그러려니 할텐데, 30분 이상은 도무지 화가 참아지질 않았다.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고, 직접 화장실에 갈수도 없고, 이런 난감한 상황은 다시 태어나도 겪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인듯했다.

 

  이시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뒷자석에 일자로 누웠다가 다시 앉는 것을 반복했다. 꼭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듯한 모양새에 한숨이 터져나왔다. 짤랑거리는 수갑소리가 연신 귓가를 울렸다. 민식은 그광경을 보며 한소리 하려다가, 금세 입을 꾹 닫았다. 지금 상황에서 말싸움까지 난다면, 속이 터져서 죽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재밌는거 알려줄까요?”

 

  이시완은 예상외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휙, 고개를 돌린 민식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이시완을 훑어내렸다. 길게 늘어트린 소매와 이마에 흥건한 땀, 그리고,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기괴스런 면상까지.

 

  “있잖아요.”

 

  귓가로 훅 다가온 숨결에 화들짝 몸을 떤 민식이 다시 고개를 정위치로 돌렸다. 꽤나 섬뜩한 목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지만, 최대한 괜찮은척 하는게 좋았다. 그래야, 이시완도 경찰을 만만히 보지 않을테니까.

 

  그동안 수많은 범죄자들을 만나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듯했다. 대부분 자신은 죄가 없다며 울거나, 소리를 치거나 하는게 다였는데, 이시완은 이상할정도로 침착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놈들이 더 무섭다고, 이시완은 딱 그경우인듯했다. 소름끼치도록 상황에 잘 적응했으니까.

 

  그래도, 수갑이 채워져있어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도망갈 틈이나, 공격을 가할만한 건덕지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얼마전에 여대생 죽은거.”

 

  그런 민식의 예상은 순식간에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거."

 

  그도 그럴만한게

 

  "내가 한건데.”

 

  이시완이 수갑이 없는 휑한 손으로 민식의 양 어깨를 부여잡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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