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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법사 죽이기
작가 : 나드리
작품등록일 : 2016.8.30

마법사를 죽이러 다니는 마법사 이야기.

 
기적-3
작성일 : 16-09-03 17:21     조회 : 368     추천 : 4     분량 : 5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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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뷔크의 반응에 이엘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맞는 말인걸.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 뷔크는 거실 벽면 중앙에 걸린 초상화를 향해 턱짓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잘 정리된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였는데, 부리부리한 눈이 매우 엄격해 보였다.

  “상인인 아버지를 따라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느라 마음 붙일 곳이 없었지.”

 

  뷔크는 머뭇거리는 이엘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별로 안 닮았지?”

 

  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를 닮았거든.”

 

  이엘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이엘은 구태여 묻지 않았다. 뷔크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

 

  긴 계단을 오르자 다락이 보였다. 천장이 낮았지만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어둡지 않았다. 구석에는 이젤 여러 개가 쌓여있었고 벽에는 뷔크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싸구려 표구에 갇힌 채 걸려 있었다.

 

  “여기가 작업실이야. 음, 좀 엉망이지만.” 뷔크가 쓰러진 책상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찢어진 그림 조각이 바람에 흐트러졌다. 이엘이 조각을 주웠다.

 

  “이건…… 어제 그린 그림이잖아요?”

 

  뷔크가 한숨 쉬었다.

 

  “눈썰미가 좋군.”

  “왜 찢었어요?”

  “맘에 안 들어서.” 뷔크가 이엘이 앉을 의자를 가져오며 말했다. 의자 위에 쌓인 먼지가 날렸다. 이엘은 훌쩍이며 코를 문질렀다.

  “고생해서 그렸잖아요.”

 

  뷔크가 얼룩덜룩한 걸레로 의자를 닦았다.

 

  “노력과 작품의 질은 비례하지 않지.”

  “그래도 아까워요.”

  “아니.” 뷔크는 단호했다. “아깝지 않아.”

 

  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편한 침묵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뷔크가 손뼉을 쳤다.

 

  “자, 우리가 할 일을 해야지. 조금만 기다려. 준비해 줄 테니.”

 

  뷔크가 쌓여있는 이젤로 다가갔다. 그는 조금 불안한 동작으로 이젤 하나를 꺼냈다.

 

  “이게 진짜 이젤이지.” 뷔크가 이젤을 세우고 그 위에 목판을 올리며 말했다. “도화지.”

 

  뷔크는 이엘이 가져온 도화지를 목판 위에 펼쳤다. 그리곤 이젤 앞으로 의자를 옮겼다. 뷔크가 말했다.

 

  “앉아봐.”

 

  이엘은 의자에 앉아 도화지를 바라봤다. 그는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뷔크가 건네주는 연필을 들었다. 뷔크가 연필 잡는 법을 교정해주는 동안, 이엘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좋아, 이제 정말 그림이란 걸 배우는 거야. 잘할 수 있을까? 혹시 사치를 부리는 건 아닐까? 누나는 지금 이 순간도 홀로 집에 누워있어. 평소엔 어쩔 수 없다지만 오늘은 집에 가봐야 하는 건 아닐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만약 오늘, 내가 한가하게 그림이나 그리고 있는 동안, 누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못하겠어요.” 이엘이 뷔크의 손을 뿌리치고 연필을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뭐라고?”

 

  이엘이 벌떡 일어났다.

 

  “죄송해요. 그리고 초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뷔크가 이엘의 팔을 붙잡았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도저히 안 되겠어요. 이렇게 놀고 있을 수는 없어요.” 이엘이 뷔크의 손을 뿌리치려 애쓰며 말했다. 이엘의 말을 들은 뷔크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다.

  “논다고? 넌 지금 내가 너랑 놀아주려 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엘은 예상치 못한 뷔크의 분노에 당황했다.

 

  “아니에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전 그냥…….”

  “그만.”

 

  뷔크는 이엘의 말을 끊었다. 그는 냉랭한 공기를 뚫으며 자신의 의자를 이엘의 의자 앞에 옮겼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말했다.

 

  “앉아.”

  “하지만 전…….”

  “난 널 고용했어. 네 마음대로 하게 두진 않을 거야.”

 

  이엘은 불안해하며 의자에 앉았다. 뷔크가 말했다.

 

  “말 해봐.”

  “예?”

  “날 설득해봐.”

 

  이엘은 주저했다. 구태여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 몇몇은 그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 또한 쉬쉬하곤 했다. 그러나 뷔크가 그런 사정을 봐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뷔크를 바라봤다. 뷔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엘은 제 나이를 착각한 듯, 깊은 한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누나!”

 

  이엘이 문을 열어젖히자 누군가 창문을 넘어 달아났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도망자보다 엘라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엘라는 나체로 문 앞에 쓰러져있었다. 문을 향해 손을 뻗은 채였다. 찢긴 옷이 이엘의 발에 밟혔다.

 

  “정신 차려, 누나!”

 

  엘라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을 뒤덮은 눈물 자국이 상황을 짐작케 했다. 크고 작은 생채기와 멍이 몸을 뒤덮고 있었다. 이엘은 눈물을 흘리며 침대로 엘라를 옮겼다. 그리곤 젖은 수건으로 엘라의 몸을 닦았다. 그러던 중, 이엘은 엘라의 허벅지로 흘러내린 핏자국을 발견했다. 이엘은 흔들리는 시선으로 핏자국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의 눈은 엘라의 가랑이에서 멈췄다.

 

  이엘은 피를 닦으며 엉엉 울었다. 아직 어렸던 그는 엘라에게 일어난 일을 명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엘라의 혼을 빼놓은 원흉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이후로 엘라는 영원한 잠에 빠졌다. 이엘은 그녀가 깨기를 매일 기도했지만 일 년이 지난 뒤, 그만두고 말았다. 그녀의 몸속에는 여전히 피가 돌았지만 시체나 다름없었다. 목구멍으로 죽을 밀어 넣으면 절반은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겨울밤을 나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발에 동상이 생겼을 때도, 그녀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이엘은 거의 포기했다. 엘라가 깨어날 가망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그대로 둘 순 없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엘라는 살아있었다. 그 때문에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했다. 이엘은 그녀를 돌보고, 일했다. 일과 엘라, 엘라와 일. 그 반복적인 삶이 어느덧 삼 년이나 흘렀다.

 

  ***

 

  이엘은 그 사이에 있었던 한 사건은 말하지 않았다. 한 마법사가 건네준 비밀. 그것만큼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떠오른 거예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누나는 혼자 있을 텐데……. 일 할 때는 상관없어요. 그건 누나를 위한 거니까요. 하지만 그게 아니면…….”

  “좋아, 알았어.” 뷔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큰 가방에 도구를 담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놀란 이엘이 뷔크를 따라 일어났다.

  “그림 그리러.”

  “지금 숲에 가면 늦을 거예요.”

 

  뷔크는 고개를 저었다.

 

  “숲은 안가.”

  “그럼 어디로 가요?”

  “너희 집으로.”

 

  뷔크가 이엘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

 

  뷔크가 앞장서 걷는 이엘에게 말했다.

 

  “더 빨리 걸을 순 없니?”

  “뷔크씨가 너무 빠른 거예요.”

 

  이엘이 뷔크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빨라요?”

  “무슨 질문이 그러냐. 빨리 걸으니까 빠른 거지.”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무슨 말인지 알아.” 뷔크가 웃었다. “요령이야. 체중을 앞으로 싣는 거지. 마치 달릴 때처럼.”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 근데 버릇이야. 고칠 수 없어.”

  “꼭 누가 쫓아오는 거 같아요.” 이엘이 장난스레 말했다.

  “네 말이 맞아. 누가 쫓아오던 시절에 생긴 버릇이니까.”

 

  그 말을 들은 이엘이 사색이 돼 손사래 쳤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한 말이었어요.”

  “알아. 우리 둘 다 너무 예민한 것 같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겁먹을 필요 없어. 빨리 걷는 건, 다리 다치기 전에도 있었던 버릇이야. 아까 말했지?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 전전했다고.”

  “예.”

  “아버진 상인이야. 꽤 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했지.”

  “무역이 뭐예요?”

  “음, 바다를 건너 물건을 파는 거지. 수백, 수천 개의 물품을 배에 싣고 항해하곤 했어.”

  “와!”

 

  이엘은 감탄했다. 그도 바다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수도로 떠나기 전까지, 이엘은 술이 쏟아진 테이블을 닦으며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바다와 그 건너의 생소한 나라, 그곳의 문화와 먹거리 그리고 사창가에 대해 떠들곤 했다.

 

  “바다 건너에는 팔이 네 개나 달린 사람이 산다면서요?”

  “그런 곳도 있었지. 팔이 네 개나 달려서 그런지 씀씀이가 크더라고. 우린 많이 사봤자 양손 가득 밖에 못 사는데.”

 

  뷔크의 농담에 이엘이 물건을 가득 드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아무튼 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세계를 여행했어. 처음 보는 세상을 화폭에 담았지.”

  “멋진 일이에요.”

  “멋졌지.” 뷔크가 추억에 잠긴 채 말했다. “다시 돌아가도 그때처럼 멋지게 느껴지진 않을 거야. 첫 경험은 소중한 법이니까. 그리고 그 모든 첫 경험 중에서도 용뿔 사슴을 만났을 때만큼 강렬했던 순간은 없었어.”

  “용뿔 사슴요?”

  “그래. 난 동물을 많이 그렸어. 그런데 동물을 그리다 보면 도망쳐야 할 순간이 찾아오지. 넌 맹수들이 얼마나 빠른 줄 아니?”

  “늑대는 만난 적 있어요.” 이엘은 늑대의 날카로운 이와 사나운 울음을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돌릴 수가 없었어요. 때마침 시내에서 불꽃을 쏘아 올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잡아먹혔을 거예요.” 의아해하는 뷔크의 표정에 이엘을 재빨리 덧붙였다. “축제 기간이었거든요. 늑대가 그걸 보고 놀라 달아났어요.”

 

  뷔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떠나기 전만 해도 축제가 잦았지. 아무튼, 내가 본 맹수들에 비하면 그깟 늑대는 아무것도 아닐 거다.”

  “정말요?”

  “그래. 그런 맹수들이 쫓아올 땐, 조금이라도 얼어붙어 있으면 안 돼. 항상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지. 그래서 난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도 늘 긴장하고 있었어. 그림을 그리러 갈 때도,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이렇게 걸을 거다. 너도 말이야.”

 

  뷔크는 갑작스레 이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놀란 이엘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자 뷔크가 껄껄 웃었다.

 

  “이렇게 된다고.”

  “너무해요!” 이엘이 눈물 맺힌 눈으로 외쳤다.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쫓기는 사람은 영문을 알든 모르든 일단 달아나게 되는 거야.”

 

  뷔크가 웃음을 삼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문을 모르니 어쩔 도리가 없지.”

 

  이엘은 듣지 못했다.

 

  이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엘라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이 없음에 그는 안도했다. 이엘은 어질러진 집을 대강 정리했다. 그리고 문밖에서 기다리는 뷔크에게 말했다.

 

  “들어오셔도 돼요.”

 

  뷔크가 집에 들어오자 이엘은 조금 긴장했다. 엘라가 잠든 뒤로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 건 처음이었다. 뷔크씨에게 친구가 없다고 한 건 정말 큰 실수였어.

 

  “아늑한 집이구나.”

 

  뷔크의 말에 이엘이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작고 좁기만 한걸요.”

  “그래서.” 뷔크가 고갯짓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저분이 네 누님이니?”

  “맞아요.”

  “인사를 드려야겠군.” 뷔크가 침대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무리 주무시고 계셔도 예의는 지켜야지.”

 

  뷔크는 공손한 태도로 엘라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뷔크라고 합니다. 이엘의 고용주이자 별 볼 일 없는 화가…….”

 

  뷔크는 인사를 끝내지 못했다. 그는 엘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얀 피부…… 긴 속눈썹…… 윤기 나는 손톱…… 진줏빛 머리칼…….

 

  “무슨 일 있으세요?” 이엘이 의아해하며 뷔크에게 물었다.

  “찾았어.”

 

  뷔크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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