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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브라콘 여동생은 울지 않아!
작가 : 송완청
작품등록일 : 2017.10.20

19세기와 20세기를 더불어 크고 작은 갈등으로 이어진 전쟁들로 인해, 남성 인구에 대한 감소가 절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전 세계에 남성 인구 부족 현상이 뒤따랐고, 성비 불균형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몇 차례의 국제 회의에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심각성이 바다 위로 떠올라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모든 국가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1960년대부터 시행해온 정책의 이름은
치카사 제도(近さ制度).
수 십, 수 백번의 시행착오와 함께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던 치카사는 역경을 딛고 성공을 향해 도약하여
비로소 21세기가 된 2000년 전후가 되어서야 정책의 효과가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이 된 지금, 조금 특별하고 별난 이 현재의 법을 지지하는 절대적 브라콘 오빠바라기 여동생과,
현재의 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하지 않는 은근한 시스콘 여동생바라기 오빠와 그의 파트너가 된 국가 연인 추천상대 외 몇 명의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기 펼쳐진다.

 
XV 내 동생은 안돼!
작성일 : 17-12-08 19:27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9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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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장 15화 내 동생은 안돼!

 

 

 전봇대 앞에 덩그러니 버려진 곰인형처럼 홀로 식탁에 앉아있다.

 벌써 며칠째인지, 카나미 선배와 데이트를 다녀온 이후로부터 히마리랑 얘기하기는커녕 얼굴 마주 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확인해봤을 때 다행히도 어제 방문 앞에 놔두었던 볶음밥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긴 했지만 정작 그 밥을 주워 먹은 장본인은 포식자들을 피해 소라 껍데기 안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소라게 못지않게 얼굴 한번 비춰주지 않았다.

 

 그날만 그러더냐.

 다음 날인 월요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도, 심지어는 오늘 아침까지도 히마리는 밥도 챙겨 먹지 않고 그대로 학교로 떠나버려 지금 나는 혼자 집에 남겨져 멍하니 있는 중이었다.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시원하게 켜던 뽀삐가 내게로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쯧쯧쯧」하고 혀를 끌끌 차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요 근래 평소보다 무척 늦게 들어오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도망가 버려서 말도 제대로 못 꺼냈었지.

 말도 없이 카나미 선배랑 데이트 해서 뚱해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렇게까지 독하게 무언 시위를 해야 하는 걸까.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설마 히마리가 그걸 계기로 삐딱선을 타게 되어 비행 청소년이 된 것은 아닐까 괜한 걱정들이 가슴속에 사무쳤다.

 

 '히마리, 오빠 속 썩이는 일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 …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책상에 축 늘어져서 쭉 동생 걱정만 했다.

 걔네 반 앞까지 찾아가서 대화라도 구걸해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독기를 품은 지금 녀석의 상태라면 혈연 지간이고 뭐고 모르는 변태 상급생이 자신을 괴롭힌다며 쫓아내 버릴 게 뻔했다.

 이럴 땐 어떻게 다가가야 될지 나한테는 너무 어렵다..

 

 "왜 또 그렇게 힘없이 흐물흐물해져 있어?"

 오늘도 무념무상의 세상 다 잃은 표정을 하고서 하루하루의 나날들을 보내는 내게 찾아온 두 명의 녀석들 중 코코가 제일 먼저 운을 떼며 말을 걸었다.

 "동생이 내 얼굴을 안 봐줘.. 얘기도 안 할라 그러고."

 "둘이 싸우기라도 한 거야?"

 "싸운 건 아닌데… 주말에 말 안 하고 카나미 선배랑 데이트하고 돌아왔더니 계속 저러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계속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오는 건지 계속 밤늦게 돌아온다니까? 진짜 저거 남자라도 만나는 거 아니야?"

 "음… 확실히 신이치 군 여동생한테 남자가 생긴 게 분명하네. 것도 그럴게 이제 슬슬 자기 사랑 할 때도 된 거지~"

 

 「덜그럭ㅡ」

 

 "어라……"

 가방에서 도시락 통을 꺼내던 중에 코코의 말을 듣고 손이 멈춰버려 도시락 통이 고스란히 교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히마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는 바람에 남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내 것에 넣어 놓은 잔반들이 도시락이 땅에 떨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밖으로 빠져나와 사방으로 날아가 못 먹게 되어버렸다.

 멈추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땅바닥에 나뒹굴고 흙먼지들을 머금은 반찬들을 위태롭게 도시락 통에 도로 주워 담았다.

 

 히마리에게 남자가 생겼다.

 녀석을 만나느라 그래서 집에 늦게 들어오던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굵고 날카로운 가시가 심장을 관통한듯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자극적인 고통이 스며 들어와 표정이 막 죽어가는 환자의 낯빛과 같이 어두워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나름 동생도 다른 사정이 있어서 늦는 거겠지! 그치?"

 자기가 앞서 남자 만나는 거 아니냐고 미심쩍게 말해서 맞장구 쳤더니 되레 진심으로 충격 받고 쓰러지려고 하는 나를 보고 급하게 말을 돌렸다.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하고서 떨어진 반찬들을 주워 담다가도 현실을 부정 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생기자 허둥대며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괜찮은 척 했다.

 "그- 그렇지? 역시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 아! 괜히 걱정했잖아~"

 「뭐하는 녀석이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나를 향한 코코의 애처로운 눈빛이 나를 책망해서 공연히 시선을 피할 따름이었다.

 

 "나 어제 봤어. 히마리 어떤 남자애랑 같이 있는 거."

 「푸후웁ㅡㅡ!」

 나를 안심시킨 뒤, 목이 타서 텀블러 안에 물을 마시던 코코가 분위기를 못 타고 자기가 본 걸 그대로 고한 호타루 때문에 놀라서 고대로 호타루 얼굴 앞에 뿜어내었다.

 "……하."

 코코의 타액이 섞인 물에 얼굴과 윗옷이 흠뻑 젖은 호타루가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강한 탄식을 내뱉었다.

 

 코코가 옷소매로 입가에 묻은 물을 스읍 닦고 뒤늦게 내 상태를 확인했지만

 이미 나는 전신이 새하얗게 굳어버려 옆에서 톡하고 건드리면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내리고 가루가 돼버릴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엄지와 중지로 살며시 눌러 지압을 하는 코코와 그런 코코가 애써 어르고 달래서 무마시켜 놓은 걸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주동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뻔뻔한 건지 찌릿찌릿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코코에 대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 …

 

 바람 좀 쐬면서 긴장을 풀 겸 코코는 메두사의 눈을 마주하고 석상이 되어버린 한 구의 시체처럼 딴딴하게 굳은 나를 호타루 팔과 자신의 팔에 동여매고 학교 뒤편 정원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저 애석할 정도로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 보는 내 마음은 무아지경이다.

 아아ㅡ, 쉴 틈 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치이고 둘 뿐인 가정의 실세에 치여서 여기까지 온 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 한마디 수줍게 건네어 본다.

 

 "인생 덧없이 잘 살았어."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

 "에라이, 이 바보야. 동생한테 버림 받더니 늦바람 맞고 중2병이라도 도졌어?"

 애초에 당시엔 온 적도 없었던 불쑥 찾아온 중2병 감성에 젖어서 몽실몽실 그 짧은 옛날의 추억을 노래하는 내 볼따구니에 보기 좋게 강펀치를 내리꽂았다.

 

 「푸허억ㅡ 」

 힘차게 날라온 철퇴 같은 타격감의 코코의 주먹은 고사리 같은 여자 손이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첨예하고 무엇보다도 듬직했다.

 한 대 맞고 나서 또 한 방 더 먹일려는 코코를 보고 부르르 떨면서 정신줄을 다잡은 나는 방도를 찾기 위해서 천연스럽게 집중 모드에 돌입했다.

 

 "됐어!… 정신 차렸어, 고마워. 우선 내 예상대로라면 오늘도 의심할 여지없이 히마리는 그 녀석을 만나러 갈 거야."

 "그래서 뭐 뒤에서 은근슬쩍 미행이라도 나서겠다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이 방법 밖에 없어."

 동생의 의심스러운 행적을 동행한다.

 하나 뿐인 듬직해야 할 오빠로서 여동생의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줘야 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야 우환으로 인한 안전과민증 때문에 밤마다 잠 못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카나미 선배 귀에 흘러들어 가면 안돼."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자꾸 옆에 가만히 서서 경청하는 척하면서 흘려듣던 호타루가 내 옆구리를 거세게 쿡쿡 찔러댄다.

 뭐 때문에 그러냐고 눈치를 주려던 때에 앞쪽에 있던 코코의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무지근하게 들려와 내 온몸의 기를 옥죄었다.

 

 "도대체 뭐가 카나미 선배 귀에 들리면 안 된다는 걸까나?"

 양 손을 자연스레 초면인 코코의 어깨 위에 올려두고 자기 이름을 언급하며 남몰래 회의를 나눈 작당들을 돌려 막아 세우는 명랑한 신참지기 여순경처럼 소름 듣을 정도로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차…

 코코가 무심코 내가 점심시간마다 오는 장소로 끌고 와버린 탓에 혹시라도 내가 와있지는 않을까 해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선배가 우리 셋의 긴밀한 대화를 엿듣고 살금살금 다가온 모양이었다.

 서로 말을 놓기로 했지만, 상대방을 압박하는 어감을 표현하는 선배의 거침없는 말문은 편하게 말하거나 경어를 써서 말하거나 어느 한쪽 안 두려울 것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저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것이라기보다는 웃는 얼굴로 침 뱉는다라고 하는 게 딱 어울릴 것 같았다.

 아직까지 내가 선배를 제대로 깊숙한 속내까진 못 봐서 그렇지 선배는 사실 천사의 얼굴을 한 심술궂은 어린 악마, 혹은 말괄량이 소악마 서큐버스일지도 모른다니깐…

 

 "아니 그게 말이지. 그리 심각한 건 아니고 선배는 그냥 편하게 있어도 되니까..."

 "신이치 군! 연인 사이에는 어떠한 담이라도 존재하면 안돼! 나한테 솔직하게 얘기해줘."

 압박 심문으로 박차를 가하는 선배 때문에 궁지에 몰린 나는 식은땀을 삐질거리면서 호타루와 코코를 번갈아서 흘겨보며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다들 카나미 선배의 보드라우면서도 빡빡한 누님 포스에 짓눌려 서로의 눈치를 살살 살피기도 바빠 그저 실없는 웃음으로 화답할 뿐이었다.

 이럴 땐 꽁무니 빼고 도망가는 것 봐라 진짜!

 저것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본격적으로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선배가 휘두르는 사랑이 드세지더니 연애 초기 중 서로의 위치를 (일단락) 일시적으로 마무리 짓게 되는 결정적인 시발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나이도 나보다 한 살 많고, 성숙한 면에서도 나보다 훨 앞서가기 그지 없는, 무엇보다도 처음에는 애교로 환심을 산 다음 입장이 바뀌자 적극적으로 돌변한 선배가 선두권을 쥐어 잡았다.

 여전히 나를 지극히 아껴주고 다 받기도 벅찬 넘치는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선배이지만, 연인 간의 짚고 넘어가야 할 붸리 임폴턴트한 파트에서 만큼은 매번 미꾸라지 마냥 요리조리 피해가려는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내세우며 강제를 범하는 선배인 것이다..

 

 "하아.. 사실은 말이지…"

 확답을 듣고 말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쏘아붙이는 선배를 꺾을 자신이 없던 나는 결국 휴일에 있었던 일부터 모든 사실들을 전부 이실직고했다.

 내 얘기를 듣는 내내 선배의 표정은 갈수록 굳어가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배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고 꿋꿋이 들어주었다.

 

 "그래도 그렇지! 동생한테 말도 안 하고 나온 거야? 적어도 귀띔 정도는 해줬어야지."

 "그야… 걔한테 얘기하면 못 가게 할 게 뻔하니까.."

 "신이치 못됐네. 동생 군이 얼마나 서운했겠어?"

 되레 걱정되는 마음에 상냥하게 화를 내며 다그쳤다.

 이해는 해도 쉽게 인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신이치를 독차지한 내 책임도 없지 않아 있으니까 나도 힘을 보탤게. 너무 걱정하지 마."

 "굳이 그렇게 애먹으면서 이런 일에 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리고 선배는 아무 잘못 없잖아?"

 "누나가 도와준다고 하면 감사하게 받는 거야. 자자 신이치 친구들도 가까이 와서 들어봐! 지금부터 미행 작전을 짤 테니까?"

 "네? 저희..들도요?"

 

 첫 대면에 모르는 애들한테도 한 치의 어색함도 없이 적극적으로 통솔하면서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 낯선 상황에 낯선 누님에 갈피를 못 잡던 애들도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 어쩌면 선배의 거대한 포용력 앞에 무릎 꿇려 거부감 없이 잘 어울리게 되었다.

 자기 일도 아닌 남자친구라고 해야 되나.. 어찌 됐든 연인의 일을, 더군다나 지금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연인의 형제에 관한 일에 대하여 솔선수범하며 열심히 하는 선배의 옆모습은 마치 남매의 다툼을 가운데서 중재해주는 어머니의 모습 같이 진중했다.

 사뭇 진지하게 임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데 전념하는 선배는 리더쉽 있어 보였다.

 

 … …

 

 작당을 이루고 작전을 나누면서 어느새 눈에 띄게 가까워진 우리 넷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한 곳으로 모여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

 "모두들 준비 됐지? 다같이 힘을 합쳐서 신이치 군이 히마리랑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거야!"

 "오!-…… 근데 히마리가 몇 반인데?"

 … … …

 "모르겠는데…"

 「에? 아니 도대체 어째서!」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 하던 선배와 코코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이르렀다.

 예상치도 못 했던 부분에서 시작도 못 해보고 벌써 파멸할 위기에 처한 이들은 마구마구 돌팔매질을 하면서 무력한 나를 채찍질하였다.

 

 "도대체가 오빠란 녀석이 동생네 반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냐고 방구냐고."

 "헤에… 신이치가 조금 띨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걔네 반에 찾아갈 일이 없었으니까 모를 수밖에…"

 딱히 확실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더니「그게 더 문제잖아!」라고 호되게 혼났다.

 도시락도 있고 한데 솔직히 찾아갈 이유가 없는 건 맞잖아…

 

 셋이서 치열하게 담화를 나누는 사이에 혼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호타루가 운동장 한복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저기 있다."

 "어디 어디!"

 일시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된 시선이 따라간 곳에는 정말로 여럿이 짝 지어서 하교 하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홀로 운동장 위의 굵고 뜨거운 모래를 가르며 교문으로 향하고 있는 히마리가 있었다.

 저 녀석 중학교 때도 제대로 된 친구라면 칸나 하나 뿐이던 낯가림이 심한 애였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괜스레 가슴 한편이 짠해지는 기분이 든다.

 

 "어어? 히마리 그대로 가버리잖아! 안 따라가고들 뭐 해? 이러다간 정말 놓친다니까."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히마리가 교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던 우리들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목표물이 시야에서 사라져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니나 다를까 히마리는 오늘 방과 후 동아리 활동도 없어서 곧장 집에 갈 수 있을 만한 텀이 생겼을 터인데 히마리의 걸음은 집으로 향하지 않고서 다른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건지, 누굴 만나려는 건지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미행 이 짓 하는 것도 못 기다릴 것 같은 정도였다.

 에이씨… 이렇게 뒤에서 몰래몰래 따라가서 언제 알아보고 언제 말할 거냐고!

 한 두어 번 정도 폭주를 참지 못하고 히마리한테 달려가려는 나를 셋이서 억지로 잡아 끌기를 반복하면서 히마리를 따라가던 우리 일행은 도리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최종 목적지를 맞닥뜨렸다.

 

 그곳은 신사 앞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큼지막한 도리이(鳥居)'를 연상하는 대문 양식 위에는「쇼오토쿠 상점가」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시끌벅적한 동네 상점가 입구였다.

 '도리이 - 일반적으로 신사의 입구에서 발견되는 전통적인 일본의 문.

 

 "상점가…?"

 조금 의외였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상상도 못 했다고나 할까.

 가끔 어쩌다가 히마리를 데리고 장을 보러 나가야 할 때는 동네 작은 백화점에 데려가서 바겐세일 하는 것들을 골라 담아 오기도 했었지만

 (부모님들이 주마다 혹은 매월마다 생활비와 기타 용돈 등을 두둑이 보내주긴 하는데 알뜰살뜰하게 써야 하니 바겐세일이 있는 날에나 백화점에서 주로 쇼핑하는 형편이다) 

 글쎄… 상점가가 백화점보다 가깝긴 해도, 이런 쉬지 않고 하루 바삐 돌아가는 상점가 특성상 히마리를 데리고서 상점가로는 장 보러 온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상점가에는 왜?!"

 게다가 오는 동안 뭔가에 홀린 듯이 내내 「어라?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라며 구시렁대던 코코도 예상치 못한 장소 앞에 도착하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코코 너도 이상하지? 그치?"

 "어? 어어 뭐… 확실히 생뚱맞긴 하네.. 어.."

 그래 그렇다니까! 상점가랑 히마리랑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느냔 말이더냐.

 

 그사이 히마리는 드문드문 고르게 분포해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주위를 슬쩍 둘러보더니 이내 어느 한 커피 전문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뒤를 따라서 살그머니 미행한 우리는 그 가게 안쪽이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각도에 있는 스탠드 간판 뒤에 쪼르르 숨어서 테이블 앞에 혼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히마리의 수상쩍은 행태를 주도면밀히 관찰하였다.

 "흠.. 도대체 저기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누구 기다리는 거 아니야?"

 "… …"

 

 그때였다.

 우리들이 간판 뒤에 아슬아슬하게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 나이 뻘 돼 보이는 젊은 점원이 커피 두 잔을 들고서 히마리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오빠의 직감적인 느낌으로 녀석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쟁반 위에 있던 커피 한 잔을 히마리 앞에 놓고 나머지 한 잔의 커피는 반대편 빈 자리에 올려놓던 점원은 내 예상대로 주인 없는 커피 앞에 자연스럽게 앉아 히마리를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옳거니. 너 잘 만났다.

 네가 나한테서 하나 뿐인 내 사랑스런 동생을 뺏어간 몹쓸 놈이구나?

 어디 어려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내 동생을 (사실 고등학생인 우리 모두 어리지만)

 

 창문 밖으로 비치는 평소와 같이 덤덤한 표정으로 아담한 손을 이용해 자기 손보다 큰 커피 잔을 들고서 쪼물쪼물 커피를 홀짝대는 히마리와 그런 동생 앞에 뭣도 모르고 앉아서 저 맹랑하고 건방져 보이는 얼굴로 히마리에게 말을 거는 자식의 꼴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정말 화가 치밀어 올라 곧 있으면 「펑~」하고 터질 위기에 처할 것만 같았다.

 내로남불이라고.

 내가 히마리를 새까맣게 잊어 먹고서 선배와 다복하게 데이트를 즐겼던 행복감은 정작 내 옆에만 있을 거라고 자부하던 히마리가 떠나고 다른 남자 앞에 앉아 시시콜콜 노닥거리고 있다는 현실을 맞이하자 푸석푸석하게 무뎌져 덩달아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어어? 저 자식, 저거 뭐 하는 거야?!"

 뭔 얘기를 그리도 재밌게 나누던지 한참을 희미한 웃음을 띄며 잡담을 나누던 점원 녀석이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을 뒤적이다가 작고 반짝이는 물체를 꺼내 들어 보였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햇볕에 반사돼서 작지만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저건 누가 봐도 반지임에 틀림 없었다.

 반지로 보이는 작은 물건을 히마리에게 보여주더니 쉬이 히마리 손을 잡으며 약지에 끼워주었다.

 

 그 장면을 곧이곧대로 목격하게 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과부하 돼 석탄 땔감을 마구 집어 처넣은 증기 기관차의 증기관 마냥 대폭발에 이르렀다.

 "앗! 잠깐만 신이치! 기다려 봐, 할 얘기가 있어!"

 더구나 내가 날뛸까 봐 뒤에서 붙잡고 있던 애들이 잠시 한눈이 팔려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 한 타이밍에 나는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둘이 있는 커피 전문점을 향해 따라잡힐 새도 없이 달려들었다.

 가게 문을 걷어차다시피 박차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 나는 창가 쪽 방향을 두리번거리다가 잔뜩 화가 난 나를 발견하고서 소스라치게 놀란 히마리와 그런 히마리와 나 사이에 뻘쭘하게 앉아서 둘을 번갈아 바라보는 사내아이를 찾았다.

 

 "오빠가 왜 여기 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히마리. 이런 데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건데?"

 툴툴대면서 히마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 나는 바로 옆에 앉아서 덤덤한 얼굴로 지금 이 곤란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사내아이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빤 알 거 없잖아… 그 언니 분이랑 놀지 나는 왜 찾아 왔대. 내 취미 생활이니까 건들지 마!"

 하지만 급작스런 나의 출현에 당황하면서 미안해 하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히마리는 아직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감정이 풀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강렬하게 말대꾸하며 화를 내었다.

 

 "뭔 취- 취미… 뭐- 뭐야? 너 정말 그런 식으로 밖에 말 못해?!"

 예상과 달리 진지하게 밀어붙이는 히마리의 견제에 잠시 주춤했지만 그걸 빌미로 더욱 분개하게 되었다.

 너무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서 그런지 분해서 말이 꼬일 정도였다.

 

 "신이치 진정해! 이러면 화해고 뭐고 죽도 밥도 안된다고!"

 한발 늦게 뒤따라온 선배와 친구들이 부리나케 몰려 들어와서 이성을 잃고 매섭게 눈을 부라리는 나를 끌어 잡고 저지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화났을 때의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생에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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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빼빼로데이外』좋아한다고 말해줘 2017 / 11 / 12 281 0 8451   
13 『빼빼로데이外』게임을 가장한 키스 작전! 2017 / 11 / 12 286 0 6432   
12 XI 야밤의 두 신부 2017 / 11 / 12 278 0 8762   
11 Ⅹ 내 두 팔 위에 두 여동생 2017 / 11 / 12 313 0 6079   
10 Ⅸ 우리 집엔 왜 왔니 2017 / 11 / 12 280 0 6263   
9 VIII 삼인방 (完) 2017 / 11 / 9 317 0 10281   
8 Ⅶ 삼인방 (2) 2017 / 11 / 7 287 0 6039   
7 VI 삼인방 (1) 2017 / 11 / 6 288 0 4161   
6 V 활기의 학교 2017 / 11 / 3 307 0 5526   
5 IV 여동생의 밤 2017 / 11 / 2 357 0 9404   
4 III 너와 내 마음의 준비 2017 / 11 / 1 311 0 5885   
3 Ⅱ 충고와 갑작스런 준비 2017 / 10 / 30 334 0 4406   
2 Ⅰ 아침부터 이러기냐 2017 / 10 / 21 378 0 3469   
1 프롤로그 2017 / 10 / 20 571 0 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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