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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법사 죽이기
작가 : 나드리
작품등록일 : 2016.8.30

마법사를 죽이러 다니는 마법사 이야기.

 
기적-2
작성일 : 16-09-02 04:53     조회 : 415     추천 : 4     분량 : 5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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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답변에 이엘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뷔크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좀 짓궂게 군건 맞지만…… 좋아. 이러면 어때? 작업이 끝나면 내가 그림을 가르쳐주지. 그땐 네가 저 사슴을 그려봐. 내가 이젤을 받쳐주마.”

 

  이 또한 이엘이 떠올려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요.”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없던 일로 돌릴 수도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

 

  이엘은 뷔크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의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뷔크의 눈동자에는 두 마리의 사슴이 있었다. 하나는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었고, 하나는 뷔크의 붓끝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또한, 하나는 언젠가 사라질 아름다움이었고, 하나는 영원히 남을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하나는 완벽했고, 하나는 완벽에 가까웠다. 이엘이 보기에 뷔크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뷔크는 열정적으로 그렸으나 가끔 깊은 한숨을 물감 위에 토했다. 눈가에 패인 깊은 주름은 그의 눈에 비친 빛나는 뿔과 대조적이었다.

 

  ***

 

  뷔크가 붓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오늘은 이만 마쳐야겠다. 어두워지기 전에 숲을 나가야 해.”

 

  이엘은 뷔크가 시키는 대로 짐을 꾸렸다.

 

  “이것만 빼고.”

 

  뷔크가 이엘의 손에서 그림을 빼앗았다.

 

  “아직 덜 말랐거든.”

 

  이엘은 순순히 넘겨주며 앞서 걷는 뷔크의 뒤를 따랐다. 뷔크는 이엘이 알지 못하는 길로 그를 인도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이 돼서야 이엘은 자신이 아는 길 위를 걸을 수 있었다. 뷔크가 이엘에게 짐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한 시까지 여기에서 만나자.”

  “보수는요?” 이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참, 깜빡했군.” 뷔크는 품 안에서 동화 세 개를 꺼내 이엘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이엘이 외쳤다.

  “별것도 아닌데. 그럼 조심히 가라.”

 

  뷔크는 절뚝거리며 떠났다.

 

  ***

 

  이엘은 집으로 가며 생각했다. 참 이상한 하루였어. 평생 쓸 운을 하루 만에 다 쓴 것 같아. 뷔크씨는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 거 같아. 그림을 가르쳐 주겠다 고도 하고.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나? 분명 뷔크씨의 그림은 대단했지만…… 진짜 용뿔 사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런 건 옮길 수 없는 거야. 뷔크씨의 호의에는 감사하지만, 역시 거절해야겠어. 무엇보다 그림을 배울 시간이 없는걸. 누나를 돌봐 줄 시간도 부족해.

 

  이엘은 집에 도착해 엘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엘라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이엘은 늘 했던 것처럼 엘라의 몸을 뒤집고 그녀의 몸에 쌓인 땀과 먼지를 닦았다. 그리고 결코 깨지 않을 것처럼 누워있는 엘라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는 누나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얗게 빛나는 피부, 솔잎처럼 긴 속눈썹, 진줏빛 머리칼……. 이엘은 깨달았다. 자신이 용뿔 사슴에 매료된 진짜 의미를. 자신은 희귀하고 멋진 사슴을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을 보고 있었고, 그녀가 생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이엘은 엘라의 가느다란 팔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그는 지쳐있었다. 오늘 있었던 행운이 별 볼 일 없게 느껴졌다. 그깟 행운이 백 번 천 번 온대도 무슨 소용이야. 누나는 평생 깨어나지 못할 거고, 나도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텐데. 그때 이엘의 머릿속에 뷔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용뿔 사슴과 뷔크, 용뿔 사슴을 그리는 뷔크, 용뿔 사슴을 원하는 뷔크. 이엘은 비로소 뷔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뷔크씨의 목적은 용뿔 사슴을 그리는 게 아니야. 용뿔 사슴을 원하는 거야. 이엘은 무언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엘라에게 다가가 말했다.

 

  “누나. 나 그림을 배울 거야. 그래서 누나를 그릴 거야. 잠에서 깨어나 나와 함께 있어주는, 그런 누나를 그릴 거야.”

 

  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

 

  뷔크는 약속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엘을 발견했다. 손을 들자 이엘 또한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많이 늦었지?”

  “아니에요.”

  “미안하다. 일이 있었거든.”

 

  뷔크는 그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전날 오후에 그린 용뿔 사슴 그림을 찢고 오는 길이었다. 보면 볼수록 맘에 들지 않았다. 뷔크는 그림을 찢으며 고함을 질렀고, 찢은 후에는 책상을 엎었다. 한참을 씩씩거리고 나서야 이엘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급하게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약속에 늦은 것은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었다. 이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럴 수도 있죠.”

  “고맙다. 자, 가자.”

 

  뷔크는 절뚝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엘이 그 뒤를 따랐다.

 

  ***

 

  숲에 도착한 뷔크는 짐을 풀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중요한 물감 몇 개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전날 밤,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겠다고 장비를 꺼냈던 게 화근이었다. 그는 자신을 질책했다. 이 쓰레기야! 넌 저 보물을 그릴 자격이 없어. 만약 네가 정말로 절실했다면 이따위 실수는 하지 않았겠지. 등신! 머저리! 너 같은 놈은 죽는 게 나아!

 

  “뭐가 잘못됐나요?” 이엘이 뷔크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내가 꼭 챙겼어야 하는 물품을 가져오지 않았어. 오늘은 아무래도 여기서 끝내야 할 거 같구나.”

 

  자조 섞인 뷔크의 말에 이엘이 위로했다.

 

  “괜찮아요. 내일 다시 그리면 되죠.”

 

  뷔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젠 그리지 않을 거야. 미안하지만 너도 다른 일을 찾아보렴.”

  “안 돼요!”

 

  뷔크는 갑작스러운 고함에 놀라 이엘을 쳐다봤다. 이엘의 작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화가시잖아요. 화가는 그림을 포기하면 안 돼요.”

 

  뷔크는 잠시 고민하다 이엘에게 말했다.

 

  “돈이 필요해서 그러지?”

 

  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화가에 대해서 뭘 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구나. 어제의 네 모습을 떠올려 보면 말이야. 결국, 돈 때문에 나를 붙잡는 거겠지. 가만히 서서 돈 벌 기회를 날리는 거니까.”

  “그렇지 않아요.” 이엘이 이를 악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그럼 오늘치 값은 쳐줄게. 왜 나를 말렸지? 네까짓 게 그림에 대해서 뭘 안다고!” 뷔크가 소리치자 놀란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림을 배우고 싶어요.” 이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뷔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요.”

 

  뷔크는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건 빈말이었다. 그저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되는 대로 지껄였을 뿐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엘이 그걸 진지하게 고민했을 거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 그럼 용서해주마.”

 

  뷔크는 짐짓 타이르듯 말했다.

 

  “아저씨야말로 솔직히 말해요!”

 

  이엘의 격양된 목소리에 뷔크는 움찔했다.

 

  “아저씨는 저 사슴 좋아하죠? 그래서 그리는 거죠?”

 

  뷔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좋아하는데도 가까이 가면 달아날까 봐 먼발치에서 그리는 거죠?”

 

  여전히, 뷔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도 그래요.” 이엘이 고개를 떨궜다. “사랑하는데 함께 할 수 없어요. 아니, 함께 있지만 그건 함께 있는 게 아니죠.”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새들이 돌아와 조용해진 숲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애썼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뷔크였다.

 

  “농담이야.”

 

  이엘의 황당해하는 표정에 뷔크는 헛기침을 했다.

 

  “좀 짓궂었지? 내가 농담을 좋아하거든.”

  “정말이에요?” 이엘이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당연하지. 오늘은 다만 도구가 없을 뿐이야. 내일부턴 제대로 해보자고. 아,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이엘이 뷔크를 쳐다봤다. 뷔크가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그림을 가르쳐 줄게.”

 

  놀란 이엘이 멍하니 있자 뷔크가 재촉했다.

 

  “싫어?”

 

  “아뇨!” 다급히 소리친 이엘은 이윽고 용뿔 사슴을 떠올리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뷔크 또한 용뿔 사슴의 존재를 떠올리곤 바위를 향해 황급히 몸을 돌렸다. 실수다. 사슴이 여길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해야하는데. 우리 때문에 어딘가로 숨어버리면 어쩌지? 그때, 이엘이 속삭였다.

 

  “아직 있어요.”

 

  용뿔 사슴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뷔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엘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뷔크에게 말했다.

 

  “보기보다 둔한가 봐요.”

  “그러게. 원래 그런 동물이 아닌데.” 뷔크가 의아해했다. 그럴 리가 없는 동물이었다. 뷔크는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사슴들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겠죠.”

 

  뷔크의 마음을 읽은 듯한 이엘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사슴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줄은, 둘 다 알지 못했다.

 

  ***

 

  뷔크의 집은 숲을 지나 산 중턱에 있었다. 올라가는 길이 험했음에도 그는 다리를 전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움직임으로 산을 탔다. 이엘은 그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너무 빨라요.” 뒤늦게 뷔크를 따라잡은 이엘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버릇이야. 자, 여기가 바로.”

 

  이엘은 숨을 고르며 뷔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숨을 멈췄다.

 

  “이, 이게…….” 이엘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비볐다.

  “우리 집이야. 좀 크지?”

 

  이엘은 대답 대신 입을 크게 벌리고 넋 나간 듯 뷔크의 집을 바라봤다. 왕도 이런 곳에선 살지 못할 거야. 저 지붕 좀 봐. 장식이 안 붙어 있는 곳이 없어. 벽은 또 어떻고.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는 좁은 집에서 홀로 누워있는 엘라를 떠올렸다. 누나도 이런 곳에서 지내면 좋을 텐데. 일어나진 못하지만 그래도 좋은 꿈은 꿀 수 있을 거야. 잠자리가 편해야 행복한 꿈을 꾸거든. 이런 집에 살 정도면 내가 집을 비웠을 때 누나를 돌봐 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걱정도 덜 할 텐데.

 

  “안 들어오고 뭐 해?”

 

  문을 연 채 기다리던 뷔크가 이엘을 불렀다. 이엘이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야.” 뷔크가 웃었다. “손님이 오는 건 아버지 이후로 처음이군.”

 

  이엘이 문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제가 처음이라고요?”

  “그래. 맞아.”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이엘은 집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친구도 없어요?”

  “그래.” 뷔크가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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